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8화 (18/212)

2. 합방-런닝돌 (2)

[런닝돌에 접속합니다.]

런닝돌에 접속한 단천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VR캡슐보다 미세하게 반응이 빠르다.

‘역시 비싼 걸 써서 그런가.’

비싼 것은 비싼 값을 하는 법인 모양이다. 방송으로 돈을 벌게 되면 VR캡슐도 바꿀 생각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단천이었다.

“그보다··· 이 몸은 좀 마음에 안 드는군.”

지금 단천의 몸은 짜리몽땅한 2등신의 인형 몸이 되어 있었다. 런닝돌의 ‘돌’이 인형이었을 줄이야.

몸은 커다란 원통형에 팔도 다리도 죄다 짜리몽땅해서 걸어다니는 것도, 균형을 잡는 것도 평소보다 어렵다.

> 캐릭터 개귀여움 ㅋㅋㅋㅋ

> 이게 힐링되는 게임이지

“그보다. 풀창고는 접속 안 하나?”

“아! 형! 접속 완료입니다!”

고개를 돌리자 풀창고의 캐릭터가 보였다. 짜리몽땅한 2등신의 인형이 입고 있는 것은···. 삼각 팬티. 거기에 원래는 튀어나와 있지 않은 엉덩이까지 튀어나와 있다.

사실상 다키스트 에이지의 풀창고 캐릭터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에 단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거, 뽑기에서 겨우 뽑은 레어 아이템이에요. 겨우 뽑은 아이템인데 안 아까우려면 써야죠.”

> 저 삼각빤쓰랑 튀어나온 엉덩이 나올 때까지 뽑기 굴린 거잖아

“아무튼 뽑기에서 나왔단 건 사실이잖입니다.”

> 사실(아님)

> 채식주의자에 개를 사랑하고 동물보호법을 만든 사람(히틀러)

채팅창에 풀창고의 취향을 놀리는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방송에서는 ‘기믹’도 중요하다. 풀창고는 저런 캐릭터를 좋아하는 기믹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형. 근데 이 룩은 진짜 괜찮지 않아? 괜찮으면 이거 뽑을 때까지 뽑기값 지원해 줄 수 있는데.”

“필요 없어.”

> 대답 0.0001초

> 경이적인 반응 속도였다

그렇다고 그런 비틀린 취향에 어울려 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 형. 야성미 룩에 대해서 알아가는 건 천천히 하면 충분하니까. 지금은 게임에 집중하자.”

“니 팬티만 없으면 집중하기 더 편할 것 같은데.”

“이건 포기 못해. 내 영혼이 들어 있다고.”

> ㅋㅋㅋㅋㅋㅋ

> 진짜 돌아이임

> 천마님 집에 돌아갈까 고민하는 표정 ㅋㅋㅋㅋㅋ

풀창고의 민감한 반응에 채팅창의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이 정도라면 게임이 조금 잘 안 풀려도 어느 정도는 시청자 수를 유지할 수 있을 터였다.

바로 지금이 게임을 시작하기 적절한 타이밍인 것이다.

“자. 스쿼드로 들어갈게요.”

[2인 스쿼드 게임을 검색합니다!]

‘런닝돌’은 솔로 큐부터 4인용 스쿼드까지를 지원한다. 단천이 솔로 큐를 하는 것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가 하위권으로 조기 탈락을 하면 분위기가 빠르게 굳어 버린다.

‘천마 형이 잘 안 되면 내가 캐리해야 된다.’

> 풀창고 캐리하겠다는 표정 짓는다

> 자기도 못하면서 무슨 캐리임 ㅋㅋㅋㅋ

“아, 제가 운이 없는거지 실력이 없는 건 아닙니다!”

> 못하는 애들이 꼭 저런 말 하더라 ㅋㅋㅋ

다키스트 에이지를 비롯한 1인용 게임에서 풀창고는 실력파 스트리머였다. 하지만 PVE 게임과 PVP 게임은 아예 다르다. 한 쪽에 재능이 있고 잘한다고 해서 다른쪽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풀창고는 슬프게도 PVP게임에 재능이 없었다. 실시간으로 변수가 너무나도 많고 생각할 거리가 많으면 팔다리가 굳는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아. 그러니까 제가 운이 없는게 맨날 보면 뒤에서 제가 시작하잖아요. 앞에서 시작하면 그만큼 게임하기 좋다니까?”

