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31화 (31/212)

7. 다키스트 에이지 - 원초의 망령 (1)

그오오오오오.

다키스트 에이지에 들어오자마자 섬뜩하기 그지없는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원초의 망령의 울음소리가 세계에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 어케 여기는 올 때마다 음산하냐

> 호러풍 게임이 컨셉이니까 어쩔 수 없음

> 액션RPG 아니었냐? 이사람 하는 거 보면 액션 RPG던데

> 천마님만 장르가 다른거임

> 장르조차 바꿔 버리는 실력 ㄷㄷㄷㄷ

동굴 너머에서 나는 것처럼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리던 지난 번과 달리 지금은 훨씬 더 강렬하고 직접적인 울음소리였다.

[당신은 이 세계에서 왕을 자처했습니다.]

[원초의 망령의 분노가 당신에게 향합니다.]

[저주와 증오가 당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 저주 등판 ㅋㅋㅋ

> 이번에야말로 개같이 멸망이네

> ㄱㅊ 실력으로 자잘한 저주 몇 개쯤은 무시하게 게임할 수 있음

“저주라.”

저주는 다키스트 에이지의 게임 후반에 나타나는 다키스트 에이지만의 시스템이다.

다키스트 에이지의 보스들인 ‘고대신’ 들에게 노여움을 사면 얻게 되는 상태 이상.

이러한 저주는 저주를 내린 고대신을 처치해야만 풀린다.

“저주라고 해 봤자 능력치나 공격력을 줄이는 게 보통이니. 나에게는 상관없다.”

애초에 공격력이야 혈도와 극점을 찌르는 것으로 일격필살에 가깝고. 능력치는 숫자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대형 퀘스트를 하며 쌓인 ‘어둠’을 소진하면 능력치 하향정도야 무시할 수 있을 테고.

단천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하며 저주창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저주가 내려졌습니다.]

[원초의 망령이 가진 분노가 극심합니다. 저주의 단계가 올라갑니다.]

[지고의 저주 : 어지럼증이 발병합니다.]

[지고의 저주 : 시야왜곡이 발병합니다.]

[지고의 저주 : 이명이 발병합니다.]

“···지고의 저주?”

단천은 저주가 내려졌다는 창을 노려봤다. 어지럼증, 혼란, 이명.

소소하게 능력치 감소를 주는 저주는 하나도 없었다.

> 개같이 멸망 ㅋㅋㅋㅋㅋ

> 버그라도 먹은 거냐? 어떻게 지고가 3개나 겹쳐 뜨냐 ㅋㅋㅋ

> 엌ㅋㅋ 원초의 망령 개빡침 ㅋㅋㅋㅋㅋ

> 스카우트한 성주 한 명이랑 오른팔 왼팔 짤랐는데 빡칠만하지 ㅋㅋㅋㅋ

피이이잉!

저주가 발동했다는 메시지가 사라지자마자 귀에서 짜증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뒤이어 찾아오는 어지러움증과 울렁거리는 시야.

휘청.

단천은 넘어지려는 몸을 겨우 바로잡았다. 풀창고의 설정집에 따르면 지고의 저주에 걸릴 확률은 0.1% 내외쯤이었던 것 같은데. 단순히 랜덤이 아니라 고대신과의 관계에 따라 저주가 변화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흠.”

휘청거리는 몸을 추스린 단천은 자신에게 걸린 저주들을 다시 확인했다.

가장 먼저 이명. 귀에서 계속해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간간히 환청 비스무리한 소리도 섞여 있다. 게임 플레이에 있어서 중요한 사운드 플레이를 방해하는 종류의 저주다.

그 다음은 시야 왜곡. 눈에 뭔가가 낀 것처럼 부옇게 보이고, 주변 시야가 물에 들어간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게임 플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시각을 제약하는 종류의 저주.

마지막으로 어지러움. 이 또한 균형 감각을 왜곡하는 게임 플레이에 제약을 거는 종류의 저주다.

종합하면 하나만 꽂혀도 게임 플레이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저주가 셋이나 생겨났다는 말이다.

> 이번에야말로 멸망 ㅋㅋㅋ

> 1인칭 뷰로 봤는데 잠시 보기만 해도 멀미나는데?

> 이 상태로 어케 게임을 함 ㅋㅋㅋㅋㅋ

[보포스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포브스 선정 곧 게임오버 당할 스트리머 1위]

[망겜살 님이 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이건 천마 할애비가 와도 게임 오버다 ㅇㅈ? 어 ㅇㅈ]

채팅창은 축제 분위기였다. 스트리머가 게임에서 구르는 걸 좋아하는 시청자들도 많다.

