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22화 (22/212)

3. 합방-다키스트 에이지 - 성주(3)

뻑! 빠아악!

머리, 가슴, 몸통. 단천의 주먹이 겨우 일어선 기사의 몸을 후려갈겼다.

나름대로 힘든 보스 취급을 받는 돈 키호리가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단천이 대련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멀쩡하게 서 있는 기사는 한 명도 없었다.

“끄어어.”

“흐어억, 죽을 것 같아.”

“병원··· 병원으로 보내줘···.”

“고작 그 정도로 병원을 갈 필요는 없다.”

> 다리가 꺾여서는 안 될 방향으로 꺾여 있는데?

> 천마 기준으로 병원은 언제 가는 곳이냐

> 뒤졌을 때 부활하는 곳인듯?

채팅창의 반응은 이제 BJ천마가 이기는 게 당연하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나마 간간히 보이던 피지컬에 대한 의심도 쏙 들어간 상황.

한명한명이 다키스트 에이지의 준 보스급에 해당하는 기사들 수십을 죄다 일격으로 때려 눕히고 있었으니. 의심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었다.

“죄다 약골들이로군.”

단천의 말에는 아무 반박도 나오지 않았다. 한 방에 한 명씩, 몇 번이나 돌아가면서 쓰러졌다.

“왜 너희가 이렇게 두들겨 맞고 있는지 감은 오나?”

“모르겠··· 습니다.”

대답을 한 것은 단천과 처음에 싸웠던 입실론이었다. 처음에는 반말을 찍찍 내뱉더니. 이제야 존댓말이 입에서 나온다.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서열 정리가 그래도 확실히 끝난 것이다.

“질문 하나 하지. 기교 없이 그냥 정면으로 붙는다면 너희와 나 중. 누가 이길까?”

“그야 저희가 이길···.”

“아니. 그래도 내가 이긴다.”

“······?”

“너희가 이길 거라고 말해주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렇게 붙어도 내가 이길 것 같다.”

“······.”

입실론의 얼굴이 구겨지거나 말거나 단천의 말은 이어져 나갔다.

“아무튼 나랑 만난 건 자연재해라고 치지. 지금 너희들은 내공···아니, 신성력의 크기만 크면 다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보통 산이나 산간벽지에 박혀 있는 일인전승의 문파에서나 하는 생각들이다. 산골에서 내공을 늘려 주는 수련만 죽어라 하고, 몸을 써서 하는 대련은 도외시하는. 내공의 크기만 비대한 무림인들.

보통 그런 놈들은 강호에서 가장 먼저 죽는다. 그것도 자신이 내공의 수준이 낮다고 괄시하던 급 낮은 무림인들의 손에.

“지금까지 너희는 압도적인 힘만 가지고 싸워왔겠지. 그것만으로도 질 낮은 놈들과 싸우는 것은 충분했을 거다. 하지만 결국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신체다.”

가진 바 내공만 가지고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내공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결국 몸이기에. 내공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싸우는지를 알아야 한다.

> 아. 그러니까 지금 천마가 두들겨 패고 있는 건 어떻게 싸우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거였음?

> 생각보다 생각이 깊었네;

> 하긴 직접 보고 느끼는 것보다 좋은 가르침은 없지

‘그런 부분도 있었나.’

천마신교에서 했던 것처럼 깨닫는 건 지들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고 수준 될 때까지 두들겨 패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자신의 교육에 그런 보조효과까지 있었을 줄이야.

‘어째 혈귀단 놈들의 무공 수위가 빠르게 오르더라니.’

혈귀단이 급속도로 강해진 것은 단천의 훌륭한 교육지침 뿐 아니라 단천 자신이라는 훌륭한 교보재를 보고 배운 덕도 있었던 것이다.

아마 지금의 기사들도 이런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니 더욱 강해질 것이다.

다만 아쉬운 건. 이런 훌륭한 교육을 오래 하지 못한다는 것.

[훌륭한 교육에 기사들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테이터스 향상 버프를 받습니다.]

[다음 전투에서 기사들의 기세가 올라갑니다.]

[다음 전투에서 기사들의 능력치가 올라갑니다.]

[교육 성공도 : 총합 S+]

[기사 교육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다키스트 에이지의 특성한 하나의 메인 퀘스트가 끝나면 바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간다.

