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VR챗 (2)
“창고 형.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완전 동감. 오빠 얼굴 봐서 된다고 하고 싶은데. FPS 게임을 아예 해 본 적이 없는 사람 데려오는 건 좀 그래.”
정유채와 제로콜 둘에게서 동시에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도 그럴만도 하다.
처음에 ‘돈낳대’는 스트리머들간의 친목 대회로 시작된 게임이었다. 적당하게 스트리머들간에 팀을 분배하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대회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돈낳대는 친목 대회의 성향보다는 정말로 누가 더 잘하는지를 죽자사자 겨루는 대회로 변질됐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채팅의 수위나 스트리머들 간의 대화 수위도 올라갔다.
지금 와서는 서로를 비방하거나 대회 중에 눈맵을 하는 등의 일까지 터지는 찐텐 경쟁 컨텐츠가 되어버린 것이 바로 ‘돈낳대’인 것이다.
“그런데 원래 들어가야 되는 에이스 자리에 게임 한 번 하지도 않은 사람을 집어넣으면···.”
“채팅창 불 나. 대회 내내 불 난다고. 우리 셋이야 뭐 자리 잡을만큼 잡았으니 이렇게저렇게 수습이라도 좀 한다 쳐. 근데 천마 오빠 방송은 어떻게 되겠어?”
“······.”
둘의 말에 풀창고가 머리를 긁었다.
채팅창에서 불이 날 것은 풀창고도 어느 정도는 계산하고 있던 바다. 하지만 파일로드의 인성질이 워낙에 역대급으로 터졌던 탓에 팀원들에게도 동정 여론이 꽤 조성이 되어 있는 상황.
이 과정에서 원래보다 모자란 팀원을 받고 연습하고 실력을 늘려나가면서 언더독의 반란! 같은 느낌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나갈 생각이었는데···.
“천마 형 방송은 생각을 안 했네.”
원래 멤버인 풀창고, 제로콜, 정유채는 동정 여론이 만들어져 있으니 괜찮다. 기존 팬 층도 탄탄한지라 이런 논란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롭다.
하지만 BJ천마는? 시청자들이 보기에 그냥 낙하산처럼 떨어진 멤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동정여론이나 감싸주기식 여론이 생길 만큼의 팬덤도 없다.
물어뜯기 좋아하는 시청자들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다는 것이다.
“천마형 미안. 우리들 입장에서만 생각하느라 형 입장에서 생각을 안했네. 아무래도 이번 대회는···.”
“시청자들이 불만이 생긴다는 건 내 실력이 검증되지 않아서 불만이 생기는 거겠지?”
“아무래도 그렇지. 형이 피지컬은 진짜 오지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레일 서바이버는 마냥 피지컬 게임이 아니라서···.”
“그러면. 대회 전까지 충분히 실력이 있다는 걸 검증하면 되는 일 아닌가?”
“실력 검증요?”
“대회까지 기간이 얼마나 남았지?”
“대충 1달 정도 남았어요.”
“그럼 그 안에 1등을 하면 되겠군.”
“꺄하하하. 이 오빠 패기 미쳤다!”
단천의 말에 정유채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단천의 말이 마음에 어지간히 든 모양이다.
“나는 이 오빠. 팀에 들어오는 거 찬성! 재밌어 보여! 낙하산으로 들어왔는데 이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그냥 낙하산인 줄 알았는데 뭐 공수부대? 뭐 그런 건가?”
“야. 그냥 사람 재밌어 보인다고 받자고 그러면 안 되지.”
“왜. 본인이 증명해 보인다는데. 막말로 실력 증명만 하면 우리 입장에서도 괜찮지!”
정유채가 단천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거나 말거나 제로콜은 여전히 팔짱을 풀지 않았다.
“아니. 뭔, 레일 서바이버가 물로 보이세요? 둘은 아예 다른 게임이에요. 다키스트 에이지는 하도 많이 해서 고인물이신진 몰라도···.”
“천마 형 다키스트 에이지도 한 지 얼마 안 됐다. 고인물 아니라 뉴비야.”
“진짜요?”
“어. 누적 시간 100시간도 안 돼.”
