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키스트 에이지 (10)
“나는 본래 미천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원초의 망령님께 영혼을 바친 뒤에 이토록 위대한 몸을 가지게 됐지.”
“영혼을 바친 댓가가 쥐대가리라면 어지간히 싸구려 영혼이었나보군.”
“입 닥쳐라!”
> 이 사람 독설이 대단하다
> 천마신공(독 타입)
“그래. 네 영혼의 가치가 쥐대가리인 건 그렇다고 치고. 영혼을 바치면 나는 무엇을 얻게 되지?”
“영생! 그리고 원초의 망령님의 무한한 힘!”
하암. 단천은 하품을 토해냈다. 무한을 입에 담는 놈 치고 변변한 놈들을 본 적이 없던 까닭이다.
영생도 그다지 관심 없고.
“노가리는 여기까지 하지.”
“끼히히힛! 거절할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
단천은 ‘네놈이 거절을 예상하고 있다는 것쯤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같은 말을 내뱉지 않았다. 발 밑에서 기습을 준비하는 쥐새끼들에 대해서고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대화를 하면서 진정된 몸을 다시 혹사시켜 앞으로 달려나갔을 뿐.
앞으로 섬전처럼 짓이겨들어간 단천의 직검이 캐시미어의 어깨로 향했다.
“이, 이런 빌어먹을 자식이!”
단천과 캐시미어 사이에 꽤나 거리가 먼 탓에 캐시미어가 대비할 만한 시간이 아슬아슬하게 있었다.
“스컬 월!”
캐시미어가 바닥을 짚자 거대한 벽이 솟구쳐올랐다. 캐시미어는 벽이 만들어지자마자 다시 캐스팅을 이어나갔다. 원초의 망령에게 받은 부패의 권능이었다.
부패의 권능의 범위는 꽤 넓다. 놈의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나 벽의 끝에서 자신까지의 거리는 꽤나 떨어져 있으니 놈을 맞힐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바닥 속에 숨은 가신들이 저 빌어먹을 자식의 몸을 덮칠 것이다.
캐시미어는 완벽하기 그지없는 계획에 스스로 만족하며 단천의 공격을 대비해 좌우를 빠르게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왼쪽도, 오른쪽도 아니었다.
“어딜 보냐?”
“?”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등 뒤였다.
“어, 어떻게?”
“벽 위로 타고 넘어왔는데?”
스컬 월이 만들어지자마자 단천은 캐시미어가 뒤에서 ‘무언가’를 꾸밀 것을 알아챘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세로로 기다란 벽의 형태로 보건데 놈이 노리는 것은 단천이 왼쪽, 혹은 오른쪽에서 나타나는 것.
그렇기에 단천은 위를 선택했다. 벽에 있는 튀어나온 뼈들을 타오르고 뛰어올라 캐시미어의 뒤를 점한 것이다.
‘실망스러운데.’
단천의 입술이 불만족스럽게 씰룩였다. 뭔가 꾸미는 것 같기에 몇 수는 더 생각해 놨을 줄 알았더니. 이렇게 쉽게 붙잡힐 줄이야.
‘하긴. 이런 게임에서 제갈세가의 가주같은 수싸움은 바랄 수 없겠지.’
실망감은 실망감이고. 해야 할 일은 계속해야 했다. 단천은 그대로 검을 캐시미어에게 찔러넣었다.
“안─”
콰아악!
단천이 펼친 쾌검을 피하기에 캐시미어의 몸은 너무나도 육중했다.
카드드득!
캐시미어의 몸이 단천의 칼에 밀려나 벽에 박혀들었다.
“끄아아악!”
고통에 찬 캐시미어의 비명이 보스방을 울렸다.
> 이번엔 한방에 안 죽였네
> 못 죽인거 아니냐?
못 죽인 게 아니라 안 죽인 거다. 단천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창대 하나를 들어 캐시미어를 벽에 확실하게 꽂아넣고 직검을 뽑아냈다.
꼬챙이 신세가 된 캐시미어가 벽에 대롱대롱 박혀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날 구해! 날 구하라고! 버러지들아아악!”
터져나오는 캐시미어의 비명. 체스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성주가 살아서 붙잡혔다면.
“당연히 가신들은 성주를 구출하려 하겠지.”
> 한다는게 인질극이냐 ㅋㅋㅋㅋㅋㅋ
> 인질극을 하다니! 천마라는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인질극 아니다.”
