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20화 (20/212)

3. 합방-다키스트 에이지 - 성주(1)

> BJ천마! BJ천마! BJ천마!

> 풀창고도 겜 좀 한다 싶었는데 차원이 다르네 ㅋㅋㅋ

> 보고도 내 눈을 의심함

> 다키스트 에이지 가면 도대체 어느 정도란 거냐 ㅋㅋㅋㅋ

BJ천마에 대한 찬양 일색의 채팅창을 바라보며 풀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 BJ천마라는 이름이 확실하게 각인됐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청자가 늘어날 터였다.

> 풀창고보다 컨 훨씬 나은 것 같은데 ㅋㅋㅋ

> 풀창고가 광대짓은 더 잘함

> 엌ㅋㅋ 그건 맞지 ㅋㅋㅋ

‘내 시청자도 좀 넘어가려나.’

풀창고의 입이 삐죽였다. 자신도 얼마 전까지는 실력 스트리머를 표방했었던 탓에 다른 사람이 더 잘한다는 말에는 상처를 받는 탓이다.

‘그래도 시청자가 이렇게 많으면 내 입장에서는 이득이지.’

[현재 시청자수 : 26,000 명]

[가장 폭발적으로 시청인원이 늘어난 채널 1위!]

2만 5천명에 가까웠던 시청자 수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방송을 시작한 시간대가 피크 시간대인 오후 5시 이후가 아니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지금 시각에 유동 시청자 대다수가 풀창고의 방송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이 시청자들 중 일부는 앞으로도 풀창고의 방송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윈윈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 초대석을 통해 다소간의 시청자 손실을 감안하려고 했던 풀창고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성과였다.

이제 마무리만 제대로 하면 된다.

“그럼. 다키스트 에이지 실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오셨습니까.”

부복하고 앉아 있는 브라딘에게 단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금 단천이 있는 곳은 원래 캐시미어의 보스 방으로 사용되던 장소였다. 해골이 가득한 방이었던 성주의 방은 말끔하게 치워진 상태였다.

휘장과 깃발, 그리고 조잡하지만 절도 있게 서 있는 가신들이 서 있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 ? 이런 장소가 있었냐

> 여기 어디임

> 캐시미어 보스방임

> 여기가 왜 이렇게 됐냐?

[라군 성이 캐시미어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구원자’의 세 번째 에피소드가 종료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챕터가 넘어가면서 시간이 그만큼 지나간 것이다.

“많은 것들이 바뀌었군.”

“그렇습니다. 주군. 주군을 따르는 기사들과 군사들도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건 바란 적 없는데.”

“위대한 자에게는 사람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주군은 피레네 마을을 구하고, 캐시미어에게서 라군 성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약자를 구할 줄 아는 정의로운 자는 흔치 않죠. 그 까닭에 정의와 도덕을 아는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겁니다.”

[당신은 라군 성의 성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걸 바란 적이 없다니까. 단천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 와 다키스트 에이지가 사람들도 모을 수 있는 게임이었냐?

> 난 주구장창 몬스터만 잡다가 게임 끝났는데

> 그보다 왜 불만 있는 표정임 ㅋㅋㅋㅋ

“높은 자리라는 건 귀찮은 일들만 늘어난다.”

원하지도 않던 쓰잘데기없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천마신교에서도 여러 번 겪었던 일이다.

단천의 표정이 한층 더 썩어 들어갔다. 높은 자리는 높은 책임이 따른다. 도움도 안 되고 무공 수행은 방해만 되는 귀찮은 일들이 한가득이라는 것이다.

> 표정 좀 풀어 ㅋㅋㅋㅋ

> 엄마 심부름으로 자다가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갈 때 표정이네 ㅋㅋㅋ

단천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다키스트 에이지」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운 것 같던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금 단천이 있는 집무실에서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목숨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바칠 수 있다는 열의.

중원에서도 가끔씩만 볼 수 있었던 이타적인 열기가 가신들에게는 있었다.

‘···나쁘지 않군.’

“민가도 볼 수 있나?”

“주군께서 바라신다면.”

브라딘이 단천을 안내했다. 성 밖의 민가들도 말끔하게 바뀌어 있었다. 주민들은 빈말로라도 잘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늙은이들과 아이들도 보이는군.”

“네. 주군께서 구해주셨던 피레네 마을의 사람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숨어 살던 사람들도 모여들었습니다.”

