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25화 (25/212)

5. 다키스트 에이지 - 세력 확장 (2)

수하가 많이 생기면 인생이 재미 없어진다.

단천은 꽤나 수하를 가려 받았지만 아무리 수하를 가려 받는다고 해도 중원 최강인 천마신교의 수장이었다.

심지어 단천은 중원 최강을 넘어서서 중원일통을 이뤄내기까지 한 몸이었다.

단천에게 투신하겠다고 까부는 인간들이 장강을 모두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

실제로 천마신교에 들어온 인간들도 워낙에 많아, 이끄는 자들의 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까지 많았던 게 바로 단천이었다.

이렇게 수하가 많아지면서 단천은 자주 불쾌감을 느꼈다.

수하들이 많으면 늘어나는 불쾌함을 일일히 열거할 수는 없지만 가장 대표적인 고역은.

‘혼자서 뭘 할 수가 없다는 거지.’

화산파에서 매화주를 선물로 받으러 갈 때에도, 제갈세가의 가주와 내기 바둑을 두러 갈 때에도, 심지어 민간인을 수탈한 장강수로채를 박살내러 가는 소소한 일에까지 수하들이 죄다 따라붙는다.

그래. 따라붙는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 따라붙은 놈들이 자꾸 자신의 충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단천이 말을 하지도 않은 일들을 벌인다는 데 있었다.

─ 지존께서 장강수로채가 마음에 안 드신단다!

─ 장강수로채? 해적 놈들이 빠져가지고! 뭐 하는 새끼들이야!

─ 이 새끼들이! 얌전히 운송업이나 하라니까 수탈을 해! 주변 사흑련이랑 정파 새끼들은 그동안 뭘 한 거야!

─ 장강 주변 문파놈들은 간판 닫기 싫으면 지존이 도착하기 전에 장강수로채 채주 새끼들 일렬로 모아놓으라고 해!

수로채 놈들이 까분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강수로채를 손보려 도착하고 나면 이미 장강수로채의 채주들이 일렬로 꿇어앉아 반성문을 수십 장씩을 쓰고 앉아 있는다.

변변한 대련은 꿈도 못 꾼다.

이런 일들을 몇 번 겪고 나면 수하고 뭐고 팔다리를 분질러 버리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도움이 안 되는 놈들 같으니라고.’

다른 건 몰라도 장강수로채의 채주들이라고 하면 죄다 천하 백대 고수 안에 들어가는 초절정 이상의 고수들.

그런 놈들을 지들이 뭔데 미리 제압해 놓는다는 말인가. 그러면 단천 자신은 뭐 먹고 살라고.

지금 눈 앞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기사들도 그 수하놈들의 눈과 똑같다.

반쯤 눈이 돌아서 단천이 명령만 내리면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은 놈들.

이 자식들을 대동하고 갔다가는 가장 맛있는 ‘보스전’을 방해당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그러니 해야 할 일은 하나. 놈들을 자신에게서 떼어 놓는 것.

물론 그냥 ‘따라오지 마라!’ 라거나 ‘아무 짓도 하지 말고 서 있어라!’ 같은 명령을 내렸다가는 진정한 충심을 시험하네뭐니 하면서 따라올 게 뻔하다.

몇 번 경험해 봐서 안다.

이럴 때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다른 할 일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것도 다른 쪽에서 발생한 중요한 일을.

[라인하르트 성과 미카엘 성을 동시에 구원하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의 선택에 기사들의 충정심이 깊어집니다!]

[기사들이 당신을 광신적으로 따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병법 삼십육계에도 나오는 전략인 성동격서聲東擊西인 것이다.

만족스러운 선택에 단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양쪽을 모두 구하신다니···! 역시 주군이십니다!”

“그 끝 모를 선의! 기사도 그 자체!”

“주군의 말씀이라면 지옥까지도 따르겠습니다!”

“충!”

이상하게 호감도가 오르는 것 같지만. 그건 나중에 신경쓸 일이고.

“브라딘과 기사들은 전부 라인하르트 성으로 가도록. 나는 미카엘 성으로 지원갈 테니.”

“···주군! 하지만!”

“반론은 받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단천의 위세에 기사들의 고개가 숙여졌다. 이걸로 혼자가 되는 것은 성공이다.

