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9화 (19/212)

2. 합방-런닝돌 (3)

단천의 말에 모든 시청자들의 관심이 레이싱 트랙으로 모아졌다. 단천이 나타나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단천의 뒤를 쫓아오는 레이서가 아무도 없었다.

> 뭐임?? 뭐임??? 도대체 뭐임????

> 뭔가···뭔가 일어나고 있음···.

> 아니 뒤에서 무슨 짓을 한 건데 도대체

[20/20]

[마지막 레이서가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기묘할 정도의 정적 아래. 단천이 결승선을 여유롭게 통과했다.

20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게.

“형. 이게 도대체 무슨···!”

[Round 2]

[비누거품 슬라이드 존]

풀창고가 단천에게 무언가 제대로 된 설명을 듣기도 전에 바로 다음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아. 무슨 비누거품이야!”

풀창고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비누거품 슬라이드 존’은 계속해서 레이스 존에 비눗물이 쏟아지는 고난이도의 레이스다.

런닝돌의 컨트롤이 후진 풀창고 입장에서는 최악의 맵. 심지어 레이스 스타팅 위치도 상대적으로 뒤쪽이다.

> 천마는 이번에는 좀 앞쪽 자리네

> 이번엔 천마님 어케 컨트롤하는지 좀 보면서 하자

> ㅇㅇㅇ 어케 살았는지 보고싶음

풀창고도 단천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궁금했다. 실제로도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풀창고 자신의 플레이보다는 단천의 플레이일 테고.

풀창고는 스트리머였다. 하지만.

“이번 판! 죽어도 살아남습니다! 죽어도!”

스트리머 이전에 지켜야 할 자존심도 있는 것이다. 풀창고는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며 가슴을 두드렸다.

콩쾅콩쾅!

> 아니 이거 스트리머 초대석이라고 ㅋㅋㅋㅋ

> 게스트 대우 무엇

> 사실상 평소 방송임 ㅋㅋㅋㅋ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단천은 그저 앞의 지형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레이스 스타트!]

“우오오오!”

풀창고가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풀창고가 몇 미터 앞으로 달려나갔을 때. 좌우에 장식되어 있던 양동이에서 비눗물이 쏟아져내렸다.

촤아아악!

단단하던 바닥이 순식간에 미끄러운 트랩으로 바뀌었다. 비눗물이 쏟아지자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으아아아!”

“아 진짜 맵 누가 만든 거야아아!”

콰당! 와당탕!

비눗물에 미끄러진 플레이어들이 쉼 없이 자빠지기 시작했다. 비눗물 스테이지는 계속해서 넘어지면서도 앞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끄럽기 그지없는 길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으아악!”

그렇기에 풀창고도 바닥에 계속해서 엎어졌다.

> ㅋㅋㅋㅋ 오늘도 역시납니다 ㅋㅋㅋㅋ

“아니 비눗물이 너무 많다니까요?”

> 못하는 애들 특) 변명만 오질나게 많음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호소해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뿐이었다.

그렇게 풀창고가 바닥에서 엎어지고 쓰러지며 순식간에 후열 그룹으로 떨어져내리고 있을 때.

“저, 저거 뭐야!”

“저사람 뭔데!”

선두 그룹에서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앞에서 터져나오는 소란에 풀창고의 시선이 앞으로 돌아갔다. 가장 선두에 서 있는 것은 익숙하기 그지없는 사람.

“천마형?”

단천이었다.

휘청휘청!

마치 술 취한 사람과 같은 모습처럼 균형을 잃고 바로 쓰러지기라도 할 것처럼 움직이는 팔다리.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이 위태위태한 상황인데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줄이 천장에서 조종하는 것처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뿐.

> 와 균형감각 지리네 ㅋㅋㅋㅋ

>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넘어진거임?

> 엌ㅋㅋㅋㅋ

‘역시. 취팔선보가 정답이었군.’

취팔선보.

