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키스트 에이지 - 세력 확장 (5)
“본 미카엘 성의 성주. 라파엘로는 그대를 새로운 왕으로 인정하는 바요.”
[당신은 새로운 왕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각 성의 경영 상태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영지 내의 사람들의 평판을 관리하세요!]
[영지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영지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새로운 왕의 탄생에 사람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반면 단천의 표정은 찌푸려져 있었다.
‘괜히 받았나.’
평판 관리, 경영 관리, 애로사항 해결.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귀찮은 것들이 줄줄이 생겨난 상황.
> 진짜 어지간히 싫은가 본데 ㅋㅋㅋ
> 이게 관리자의 고충이란 것인가
“나는 그대가 대륙을 구원할 것이라는 느낌을 처음부터 받았소이다. 왕위 추대를 수락할 것도 확신했지.”
“그래.”
> 사실 탈것 없었으면 절대 안 받지 않았을까?
> 근데 날탈을 어케 참냐
귀찮은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충분하다. 지금은 그런 것들에 매여 있을 때가 아니라 한 시라도 빨리 라인하르트 성으로 가야 한다.
“나는 라인하르트 성으로 가겠다.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탈 것 : 스컬 윙을 시전합니다.]
생명을 잃고 시체 더미가 되었던 거대한 독수리가 다시 생명을 되찾고 홰를 쳤다.
단천이 스컬 윙의 위에 올라탔다.
[스컬 윙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스컬 윙 위에 있는 것은 꽤나 신기한 느낌이었다. 브라딘이 만들어낸 스컬 윙을 탔을 때는 그저 탈 것을 탄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의 스컬 윙은 신경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 와; 스컬 윙 직접 조종 모드도 있음?
> 이런 것도 되는구나 ㄷㄷ;
> 조종 어려울 텐데 괜찮음?
단천은 「컴맹부터 시작하는 스트리밍」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렸다.
[VR게임은 신경과 게임 시스템을 전류 신호로 동기화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은 게임에 직접 들어와 있는 느낌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다.
현재는 사람과 신체가 연동되어 있는 것이 고작이지만 시스템이 조금 더 발전한다면 사람이 아닌 말, 고양이, 개와 같은 동물을 인간이 조종하는 게임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 나쁜 느낌은 아니군.”
한두 번의 움직임을 통해 단천은 스컬 윙의 몸을 어떻게 조종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그 이후는 간단했다.
파아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스컬 윙이 공중으로 비상했다.
“왕이 라인하르트 성을 구원하러 떠나셨다!”
“왕의 앞길에 축복 있으라!”
땅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소리를 뒤로 한 채 단천은 스컬 윙의 조종에 집중했다.
바람의 길을 읽고, 날개를 움직이며,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광풍을 역행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 이종족 조종 처음 해 보는 거 맞음?
> 처음이겠지
> 근데 왜케 자연스럽냐?
> ‘재능’
다른 종의 캐릭터를 조종하는 것은 인간형의 캐릭터를 움직이는 것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힘든 일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신체부위의 감각에 익숙해지고 움직여야 하는 일이니까.
그런데도 단천은 물 흐르듯이 스컬 윙을 조종하고 있었다.
‘상형권象形拳을 익힐 때와 비슷한 감각으로 하면 되는 거로군.’
당랑권, 응조권, 후권, 용권과 같은 동물의 몸을 본딴 권법들. 단천은 이런 상형권을 권왕 응조수에게 직접 배웠다.
이런 상형권을 익힐 때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동물들의 마음이 되어 행동을 해 보는 것이다.
상형권을 배웠던 경험이 이런 데서 쓰여질 줄이야. 역시 배워 놔서 나쁠 것이 세상에는 없다.
─ 아니, 동물의 형태를 본따라는 거지 그 행동원리를 다 알 필요는 없다니까? 왜 알 필요 없냐니!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그대로 움직이기나 해!
─ 그러고도 권왕이냐니. 그게 무슨 말이지? 천마!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건 검법에만 한정된 것! 네놈은 권법에 일자무식이잖느냐!
─ 직접 붙어 보자니! 당랑권도 방금 배운 자식이 정말 나를 권법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냐!
─ 칼은 왜 들어! 칼 든 사마귀가 세상 천지 어디 있단 말이냐! 여기 있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권왕 응조수에게 상형권을 배운 날 바로 청출어람을 해냈던 과거를 상기하며. 단천의 몸은 비행을 이어나갔다.