살아남아 있는 주민들이 단천을 쳐다보는 눈에는 존경과 경외의 눈빛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의욕이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 마을에 노약자를 들인다고?

> 인성 갖다버린 괴물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게 다키스트 에이지 아니었냐?

> 이게 내가 알던 다키스트 에이지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채팅창의 반응은 다키스트 에이지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인류애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멀 스토리의 다키스트 에이지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타인과 무리를 절대 짓지 않는 것만을 봐 왔었으니까.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라군 성을 둘러보던 단천은 자신도 모르게 천마신교를 떠올렸다. 이전에는 인간이 인간이 아니라 짐승으로 취급받던 곳. 단천이 있고서부터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던 곳.

두 장소는 왜인지 꽤나 닮아 있었다.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단천은 짧게 헛기침을 했다. 원래는 귀찮은 퀘스트따위는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작은 일 한두 개 정도는 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좋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대부분의 일은 제가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만?”

“기사들의 수련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기사들의 수련이라.”

하긴. 브라딘은 연금술사이자 네크로맨서다. 몸을 쓰는 기사들의 수련을 도울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퀘스트 : 기사들의 수련을 돕기]

[보상 : 기사들의 능력치가 강해집니다.]

“···이거. 꽤 도움이 되겠군요.”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풀창고가 입을 열었다.

“기사들은 제각각이 혼자서도 다이어드 대륙의 내심지를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칭호입니다. 이 칭호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한 명 한 명이 준 보스급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는 능력치를···.”

“짧게. 한 마디로.”

“···수련을 시켜 놓으면 나중에 있을 게 확실한 대규모 전쟁에서 도움이 될 겁니다.”

“그거 좋군.”

이를테면 단천과 동고동락을 함께하며 강해졌던 혈귀단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혼자서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단천의 본래 능력이 있다면야 혼자서 몬스터 몇만 마리가 와도 쓸어버릴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의 단천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내공도 없으니, 기껏해야 백 마리 정도가 한계겠지.’

자신의 상황을 판단한 단천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여러 정보를 종합해 봤을 때 단천이 진행하고 있는 ‘구원자’스토리는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질 터.

문파 간의 전쟁에서 일류 이상 무인들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단천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바라지 않았다고 해도 책임지는 위치에 앉은 이상 허투루 하는 것은 단천 스스로의 성미에도 맞지 않았다.

“기사들의 수련장으로 가도록 하지.”

“존명.”

브라딘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수련장에는 기사 수십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기도 갑옷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만큼은 꽤나 걸출했다.

> 저거 라쉬르 아님? 쟤가 왜 여깄냐?

> 와 저기 지크마이어도 있네

> 탄자흐 말 잡는다고 개고생했는데 여기서는 내 수하네 ㅋㅋㅋ

기사들의 면면을 확인한 채팅창이 한층 더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원래 다키스트 에이지에서의 ‘기사’라는 존재들은 인간형 몬스터들의 최상위로 분류되는 존재들이다.

인간이기는 하나 자신만의 안위만을 위해서 움직이고 조금이라도 약점이 보이면 공격하는 선공형 몬스터들로 분류된 것이 기사라는 말이다.

그런 자들이 도열해서 있으니 신기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반갑다. 나는 이 도시의 성주인 단천이라고 한다.”

“위명이 자자하기에 찾아왔는데.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데?”

“내가 보기에도 별로 강해 보이지 않는군.”

조롱에 가까운 말 한 마디가 기사들 사이에서 툭하고 튀어나왔다. 그에 동조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노골적인 도발.

> 밥 빌어먹으러 왔으면서 왜 시비임?

> 갑자기 시비 걸어대는데 죄다 사지 찢고 곱게 갈아서 젓갈 담궈서 붕어밥으로 뿌리자

> 극한의 사이다패스 ㄷㄷㄷ;;

> 피 대신 사이다 흐를듯;

도발에도 불구하고 단천의 표정은 평안했다. 이런 도발들은 혈귀단에서 심심하면 들어 왔던 도발이었기 때문이다.

혈귀단에서는 가장 강한 자가 단장이 된다. 그리고 매 임무가 끝날 때마다 단에서 누가 가장 강한지를 선별한다.

임무가 끝날 때마다 자신이 강해졌다고 확신하는 단원들이 단천에게 시비를 걸어오곤 했다.