[게임이 검색되었습니다!]

풀창고가 그렇게 자신의 운 없음에 대해서 장광설을 늘어놓는 사이에 게임이 검색되었다. 아기자기한 과일 모양의 건축물들과 장애물들이 있는 맵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멀리에 보이는 목표 지점.

[1Round : 20등까지 생존!]

화면을 확인한 단천의 고개가 끄덕였다.

“이 게임도 리드미컬 세이버처럼 튜토리얼이 필요 없는 게임이로군.”

직관적이다. 그냥 달려서 20등 안에만 골인하면 되는 게임. 주변에 있는 사람의 수는 60명 정도이니, 대충 1/3정도만이 살아서 다음 라운드로 갈 수 있다.

‘천마신교의 경공 수련과 비슷하군.’

천마신교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그곳에서는 밥 먹는 것부터 자는 것까지가 모두 경쟁의 연속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았던 것이 바로 경공 수련이다. 목표 지점까지 먼저 도착한 자들만 쉬고, 도착이 늦어진 자는 바로 다음 경공 수련에 투입된다.

쉼 없이 계속해서 달려야만 하는 경공 지옥.

‘추억이로군.’

처음 천마신교의 경공 지옥에 떨어졌을 때의 단천은 꽤 자주 낙오했었다. 내공의 양이 부족했던 탓에 경신법을 오래 지속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 크하하! 단주! 너무 느려서 달팽이가 달려가는 줄 알았소!

─ 오늘 점심은 단주 몫까지 내가 잘 먹겠수! 크하하하!

하지만 무림은 깨달음의 세계.

‘사소한 깨달음이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는 곳이 바로 무림이지.’

단천은 ‘깨달음’을 얻고 난 이후부터는 단 한 번도 이런 경신법 싸움에서 져 본 적이 없었다.

단천이 얻었던 ‘깨달음’을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형지물의 탐색.

“적절한 곳이 있군.”

단천의 눈이 머지않아 보이는 외나무다리에 멈춰섰다.

***

[레이스 스타트!]

풀창고는 레이스가 시작되자마자 전력으로 앞으로 뛰어나갔다.

퍼어억!

“우와아악!”

딸기 모양의 거대한 망치에 맞고 날아가는 참가자. 참가자의 모습은 레이스 라인에서 날아가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해 사라졌다.

[탈락자 : 1명]

> 첫 망치에 아직도 맞는 사람 있네 ㅋㅋㅋ

> 뉴비 판독기지

런닝돌 레이스에서는 수많은 장애물들과 함정이 난무한다.

이 함정들은 안 그래도 짜리몽땅한 팔다리 때문에 힘든 컨트롤과 합쳐져서 여러 몸개그를 만들어낸다.

철푸덕!

균형을 잘못잡아 쓰러지는 사람과.

“아악! 밀지 마아아!”

다 보이는 함정에 떠밀려서 탈락해 버리는 사람들.

컨트롤이 난제인 게임에 수많은 사람들을 레이스하라고 내던져 놨으니 거의 대혼돈의 멀티유니버스나 다름없는 상태가 펼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런닝돌에서 중요한 것은 침착함이다. 남에게 신경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

“우워어어!”

풀창고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나왔다. 쉴 새 없이 구르는 발판에서 떨어질 뻔했던 것이다.

> 와 이걸 사네;;;

> 오늘 운빨 죽여준다!

> 가자 풀창고!!

“운이 아니라 실력입니다아앗!”

풀창고는 위에서 내리찍히는 바나나를 피해내며 소리쳤다.

입으로는 실력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흐름이 기묘할 정도로 좋았다. 평소의 풀창고는 이래저래 컨트롤 미스 때문에 1라운드도 통과를 못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앞에 사람이 없네.’

더욱 이상한 것은 뒤에서도 사람들이 거의 자신을 앞지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런닝돌은 여러 트랩들이 랜덤하게 배치된다. 선행자는 함정을 밟으며 진행할 수밖에 없고, 뒤따르는 사람들은 앞의 함정을 봤으니 함정을 피해서 앞사람을 앞지르기 쉽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평소 풀창고 자신의 컨트롤을 생각해 봤을 때. 적어도 10명은 자신을 앞질러 나가야 되는 타이밍인데. 뒤에서 나타나는 사람의 수도 기묘할 정도로 적다.

