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키스트 에이지 - 세력 확장 (3)
> 지렸다 ㅋㅋㅋㅋㅋ
> 라파엘로 눈 커진거 보소 ㅋㅋㅋ
> 와 진짜 볼 때마다 레전드 갱신하네
채팅창의 말대로 라파엘로를 비롯한 주변의 분위기는 경악 그 자체였다.
“혼자서 트롤 십수마리를 일격에 죽여 버렸다고?”
“검이 보이지도 않았어!”
“저 사람, 이름이 뭐라고 했지? 천···?”
“천사님! 천사님이라고 했어!”
“하늘에서 천사님이 내려오셨다!”
“천사님이 우리를 구하러 내려오셨다!”
자신이 천사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린 불경한 꼬마의 머리에 딱콩을 먹여줘야 되나 단천은 고민에 빠졌다.
“경! 정말로 혼자인 겁니까!”
“그렇다.”
“경을 수호해야 하는 다른 기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라인하르트 성을 수호하러 갔다.”
다른 기사들이 라인하르트 성에 도착했다는 말에 파리해지던 라파엘로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 그렇다는 것은 전황이 빨리 끝난다면 지원이 있다는 말이오?”
“당연히 그래야만 하겠지.”
“오오···.”
> 표정 밝아진 거 보소
> 아무래도 기사들이 수십명이나 되니까 걔들 오면 이길 수 있다는 뜻이겠지
한 명 한 명의 기사들의 능력이 일기당천인 것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황.
그런 기사들이 수십이나 온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라파엘로의 표정이 밝아졌다.
“전황 상황은?”
“상대가 성의 동쪽을 오르는 데 성공했소! 고블린과 홉 오크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소이다. 아군의 병사 수는 팔백여 명 가량. 그 중에서도 궁수들의 수가···.”
“아니. 그딴 거 말고.”
“그러면?”
“적의 수장이 어디 있는지 말하도록.”
> 좀 들어 ㅋㅋㅋㅋ
> 아 됐고 보스전 해야 된다고 ㅋㅋㅋ
> 보스전에 수상할 정도로 미쳐있는 남자 ㅋㅋㅋㅋ
“슈··· 슈고란은 지금 성벽 가장 너머에 있소이다.”
“알겠다. 성문을 열도록.”
“성문을?”
“그래. 내가 나갈 수 있도록.”
라파엘로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당신. 정말로 미친 거요?”
단천은 말 없이 라파엘로의 배와 목을 노려봤다. 위협을 느낀 라파엘로가 몸을 움찔거렸다.
> 라파엘로가 쫄아붙네 ㅋㅋㅋ
> 트롤 수십을 일격에 격살한 괴물이 날 쳐다본다? 난 오줌지릴 자신 있다
> 나는 바로 제자리에서 혼절할 자신 있음
“조, 좋소. 어차피 내 목숨도 아니고 당신의 목숨이니. 알아서 하시오.”
“성문은 내가 나가자마자 닫으면 된다. 성문을 열도록.”
“성문을 열어라!”
끼기긱거리는 소리와 함께 도개교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단천은 도개교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도개교가 채 다 내려지기도 전에 단천의 몸이 도개교를 타올랐다.
도개교가 절반정도 내려갔을 때 단천의 몸이 도개교 위로 도약했다.
타앗!
도개교를 도약대로 삼은 단천의 몸이 위로 크게 솟구쳤다가 낙법과 함께 바닥에 착지했다.
성 외부에 있는 것은 몬스터, 몬스터, 몬스터들 뿐. 물론 맛있어 보이는 몬스터들은 없다. 죄다 잡몹들이다.
그 수가 심각할 정도로 많기는 했지만.
단천은 바로 검을 꺼내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베어냈다.
‘소모전을 조심해야겠군.’
숫자로 밀어붙여서 강자를 탈진시키는 것은 수십 번은 겪어본 일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천라지망이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는 방법은 두 가지. 기습과 보급을 반복하며 적을 갉아먹는 게 첫 번째 수. 나머지 하나는 상대의 대가리를 잘라내는 것이다.
둥! 둥! 둥!
저 멀리서 들리는 거대한 북소리. 지금 침공해 온 보스. 「슈고란」이다.
혈교의 천라지망에 포위되었던 때로 치자면 혈교지존 영락귀라고 할 수 있는 존재.
