소설리스트

BJ천마-34화 (34/212)

8. 레일 서바이버 (1)

> 레일 서바이버 가도 천마님이 뭐 할거 있냐?

> 몰?루 겜이 겜이잖아

> 갈喝! 지금 천마님을 의심하는 것이냐!

> 자고로 ‘신앙’을 잃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법이며···

새 게임을 한다는 말이 나오자 채팅창이 기대감과 걱정으로 양분되었다.

물론 걱정하는 인원들보다는 기대하는 사람의 수가 압도적이다.

기대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단순하다. BJ천마가 지금까지 보여온 압도적인 피지컬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BJ천마가 지금까지 보여온 피지컬은 대부분 PVE 게임에 한정되어 있었다.

걱정과 의심이 생기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BJ천마의 피지컬이 과연 PVP에서도 제대로 통할 것인가?

물론 의심하건 걱정하건 지금 단천의 방송에 집중할 수밖에 없지만.

‘좋은 타이밍에 게임을 전환할 수 있어서 다행이로군.’

“앞으로 당분간은 레일 서바이버 플레이에 집중하도록 하겠다.”

사실 시청자의 수만을 생각한다면 다키스트 에이지를 대체할 콘솔 게임을 편성하는 것이 맞다.

솔로 플레이 게임을 하는 것으로 다키스트 에이지 시청자층을 끌고 나간 다음, 메이저한 PVP 게임인 레일 서바이버에 집중하는 것이 여러 모로 이상적이니까.

하지만 단천은 그러지 않았다. 1위를 찍겠다고 선언한 이상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성미에 맞았으니까.

‘그리고··· 설레기도 하고.’

온라인 게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난이도가 높다. 정해진 움직임만을 반복하도록 짜여져 있는 솔로 게임과는 다르다.

하루하루 새로운 전략이 발견되고, 새로운 플레이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유저들이다.

단천은 이런 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퍽 기꺼웠다. 천마의 위에 오르고 나서는 한참 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

도전자로서의 감정.

“레일 서바이버를 실행한다.”

[레일 서바이버를 실행합니다.]

얼마만에 느껴보는지 모를 피가 끓는 기분을 느끼며. 단천은 레일 서바이버를 실행했다.

레일 서바이버를 실행하자마자 나오는 세 개의 창.

[연습 게임 : 튜토리얼과 게임 룰에 대해서 학습합니다.]

[일반 게임 : 랭크 점수가 걸려 있지 않은 일반 게임입니다.]

[랭크 게임 : 랭크 점수가 걸린 게임입니다.]

> 일단 튜토부터 ㄱㄱㄱ 배워야 될거 엄청 많음

> ㄴㄴ 일반게임부터 가야 됨

> 천마가 공부 다 하고 왔댔잖아 랭크 ㄱㄱ다

세 개로 나뉜 의견들. 하지만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랭크 게임을 실행한다.”

> 이게 천마님이지 ㅋㅋㅋㅋㅋㅋ

> 튜토리얼 생략은 유구한 천마의 전통인 법

> 그딴 거지같은 전통이 왜 있는건데 ㅅㅂ

[랭크 게임을 실행합니다.]

파지지직!

짜릿한 전류가 몸을 타고 흘렀다. 순식간에 단천의 몸이 전기화되어 먼 곳을 향해 빛살처럼 나아갔다.

[랭크 게임 검색을 시작합니다.]

원래라면 그저 노가리를 까고 있어야 할 검색 시간이지만 단천의 눈은 이곳저곳을 쉴 새 없이 훑고 있었다.

레일 서바이버가 무슨 게임인지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알 수 있는 것들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마냥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랭크 게임을 검색합니다. 17/100]

예를 들자면 저기 나와 있는 플레이 인원수. 100명이라는 인원이 동시에 하는 게임이라는 것. 소중한 정보다.

> 랭크 오르는 게 몇위부터지?

> 이론상 in50만 계속해도 올라가지

> 빨리 올라가려면 5위 안에는 들어야 됨

절반 안에 들어가면 등수가 오른다는 채팅창. 그렇다는 건 세력이 있는 게임이 아니라 개개인의 플레이어가 생존하는 배틀 서바이버 장르의 게임이라는 뜻.