단천은 과거에 제갈세가에 쳐들어갔을 때를 떠올렸다.
제갈세가의 무공은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 기관진식이니 팔문둔갑이니 하는 사술들만 잔뜩 있었을 뿐. 심지어 제갈세가 가주라는 놈도 그다지 무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덕분에 단천은 제갈세가가 마련했던 함정들을 다 부숴뜨리고도 전혀 만족하지 못했었다.
─ 죽이시오. 천마.
─ 잠깐. 왜 내 몸을 잡아드는 거요!
─ 세가 인원이 다 나오게 만들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전혀 만족을 못 했다니! 대 제갈세가가 네놈의 만족을 위해서 있는 줄 아느냐!
─ 죽이는 것은 나 혼자만으로···! 으아아아!
─ 이 악독한 인질범 자식! 가주님을 놔줘!
지금 하고 있는 게 인질극이면 제갈가주 제갈상의 멱살을 쥐고 흔들어 제갈세가의 모든 가용인원을 나오게 했던 것도 인질극이었을 터다.
도합 사망자 0명, 중상자 1300명을 빚어낸 제갈세가의 소소한 소란이 인질극이 아니었던 것처럼.
지금도 인질극이 아니다.
“찍! 찌이익! 저 버러지가 성주님을 인질로 잡았다!”
“성주님을 구하라!”
“인질극 아니라니까.”
“한 번에 달려들어! 놈이 아무리 빨라도 한 번에 우리들을 모조리 베어내지는 못할 거다!”
찌지지직!
수십 마리의 가신들이 동시에 단천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단천이 바라고 있던 바였다.
수십 수백에게 둘러쌓여서 싸우는 것은 단천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으므로.
앞서서 달려오는 놈을 죽이지 말고 반쯤 베어가른다.
서걱!
찌익!
살아남은 놈을 방패로 써서 다음 공격을 막아내고.
푸확!
“이, 이 자식이!”
자세가 흐트러진 놈을 다시 벤다.
서걱!
이런 백병전이라면 혈귀단 시절에 질릴 만큼 겪었던 단천이다. 고작해야 수십번쯤 백병전을 해 왔을 놈들이 단천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쥐떼에 풀린 늑대처럼. 단천은 가신들을 도살해 나가기 시작했다.
> 와 개잘싸우네
> 천마 <- 그냥 재능이 존나 쩜
> 저거 가신들 한마리 한마리가 거의 중간보스급인데
> 오늘도 내 손 1패 적립완료
단천이 모든 캐시미어의 가신들을 바닥에 쓰러트릴 때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더 이상 살아 숨쉬는 가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단천은 캐시미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찍. 찌지직.
캐시미어가 절망에 깃든 울음소리를 냈다. 어느 정도의 격차였다면 저항이라도 해 볼 생각을 가졌으리라.
하지만 단천이 보인 무위는 너무나도 폭력적이었다.
캐시미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저주를 내뱉는 것뿐.
“나, 나는 원초의 망령님의 총애를 받고 있다! 나를 죽이면 원초의 망령님의 진노를 사게 될 거다!”
“진노를 사면 뭔가 바뀌는 게 있나?”
“망령님께 있는 수하들이 네놈이 죽을 때까지 찾아올 거다!”
캐시미어의 말이 끝나자마자 선택지가 떠올랐다.
[1. 캐시미어를 살려 둔다.]
[캐시미어에게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밀 통로나 적의 약점 등을 캐낼 수 있습니다.]
[2. 캐시미어를 살해한다.]
[‘원초의 망령’이 즉시 당신을 인지하게 됩니다.]
[게임의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 선택지 타임이야??
> 11111111
> 무조건 1이지
> 안 그래도 어려운데 더 난이도를 올릴 이유가 없음
선택지가 나오자마자 채팅창이 숫자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캐시미어를 살려주자는 선택지가 압도적으로 많다.
선택지가 주어지는 상황. 이런 상황에는 시청자가 바라는 선택지를 고르는 게 좋다고 「컴시스」에서 그랬다.
그러니 되도록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선택지를 고른다.
“그거 좋군.”
“여. 역시! 뭔가를 아는 놈이군! 나를 살려두면 내가 줄 수 있는 정보들이 넘쳐난다! 목숨만 살려 준다면 무슨 정보이던···!”
─시청자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선택지를.