“천마 형은 어디쯤···.”

> 뭘 중얼거림 빨리 달리라고 ㅋㅋㅋㅋ

> 지금 남 신경쓸 처지냐 니가 ㅋㅋㅋㅋㅋ

[통과자 수 : 7/20명]

“아아앗!”

벌써 선두 주자들이 결승선에 도착했다. 남의 레이스에 신경쓸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이다.

풀창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함정들을 조심조심 피해 전진했다.

통과자 수는 10명, 12명, 점점 늘어나갔다.

“으랴아아아아!”

[레이스 완주!!!]

[당신은 19번째 통과자입니다!]

바닥에 엎어진 풀창고는 환호성을 터트렸다.

“이야! 봤죠! 여러분! 제가 1라운드에서는 탈락 안 한다니까요? 저도 이제 월클입니다.”

> 와 이걸 사네;;

> 19등) 저도 이제 월클입니다!(실제로 한 말)

> 근데 천마는 어딨음?

“···그러게요?”

달리는 데 온 집중을 하고 있던 풀창고의 생각이 그제서야 단천에게 미쳤다. 풀창고의 기억으로는 자신의 앞에서 단천이 달리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설마. 탈락한 건 아니겠지?”

> 피지컬 역대급이라더니 ㅋㅋㅋㅋ 런닝돌 1라 탈락 수준 ㅋㅋㅋㅋㅋㅋ

> 와 과대광고 지렸다 ㅋㅋㅋㅋ

>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더니 ㅋㅋㅋㅋ

채팅창에 비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앞서서 역대급이니 뭐니 하며 MSG를 많이 쳤던 상황. 호응이 좋기는 했지만 호응이 좋다는 것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그만큼의 반발심도 생겨났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 단천이 탈락한다면···.

‘채팅창 불 나는데. 어떡하냐.’

단천을 띄우려던 처음 계획도 완전히 붕괴하게 된다.

아니, 사실 지금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역대급이니 뭐니 그렇게 광고를 해 두고 20명 중에 20등이라니.

이걸 수습할 생각을 하니 풀창고의 시야가 아찔해졌다.

> 풀창고 어쩌누 이거 ㅋㅋㅋ

> 초대석 망한 냄새 풀풀 나네

> 엌ㅋㅋ 컨텐츠 좆망 ㅋㅋㅋㅋㅋ

그렇게 풀창고가 물 없이 건빵 먹은 양 입 안을 바짝바짝 태우고 있는 사이에.

결승선 저 멀리에서 인형 하나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단천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형! 형! 빨리 달려요!! 아직 한 자리 남았어요!”

자신의 목소리가 분명히 들렸을 텐데도 단천은 느긋했다.

흡사 마실이라도 나온 것처럼 여유로운 걸음걸이.

콰앙! 파앙! 퍼어엉!

물론 그렇게 여유롭게 걸으면서도 함정은 신기할 정도로 다 피해내고 있긴 했지만.

> 첨 해보는 거 맞음?

> 저거 컨트롤 개어려운데 하나도 안 맞네

> ㅋㅋㅋㅋ왜케 여유로워

신기한 것과 별개로 걸음걸이가 느린 것은 느린 것이다.

저렇게 걸어오다가 뒤에서 달려온 후발주제에게 추월당하면 큰일이다.

지금 1라운드의 통과자는 19명. 1라운드 통과자가 이제 1명밖에 더 남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형! 빨리 달려오라니까요! 뒤에 사람들 오면 추월당해요! 1라 통과 1명밖에 안 남았다고요!”

“추월 안 당해.”

단천의 단호한 대답에 풀창고의 입이 잠시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추월 안 당하다니?”

“뒤에 아무도 없거든.”

“···그게 무슨 말이냐니까요?”

“뒤따라오던 놈들 다 죽였어.”

“네?”

“다 죽였다고.”

> ????

> ?????

> 뭔 소리여???

단천의 대답에 채팅창에 갈고리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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