하나만 걸려도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지고의 저주가 셋이나 걸렸다.

거기에 지금 고통받는 것은 지금까지 절대적인 실력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계속 증명한 BJ천마다.

그러니 시청자들이 즐거워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 아마 이 사람들은 단천이 게임오버를 당하면 더더욱 즐거워할 게 분명했다.

아쉽게도. 그 바람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을 테지만.

단천은 휘청거리며 통로를 움직였다. 저 멀리서 자신을 알아보는 남자가 보였다. 브라딘이었다.

이상을 감지한 브라딘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저주, 저주에 걸리신 겁니까.”

브라딘이 어깨를 흔들자 머리가 웅웅 울렸다.

“별로, 큰 일도 아니니 호들갑떨지 마라.”

“어떻게 주군께서 저주에 걸리셨는데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 나라 전력의 1/2 넘게 차지하는 병기가 고장났다는데 호들갑 떨어야지

> 핵무기가 고장나면 바로 고쳐야지;;

> 왕 취급을 하라고 인간병기 취급하지 말고 ㅋㅋㅋㅋ

“다른 자들, 에게는 알리지 마라.”

“알겠습니다. 기사단! 기사단!”

“내가 방금 알리지 마라고 했는데.”

“기사단이 어떻게 다른 자들입니까. 기사들은 주군과 영혼을 함께하는 심복들일지언데.”

단천의 눈이 당장 눈 앞의 브라딘의 정수리를 노려봤다.

> 뚝배기 깨고 싶어하는 표정 ㅋㅋㅋ

> 사람 말을 좀 들어 ㅋㅋㅋ

브라딘의 명에 기사들이 금방 모여들었다. 단천이 혀를 가볍게 찼다. 기사들의 수가 이 정도라면 아무리 단천이라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여기를 통과하는 것은 무리다.

떼어내려고 해도 떼어낼 수 없다면 그냥 데리고 가는 것이 옳다.

지금 몸상태로 혼자서 원초의 망령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컨트롤을 하는 것이 심각하게 귀찮기도 하고.

“무슨 일이십니까?”

“저주에 걸렸다. 저주를 건 원흉의 원초의 망령이다. 내가 놈이 아끼는 심복들을 죽였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는 건.”

“지금 당장 원초의 망령을 사냥하러 가야 된다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겠다. 목숨이 아깝거나 가고 싶지 않은 자들은 빠져도 괜찮다.”

단천이 중원에서도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언제나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단 한 번도 이탈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

[원초의 굴]

거대한 동굴 앞에 도착한 단천의 일행은 짐을 풀었다. 단천또한 브라딘이 소환한 해골마에서 내렸다.

“이명이 커지는 것을 보니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군.”

“···정신은 괜찮으십니까?”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라.”

> 근데 이 사람은 뭔데 이렇게 침착하냐?

> 보통 컨트롤 방해하는 저주 하나만 걸려도 정신을 못 차리는데

> 아직까진 제대로 컨트롤할 게 없어서 그런거 아님?

단천이 침착해하는 것을 신기해하는 채팅창이 이어졌다. 그도 그럴 만도 하다. 하나만 걸려도 게임을 재시작하는 것이 추천되는 것이 바로 지고의 저주다.

게임 컨트롤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추가된 만큼 허둥대는 유저들이 대다수다. 적응하는 데에도 한참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

침착하기 그지없는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단천이 침착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런 정신적인 공격은 한두 번 당해 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혈교의 사술이나 제갈세가의 천방구궁팔괘진에 들어가면 툭하면 경험하는 것이 이명과 혼란이었으므로.

그리고 굳이 진법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지금의 상태는 단천이 수련하면서 자주 경험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런 것쯤 별 것 아니지.’

물론 시야와 청각, 균형감각을 제약당하는 것은 무림인에게 훨씬 커다란 문제다. 무림인들에게 감각기관은 하나하나가 정밀한 판단기관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무림인이었다면 이런 상태에서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했겠지만. 단천은 평범한 무림인이 아니었다.

“들어가도록 하지.”

단천은 조금 휘청거리면서도 동굴의 안으로 발을 디뎠다.

[원초의 굴에 진입하셨습니다.]

끼이이익!

