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키스트 에이지 (9)
[속도가 80이 되었습니다.]
단천은 손아귀를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속도 스텟을 올리자 몸이 움직이는 것이 조금 더 편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을 꽉 조이고 있던 구속구를 해방한 느낌이랄까.
“이거 괜찮은 느낌이네요.”
“아무래도 처음 하면 속도 스텟이 좋다고들 많이 생각하죠. 그런데, 스텟은 얼마나 올리신 겁니까?”
“70 올려서 80이네요.”
“70이나 올려줄 ‘어둠’이 있었다고요?”
> 스텟 하나 80까지 올리려면 노가다 겁나 해야 되는데
> 사이드 사냥 하나도 안했는데 그만큼 어둠이 모이나?
> 생각해 보면 기본 아이템으로 죄다 한방에 쳐죽였으니 어둠이 많이 쌓였을만도 함
다키스트 에이지는 적을 어떻게 처치했느냐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 단천은 지금까지의 적들을 모조리 일격에 처치한 상황.
당연히 ‘어둠’도 많이 쌓여있다.
“거기에 원래라면 무기를 강화하고, 방어구를 강화하고, 체력, 스테미너를 올려야 되는 어둠까지 죄다 강화에 들어갔다는 거죠.”
그러니 80이라는 능력치를 만드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 근데 속도 80이면 컨트롤이 감당이 되나?
다키스트 에이지의 고인물들은 속도 스텟을 30 이상으로 올리지 않는다. 특별히 미션이 걸린다거나 하는 경우라면 30을 초과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20에서 25 사이의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정해서 올린 뒤 더 이상 올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속도 스텟을 올렸을 때의 단점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1차적으로는 단순히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컨트롤의 어려움이 있다.
속도가 빠르면 이상적으로야 좋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면 오히려 게임에 방해가 된다.
게다가 속도 스텟은 플레이어의 움직임 전체에 관여하는 능력치다. 플레이어의 모든 움직임. 이를테면 고개를 움직이는 속도나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이 속도 스텟을 그냥 올리는 것은 이를테면 마우스 감도를 아무 생각 없이 끝까지 당겨 버리는 것과 같다.
속도가 30만 넘어서도 컨트롤이 어려워지고, 40 이상을 올려서 게임을 하는 사람은 하드코어 유저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80이라는 수치는. 게임 자체가 불가능한 수치일 터.
그런데도.
“저. 혹시 멀미나 그런 건 없나요?”
“전혀 없습니다.”
단천은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무공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삼류, 이류, 일류 이후 존재하는 초절정의 벽.
이 초절정의 벽을 넘는 자들은 초인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능력을 손에 넣는다. 발길 한 번에 몇 장丈을움직이고, 도약 한 번에 집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자들.
벽을 넘어서서 이런 초인의 영역에 이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일상 생활에도 문제가 생긴다.
평범한 감각으로 잔을 쥐면 잔이 깨어지고, 평범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면 천장에 머리가 박히는 등의 일이 벌어진다.
그러니 벽을 몇 번이고 깨트린 무인들은 작든 크든 무수히 많은 집기들의 시체 위에 살아가는 것이다.
‘추억이로군.’
단천은 마지막으로 신화경의 벽을 넘었을 때 부러뜨려 먹은 담뱃대를 떠올렸다.
‘초대 천마가 남겼던 신물이라고 했던가.’
손으로 잡았던 중간이 먼지조각이 돼서 담배/ㅅ대가되어버린 담뱃대를 본 서윤학은 거품을 물고 바닥에 쓰러졌었다.
걸을 때마다 청강석이 터져나가서 서윤학이 뒷목을 잡던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일류에서 초절정으로 넘어간 정도의 느낌일 뿐.
“아무 문제 없습니다.”
단천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 뭐 어케 하는거냐 이건
> 그냥 스텟을 안 올린 거 아님?
