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합방-런닝돌 (1)
[풀창고 스튜디오]
"꽤 괜찮군."
단천은 번듯하게 적혀 있는 사무실의 이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인이 수입이 늘어나게 되면 사무실을 만들고, ‘스튜디오’ 란 것을 만든다는 것 정도는 「컴시스」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바다.
하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감흥이 다르다. 독고구검의 구결을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펼칠 때의 차이 정도라고나 할까.
그렇게 단천이 사무실의 명패를 보고 있는 중에 풀창고가 머리를 내밀었다.
“아! 도착하셨군요! 하하! 저희 풀창고 스튜디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여전히 파이팅 넘치는 풀창고였다. 현실과 방송에서의 모습이 다른 사람도 많은 것을 생각한다면 꽤나 특이한 일이었다.
“와, 하루만에 합방을 허락해 주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합방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거든요.”
합방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시청자가 적은 쪽이 이득이다. 인지도 상승은 둘째치고 시청자가 많은 쪽에서 시청자가 적은 쪽으로 낙수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풀창고는 자신에게 합방 신청을 해 줬다. 물론 뒤로 꿍꿍이가 있을지도 몰랐지만.
단천은 자신의 눈을 믿었다.
“아! 스튜디오 소개부터 해 드릴게요!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단천은 풀창고보다 한 살 연상이었다.
“아! 말씀 편하게 하세요! 형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마음대로.”
“그래! 천마 형!”
풀창고가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역설적으로 호감을 산다.
‘─뒷 일을 꾸밀 사람은 아니다.’
중원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봐 와 왔던 단천이다. 신화경이 주는 통찰안이 사라졌다고 해도 뒤로 꿍꿍이를 꾸밀 인간과 그렇지 않을 인간 정도의 통찰력은 있는 것이다.
단천이 보기에 풀창고는 꽤나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겉과 속이 똑같은 사람.
그러니 합방 제안은 순수한 호의로 받아들이는 게 옳다.
물론 풀창고가 믿을만한 사람인 것과 별개로 이곳은 풀창고의 스튜디오다.
굳이 따지자면 다른 문파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곳.
단천은 적의 본거지에서 긴장을 놓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 일단 커피부터! 아아 먹어?
“아아. 당연히 먹지.”
단천은 ‘아아’가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아는 사람처럼 대답했다.
풀창고가 금방 스튜디오에 있는 기계로 커피를 내렸다. 향긋한 냄새와 아름다운 색깔.
풀창고가 내린 커피를 얼음 사이에 붓자 묵빛처럼 아름다운 원액이 얼음 사이로 흘러내렸다.
절대 맛없을 수가 없는 비쥬얼이다.
“자! 아아 한잔 대령이요!”
‘그러고 보니. 커피는 오랜만이로군.’
중원에서는 단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것이 커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커피는 아메리카 대륙의 물건이었으니까. 병원에서는 카페인 때문에 잠을 자기 힘들어진다는 이유로 거의 마실 방법이 없었고.
그러니 글자 그대로 정말 오랜만의 커피라고 할 수 있었다.
단천은 ‘아아’ 라는 이름의 커피를 입 안으로 천천히 흘려넣었다.
“······.”
“어때? 괜찮아? 이거 요새 SNS에서 엄청 핫한 블랜드야!”
“진상품으로 받았다면 진상한 놈을 한 달간 지하뇌옥에 쳐박았을 맛이군.”
“푸하하! 맛있다는 말 진짜 특이하게 한다!”
'믿을 만한 놈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군.'
뇌옥이 있었다면 이런 극독을 왜 자신에게 먹였는지를 추궁했을 텐데.
단천이 이 세계에 뇌옥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는 동안 풀창고는 스튜디오의 방들을 하나하나 안내하기 시작했다.
풀창고의 스튜디오는 꽤나 큰 규모였다. 방이 세 개나 있는 데다가 조그마한 휴게용 라운지까지 있는 형태.
“여기는 말랑튜브 작업실! 영상 편집자들이 작업하고, 자고, 쉴 수 있는 곳!”
“죽을 수도 있어요···.”
“아니, 민찬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어떡하냐! 내가 괴롭히는 거 같잖아!”
“크윽··· 돈으로 내 영혼을 사다니··· 차라리 날 죽여··· 이 비열한 고용주 같으니···!”
“이자식이 진짜 손님 앞에서!”
풀창고가 장난스럽게 영상 편집자의 등을 팍팍 두들겼다. 가볍고 서로 친구같은 분위기. 문파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사무실로서는 합격점이다.