그리고 떠오르는 게임 tip.

[게임 tip : 레일 서바이버를 즐길 때에는 매너를 지켜 주세요!]

‘아무 쓸모없군.’

게임에 대해서는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 팁을 보며 단천이 가볍게 혀를 찼다.

애초에 매너 플레이에는 이골이 난 것이 단천이었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고 살아도 한 번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는 종심從心에 다다른 것이 한참 전 아니던가.

[게임이 시작됩니다.]

100명의 인원이 모두 모이자 게임이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울려퍼졌다.

파지지지직!

전기화된 단천의 몸이 빠르게 바닥을 향해 낙하했다. 시야 너머로 거대한 맵이 보였다.

[미션맨 님이 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첫판 in 3하면 만원]

그리고 주어지는 미션.

“쉽군.”

봐도 봐도 미션맨이라는 저 사람. 미션을 제대로 못 준다. 어차피 1등을 할 생각이었는데 10등 미션을 걸어 봤자 아니겠는가.

> 첫판 3등미션 걸었는데 쉽다는 소리 들음 ㅋㅋㅋ

> 미션맨 시무룩 ㅠㅠㅠㅠ

> 미 방 미션컷 왜 이렇게 높음 ㅋㅋㅋㅋ

콰드드드득!

강력한 전기와 함께 단천의 몸이 바닥에 착지했다. 전기화된 몸이 이제는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팬티 한 장만 입은 남자의 복장이다.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복장.

“···이 게임. 풀창고가 만드는 데 관여했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의문의 풀창고 디스 ㅋㅋㅋ

> 아니 그냥 처음 시작 복장이 그런 거라고 ㅋㅋㅋ

의도하지 않고 풀창고에 대해서 가벼운 디스를 날린 단천은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건축물들과 SF 그 자체인  기계들이었다.

‘테마가 SF인가 보군.’

SF이고 자시고, 일단 옷부터 구해야 했다. 건물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네모반듯한 상자들이 보였다.

> 보급품이 별로 안 보이네

> 운이 좀 없었네

> 애초에 전기화때 위치 선정이 구렸잖아

‘저게 보급품인가 보군.’

저 보급품들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모으고 다른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게임인 모양이었다.

단천은 가장 가까운 보급품 상자를 열었다.

[해머 버스트]

[스핏 파이어]

[물]

[힐링 팩]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총 두 자루와 물, 그리고 힐링 팩이었다.

“물과 힐링 팩은 좋지만, 아쉽게도 쓸만한 무기는 없군.”

> ???? 이사람 뭔 소리임

> 해머 버스트 1티어 무기인데요?

> 공부해온 거 맞음?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해머 버스트는 높은 데미지와 유도 능력으로 인해 1티어라고 불리는 최고급의 무기다.

그런데도 BJ천마는 ‘쓸만한 무기가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심지어, 총들은 줍지도 않는다.

> 총을 주우세요 이거 총겜임

채팅창을 가볍게 무시한 단천은 다음 보급품, 다음 보급품을 향해 움직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여러 번의 파밍에도 단천이 바라는 무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난감하군.”

이대로라면 무기 하나 없이 게임을 해야 할 판이다.

> 아니 대체 무슨 공략을 본 거임

> 미치겠네

채팅창과 단천이 모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때.

처음으로 다른 플레이어가 눈에 들어왔다.

다다닥!

단천은 망설임 없이 플레이어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이씨! 뭐야! 템도 안 나와 열받아 죽겠는데!”

단천이 마주친 플레이어, 북리더는 가뜩이나 파밍이 되지 않은 상황에 잔뜩 열이 받아 있는 상태였다.

상자 몇 개를 돌았는데 죄다 힐링 팩터와 방어구들 뿐이었다.

파밍 운이 좋지도 않은 상황인데. 게임을 알지도 못하는 알몸 뉴비가 자신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당장 파밍을 해도 아까울 시간에 저런 뉴비까지 상대하고 있어야 하다니.

하지만 마냥 운이 없지는 않았다.

원래는 버려도 상관없는 무기지만, 이런 알몸대 알몸 싸움에서는 치트키나 다름없는 무기를 주워두기는 했으니까.