푸욱.
단천은 캐시미어의 심장에 검을 천천히 꽂아넣었다. 세 치가 겨우 넘는 부러진 검이지만 심장을 꿰뚫기에는 충분했다.
> ???
> 왜 죽여
> 이러면 클리어 못한다고
가슴이 뚫린 캐시미어의 눈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커졌다.
“왜··· 왜···?”
“너를 죽이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상대할 맛이 나는 놈들이 온다는데. 안 죽일 이유가 있나?”
“···미친. 새···.”
캐시미어의 마지막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메시지들.
[‘구원자’ 의 두 번째 에피소드가 종료되었습니다.]
[캐시미어를 처치하셨습니다.]
[‘원초의 망령’이 즉시 당신의 존재를 알아챕니다.]
[‘원초의 망령’이 자신의 사도를 죽인 자에게 격분합니다.]
> 헬팟 오픈이네 ㅋㅋㅋㅋㅋㅋ
> 지옥 난이도에서 불지옥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 진짜 뭔 깡임?? ㅋㅋㅋㅋㅋㅋㅋ
> 간이 부어도 정도껏 부어야지 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은 자신들이 바라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는데도 미칠 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대부분이 원하지 않는 선택지를 골랐는데도 크게 부정적인 반응은 없다.
반응이 이런 이유는 단순했다.
시청자들이 ‘정말로 보고 싶은’ 선택지는 캐시미어를 죽이는 선택지였으니까.
지금의 시청자들은 「다키스트 에이지」의 히든 루트 엔딩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니 좀더 쉽게 갈 수 있는 1번 선택지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정말로 보고 싶어하는 것은,
‘─최대한 어려운 선택지를 골라서 클리어하는 것.’
영혼을 팔아 넘긴 괴물과 타협하지 않는 것.
가능한한 어려운 선택지를 고르는 것.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을 고르는 것.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클리어하는 것.
그게 ‘정말로’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이다.
‘겸사겸사 내 성격에도 맞고.’
캐시미어가 기분나쁘게 생겼다는 것과 알기 귀찮은 설정을 이야기해대는 것은 풀창고 한 명으로 족하다는 것은 사소한 덤이었다.
결코 메인이 아닌 사소하기 그지없는 덤.
아무튼, 이 선택으로 인해 단천 자신의 유명세는 한층 더 커질 터였다. 다만 소문이 퍼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는 법.
단천은 직감적으로 방송을 여기까지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지.”
> 아니 이걸 여기서 끊는다고???
> 불지옥 보여주고 가!!!!
> 제발 방송 계속해주세요 우리집 복구가 너무많이아파요
수없이 많은 애끓는 목소리들을 남긴 채.
전설이 될 BJ천마의 히든 스토리 루트 2일차는 막을 내렸다.
> 미션맨 : ···근데 미션금은 왜 안 받고 가셨음??
***
“미쳤다.”
VR캡슐에서 나와 BJ천마의 보스전을 관람하던 풀창고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게임 플레이가 말이 안 나오는 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몇 번이나 확인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를 잘 하는 것과 시청자들을 휘어잡는 것은 완전히 다른 부분이다.
게임을 아무리 잘 해도 시청자가 적은 경우가 부지기수인 이유는 단순히 ‘잘 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부분을 캐치한다. 그리고 그 부분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정말 BJ천마가 대단한 부분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캐치했다는 점.
“더 대단한 건 이 간담이지.”
방송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스트리머가 수천 명의 시청자를 앞에 두고 시청자들이 진짜로 바라는 선택지를 골랐다.
수천 명의 시선이 두려울 만도 한데, 전전긍긍하거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
“진짜 며칠 하지도 않았는데 이게 된다고?”
풀창고가 아무리 영상을 다시 돌려봐도 BJ천마가 눈치를 보는 것 같은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숫제 몇만 명의 위에서 수십 년간 군림하기라도 한 것 같은 카리스마 아니던가.
큰 판에 맞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말이 안 되는 수준의 간담이다.
이 인간. 크게 된다.
시기가 어떻게 되건 이 사람의 시청자는 대폭발한다. 그게 풀창고의 직감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 시기를 당겨줄 수도 있다.
···가령 중대형 스트리머인 자신과의 합방이라거나.
타닥. 타다닥!
풀창고 앞에 놓인 키보드가 자판 치는 소리를 바쁘게 뱉어내기 시작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