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24화 (24/212)

5. 다키스트 에이지 - 세력 확장 (1)

다음 날 새벽. 단천은 개운한 표정의 단지은과 마주쳤다. 개운하디 개운한 얼굴이다.

효능 좋은 약선단을 자기 전에 먹었으니 몸이 개운하고 날아갈만해 보이기도 했다.

“잘 잤어?”

“와. 어제 그 약, 엄청 약발 끝내준다. 뭐 이상한 성분 들어가 있는 건 아니지?”

“그런 거 없어. 그냥 한약이야.”

단지은은 여전히 믿음이 가질 않는다는 표정이지만, 약 자체에 대한 의심이 있던 어제와는 달리 약선단의 효능에 대해서는 확실히 믿음을 가지게 된 모양이다.

“그 약. 어디서 살 수 있어?”

“약재는 사면 되고 직접 빚어내기만 하면 돼.”

“그거 서른 알이 얼마라고?”

“사백만원.”

“정가 말고 할인가 이야기하는 건데.”

단천의 눈이 실눈이 됐다. 할인가는 무슨 할인가란 말인가. 어제 400만원으로 재료 구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할인가 같은 거 없어.”

“말하기 싫다 이거지? 하긴, 선물받은 거 가격을 꼬치꼬치 캐물은 내 잘못이긴 하다. 진짜 사백만원짜리 약이라고 생각하고 먹을게. 고마워. 잘 먹을게.”

단지은이 환하게 웃었다. 단천이 아플 때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리고 단천이 일어났을 처음 봤던 환한 웃음이다.

약 자체의 성능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동생인 단천이 무언가 자신에게 선물을 해 줬다는 뜻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그래.”

저런 웃음을 좀 더 자주 보고 싶다. 단천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떳떳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더 열심히 방송해야겠는걸.’

돈을 버는 것, 번듯한 직장을 가지는 것, 그리고 단지은이 걱정하는 새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

모두 방송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들이다.

“잘 할게.”

“우리 상사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뭐냐면, 열심히가 아니라 잘 해야 된다는 거야.”

“나도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는데.”

“니가 언제 그런말을 해 봤는데?”

“···꿈에서?”

“못된 꿈이네. 그런 말 하는 상사는 아주 못돼쳐먹은 상사야. 한 놈도 빠짐없이.”

그럴 리가. 천마신교의 익명 투서체계였던 마음의 편지에서 단천 자신에 대한 비방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말은 잘 못 해도 괜찮다는 말이야.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면 잘 될 거야. 누나는 우리 동생 믿으니까! 알지?”

“그래. 즐겁게 할게.”

단천은 세상물정 모르는 누나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단지은을 출근 보내고 아침의 운기행공까지 끝낸 단천은 VR캡슐로 향했다.

단천의 머릿속에는 어제 풀창고에게 들은 조언들이 떠올라 있었다.

─ 합방 하고 난 다음날은 바로 게임을 시작하지 않는 게 좋아요. 방송 스타일이 어떤지, 이런 것들을 말할 시간이 있어야 되거든요.

─ 네. 노가리 까는 거에요. 소위 말하는 저챗(just chating)이죠. 게임 시작하기 전에 시청자들 잡아끄는 시간.

새로 유입된 시청자들과 대화하면서 거리감을 줄인다. 거리감이 줄어들어 친근해진다면 시청자들은 훨씬 더 자주 찾아오게 된다.

이런 꿀팁은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여러 번 다시 생각해봐도 풀창고의 스튜디오에 방문했던 것은 기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방송을 시작합니다.]

‘···그보다. 시청자들이 많이 와 주려나.’

어제 풀창고가 방송을 시작할 때의 시청자수는 거의 8000명이나 됐었다. 풀창고의 유명세와 순위를 보고 찾아온 시청자들이 대다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의 시청자수는 그것보다는 한참 적을 것이다.

이틀 전에 방송을 시작했을 때의 시청자 수가 천 명 중반대였으니. 오늘은 그 두 배, 대충 3천명 정도를 목표로 잡으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보다 적을지도.’