자신을 귀찮게 만들 만한 인간들이 죄다 떨어져 나갔다.

단천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 패기 뭐여 ㄷㄷ

> 이것이 천마의 패기?

> 간지 오졌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움직이지. 나는 미카엘 성으로 가겠다. 빨리 움직여야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겠군.”

단천은 머릿속으로 지도를 펼쳐 거리 계산을 했다. 빨리 움직여야 제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미카엘 성까지의 거리는 꽤 멀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움직여도 제 시간에 맞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

“시간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실 겁니다.”

단천이 시간의 촉박함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브라딘이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스컬 윙]

우드드득!

바닥에서 솟아나온 뼈가 모여들었다. 모여든 뼈는 날개와 다리, 몸통을 구성하고, 마지막으로는 머리를 만들었다.

웅장하고 권위 있는 뼈로 만들어진 독수리가 그 자태를 뽐내듯 홰를 쳤다.

“호오.”

단천의 눈이 빛났다. ‘스컬 윙’은 풀창고의 말이 맞다면 메인 스토리가 끝나고서야 브라딘이 익히는 기술이다. 엔딩을 보고 세계 이곳저곳을 탐험해 보라고 주는 특전 기술.

그런 스컬 윙을 지금 브라딘이 시전하고 있다는 건···.

“너도 놀고 있었던 건 아니었군.”

“목표가 생겼으니까요.”

지금의 브라딘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 세계를 방황하는 연금술사가 아니라, 세계를 구하겠다는 목표가 확실하게 생긴 캐릭터다.

가야 할 방향을 아는 자는 강해지기 마련이다.

> 겜 끝나야 받는 건데 이게 벌써 나오네;

> 왜 내 브라딘은 저런거 안 해줘! 나도 스컬윙 타고 싶다고!

> 꼬우면 너도 피레네 마을 구하고 캐시미어 솔플로 깨면 됨

> 그냥 얌전히 노멀 클리어 하겠습니다

채팅 창에서 말이 나오거나 말거나 단천은 스컬 윙의 위에 올라탔다.

화아악!

스컬 윙이 순식간에 높다란 고도로 비행을 시작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은 오랜만이다. 허공답보와는 다르지만 썩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 와 기분 째지겠다

> 클리어하고 저거 처음 탈 때 아직도 못 잊음

고도가 점점 올라가자 대륙 전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단천이 올라온 라단 성, 그리고 구원을 하기로 한 라인하르트 성과 미카엘 성.

그리고 흑빛 안개로 뒤덮여 있는 장소들.

‘풀창고의 설정집대로라면 그냥 더미 데이터에 불과한 장소들이라고 했지.’

하지만 지금 단천이 하고 있는 다키스트 에이지는 풀창고가 플레이하던 때와 완전히 다르다.

단천이 진행하고 있는 히든 스토리의 이름은 ‘구원자’. 아마 생각이 맞다면 몬스터들을 계속 보내오는 저 어둠 너머도 스토리에 있을 게 분명했다.

‘물론 아직은 갈 수 없지만.’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어떤 목표이건 시작은 한 발자국부터다. 지금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내 경지를 되찾아 나가는 일처럼.’

최선을 다하되 서두르진 않는다. 그걸로 충분하다.

***

그렇게 하늘을 얼마간 날고 있었을까.

[컷 씬이 재생됩니다.]

[시점이 전환됩니다.]

컷 씬이 재생된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컷 씬?”

> 일종의 짧은 시네마라고 보면 됨

> 컷씬 처음 보냐?

> 보스전 제대로 하면 중간중간 나오는데 BJ천마는 한 번도 못봤네

> 우리야 BJ 게임하는거 보는게 훨씬 눈호강이었으니 노상관임 ㅋㅋㅋ

> ㅇㄱㄹㅇ ㅋㅋㅋㅋ

단천의 눈 앞에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시야가 바뀌었다. 따지자면 1인칭 시점에서 3인칭 시점으로 바뀐 것이라고나 할까.

시야가 바뀌자마자 보이는 것은 죽자사자 성 위에서 싸우는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저기가 미카엘 성이로군.”