북리더는 허리춤에서 주먹 세 개 정도 길이의 막대를 꺼내들었다.

“덤벼! 이 새끼야!”

지이잉! 빛이 발광하며 내는 특이한 소리와 함께, 다섯 치 정도 되는 빛줄기가 솟아올랐다.

“광선검도 없는 새끼가!”

북리더는 자신이 광선검을 꺼내들면 눈 앞의 빤스 차림의 남자가 도망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최소한 쫄아붙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게임에서 무기가 있냐 없냐는 글자 그대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나니까.

그런데 지금 북리더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눈은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는 야수의 눈이었다.

아니, 오히려. 몇 달간 쫓아왔던 사냥감을 바라보는 사냥개의 눈이다.

눈 앞의 빤스차림의 미친놈은 북리더 자신이 들고 있는 광선검을 천천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

단천은 자신이 떨어졌던 무림에 대해서 별 불만이 없었다. 물론 여러 가지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중원은 충분히 넓었고 보고 느낄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대표적인 불만은, 이 넓고 넓은 중원에 광선검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병원 TV에서 봤었던 영화가 있었다. 거대한 우주함선과 레이저를 쏘는 비행체들, 드론들이 날아다니는 영화.

많은 자들은 이 영화를 두고 SF라고 착각했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완벽한 무협 영화였다.

왜?

광선검이 존재했으니까.

광선검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협武俠인 법이다.

단천은 천마의 위에 오른 뒤 무협을 행하기 위해 시간을 충분히 할애했다.

─ 아니. 지존. 누르기만 하면 빛이 모여들어서 검을 이루는 신물이라니요? 그딴 걸 어떻게 만듭니까?

─ 애초에 검강을 쓰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왜 굳이 그런 걸 만들어야 합니까?

─ 안 된다니까요? 기술로 어떻게든 하라뇨! 안 된다고요! 불가능한 건 불가능한 겁니다!

─ 아! 아악! 지존! 때린다고 해서 안 되는 걸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악! 천마대! 천마대! 지존을 막아라!

완강하게 자신의 말에 불복하는 부교주 서윤학과 천마대 때문에 자신의 오랜 숙원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지만. 누군가 그랬던가.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는 자에게 꿈은 이뤄지는 법이라고.

지이잉.

지금, 자신의 눈 앞에 꿈이 펼쳐지고 있었다.

단천은 천천히 연녹색으로 빛나는 눈 앞의 빛으로 만들어진 검을 쳐다봤다.

> 광선검이다 ㅌㅌㅌㅌ

> 이 겜 무기 없으면 아무것도 안됨 튀어야됨

> 빨리 ㅌㅌㅌㅌ

단천은 채팅을 무시한 채 감히 자신의 무기를 들고 있는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남자가 검을 대각으로 휘둘렀다. 이런 맨몸이나 다름없는 전투에서 리치의 차이는 절대적인 전력의 차이다.

그러니 사람 몸만한 길이의 검을 들고 있는 남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어야 했지만.

상대가 나빴다.

단천의 몸이 남자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가볍게 피해냈다.

난잡한 공격을 피해낸 단천의 주먹이 남자의 손을 후려갈겼다.

뻐억!

“끄악!”

완벽한 일격에 남자의 손이 풀렸고, 광선검을 떨어트렸다.

단천은 바로 남자의 뒤로 자리를 옮겨 남자의 목을 그대로 꺾어넘겼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퍼스트 킬!]

[BJ천마가 북리더를 처치!]

> 와 그냥 맨몸으로 죽여버리네 ㅋㅋㅋ

> 제발 무기 든 상대 보면 도망치라고 ㅋㅋㅋㅋ

> 이게 내가알던 레일 서바이버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암살이었다. 채팅창의 수많은 호응에도 단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천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막대기를 들어올렸다. 무수한 전투에도 떨리지 않던 단천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가볍게 버튼을 누르자 지이잉. 거리는 소리와 함께 광선검이 솟아올랐다.

저 영롱한 광선검의 빛을 보라.

이 상황에 나올 말은 하나뿐.

“운이 좋군.”

레일 서바이버에 마신이 강림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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