그렇다는 건 이 ‘교육’도 한 번으로 끝난다는 뜻이다.

“아쉽군. 느긋하게 세네달 정도 계속 같이 해 주고 싶었는데.”

> 끔찍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ㅋㅋㅋ

> 이게 실제였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듯 ㅋㅋㅋㅋ

> 기사들 눈 떨리는 거 봐 ㅋㅋㅋㅋㅋ

“고작 한 번으로 얘들이 뭘 배우겠어. 적어도 두세 달은 느긋하게 가르쳐야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단천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풀창고가 입을 열었다.

“다키스트 에이지에서 챕터가 넘어갈 때에는, 그 전까지 플레이어의 행동에 맞춰서 중간 부분의 이야기가 자동으로 삽입돼.”

“그렇다는 건?”

“다음 에피소드가 진행될 때 기사들은 천마 형의 교육···을 매일같이 겪은 상태로 만나게 된다는 거지.”

요약하자면 자동사냥이라고 할 수 있다.

단천의 고개가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실제로 가르치지 않고도 그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니. 물론 직접 하는 것만큼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 근데 그렇다는 건 쟤들은 몇 달 동안 쳐맞는 걸 계속하는 거임?

> 다음 에피소드까지 매일 이러는 건 그냥 생지옥 아니냐?

> ??? : 죽···여···줘···.

그렇게 잠시간 만족스럽게 끄덕이던 단천의 고개가 일순 멈췄다.

“근데, 다음 에피소드라면 고작해야 세네달 뒤 아니냐?”

“그···렇지?”

“이거 기왕 하는 김에 기간을 늘릴 순 없나? 2년이나 3년 정도 뒤로.”

“······.”

“어차피 강해지는 거. 좀더 빡세게 고생한다는 느낌으로 몇 년 수련하면 더 좋잖아.”

“아, 아쉽게도 그런 건 불가능해. 시간축에서 고정되어 있는 커다란 에피소드들을 미룰 수는 없어서.”

“아쉽군.”

> ㅋㅋㅋㅋㅋㅋㅋㅋ

> 진짜 발언 하나하나가 레전드 ㅋㅋㅋㅋㅋ

> BJ천마/논란/인성/NPC 학대 논란

[에피소드 '성주'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렇게 단천의 인성에 대한 논란과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끝으로.

다키스트 에이지 합방이 끝났다.

***

“와. 대박중의 대박이다 이거.”

방송이 끝난 후.

시청자 추이를 확인한 풀창고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오늘 시청자 수 최고점이 3만명이야.”

“많은 건가?”

“초대형 스트리머나 게스트를 초청했을 때만큼 많은 건 아니야. 근데 중요한 건 평균 시청시간이지.”

풀창고가 모니터를 돌려 수십 개의 그래프 중 하나를 띄웠다.

“우리가 한 방송이 5시간 정도였거든? 근데 1인당 평균 시청시간이 4시간을 넘어.”

그 말은 한 번 유입된 시청자들이 나가지 않고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시청을 해 줬다는 의미였다.

한 번 유입된 시청자를 모조리 사로잡았다는 뜻.

이 시청자들은 그대로 BJ천마와 풀창고의 고정 시청자가 되어줄 터였다.

“와. 진짜, 솔직히 시청자 손해 좀 볼 생각으로 형 초대한 건데. 나도 엄청 이득 봤네.”

BJ천마의 시청자뿐만 아니라 풀창고가 진행하는 초대석의 인지도도 엄청나게 올라갔다. 고정 시청자보다는 유동 시청자가 대부분이던 풀창고 입장에서도 도움이 크게 된 셈.

“다음 방송때 시청자 엄청 대박 나겠다. 축하해!”

“고맙다.”

단천이 씩 웃었다. 마지막까지도 자신에게 덕담을 해 주는 것을 보니 이래저래 된 사람이다.

“내일도 다키스트 에이지 들어올 거냐?”

“그건 힘들어. 내가 다른 스케쥴 잡아놓은 게 있어서. 오늘도 원래 초대석 휴방 하려다가 억지로 시간 낸 거거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대형 스트리머란 건 이런저런 일정이 미리 꽉 차 있다.

단천은 굳이 풀창고를 붙잡지 않았다. 회자정리 거자필반도 모를 정도로 어리지는 않았기에.