***
스컬 윙의 비행 속도는 발군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 덕분에 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던 라인하르트 성의 윤곽이 빠르게 선명해졌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라인하르트 성에 몰려온 몬스터들의 군세는 미카엘 성의 것보다 훨씬 크다고 하지 않았었나?”
멀리서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라인하르트 성에 보이는 몬스터들의 수는 언뜻 눈으로만 봐도 미카엘 성의 군세보다 작아 보였다.
단천의 의문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우랴아아아!”
기사 한 명이 우렁찬 포효를 터트리며 철퇴를 바닥에 박아넣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였기 때문이다.
콰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바닥이 폭탄 수십 개가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터져올랐다.
크웨에에엑!
그 폭발에 휘말린 몬스터 수십 마리가 걸레짝이 돼어 공중으로 비산했다.
> 저게 뭐야 ㅋㅋㅋㅋㅋㅋ
> 탱크냐 ㅋㅋㅋㅋ
> 엌ㅋㅋㅋㅋ
그렇게 일격에 몬스터들 수십 마리씩이 녹아내리는 것이 전장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압도적인 전세.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명확했다. 기사들의 능력치가 너무나도 높기 때문이다.
기사들의 능력치가 너무 높아진 탓에 원래라면 쉽지 않은 전투가 되어야 할 전투가 일방적인 도살로 변모하고 만 것이다.
> 그냥 이대로 기사들만 냅둬도 게임 엔딩 볼 것 같은데?
> 너무 강해져버린 기사들 ㅋㅋㅋㅋ
“한 명당 오백 마리씩이다! 그 이상은 죽이지 마!”
“여긴 내 구역이다! 내가 죽일 몬스터 잡지 마!”
“죽어라! 죽어! 죽어라아아!”
거기에 반쯤 눈이 돌아가서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있는 기사들의 모습까지.
‘···혈귀단 놈들이랑 너무 비슷해져 가는데.’
자신의 교육을 받고 나서 다른 임무에서 자신의 화를 풀어내던 혈귀단.
기사들은 그 혈귀단과 흡사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 기사들이 피에 미친 괴물이 됐는데 이게 안 중요하다고?
> 대체 뭐가 중요한데 그럼.
단천의 눈이 전장을 훑었다. 거의 끝나가고 있는 전장의 끝자락에서 아직까지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
“이 버러지, 미물 놈들이이이이!”
[「운명의 피스칼리온」이 섬뜩한 비명을 내지릅니다.]
이 구역의 보스몹. 피스칼리온이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 비록 여섯 개의 다리 중 네 개가 뜯어져 나가고, 옆구리가 박살나서 성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게 중요했다.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
“멈춰라!”
“주군?”
“성주님께서 도착하셨다!”
“빨리 피스칼리온을 죽여라아아!”
피스칼리온을 천천히 깎아내던 기사들이 단천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피스칼리온을 향해 몸을 던졌다.
피스칼리온은 발악하듯 몸을 비틀었지만 이미 승패가 거의 기울어 있던 상황. 변수는 없었다.
콰드드득!
기사 여섯에게 동시에 공격을 허용당한 피스칼리온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피스칼리온이 처치되었습니다!]
[라인하르트 성이 몬스터들의 공격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안···돼···.”
“안···돼···.”
절망과 안타까움에 휩싸인 두 명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하나는 피스칼리온의 목소리였고, 나머지 하나는 단천의 목소리였다.
> 와 이게 뭔 보스전이 키워놓은 기사만으로 끝나?
> ㄹㅇ 자동사냥 ㅋㅋㅋㅋㅋ
> 자동사냥으로 보스 잡았는데 천마 표정은 왜 저럼
> 짜장면 시켰는데 단무지는 물론이고 짜장면까지 안 나와서
> 보스가···죽었어···!
“주군!”
한숨을 내쉬던 단천을 향해 브라딘이 다가왔다. 브라딘의 옆에 서 있는 것은 라인하르트 성의 성주, 레온 라인하르트였다.
“···그대의 지원에 감사를 표하는 바요.”
레온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를 표할만한 전장이기는 했다. 한 무리의 기사들이 몬스터들의 씨가 말라버릴 정도의 전황을 만들어버렸으니까.
“이런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을 줄이야.”
“별로 큰 일은 아니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그 말도 진실로 만들 수 있어 보이는군.”
“···인류의 구원?”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말을 단천은 꺼낸 적이 없었다. 이런 말들이 퍼져나온 곳은 아마 레온의 뒤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브라딘의 입부터일 터.
단천은 브라딘의 입을 후려치는 상상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건 관심없다.”