> 천하

> 천마님 하이

채팅창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는 건 방송이 시작됐다는 것.

단천은 눈으로 가볍게 시청자수를 확인했다.

[시청자 수 : 4,790명]

‘···이게 맞나.’

단천의 눈이 깜빡거렸다. 시청자 수가 2배를 넘어 3배까지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중형 스트리머의 커트라인 선인 5천명에 가까운 수가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시청자 수에 대한 언급은 금물이다. 시청자가 적으면 적은 대로, 시청자가 많으면 많은 대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 해야 할 것은 물이 들어왔으니 노를 젓는 것.

“반갑다. 오늘은 다키스트 에이지에 들어가기에 앞서 간단한 잡담을 좀 해 볼까 한다.”

> 오팬무

> 천마님은 무공 공부 얼마나 하셨나요?

> 컨트롤 비법이 내공심법 때문이라는데 사실임?

> 다키스트 에이지 히든엔딩 오늘 엔딩 보냐?

> 오늘 아침에 뭐함?

수없이 많이 올라가는 채팅들. 채팅을 읽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무협지를 수없이 읽으며 단련된 속독법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단천의 입은 하나다. 대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게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되도록 신변잡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오늘 아침에 무엇을 했냐는 질문.

“오늘 아침에는 단약을 먹고 운동을 했다.”

> 엌ㅋㅋㅋㅋ

> 컨셉을 대체 어디까지 지키는 거야 ㅋㅋㅋ

> 운동은 언제 하는 게 좋나요?

“업무를 하지 않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뺀 모든 시간.”

> 운동에 미친 자인가;

> 그런 거 치고는 몸이 살짝 여리시던데

“꾸준히 운동하고 있으니 금방 나아질 거다. 물론 지금 몸으로도 웬만한 인간들은 제압할 수 있지만.”

> 패기 미쳤다 ㅋㅋㅋㅋ

> 이게 천마님이지 ㅋㅋㅋ

채팅창의 분위기가 한층 더 활기차졌다. 지금까지 게임 플레이만 보여왔던 단천이었다. 게임을 잘 하는 플레이어라는 인식이 박히기는 했지만 친근함은 부족했다.

지금 하고 있는 대화 하나 하나로 시청자들이 BJ천마와 그만큼 가까워졌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 단약은 먹을만한가요?

> 한약이면 다 쓴데 그걸 먹네

“쓰지 않고 맛있게 만들어진 약이다. 오늘 아침에 누이도 하나를 맛있게 먹고 갔지.”

> 누나도 있음?

> 그보다 자연스럽게 누나한테 식고문하네 ㅋㅋㅋ

“누이도 맛있게 먹었느니라.”

> 그러시겠죠 ㅋㅋㅋ

> 나도 엄마가 해준 한약 맛있다고 함

> 한약 억지로 먹이는 남동생이라니··· 나도 갖고 싶다

···친근감을 느끼는 것과 자신의 말을 믿는 것은 별개인 것 같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거기에 스트리밍계에는 별별 컨셉의 방송들이 다 있다. 해적을 표방하는 스트리머도 있고, 외계에서 온 공주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스트리머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방송 컨셉에 맞는 2D라이브도 맞추는 경우도 굉장히 빈번하다.

이런 점에서 비추어보자면 단천이 말하는 ‘천마’라는 컨셉도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범위의 안인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매화검법의 경우에는 다수가 모여서 검진을 이루면 급속도로 약해지지. 그보다는 십팔나한진이 상대하기 어려웠다.”

“사천의 음식은 생각보다 맵지 않다. 매운 방향도 달라서 숙수를 꽤 닦달했었지.”

단천의 말은 컨셉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었다.

그야 실제로 무림에 다녀왔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 컨셉의 디테일함은 시청자들에게도 재미의 한 요소다. 실제로 중원을 경험하기라도 한 것 같은 디테일은 시청자들도 컨셉에 몰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 오오···! 역시 천마님!

> 천마재림 만마앙복!

> 천세! 천세! 천천세!

그 증거로 실제로 컨셉질을 시작한 시청자들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그로를 끌기 위한 것이겠지만···.