“사무실 방은 아무래도 3개 이상인 게 좋아. 캡슐 룸이랑, 먹방같은 걸 할 수 있는 부스랑, 영상 편집실. 영상 편집실이랑 먹방 부스는 같이 써도 괜찮긴 한데 편집자들이 작업할 공간 정도는 있는 게 좋으니까.”
그냥 합방만이 목표였다면 단순히 캡슐 룸으로만 안내하면 끝일 터였는데도 풀창고는 굳이 스튜디오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아까의 영상 편집자 소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평범하게 이야기한다면 굳이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을 부분들까지 세세하게 설명을 하는 까닭은.
‘보고 배우라는 뜻이군.’
단천은 이제 스트리밍계에 입문한 입장이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실제로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에 비해서 부족할 수밖에 없다.
‘오기를 잘 했다.’
단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단천은 풀창고가 하는 말을 무공 비급이라도 기억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머릿속에 기억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얼마나 나누었을까.
“아, 수입원 중 하나로는 게임 회사도 있어. 종합 게임 스트리머가 되면 게임 회사에서 연락도 꽤 오는 편이야.”
“게임 회사의 연락?”
게임 회사로부터 연락이 온다는 말에 단천의 눈이 살짝 커졌다. 다른 정보들도 좋지만 이 정보는 단천이 꽤나 궁금해하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어. 게임 광고나, 신작 테스팅이나. 그런 걸 하는 거지. 이것도 컨텐츠로 괜찮아. 너무 많이 하면 시청자 분들이 싫어하지만.”
게임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다키스트 에이지의 제작사인 ‘소드아트’.
“혹시 '소드아트'사에서도 연락이 온 적도 있나?”
“음. 지난 번 신작 낼 때 한 번 받았던 것 같은데. 좀 있으면 또 신작 낸다고 하니까 그 때쯤 연락 올지도 모르겠다.”
풀창고에게도 연락이 왔다는 건 덩치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소드아트 사에서도 연락이 온다는 뜻.
‘역시. 내 입장에서 찾아가 볼 필요는 없겠군.’
방송이 뜨면 알아서 저 쪽에서 자신을 찾아오게 된다. 그 때가 되면 어떻게 게임에 매화검법을 넣은 건지 물어보면 될 터였다.
결국 방송에 집중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더 궁금한 건 없어?”
“없어. 방송 준비하자.”
***
[‘풀창고’의 스트리밍이 시작되었습니다.]
> 푸화ㅏㅏㅏㅏㅏ 겨우 숨 참는거 풀었다!!!
> 풀하
> 합방이라니 이게 머선 129
> 천마님 드디어 풀창고방 상륙!!!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창. 평소에 비해서도 빠른 속도에 풀창고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현재 시청자수로 향했다.
BJ천마에 대한 반응은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봐 둔 터라, 어느 정도 시청자수가 펌핑을 받을 것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시청자 수 : 8,200명]
“와우. 언제 이렇게 소문이 퍼진 거래?”
풀창고의 예상보다도 훨씬 시청자수가 많았다.
풀창고 방송이 중대형이라고는 해도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5천명이 넘는 사람이 순식간에 들어찰 정도는 아니었다. 긴 방송시간으로 차근차근 시청자가 쌓이기 시작하는 타입의 방송이 풀창고의 방송이었으니까.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8천 명이라니.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BJ천마의 플레이가 입소문을 탄 모양이었다.
이 정도 속도라면 풀창고 자신의 평균 시청자수인 1만명은 가볍게 넘을 것이고, 잘 하면 2만명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
“오늘 모신 손님은 요 며칠 엄청 핫한 플레이어! BJ천마님입니다!”
“반갑다.”
> 와 BJ천마 방송 시작하자마자 합방하네 ㄷㄷ
> 그게 누구임
> 첨 들음
지금의 시청자 대부분은 며칠 사이에 유명세를 탄 BJ천마의 이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BJ천마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 필연적으로 필요하다.
“BJ천마님은 요 며칠 사이에 엄청난 게임 컨트롤으로 유명해지신 분이죠! 영상 참조하겠습니다!”
풀창고는 자연스럽게 화면을 전환해 BJ천마의 하이라이트로 넘어갔다.
리드미컬 세이버에서 올 퍼펙트를 달성하는 장면, 다키스트 에이지에서 섀도우 비스트를 잡고 히든 스토리로 넘어가는 장면, 그리고 어제 보여줬던 캐시미어를 처치하는 장면까지.