[파멸의 슈고란의 북소리가 들려옵니다!]
[북소리에 몬스터들이 용기백배합니다. 추가 버프가 붙습니다.]
[북소리에 인간들이 공포를 느낍니다. 추가 디버프가 걸립니다.]
쯧.
슈고란을 바라본 단천이 가볍게 혀를 찼다.
“슈고란이라니. 좀 아쉽군.”
> ???
> 뭐가 아쉬운데
> 슈고란이면 충분히 네임드 보스몹인데???
단천은 풀창고의 설정집을 떠올리고 있었다. 보스전이나 함정과 같은 클리어에 필요한 기믹들은 읽지 않았지만 단천의 머리속에는 다키스트 에이지의 설정에 대한 상세한 부분들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슈고란은 ‘원초의 망령’의 왼팔이다. 원초의 망령이 지금 두 성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흑막이라고 생각한다면 라인하르트 성에는 자연스럽게 오른팔인 ‘피스칼리온’이 있겠지.”
> 그래서요
“아직도 이해를 못 했나. 왼팔은 오른팔보다 약하다.”
> 그니까 좀 더 센 놈 상대 못하게 돼서 아쉽다는 거지?
> 게임이 왜 이렇게 쉬워!(와장창!)
> 일반인과는 사고 방식이 다릅니다
> 진짜 몸에 패기 생성하는 신체기관이라도 있음? 패기샘 뭐 그런거임?
단천이 혀를 찼다. 단천의 계획대로라면 피스칼리온을 상대하지 못하게 된 건 아니다. 슈고란을 먼저 상대하게 됐을 뿐.
피스칼리온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최대한 빨리 끝내는 수밖에 없다.
“속전속결.”
단천은 속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쾌검식.
촤자자자자작!
속도 80의 쾌검이 전장을 빛살처럼 갈랐다. 한 호흡이 끝나자 몬스터 수십 마리가 머리를 잃고 바닥에 쓰러져내렸다.
> 오우야 진짜 ㅋㅋㅋㅋㅋ
> 와 이게 어떻게 사람 피지컬임?
> 실력 어지럽다 진심;;
> 저걸 어떻게 다 보고 공격을 하는 거냐고 ㅋㅋㅋㅋ
쾌검식을 보여준 단천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두 번이나 속도를 80까지 올렸는데도 지난 번처럼 신경이 따끔거린다. 다만 지난번만큼 고통스럽지는 않다. 내공량이 상승한 덕분이다.
내공은 신체를 강화하고 인간의 벽을 넘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
신체에 가해지는 과도한 정보량으로 신경이 타오르는 것을 내공이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단천이 가지고 있는 정신과 신체간의 괴리는 크다. 쥐톨만한 내공으로는 완전히 신경을 보호할 수는 없다.
아니, 내공량이 엄청나게 많아지더라도 상단전이 뚫리지 않으면 이 통증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통증은 참아내면 그만이긴 하지만. 몸이 상하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꺼려진다.
‘앞으로 대여섯 번 정도 쓸 수 있나.’
단천은 머릿속으로 쾌검식을 얼마나 쓸 수 있는지를 가늠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크와아아아!
주변의 몬스터를 수십이나 베어냈는데도 주변에 있는 몬스터의 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당연했다. 가만히 있었다면 전선을 밀어붙였겠지만 단천은 앞의 몬스터들을 격살하고 앞으로 더 나아갔으니까.
물론 그래 봤자 잡것들이 늘어난 것 뿐이다.
촤아악!
다시 한 번의 쾌검식이 발동되고, 보스인 슈고란까지의 거리가 다시 한 번 줄어들었다.
슈고란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20보 가량. 거의 코앞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둥!둥!둥!둥!
슈고란이 두들기고 있는 북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려왔다.
이제 놈과 독대할 수 있다. 포위된 상태로 죽고 죽이는 살육전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천의 입에 군침이 돌기 시작한 그 때.
부우우!
단천이 떠나온 성벽 위에서 뿔피리가 울려퍼졌다.
단천이 지나온 이후 올라갔던 도개교가 다시 내려오고 있었다.
촤르륵! 콰앙!
도개교가 완전히 내려서고, 성벽 너머가 보였다. 성벽 너머에 있는 것은 결연한 기색으로 창과 검을 들고 있는 한 무리의 인간들이었다.