굴 안에 있던 몬스터들이 일행을 향해 덮쳐들었다. 올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그 상대는 단천의 기사들이었다. 단천을 만나기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 단천을 수행하는 기사들은 한명한명이 오버스펙을 달리고 있는 결전병기다.

보스도 아닌 몬스터들이 막아내기에는 심각할 정도로 강한 존재들이라는 말이다.

“죽어라라아!”

퍼엉!

콰드드득!

무기가 휘둘러질 때마다 순식간에 몬스터들의 사체가 쌓여올랐다.

> 그냥 탱크들인데?

> 걍 가만 내비둬도 게임 클리어할 것 같지 않냐?

> 아니 이 게임 이런 게임 아니라고!!!

“자! 전진!”

“전지이인!”

“동굴에서 크게 소리지르면 다른 몬스터들이 달려올 수 있다.”

“덤비라고 소리지르는 겁니다!”

브라딘의 말에 망치에 묻은 피를 닦아내던 입실론이 커다랗게 소리질렀다.

“입실론의 맞다! 덤벼라! 악귀 자식들아!”

“어차피 모조리 죽여야되는 놈들! 알아서 덤비면 더욱 좋지!”

“덤벼라! 으라아아아아!”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기사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ㅋㅋㅋㅋ 미친놈들이네 ㅋㅋㅋ

> 피에 미친 살인전차들 ㄷㄷㄷ

> 대체 뭔 짓을 당했길래 저렇게 되냐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하도록.”

안 그래도 이명때문에 구겨져 있던 단천의 표정이 커다란 소리에 조금 더 구겨졌다.

첫 몬스터 구간을 쉽게 넘어온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원초의 망령’은 그리 쉬운 보스몹이 아니다.

원초의 망령은 다키스트 에이지에 나오는 유일한 ‘순혈 고대신’이다.

다키스트 에이지의 노멀 엔딩 조건은 고대신들을 모두 처치하는 것.

하지만 다른 혼종 고대신들을 모두 처치하지 않더라도 원초의 망령만 처치해도 엔딩은 동일하게 볼 수 있다.

‘물론 그게 혼종 고대신들을 하나도 잡지 않고 원초의 망령을 잡으라는 뜻은 아니지만.’

지금 단천은 ‘지역 보스몹’들로 불리는 혼종 고대신을 모두 스킵한 채 원초의 망령을 잡으려 와 있었다.

잡아야 하는 중간 보스들은 모두 스킵한 채로 최종 보스에 도전하게 된 셈.

아마 풀창고라면 이런 식으로 공략하는 것을 말렸을 것이다. 아마 ‘아! 형! 진짜! 형이라도 이건 안 돼!’ 같은 소리를 하면서 말리려고 했겠지.

> 근데 진짜 지금 원초의 망령 잡는 거 맞냐?

> 다른 보스몹 잡고 도전하는게 좋지 않음? 최소한 지역 보스몹 4~5마리는 잡고 시작하는게;

> 디버프도 있는데 좀 천천히 가지;;

실제로 채팅창에서 게임을 좀 아는 사람들은 죄다 부정적인 반응들 뿐인 상황.

하지만 단천은 지금 이 ‘저주’상태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머리가 울렁거리고 천지가 뒤집힌다.

한시라도 빨리 이 상태를 해제하고 싶다.

‘···뭐. 저주가 없었더라도 원초의 망령부터 사냥하러 왔겠지만.’

오늘은 처음부터 원초의 망령을 사냥할 마음으로 왔던 단천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저주는 단천에게 있어 명분일 뿐이었다.

기사들이 몰아 잡은 덕분에 등장이 줄어든 몬스터들을 헤치면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보기만 해도 음습한 기운을 풍기는 기괴한 문은 그 형체만으로도 사람들을 움찔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원초의 문]

[이 너머로 가면 보스전이 시작됩니다.]

[보스전이 시작되면, 보스를 처치하기 전에는 되돌아올 수 없습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경고문을 읽은 단천은 다시금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쉼없이 뱅뱅 도는 시야. 땅과 하늘이 분간이 되지 않는 균형감. 계속해서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시야까지.

원래라면 무공은커녕 걸어다니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이 상황에서만 쓸 수 있는 무공도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취선醉仙에게 무공을 배워 놓기를 잘 했군.’

뭐가 됐건 배워 놓으면 언젠가는 쓸모가 생기는 법인 모양이다.

입꼬리를 올린 단천은. 망설임없이 진행 버튼을 눌렀다.

[보스전에 돌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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