> 그건 아님 능력치 올라간다는 메시지 분명히 떴잖아
버그가 난 것이 아닌가, 혹은 스텟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들이 채팅창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최대한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의혹은 바로 해소가 될 테지만. 단천은 지금 의혹을 해소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보스방으로 갑시다.”
곧 있을 보스전에서 한 번에 보여주는 쪽이 훨씬 더 이목을 집중시키기 좋을 테니까.
***
탑의 끝. 성주 캐시미어의 방 앞.
“정말 공략은 필요 없으시겠어요?”
“필요없습니다.”
단천은 단칼에 풀창고의 말을 거절했다. 게임 외적인 조언들을 듣는 것과 보스에 대한 공략을 듣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다.
영화관에 가는 길을 찾는 것과, 영화에서 볼 영화의 스포일러를 찾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
게임 외적인 요소들이 영화관에 가는 길이라고 한다면 보스에 대한 정보들은 영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단천은 메인 디쉬인 보스전의 공략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뭘, 운을 빌 것까지야.”
단천은 가볍게 흥얼거리며 보스방 안으로 발을 디뎠다. 방 안은 인간들의 뼈가 수없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 장거리 무기 없이 캐시미어 상대하기 좀 힘들 건데
> 그래도 지원은 없으니 다행
> 뼈가 저렇게 쌓여 있으니까 엄청 음침하네
[미션맨 님이 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미션 걸어도 됨?]
“물론 된다.”
처음으로 도착한 ‘미션’. 게임 종합 게임 스트리밍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미션이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결국 게임이 스트리머에게 어렵거나 쉬워지는 구간이 반드시 오게 된다.
─ 이 구간을 적절한 미션을 통해서 깨 나가는 것만으로도 방송의 재미가 확 살아납니다.
단천은 「컴시스」의 조언을 머릿속에 다시금 새겼다. 지금의 미션을 잘 처리한다면 앞으로도 미션을 잘 받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미션 내용은?”
[미션맨 님이 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3분 내에 캐시미어 처치시 10만. 가신들 처치 1마리당 1만]
내용을 확인한 단천의 눈이 조금 커졌다. 미션 자체는 단순한 타임어택 클리어.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걸려 있는 금액이다. 처치하는 것만으로도 10만원이라는 금액이 들어온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는 그 뒤에 있는 ‘가신 처치시 1마리당 1만원’이라는 내용.
“가신이라는 놈들의 숫자는 몇 마리 정도지?”
> 대충 50마리쯤 되지 않나?
50마리라면 50만원. 캐시미어의 처치까지 합한다면 60만원이다.
숫자를 계산한 단천의 눈이 반짝였다. 자고로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없기 마련이다.
돈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하루에 60만원이라는 미션비를 받으면 소고기를 먹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한우는 못 참지.’
단천은 입꼬리를 말아올린 채 보스방의 중앙으로 걸어들어갔다.
얼마나 걸어들어갔을까.
[성주 「캐시미어」와 그의 가신들이 당신의 기척을 느낍니다.]
카가가각!
뼈로 만들어진 무덤 여기저기서 뼈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분이 나빠질만한 소리들이었지만 단천의 귀에는 기분좋은 오케스트라로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저기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의 근원지가 모조리 돈줄이었으니까.
콰드득!
“찍! 죽어라! 찍! 인가안!”
무덤의 한 쪽이 붕괴하며 한 무리의 쥐 인간들이 튀어나왔다.
이전의 빅 랫보다 몇 배는 더 큰 덩치. 거기에 무질서하게 닥쳐오던 이전의 빅 랫과는 다르게 질서정연했다.
‘캐시미어라는 놈이 지휘를 하고 있는 모양이군.’
단천은 검을 들어올렸다.
제대로 된 지휘자가 있느냐 없느냐는 같은 무리라고 해도 전력이 판이하게 차이가 난다. 누가 그랬던가. 양이 지휘하는 늑대 무리보다, 늑대가 지휘하는 양떼가 강하다고.