술 취한 자의 걸음걸이처럼 무질서해 보이는 이 보법은 개방의 독문절기다.

취팔선보는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떠한 바닥 위에서도 결코 균형을 잃지 않는, 삼천년 개방의 정수가 모여든 신공절학!

‘취팔선보면 비눗물 바닥쯤은 문제없이 주파할 수 있지.’

개방의 방주 견유犬儒 소이팔이 취팔선보로 고작 비눗물 위를 달리는 데 쓰는 걸 봤다면 타구봉을 들고 백만 개방도와 함께 십만태산을 찾아왔겠지만.

매화주 30병으로 취팔선보를 합법 구매한 단천 입장에서는 그런 건 알 바가 아닌 것이다.

휘적휘적!

그렇게 취팔선보로 선두 자리를 차지한 단천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양 쪽으로는 절벽이 있어서 떨어지면 그대로 게임 오버인 곳.

단천의 ‘깨달음’을 쓰기에는 안성맞춤이기 그지없는 장소.

> 뭐함 안 달리고

> 1등 잡았는데 그대로 가야지!

> 왜 갑자기 멈춤? 1등 각인데 달려야지

“1등을 잡아서. 그 다음은?”

> 다음 레이스 가야 될 거 아냐

> 진짜 겜알못이네 ㅋㅋㅋㅋ

단천도 천마신교의 경공 수련에 처음 참가했을 때에는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앞으로, 앞으로 달려서 수련을 쉴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다음 수련에서도 죽자사자 달리고, 그 다음에도 계속해서 달리는 챗바퀴와 같은 지옥.

“1등을 하는 것. 그건 정답이 아니다.”

천마신교와 한국의 공통점이 있다면 순위에 굉장히 집착한다는 것이다. 1등을 해라. 100점을 받아라.

고작 1등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것도 세상에는 있다. 순위에 연연하지 않아야만 보이는 것도 세상에는 있는 법.

단천의 눈이 뒤이어 달려오는 주자에게 향했다. 필사적으로 달려오던 주자의 눈이 불안하게 떨렸다.

“야! 안 가고 뭐해 이 자식아! 안 갈거면 비켜!”

단천은 대답 대신 양 손을 앞으로 내밀어 자세를 취했다.

“아이씨. 뭔 1등이 길막을 하냐고!”

2등 주자의 입에서 쌍소리가 튀어나왔다.

물론 길막도 엄연히 런닝돌의 전략 중 하나다.

하지만 길막은 스쿼드 플레이에서 앞서서 가는 선두 주자를 지켜주기 위해서 뒤에서 오는 사람들을 가로막아주기 위한 것.

즉 1등한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말이다. 길을 가로막아서 얻는 이득이 전혀 없는 상황.

그런데도 눈 앞의 미친놈은 뒤를 돌아서서 굳이 길막을 시전하고 있다.

‘미친놈인가.’

그렇게 단천과 2등 주자가 잠시 눈싸움을 하는 사이에, 후발 주자들이 속속들이 미끄럼틀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야! 왜 안 가!”

“저 미친놈이 길막하잖아!”

“야! 밀어! 밀어서 떨어트려!”

뒤이어 온 선두 그룹이 네명이 됐다. 1대 1이라면 아무래도 부담이 되지만 길막은 다수가 한 번에 몰아치면 쉽게 밀려나가는 법.

“으랴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첫 번째 주자가 단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름대로 이 런닝돌에서 구르고 구른 플레이어의 일격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칠대천마. 단천이었다.

휘리릭!

단천의 발이 다시 한 번 취팔선보의 궤적을 밟았다. 취팔선보는 보법인 동시에 경공인 동시에 무공이기도 하다.

공방일체의 보법이 달려든 플레이어의 팔을 놀리듯이 피해낸 다음. 몸을 튕겨냈다.

파앙!

취객의 발걸음이 달려든 희생양의 몸을 옆의 절벽으로 밀어냈다.

휘이익!

“두고 보자아아아!”