서유나가 멋들어지게 편집한 게임 영상들이 연이어 화면에 송출됐다.
> 와
> 컨트롤 저게 맞냐?
> 이 사람 전 프로게이머임????
그리고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탄성들.
풀창고는 곁눈질로 시청자 수를 바라봤다. 보통은 예열을 꽤 하고 나서야 메인 컨텐츠로 들어간다. 시청자 수가 충분해야 그만큼 메인 컨텐츠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런데 생각보다도 시청자 증가 폭이 훨씬 가파르다. 8000명으로 시작한 시청자수가 채 10분이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그 두 배를 넘어서고 있다.
“느낌 좋다. 이거. 초대박 느낌 난다. 와. 이렇게 빨리 시청자가 올라가냐.”
하이라이트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마이크를 내린 풀창고가 말했다.
“이거. 원래는 썰도 좀 풀고 하려고 했는데··· 이 기세면 그냥 게임 먼저 하는 게 좋겠는데?”
“좋을 대로.”
“게임은 내가 준비해 놓은 게 있어. 형 피지컬 극한으로 뽑아먹을 수 있는 걸로. 그걸로 가자.”
단천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하이라이트 동영상이 꺼졌다.
[동영상 재생 종료]
> 와 ㅋㅋㅋㅋ 영화 보는 줄
> 걍 리듬겜인데 저렇게 개쩔게 할 수 있음?
> 저거 1회차 플레이라고? 말이 되냐???
“자! BJ천마님의 엄청난 컨트롤은 하이라이트로 일단 보셨는데! 이 동영상을 저희가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죠? 그래서! 검증 타임을 준비했습니다!”
> 검증타임 가자ㅏㅏㅏ
> 아 풀창고 초대석이면 무조건 검증타임 가는거지!!!
> 하이라이트만 모아 놓으면 조축멤버도 메시지 ㅋㅋㅋㅋ
> 메시가 아니라
> 메시가 아니라 뭐?
> 아, 아닙니다···.
검증 타이밍이란 말에 안 그래도 폭주하던 채팅창이 한 층 더 끓어올랐다. 풀창고가 합방을 할 때마다 진행하는 ‘검증 타임’은 자칭 고인물들이 실제 플레이에서는 어떤지를 보여 주는 컨텐츠였다.
여기서 영상을 교묘하게 편집해서 자신이 잘 하는 것을 과대광고한 ‘자칭 고인물’들은 대부분 걸러진다.
이런 사짜 고인물들을 데려온 초대석은 대부분 망했다. 고인물의 플레이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이 다른 방으로 옮겨 버렸기 때문.
‘하지만 뭐. 천마 형은 진짜니까.’
“좋습니다! 이번에 제가 준비한 검증 타임 게임은─.”
[검증타임 님이 15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검증게임은 ‘런닝돌’ ㄱㄱㄱ]
풀창고가 말을 마치려는 타이밍에 정확하게 후원이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후원을 받은 풀창고의 말이 일순 멈췄다.
그냥 무시하고 진행하는 게 불가능한 시점의 후원이다. 게다가 금액도 크게 들어왔다.
> 와 시작하자마자 15만 후원이 터지네 ㄷㄷㄷㄷ
> 런닝돌 ㅋㅋㅋㅋㅋ 풀창고 오늘도 꼴찌 박는거 보겠네
> 런닝돌 가즈아ㅏㅏㅏㅏㅏ
> 아니 뭔 런닝돌이야 ㅋㅋㅋㅋ 좆망 운빨겜인데 ㅋㅋㅋㅋ
“런닝돌?”
“어, 런닝돌이라고 요새 엄청 핫한 게임 있어.”
런닝돌의 언급이 늘어나자 풀창고의 목소리가 살짝 어두워졌다. 풀창고가 키보드를 살짝 두드려 메모장에 글자를 적었다.
[형 이거 피지컬 보여주기 별로 안 좋은 게임인데 어떡해]
“런닝돌? 그게 무슨 게임인데.”
> 있음 운빨겜
> 걍 운빨달리기 있음 ㅋㅋㅋ
> 피지컬<<<운빨인 겜
> 보는 재미는 확실히 있지 ㅋㅋㅋㅋㅋ
"장애물 달리기에서 1등을 차지하기만 하면 되는 게임이야."
[근데 운요소가 너무 심함]
아무튼지간에 몸을 쓰는 게임이라는 뜻이다. 몸을 써서 하는 게임이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검증 타임 게임은 런닝돌으로 가지.”
단천의 입에서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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