“겸손이 심하군. 아무런 보상도 없이 피레네 마을을 구하고, 라단 성을 구원하고, 거기에 우리 라인하르트 성과 미카엘 성을 전부 구했다고? 그 말을 그냥 믿으라는 건가?”
> 진짜 별 관심 없어 보이는데
> 그냥 보스몹 잡아찢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는데요
> 할 말이 없기는 해
여기도 틀렸다. 레온의 눈도 무슨 말을 해도 안 믿는 인간의 눈이 됐다.
“당신이 정말로 이 세계의 구원자라면··· 그 아래에 우리 라인하르트 성도 넣어줄 수 있겠나?”
[이벤트 : 성주 레온이 당신의 세력에 복속되기를 원합니다.]
“안 돼.”
[당신은 ‘왕’칭호를 얻으셨습니다.]
[군주는 휘하에 세력이 들어오는 것을 거절할 수 없습니다.]
단천의 거절을 무시한 채, 시점이 컷씬으로 넘어갔다. 단천의 캐릭터가 고개를 끄덕이고, 레온이 그 앞에 무릎을 꿇으며 충성을 맹세했다.
[레온하르트 성이 당신의 세력에 추가되었습니다.]
“···뭐.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원래 맹盟을 구성하게 되면 거절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세력이 불어나는 법이다.
그리고 사실 책임지는 사람이 500명이 되나, 1000명이 되나, 짜증나고 귀찮은 것은 거의 같은 법이다.
“그래. 될 대로 되라지.”
[네 번째 에피소드가 종료되었습니다.]
단천의 반쯤 포기한 한숨을 끝으로 다키스트 에이지의 네 번째 에피소드가 종료되었다.
***
그 날 늦은 밤.
“결원이 생겼다고요?”
풀창고의 입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곧 시작되는 「레일 서바이버」의 스트리머 대항전, ‘돈낳대’ 에서의 결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네. 이게··· 이번에 파일로드 님의 막말 논란이 터져서···.]
스피커 너머의 담담자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담당자의 잘못은 아니다. 대형 스트리머였던 ‘파일로드’ 가 영상 제작자에게 한 갑질 논란과 막말 논란이 터져버린 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막말 논란이 심하게 터져서 파일로드가 자숙 기간을 가지게 됐다는 점이다.
중대형 스트리머들만 모아서 하는 대회인 ‘돈낳대’의 특성상 한 명의 결원이 생기면 상당히 상황이 어렵게 된다.
중대형 스트리머들의 경우에는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번 대회의 경우에는 고일 만큼 고여 있는 게임인 「레일 서바이버」로 하는 대회인 만큼, 참여할 수 있는 스트리머들은 더더욱 적다.
[그, 죄송합니다.]
“팀장님의 잘못은 아니죠.”
[아무튼 일정이 취소될 것 같아서 연락 드렸습니다.]
이렇게 대회가 취소되는 경우에도 광고금액은 그대로 지급된다. 하지만 광고금액과 별개로 ‘돈낳대’는 트인낭에서 가장 큰 행사중 하나다.
시청자들이 그만큼 기대하고 있는 컨텐츠인 만큼 그냥 취소됐다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아쉽다.
그 탓에 취소를 이야기하는 담당자가 저렇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길게 침묵을 지키던 풀창고의 입이 열렸다.
“돈낳대 말인데. 중대형 스트리머이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아무래도 광고주 쪽에서 지급하는 금액이 있어서요. 그냥 규모만 있으신 스트리머여서는 안 되고 실력 자체도 있으셔야죠. 밸런스가 맞아야 하니까.]
원래 파일로드는 풀창고 팀의 일원으로서 활약해 온 사람이었다.
인성으로는 이런저런 논란이 있어도 「레일 서바이버」에서는 손가락에 드는 랭커였던 인물.
소위 밸붕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게 파일로드였다는 말이다.
[파일로드님만큼의 밸붕급 실력자를 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텐데요.]
“여기 들어갈 만한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 시청자 수도 꽤 많고요.”
[···팀원 분들 설득은···.]
“제가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섭외 완료되면 연락 주세요.]
통화를 마무리한 풀창고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아우씨. 그냥 적당한 사람 없다고 할 걸 그랬나.”
이런 대회의 섭외상황은 매우 투명하게 밝혀지는 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섭외대상이 삽질을 하거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을 먹는 것은 풀창고 자기 자신이라는 뜻.
하지만···.
“···그런 피지컬이랑 방송감을 보고도 못 믿으면, 스트리머 실격이겠지.”
자기 자신을 납득시킨 풀창고는 연락처의 번호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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