희생양이 삼류 악당같은 유언을 남기며 절벽 너머로 떨어져내렸다.

처절한 저주를 탈락자가 퍼붓거나 말거나 단천은 다음 희생양을 향해 움직였다.

파앙!

파앙!

파아앙!

“으아악!”

“안돼! 안돼! 치킨 먹고 싶어어어!”

손짓 한 번에 한 명씩이 리타이어.

“쉽군.”

‘경공 지옥에서의 혈귀단 놈들은 훨씬 더 처절하게 저항했었는데.’

선두 그룹을 모조리 지옥에 쳐박은 단천은 과거의 경공 지옥을 다시금 떠올렸다.

***

여러 번 순위권에 들지 못하면서 단천이 경공 지옥에서 얻었던 깨달음은 단순했다.

1등에 집착하지 마라.

순위에 집착한 나머지 레이스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이스의 본질은 상대평가. 그러니 1등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모든 놈들을 나보다 느리게 만들어버리면 자연스럽게 나는 1등이 된다.’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단천은 그날로 혈귀단 놈들을 달리지 못하게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다.

첫 희생자들은 가장 뒤쳐진 자들이었다.

경공이 가장 느리고 무리에서 떨어진 자들부터 단천은 사냥을 시작했다.

─ 하하핫! 단주도 이렇게 밑바닥 순위를 하게 되는 날이 오는군! 근데 왜 그렇게 섬뜩하게 웃고 있는 거요?

─ 단주. 이 고통스러운 수련이 결국 우리의 유대감을 키워 줄 거라고 확신하오. ···근데, 그 몽둥이는 어디 쓰려는 거요?

물론 혈귀단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이틀만에 전력의 1/3을 상실한 혈귀단은 생존자를 모아 단천에게 대항했다.

하지만 혈귀단에게 불운하게도 경공 지옥은 울창한 삼림 지역이었다. 은엄폐를 할 곳은 넘치고도 남았다. 혈귀단은 게릴라에게 대항하기에 극도로 불리한 환경에서 죽자사자 저항했지만.

승리는 단천의 것이었다.

모든 혈귀단을 겨우 걸을 수 있게 만든 단천은 경공 지옥이 끝나는 날까지 1위를 독식했다.

경공 지옥이 끝나고 단천이 남긴 기록은 30일 중 25회 1위.

난다긴다하는 천마신교에서도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왜인지 단천이 참석한 회차를 마지막으로 경공 지옥이라는 훈련법 자체가 폐지되어 버리기는 했지만.

***

풀창고는 가장 뒤에서 선두 그룹이 쓸려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으랴아! 죽어라!”

“잡아! 잡으라고! 으아아악!”

휘익! 휘이이익!

그 뒤를 이어 달려든 후발 그룹도 선두 그룹과 마찬가지 신세로 절벽으로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 와 ㅋㅋㅋㅋㅋㅋㅋ

> 뭐 그냥 간단하게 밀어버리네

> 야 저런 거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 딱 대라 나도 앞으로는 무한길막 간다 ㅋㅋㅋㅋ

‘못 해.’

런닝돌의 컨트롤은 상상 이상으로 조잡하다. 팔다리도 짧고, 몸통의 무게중심은 위에 쏠려 있어서 그냥 달리기만 해도 넘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

의도적으로 게임이 몸 개그를 하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상대방을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길막 유저가 고여 있다고 해도 고작 두세 명을 떨어트리는 게 전부인 것이다.

그것도 한 명씩 달려드는 것을 밀어내서 두세 명을 이기는 게 전부다.

단천이 하는 것처럼 네다섯명이 동시에 달려드는 걸 밀어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 단천이 하고 있는 플레이는 발상의 전환이 아니라 단순한 컨트롤 차력쇼에 가깝다.

‘DO NOT TRY THIS AT HOME’ 같은 경고문이 붙어 있어야 할 차력쇼 말이다.