‘그거야 진짜로 만들어 주면 될 일이지.’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

“슬슬 시청자들이 들어찬 것 같으니 다키스트 에이지의 다음 챕터로 넘어가 보도록 하지.”

> 마참내!

> 즐겁다!

> 메인 컨텐츠 드가자 ㅋㅋㅋㅋㅋ

뒤이어지는 시청자들의 열광. 결국 이러니저러니해도 저스트 채팅은 저스트 채팅이다. 메인 디쉬인 게임으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확 달아오른다.

> 그래서 오팬무;;

채팅창에서 간간히 올라오는 저놈의 오팬무가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기는 하지만.

어감을 봤을 때 뭔지는 몰라도 별 쓸모없는 질문일 터였다.

***

[구원자의 네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되었습니다.]

다키스트 에이지에 접속하자마자 들려온 메시지였다. 단천이 서 있는 곳은 기사들을 두드려패주던 공터였다.

“오셨습니까!”

단천의 모습을 확인한 기사들이 바로 부복을 해 앉았다. 일사불란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기사들의 모습은 일기당천의 백전노장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오만함과 여유로움 대신 노련함과 긴장이 배여 있는 상태.

> 그 미친 개같은 놈들이 무슨 짓을 당했길래 저렇게 되냐

> 거의 기사교육계 1타강사 ㄷㄷ;

> 교육(물리)

단천의 눈이 빠르게 기사들의 몸을 훑었다. 근육도 전투에 맞게 발달했고 풍겨나오는 기세만으로도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기사들의 교육이 완료되었습니다.]

[능력치 상승이 최대폭입니다!]

[기사들의 충성심이 최대입니다!]

“내 교육이 꽤 잘 먹혀들었나 보군.”

> 뭔가를 가르칠 때는···그냥 두드려패면 된다···메모···.

> 속보) 학부모에게 유해한 방송 1위 등극!

> 우리 엄빠가 BJ천마 안 봐서 다행이다;

> └ 왜 안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그렇게 단천이 자신의 가르침에 흡족해하고 있는 중. 단천을 향해 달려오는 한 인영이 보였다.

브라딘이었다.

“주군!”

“무슨 일이지?”

“저희와 인접해 있는 라인하르트 성과 미카엘 성에서 동시에 구원 요청이 왔습니다!”

‘라인하르트와 미카엘 성이라.’

단천은 머릿속으로 풀창고가 보내준 「다키스트 에이지 풀창고표 설정집」의 지도를 떠올렸다.

라인하르트 성은 몬스터와 근접해 있는 최접경 지역이다. 이곳의 몬스터들은 강한 동시에 숫자도 많다.

반대로 미카엘 성은 라단 성에 비해서도 후방 지역이다. 나오는 몬스터들이 비교적 약하고 숫자도 적다.

[스토리 분기]

[1. 라인하르트 성을 지원한다.]

[2. 미카엘 성을 지원한다.]

주어진 정보대로라면 라인하르트 성이 훨씬 더 난이도가 높다. 반면 미카엘 성은 비교적 낮은 난이도인 상황.

단순하게 히든 스토리의 엔딩을 보려는 방송이었다면 2번을 고르라고 했겠지만.

BJ천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시청자들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 1111111111

> 천마님 하드모드 가신다!!!!

> 길을 열어라!!! 천마님이 라인하르트 부수러 가신다!!

“1번이라. 어려운 길로 굳이 갈 필요가 있나?”

> 아 ㅋㅋㅋ 입꼬리 올라간거 봐 ㅋㅋㅋㅋ

> 어차피 1번 고를 거잖아 ㅋㅋㅋㅋㅋㅋ

> 드가자아아아ㅏㅏㅏ

[BJ천마속마음 님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응 너네가 뭐라고 하던간에 하드모드 갈거야~~]

잠시간 채팅창의 불타오르는 분위기를 관전하던 단천의 입이 열렸다.

“좋다. 결정하지.”

“하명하십시오!”

“우리는 라인하르트 성과 미카엘 성을 동시에 구원한다.”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