여물을 먹지 못해 비쩍 곯은 말들, 창 대신 쇠스랑을 들고, 갑옷은 급소도 다 가리지 못할 만큼밖에 입지 못한 자들.
하지만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들 가장 앞에 서 있는 자. 결연한 표정으로 검을 치켜들고 있는 자는···.
라파엘로였다.
“돌격하라아아아!”
전장의 모든 소란을 뚫고 커다란 포효가 울려퍼졌다.
“와아아아!”
죽지 않기 위해서 싸우던 이전의 모습과는 다른 용기백배한 모습에 단천의 눈썹이 흔들렸다.
아니, 그보다. 저 놈들은 왜 성에서 튀어나오는 건데? 수성은 공성보다 세 배 쉽다. 굳이 성주랑 갑옷이라도 입은 군사들이 성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단천이 의문을 가지고 멍하니 서 있는 동안, 인간군의 선두가 진격을 시작했다.
“라단 성의 성주, 천사를 죽게 두지 마라!”
‘천사가 아니라 천마라고.’
군사의 선두가 단천에게 도달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천이 길을 뚫어놓은 덕분이다.
“···왜 날 구하러 오는 거지?”
일단 구할 필요가 없다는 건 둘째치고. 단천 자신은 미카엘 성과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다.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하러 올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천사. 당신은 일견식도 없는 우리를 구하러 왔소. 그냥 생색만 낼 수도 있고, 혹은 그대의 기사들을 기다리며 수성할 수도 있었을 거요.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앞으로 내달렸지. 그대의 목숨을 건 싸움을 보며. 우리는 인간의 길이 무엇인지를 희미하게나마 깨달았소.”
“······.”
“우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자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 그게 아마도 인간도人間道겠지.”
[라파엘로가 당신에게 감화되었습니다.]
[라파엘로가 당신에게 큰 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미카엘 성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에게서 용기를 얻습니다.]
[미카엘 성의 인류가 ‘파멸의 슈고란’의 북소리에 더 이상 공포를 느끼지 않습니다.]
아니. 호감이고 유대고 자시고. 돌아가라고. 돌아가서 성이나 지키라고.
“돌아가라. 슈고란은 내 것이다.”
“하하! 그럴 줄 알았소! 슈고란은 그대가 상대하시오! 당신과 슈고란이 싸우는 동안 몬스터들이 그대를 건드리지 못하게 도울 테니!”
아니. 그 주변 몬스터까지가 다 내 거라고. 이 인간, 사람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다.
> 천마 표정 ㅋㅋㅋㅋㅋㅋ
> 아니 왜 피자를 시켰는데 피클이 안와요
> 짜장면에 왜 단무지가 없냐고;;;
한 마디를 하려고 하던 단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알을 보니 이미 반쯤 돌아가 있다. 단천을 따르던 기사들과 완전히 똑같은 눈들이다.
저런 인간들을 전문적으로 많이 봐 온 단천이 판단하기에 지금은 무슨 소리를 해도 들어먹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성을 나온 인간의 수는 적디적다. 장비도 빈약하다. 결코 오래 버텨줄 수 없을 터다.
시간을 조금만 끈다면 성을 나온 인간들은 전멸하고, ···슈고란과의 제대로 된 보스전을 치를 수 있다.
“저 슈고란이라는 보스. 보통 클리어까지 얼마나 걸리지?”
> 슈고란 보스전이 긴 편이라 10분은 잡아야되지 않나?
> 피돼지라 천천히 가면 15분은 써야 됨
> 엌ㅋㅋ 15분이면 나온 인간들 전멸하고 보스전 헬모드 시작될듯 ㅇㅈ??
단천은 긴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따르는 인간들이 많아지면 귀찮다. 자신을 위한다며 먹기도 싫은 물건들을 진상하고, 자신이 하고 싶지도 않은 일들을 강제하며, 따라오지 말아야 할 곳에 아득바득 따라온다.
이런 소소한 귀찮은 점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귀찮은 것.
그것은 단천이 자신을 따르는 자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칠대천마 단천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따르는 자를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제 멋대로 자신을 따라와서 몬스터 무리에 포위된 한 무리의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무슨 수를 써서든지 100초. 아니, 1분만 버티도록.”
말을 끝낸 단천은 슈고란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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