[런닝러너 님께서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와 진짜 컨트롤 말이 안 되네 ㅋㅋㅋㅋ]

> 런닝돌 좀 해 봤는데 저 조잡한 컨트롤로 저렇게 하냐 ㅋㅋㅋ

> 뭔 런닝돌로 컨트롤 검증이냐고 했는데 반성합니다(쭈굴)

실제로도 단천의 컨트롤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아챈 시청자의 채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채팅창이 올라가고 있는 와중에도.

휘익!

휘익!

절벽 너머로 떨어져 내리는 플레이어의 수는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중간 그룹까지 모조리 전멸하고 남은 것은 풀창고가 포함된 후열 그룹뿐.

남은 인원은 풀창고 자신을 포함해 고작 두 명!

“여기는 아무도 지나갈 수 없다.”

“으아아아!”

마지막 남은 주자가 반쯤 자포자기한 채 달려들었다. 그리고 결과는 역시나 절벽행.

[남은 주자 : 2명]

남은 것은 풀창고와 단천. 두 명이 전부다. 스쿼드 우승이 확실한 상황!

“와. 형! 진짜 나이스! 진짜 컨트롤의 신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좋아! 그럼 가 보자고! 우승 먹으러!”

풀창고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단천이 있는 미끄럼틀을 올라갔다. 미끌거리는 길을 천천히 올라서 단천에게 다가선 풀창고는 자연스럽게 단천의 옆을 지나쳤다. 아니, 지나치려고 했다.

풀창고의 몸은 풀창고의 마음대로 단천의 옆을 지나치지 못했다.

단천의 팔이 움직여 풀창고의 몸을 잡아 들어올렸기 때문이다.

“형? 형! 뭐 하는 거야!”

“여긴 아무도 못 지나간다.”

“형! 우리는 같은 스쿼드잖아! 나는 형 편이라고!”

“예외는, 없다.”

풀창고가 팔다리를 휘저어 봤지만 짜리몽땅한 팔다리로는 저항할 수조차 없었다.

단천은 들어올린 풀창고의 몸을 주저 없이 절벽으로 내팽개쳤다.

“혀어어어엉!”

절벽에 풀창고의 애잔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GAME OVER]

[남은 주자 : 1명]

[우승 스쿼드가 결정되었습니다!]

[우승 스쿼드 : 천마 & 풀창고]

풀창고가 리타이어를 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고.

뒤이어 팡파레가 터져나왔다.

> ㅋㅋㅋㅋㅋㅋㅋ

> 오늘 방송 레전드네 진짜 ㅋ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시청자 수는 풀창고가 예상한 2만 명을 넘어 2만5천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스트리머로는 기뻐해야 마땅한 상황.

그런데도 왜일까. 이 뭔가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은.

“야호. 1등이다···.”

> 좀 웃어 ㅋㅋㅋㅋ

> 어시장 가면 죽은 고등어 눈이 딱 저런데 ㅋㅋㅋㅋ

풀창고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실로 프로 스트리머다운 자세였다.

‘그래도 좋아. 나쁘지 않아.’

스트리머로서는 최상의 상황이다. 지금의 런닝돌은 단천의 피지컬을 보여주기 위한 ‘검증 타임’ 이었으니까.

검증 타임의 목표는 초청한 스트리머의 실력을 시청자들에게 인상깊게 보여 주는 것.

단천이 말도 안 되는 플레이로 우승을 차지한 만큼 소기의 성과는 목표를 한참 초월해 달성했다고 할 수 있었다.

'···게이머로서 어딘가가 죽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천마 형의 기본 피지컬은 증명된 것 같네요.”

> ㅇㅈ

> ㅆㅇㅈ

> 피지컬이고 뭐고 간에 정신감정부터 필요한 것 같은데

검증 타임이 끝났고 시청자 수도 충분히 불어났다. 그러니.

“이제, 본 게임인 다키스트 에이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메인 디쉬를 꺼내들기 완벽한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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