> ㅇㅇ

> 메인 스토리 진행할때는 여기가 그나마 사람 사는 동네같음

> 엔딩 갈때쯤엔 죄다 망해서 사람 다 죽어가는 동네가 되긴 하지만

채팅창은 미카엘 성에 대한 대화가 한창이었다. ‘다키스트 에이지’의 노멀 엔딩에서는 제대로 살아남은 인간의 수는 더욱 줄어든다.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관이 바로 다키스트 에이지였으니까.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꿈과 희망이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으아악!”

“사, 살려줘!”

“안돼!”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명.

미카엘 성은 아비규환이었다.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이 끝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전열을 유지해라! 물러서지 마라!”

【성주 라파엘로】

미카엘 성의 성주인 라파엘로는 최전열에 서서 군세를 지휘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숨지 않고 전면에서 싸우다니. 꽤 강단 있는 군주인 모양이군.”

하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다. 이 주변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라인하르트 성도 몬스터들의 파상공세에 시달려서 지원 병력을 보내지 못한다고 했으니까.

“전선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옆에서 말을 내뱉는 기사의 말에는 절망감이 담겨 있었다.

“라단 성의 기사들은 일당백이라고 한다! 그들이 온다면 이길 수 있다! 버텨라!”

[컷 씬이 종료되었습니다.]

[위기에 빠진 미카엘 성을 구원하십시오.]

[시점이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씬이 종료되자 시선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전장 아래로 스컬 윙이 고도를 내리기 시작했다.

콰아앙!

성주 라파엘로의 앞에 스컬 윙이 내려앉았다.

“저, 적이다!”

“성주님을 지켜라!”

요란스런 소리와 함께 호위병들이 달려들었다.

뼈로 만들어진 거대한 독수리가 성주 앞에 떨어져 내렸으니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단천은 상대의 착각이든 뭐든 덤벼드는 인간을 놔 두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단천의 몸이 달려드는 호위병들을 순식간에 걷어쳤다.

퍼억! 뻐어억!

찰나의 순간에 호위병들이 바닥에 쓰러져내렸다.

> 같은 편인데 왜 때려눕힘?

“놈들이 먼저 덤볐으니까.”

>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덤빈다고 두드려패냐 ㅋㅋㅋㅋ

> 원래 덤벼드는 것은 막지 않는 것이 패도인 법!

> 대화로 해결할 생각은 없음?

“왜 대화로 해결해야 하지?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 우리는 그 효율적인 방법을 폭력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 대화가 뭐냐 본좌에게는 무력이 있다

> 강한 폭력은 대화와 구별되지 않는다 ㄹㅇ

순식간에 호위병이 제압되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이 정도 정적이라면 대화를 해도 통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단천은 입을 열었다.

“적이 아니다. 라단 성에서 온 지원군이다.”

“···지원군?”

“라단 성에서 지원군이 왔다고?”

“그렇다. 나는 라단 성의 성주이자 천마다.”

“천마? 천마가 뭐지?”

> 아니 여기서 갑자기 천마 이름이 왜 나와 ㅋㅋㅋ

> 성주이기 이전에 천마···

> 그것이 ‘천마’니까···.

> 천마재림 만마앙복!

천마가 무엇인지 생각하려는 듯 찌푸리던 라파엘로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아, 아무튼 그대가 라단 성의 성주이구려! 잘 왔소! 그대의 기사들은 언제쯤 도착하지? 지원 병력의 수는 얼마인가!”

“기사들은 오지 않는다.”

“뭐, 뭐라고? 그게 대체 무슨 말···!”

크워어어어!

라파엘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십수 마리의 트롤들이 라파엘로 일행을 덮쳐왔다.

상급 몬스터에서도 재생력이 강해 난적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트롤들이다.

원래라면 무리를 짓지 않고 한 마리씩 돌아다니는 트롤들이 십수 마리씩이나 라파엘로에게 덤벼온 것이다.

생사를 모두 걸어도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그리고 그 순간,

은빛 섬광이 번뜩였다.

촤자자작!

어느새 빼어들린 단천의 부러진 직검. 동시에 멈춘 트롤들의 몸.

“지원 병력의 수는,”

쩌저저적!

멈췄던 트롤들의 목과 몸통 사이가 서서히 벌어지더니.

투두두둑!

트롤들의 머리가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한 명. 본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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