“세상에. 그런데도 컨트롤이 저렇다고요?”
제로콜의 턱이 벌어졌다. 발컨으로 유명하디 유명한 제로콜이다. 다키스트 에이지는 꿈도 꾼 적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제로콜도 다키스트 에이지의 악명은 이미 질릴 정도로 많이 들어왔었다.
그런 게임에서 저런 컨트롤을 보여 주는 인간의 플레이타임이 100시간이 안 된다니.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우리 팀에 넣자고 했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제로콜 너는 천마 오빠한테 레일 서바이버 부심 부리기엔··· 티어가 좀 쪽팔리지 않아?”
정유채가 티어 이야기를 하자 제로콜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개졌다.
“야. 여기서 내 티어 이야기는 하지 마라니까?”
“브론즈도 못 오는 허~접~.”
“유채야. 게임 진짜 못하는 애 놀리는 건 거기까지만 하자. 게임 진짜 못하는 애한테 게임 진짜 못한다고 하는건 너무한 거야. 게임 진짜 못하는 애가 게임 진짜 못한다는 소리 들으면 얼마나 상처받겠어.”
“알았어요 오빠.”
“내가 진짜 운만 좋았어도···.”
제로콜의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운 탓을 뒤로 하고 풀창고가 단천에게 물었다.
“그래서. 천마 형. 증명이라고 하면 티어를 올리겠다는 거지? 확실히 티어가 뒷받쳐주면 우리 팀에 들어와도 아무 문제 없기는 해.”
“그래.”
“다시 이야기하지만 형이 지금 들어오겠다고 하면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어. 이걸 잠재우려면 최소한 그랜드마스터 정도는 찍어야 돼. 한달 남았으니까··· 2주일 내에 그랜드마스터 찍으면 바로 우리 팀에 들어오는 걸로. 콜?”
“목표를 달성하면 바로 팀에 합류하도록 하지.”
단천의 수락을 끝으로 제로콜과 정유채가 VR챗에서 로그아웃했다. 남은 것은 풀창고와 단천 단 둘뿐. 둘만 남게 되자 풀창고의 입이 열렸다.
“와. 설득 엄청 잘 됐네. 솔직히 좀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설득이 안 되면 능력으로 보여 주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그도 그러네. 그보다 그랜드마스터 찍으려면 오늘부터 열심히 해야겠다.”
“그랜드마스터?”
“방금 말했잖아. 그랜드마스터 찍으면 우리팀 들어온다고.”
“아니. 그랜드마스터론 안 돼. 1위를 찍겠다고 했으니. 1위를 찍어야지.”
“···형. 그거 지나가듯 한 말이잖아. 그런 것까지 일일히 다 안 지켜도 돼. 그마 정도만 찍어도 시청자나 우리나 다 인정한다고.”
“너희들의 인정을 위해서 1위 찍는 거 아니다.”
“그러면?”
“내가 1위를 찍겠다고 마음먹었고, 1위를 찍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1위를 찍는다. 그것뿐이다.”
“···와. 방금. 감동받으면 안 되는데 감동받아 버렸어.”
풀창고가 오소소 돋은 소름을 단천에게 내보이며 말했다.
***
다음 날.
[스트리밍을 시작합니다.]
방송을 켜자마자 익숙한 닉네임들이 빠르게 채팅창을 치우기 시작했다.
> 천하
> 교주님 오셨다ㅏㅏㅏㅏ
> 천세! 천세! 천천세!
> 오뱅무?
> 오늘도 다키스트 에이지지 ㅋㅋㅋ 원초의 망령 딱대라 천마님이 간다 ㅋㅋㅋㅋ
첫 시청자수는 어제와 비슷한 숫자였다. 급속도로 시청자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빨리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단천의 방송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고, 미래의 애청자들이 될 사람들의 비율이 높다는 뜻이었으니까.
“반갑다. 오늘의 방송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1부는 다키스트 에이지. 2부는 레일 서바이버를 하도록 하겠다.”
> 레일 서바이버?