지금의 지휘로 보건데 캐시미어는 꽤나 노련한 지휘관인 모양.
하지만 늑대 무리가 됐건. 양떼가 됐건.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력한 법이지.”
말을 끝낸 단천의 몸이 앞으로 폭사했다.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된 것은 가장 앞서서 있던 쥐 인간이었다.
“찍! 뭐, 뭐야앗!”
놈은 다급하게 외치며 방패를 들어올렸다. 아니, 들어올리려고 했다.
애석하게도 놈은 방패를 끝까지 들어올리지 못했다.
방패를 들어올리기도 전에 단천의 검이 뱀처럼 놈의 방패를 타고올라 놈의 목을 파고들었으니까.
서걱!
너무나도 빠른 속도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한 마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 와 시바 속도 무엇?
> 이 사람 속도핵 쓰는데요?
> ??? 이 속도가 컨트롤이 된다고?
> 운빨이겠지
> ㅋㅋ 한두 번이면 운으로라도 할 수 있지.
하지만 단천의 검은 ‘운’이라는 말을 비웃듯이 다음 적에게 정확하게 꽂혀들었다.
“찍! 막! 막아아!”
서걱!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는 녀석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목이 잘렸고.
“도─도망─!”
도주를 시도하려는 녀석들은 몸을 돌리기도 전에 심장에 검이 꽂혔다.
실로 압도적인 무위.
> 캐시미어 이렇게 쉬운 보스였냐
> 지금 몇 초 정도 지났냐?
> 10초도 안 지남 ㅋㅋㅋㅋ
고작 미션시간 10초가 지났을 때. 단천은 달려든 쥐떼들을 모조리 도륙내버렸다.
“15마리 잡았으니 15만원이로군.”
> 이게 말이 되냐 미친
단천은 말하며 목을 좌우로 꺾었다. 만족스러움으로 가득해야 할 단천의 표정에는 미미한 불만족이 서려 있었다.
‘생각보다 이 속도. 몸에 부담이 된다.’
단천의 의식은 현재의 광폭한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결국 신체를 통해 발현된다. VR게임이라는 것도 결국은 의식이 만들어낸 신체 신호를 인식하는 것이기에.
지금의 속도를 의식은 따라가지만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등허리를 내달리는 것을 느끼며 단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고통을 참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해서 몸을 혹사했다가는 몸이 먼저 망가지고 만다.
‘어쩔 수 없지.’
불가능한 것에 몸을 들이받는 것도 일단 건강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처치할 수 있는 데까지만 처치하고 캐시미어를 잡아내는 수밖에.
저녁은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로 참고.
“근데 왜 공격이 안 이어지지?”
> 그러게
> 원래 파상공세가 이어져야 하는데;
15마리를 상대하고 난 직후부터는 더 이상 공격이 없었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적이라는 판단을 캐시미어 쪽도 내린 모양이었다.
단천이 검을 납검하고 기다리길 몇 초. 해골더미 한 쪽이 버스럭거리며 올라왔다.
바스락.
“···말도 안 되는 힘이로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까의 쥐 인간들보다 덩치가 세 배는 더 커 보이는 비대한 쥐 인간이었다.
【쥐의 군주 캐시미어】
“네놈이 캐시미어로군.”
“네놈. 강해 보이는데, 원초의 망령님께 영혼을 바칠 생각은 없나?”
“원초의 망령?”
‘그게 뭔데.’
캐시미어가 뭐라고 지껄여대던지 말던지. 단천의 눈은 모습을 드러낸 캐시미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지휘자는 본디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
그런데 원래라면 숨어 있어야만 할 캐시미어가 굳이 자신의 몸을 드러냈다.
그렇다는 건.
‘···운이 좋군.’
어쩌면 돼지고기가 아닌 소고기로 저녁을 떼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