“같이 해 주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 안 버릴 거지?”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보는 거지.”

“그래. 형 하는 거 보니까 스트리머 대회에서 금방 만나게 될 것 같다.”

보통 한두 게임을 잘한다고 해서 다른 게임을 잘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게임을 잘한다고 해서 스트리밍이 대박이 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풀창고는 옆에서 단천의 방송을 계속 봐 왔다. 컨트롤도 컨트롤이지만.

“형 방송 앞으로도 계속 커질 거야. 실력도 실력인데 시청자들 휘어잡는 천마라는 컨셉. 기가 막히게 지키더라. 이런 기믹이 스트리머한테는 사실 실력보다 더 중요하거든.”

“···컨셉?”

“그래. 컨셉. 일이년동안 더 굴리면 안 되냐는 말엔 컨셉인 걸 알고 있는 나도 머리가 띵하더라고.”

‘뭐가 컨셉이라는 거지.’

잘 알아듣진 못하겠지만 아무튼 칭찬이니 좋은 말이겠지. 단천은 키득거리며 웃는 풀창고의 웃음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방송도 잘 하고··· 아! 아아! 후원금 정산 안 해 줄 뻔 했네!”

키득거리며 웃던 풀창고가 무릎을 탁 쳤다. 보통 합동 방송은 방송을 켠 스트리머의 이름으로 후원을 받고 비율에 따라 나눈다.

금액을 나누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물론 후원금의 확인!

“오늘 스트리밍 총 후원금은···.”

휠을 내려 금액을 확인한 풀창고의 말이 멈췄다.

“와. 오늘 후원이 700만원이나 터졌네.”

“···700만원?”

700만원이라는 금액은 작은 액수가 아니다. 한 달에 벌어들인 돈이라고 해도 많은 액수다.

하지만 지금 700만원은 단 하루에 벌어든인 액수다.

“시청자가 많아서 그런지 오늘은 엄청 많이 터졌다. 원래 종합 게임 방송은 후원금이 엄청 잘 터지진 않는 편이거든.”

풀창고의 입이 귀에 걸렸다. 돈도 돈이지만 후원자는 방송을 열렬히 지지해주는 시청자들이다. 이번 방송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데 기분이 나쁠 스트리머가 없는 것이다.

“그럼 후원금 반 송금한다?”

“지금?”

원래 후원금은 한 달 뒤에 정산을 받는다. 당장 후원을 받는다고 해도 돈이 생기는 것은 아닌 셈.

“어. 원래 합방은 후원금 받자마자 송금해 주는 게 암묵의 룰이거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까먹을 수도 있고.”

“···그렇지.”

까먹는다는 말에 단천의 고개가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 번에 미션금을 까먹고 안 받았었다.

‘놈이 다음 방송에 입금하지 않는다면 놈의 주리를 틀어 버려야겠군.’

“자. 송금 완료했어!”

[잔고 : 4,003,080원]

휴대폰을 확인하자 3080원뿐이던 단천의 계좌에 400만원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절반이면 350만원인데?”

“합방 해 줘서 고맙다고 뇌물 좀 넣었어! 뇌물이 싫으면 시청자 ‘풀창고’가 주는 후원금이라고 생각해도 되고! 대신 다음 스트리밍 대회 있으면 우리 팀에 들어와 주는 거다?”

“알았다.”

단천의 대답에 풀창고가 환하게 웃었다. 여러 모로 커다랗고 충직한 개가 생각나는 행동거지다. 서글서글하고 큰 눈동자에 사람 좋은 웃음. 거기에 큰 덩치까지.

단천은 풀창고의 등 뒤로 커다란 꼬리가 흔들리는 것 같다는 착각에 휩싸였다.

“그럼. 다음에 보지.”

“그래! 꼭 다음에 보는 거다! 꼭! 꼭! 꼭이야!”

스튜디오에서 1km는 떨어진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을 받은 단천은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운이 좋아.”

풀창고라는 인맥이 생긴 것이 무엇보다 큰 소득이다. 하지만 부차적인 소득인 돈도 결코 빼놓을 수는 없었다.

두어달 뒤에야 정산금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400만원이라는 돈이 생긴 것이다.

단천은 돈이 생기면 어디에 쓸지 이미 생각해 둔 곳이 있었다.

‘가는 길에 한약방에 들러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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