> 하긴 좀 있으면 돈낳대 시즌이라 시청자 달달하긴 해 ㅋㅋㅋ
> 근데 돈낳대 열리기는 하냐? 파일로드 갑질때문에 방송 쉬잖아 ㅋㅋㅋ
>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열리기는 하나 봄. 누구 한 명 초고수 섭외하는 모양이던데
여러 가지 채팅이 올라온다. 단천이 레일 서바이버를 한다는 말에 나오는 반응 자체는 꽤 긍정적이다. 레일 서바이버는 명실상부 게임 스트리밍 판의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게임중 하나였으니까.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오고가며 한 번씩은 보고, 실제로도 꽤나 많이 즐기는 게임이 바로 레일 서바이버라는 말이다.
‘거기에 풀창고의 말에 따르면 마이너한 게임에서 메이저한 게임으로 넘어가는 건 시청자수 증가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했었지.’
다키스트 에이지는 한때는 꽤 메이저한 게임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다키스트 에이지는 발매가 꽤 오래 된 게임이라서 마이너 게임화가 꽤 많이 진행된 게임이다.
마이너한 게임은 대형 스트리머가 자주 하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들을 모으기 좋다. 하지만 마이너한 게임만으로는 금방 시청자 수의 벽에 도달하게 된다.
더 많은 수의 시청자수를 확보하는 대형 종합 스트리머. 소위 ‘종겜스’가 되기 위해서는 메이저한 게임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기존 게임을 보는 시청자들을 끌어안으면서 넘어가는 것이 필수적.
‘풀창고의 조언대로라면 지금 2부로 레일 서바이버를 하는 게 최적의 타이밍이다.’
굉장히 합리적인 게임 선택이다. 단천은 풀창고가 역시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 근데 예습은 좀 해 옴?
“예습은 충분히 했다.”
오늘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풀창고가 가지고 왔던 파일을 모두 훑어봤다. 덕분에 레일 서바이버에 대해서는 좔좔 읊을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게임에 대해서 전혀 모를 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 이열
> 천마님 공부하신다!
> 저런 자신만만한 표정이라니 ㄷㄷㄷ
> ? 평소 표정인 것 같은데?
> 평소에도 자신만만한 표정임
> (납득)
“본좌의 레일 서바이버의 목표는 2주. 아니, 1주 내에 1등을 찍는 것이다.”
> 이열 시작하기도 전에 1등선언문 ㅋㅋㅋ
> 1주일 안에 어케 1등을 찍어 ㅋㅋㅋㅋㅋ
> 이 사람 레일 서바이버가 뭐 하는 게임인지 모르는 거 아님?
‘레일 서바이버가 뭐 하는 게임이냐고?’
채팅을 본 단천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단천은 풀창고가 자신에게 줬던 파일 안에 있던 정보들을 떠올렸다.
풀창고가 줬던 파일 안에는 레일 서바이버의 트인낭 최대 시청자수부터 공식대회 규모, 공식대회의 팀명들까지. 레일 서바이버에 대한 방대하고 거대한 정보들이 모조리 적혀 있었다.
단 하나. 레일 서바이버가 뭐 하는 게임인지에 대해서만 빼고.
단천의 눈이 당가에서 무형지독에 처음 하독당했을 때처럼 미세하게 떨렸다.
“물론 무슨 게임인지 알고 있다.”
단천은 무림에서 갈고닦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담담하게 답했다.
> 방금 눈 살짝 떨린 것 같은데
> 프레임 이슈겠지
> ㅋㅋㅋㅋ 천마님이 게임 공부도 안 해 오고 공부 해 왔다고 하겠냐?
> 갈喝! 그러면 천마님이 지금 거짓을 말한다는 말이냐!
> 그거 뭐 1분이면 보는데 그걸 안 했으려고 ㅋㅋㅋㅋ
눈치 빠른 꼬마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금방 진압당했다. 다수가 주장하면 결국 그것은 진실이 되는 법이기에.
[사과문 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눈 살짝 떨린 것 같다고 해서 죄송해요···.]
“괜찮다. 네 문제가 아니다.”
담담하게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진실을 패배시킨 단천은.
“자. 1부 다키스트 에이지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다키스트 에이지를 실행합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다키스트 에이지를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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