─ 아. 거 참. 단장이라고 해서 밥을 제 멋대로 먹는게 가당키나 한가?

─ 이번에 받은 임무착수금에 구멍이 났던데?

─ 이번에도 단장만 재밌는 놈들과 싸웠더군. 높은 자리라서 좋으시겠소.

노골적인 도발이기는 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미는 모욕이 아니다.

이 도발 안에 들어 있는 진짜 의미는.

‘당신이 우리를 이끌 만큼 강한지 보여라.’

라는 뜻이다.

강함과 생존이 직결되는 집단에서, 무리는 가장 강한 자가 이끌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무리의 서열 싸움.

이런 서열 싸움에서 단천은 단 한 번도 물러선 적이 없었다. 물론 져 본 적도 없었고.

“한판 붙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한판 붙자고? 성주님이? 그럴 깜냥이나 있으신가?”

쉬익!

단천의 주먹이 비아냥거린 기사의 몸으로 꽂혀들었다.

“뭐, 무슨!”

뻐억!

뭐라고 대응할 순간도 없이 비아냥거린 기사의 몸이 바닥에 나자빠져 뒹굴었다.

“레, 레이놀즈!”

> 와 레이놀즈를 어떻게 한 방에 보내버리냐

> 이게 그 같은 편이 된 적 보정? 그런 거냐?

> 모르지 한 방에 터진 걸 보면 그렇지 않겠냐?

“약해진 거 아닙니다.”

단천의 주먹질을 본 풀창고가 대답했다. 다키스트 에이지는 기본적으로 고정 레벨을 가진다. 호감도가 높아져서 아군으로 만든다고 해서 능력치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일은 없다.

그러니까 방금 한 방으로 레이놀즈를 쓰러트린 것은 순수하게 단천이 해 낸 일이라고 봐야 했다.

“······.”

레이놀즈가 한 방에 기절한 것이 확인되자 수련장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단천이 한 방에 기사 한 명을 쓰러트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있는 기사들 중 범우한 기사는 한 명도 없다. 난다긴다하는 기사인 레이놀즈를 한 방에 쓰러트린 것으로 단천은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증명한 것이다.

“스토리가 쉬워지겠네요. 보아하니 기사들도 천마 형의 강함을 납득한 걸로 보이고. 수련 조금만 도와 주면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갈 수 있을 거에요.”

풀창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단천의 반응은 달랐다.

삐딱하게 선 채로, 다리를 건들거리는 단천의 자세는 누가 봐도 도발을 하려는 자세였다.

결정적인 것은 표정이었다.

기사들이 단천을 도발할 때 지은 그 표정을 거울에 비추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

표정으로 도발 자세의 화룡점정을 찍은 단천의 입에서 피식, 하고 비웃음이 터져나왔다.

완벽한 도발 그 자체를 몸으로 구현한 단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또 덤비고 싶은 허접 있나?”

“이 개자식!”

“오만한 콧대를 꺾어 주마!”

“다음은 나다!”

“아니, 나다!”

“다 닥쳐! 다음은 이 몸이다!”

[기사 ‘프랑키’가 분노했습니다!]

[기사 ‘입실론’이 분노했습니다!]

[기사 ‘아크사’가 분노했습니다!]

순식간에 광분 상태에 빠지는 기사들과 쏟아지기 시작하는 결투 신청들.

> 와 ㅋㅋㅋㅋㅋㅋㅋㅋ

> 돌았네 ㅋㅋㅋㅋㅋㅋ

> 자 드가잨ㅋㅋㅋㅋ

[‘상남자특’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상특) 시비 건 놈들 다 줘패줘야됨]

[‘사이다매니아’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잘 한다 천마! 시비건 놈들을 죄다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버리렴!]

상황을 파악한 채팅창이 다시금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네이션도 하나가 끝나면 하나가 터져나온다.

실로 경이적일 정도의 폭발력.

채팅창도 활발하고, 시청자 수는 또 늘어나고, 도네이션도 미친 듯이 터지는.

방송으로 생각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최고의 상황.

그런데도 풀창고의 눈은 머나먼 하늘로 향했다.

‘이걸로 괜찮은 걸까.’

“···나도 모르겠다.”

한참 고민하던 풀창고는 잘 모르겠으니 돈이 생겨서 좋다고 생각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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