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키스트 에이지 (8)
“방금 그거. 뭡니까?”
“그냥 잡기술입니다.”
“혹시 원래 검술을 배우셨던 겁니까?”
풀창고의 말에 단천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굳이 화산파의 매화검법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 어째 피지컬이 말도 안된다 싶었음
> 경력 있는 신입이었네
> 애초에 아이디부터가 천마였으니까
채팅창도 단천의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끽 해봐야 과거에 검술을 좀 했던 사람이었다고 추측하는 정도가 전부였지만.
‘검술을 알아보는 자가 없으니 편하군.’
무림에서 남의 무공을 사용하는 것은 금기에 속한다. 게다가 천마신교의 교주위에 있는 단천이 다른 문파의 무공을 썼다는 게 알려지면 대내외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것이 뻔한 상황.
하지만 지금 단천이 있는 곳은 중원이 아니다. 재현해 보고 싶은 무공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 보면 된다는 뜻.
내공을 쓸 수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쉽지만 충분히 만족스럽다.
‘게다가 시청자들도 좋아하고.’
단천이 매화검법을 쓰고 있는 걸 봤다면 서윤학이 인면수심의 정파 놈들이나 쓰는 무공을 쓴다고 한참을 잔소리를 했겠지만.
애초에 단천은 서윤학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상관없었다.
“이제 올라가보도록 하지.”
“···조심히 올라가려고 했는데.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군요.”
“추가 지원이 없다는 건 암살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지.”
> 추가 지원이 없을 만큼 몰살을 시켜서 그런게 아니고?
> 몰살이 아니라 암살
> 조용히 안 하면 너도 암살당함
탑을 걸어 올라가는 동안 더 이상 몬스터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채팅창의 말대로 병력들을 모조리 처리해 버린 덕분이다.
“여기서부터가 바로 보스 몬스터인 성주 ‘캐시미어’가 있는 공간입니다. 제가 앞서서 추가 병력은 없는지 몰래 확인하겠습니다.”
“그 덩치에 그 차림이면 몰래 확인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하핫!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도 다키스트 에이지에서 나름 구른 몸이라서요!”
‘옷 입으라는 뜻이었는데.’
좋은 타이밍을 잡아서 옷 입으라는 말을 넌지시 건냈는데. 이번에도 실패였다. 단천의 마음을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으로 착각한 풀창고는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다행스럽게도 추가 몬스터는 없었다. 입구에서 모든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끌어서 몰살시킨 덕분이었다.
“난이도가 쉽네요.”
“···쉽다고 해야 될지.”
풀창고는 뻔뻔하게 ‘난이도가 쉽네요’ 같은 말을 하는 단천을 잠시 쳐다봤다.
“아무튼. 곧 보스전이니 ‘브라딘의 은신처’를 들렀다 가죠. 이 옆 구멍입니다.”
“브라딘의 은신처가 뭡니까?”
“일종의 세이브 포인트입니다. 브라딘이 몸을 숨기고 머물 수 있는 장소죠. 보통 유저들이 부활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럼 저한테는 필요 없는 곳이군요. 지금의 스토리는 한 번 죽으면 끝나는 데다가. 저는 죽을 생각도 없으니까요.”
“아, 브라딘의 은신처는 세이브 포인트인 동시에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크 포인트 역할도 합니다. 이런저런 포션을 만들 수도 있고 추가 버프나···.”
설명을 이어나가며 머리를 긁던 풀창고의 말이 문득 멈췄다.
“근데. 브라딘의 은신처도 모르시면 지금까지 무기 강화는 어떻게 하신 겁니까?”
“무기 강화? 그게 뭡니까.”
“?”
> 그러고 보니 진짜 무기 강화 한 번도 안 했네?
> 와 진짜네 ㅋㅋㅋㅋㅋ
> 나 안보는 사이에 강화 한 줄 알았는데 안 한 거였냐??
***
성혼탑의 체크 포인트에 도착하자 브라딘이 자연스럽게 가면을 벗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곳은 쉬기에 적당한 곳으로 보이는군요. 이곳에서 정비를 하고 움직이도록 합시다.”
[브라딘의 은신처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아이템의 조제, 장비의 강화, 능력치 강화를 할 수 있습니다.]
브라딘은 자리에 주저앉아 불을 켠 다음 그 위에서 여러 약품들을 조제하기 시작했다.
> 여기 농담 아니라 수만번은 봤는데
> 게임 오버할 때마다 봐야 하는 광경이니까
> 다키스트 에이지는 게임 오버 당하는게 메인 컨텐츠 아니냐
> 이 스트리머는 왜 메인 컨텐츠 안 함
이 장면이 익숙한 듯 말하는 시청자들과는 달리 단천의 눈은 호기심에 가득 찬 상태였다.
“이런 시스템이 있었군.”
처음 브라딘의 은신처를 본 반응을 하는 단천을 바라보던 풀창고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니. 그럼 지금 들고 있는 직검이 0강이겠네요?”
“아무 강화도 안 했으니 0강일 겁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의 몬스터를 처리한 겁니까?”
“약점을 제대로 베니까 쉽게 베어지던데요.”
‘그러고 보니 이 양반. 섀도우 비스트도 처치했었지.’
풀창고는 BJ천마가 섀도우 비스트를 일격에 처치하는 영상을 떠올렸다. 그 당시에는 이전까지의 전투가 생략되고 최후의 일격을 날리는 부분만 편집됐다고 생각했었는데.
“천마님은 섀도우 비스트도 일격에 처치했나요?”
“그렇습니다만.”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거지만. 다른 몬스터들도 지금까지 죄다 일격에 처치하셨나요?”
“그렇습니다.”
“······말도 안 돼.”
풀창고의 턱이 아래로 천천히 벌어졌다.
다키스트 에이지는 불친절한 게임 주제에 숨겨져 있는 이런저런 게임 요소들이 넘쳐난다. 이러한 게임 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럼 지금까지 극점極占을 모든 전투에서 찔렀단 겁니까?”
극점.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극악한 난이도를 자랑하고, 그 피격 범위가 점이나 다름없게 좁아서 적절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었다.
> 극점?
> 그뭔씹
채팅창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극점’이라는 것은 고인물 가운데서도 일부만이 알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아니, 알고 있다고 하기도 힘들었다. 고인물들조차 대부분은 그냥 도시전설로만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극점이었으니까.
“극점이라는 건 상대에게 엄청난 데미지를 주는 공격을 말합니다.”
> 그냥 크리티컬 히트잖아.
“아니. 크리티컬 히트랑은 달라요. 크리티컬 히트는 그냥 약점에 공격이 맞기만 하면 추가 데미지가 들어가는 겁니다. 데미지의 한계가 정해져 있죠. 반면에 극점은 특정 타이밍에, 약점의 가장 중심부에 맞아야만 하는 겁니다. 이 공격은 데미지의 한계가 없습니다. 타격되는 즉시 그 부분이 파괴돼 버리는 겁니다.”
> 특정 타이밍이 언젠데?
“그게 몬스터마다 다르고 움직임마다 다르고 체력 상황 따라 달라요.”
> 그럼 몰?루라는 거잖아
> 그냥 도시전설 아니냐?
> 말랑튜브에 있는 아님말고 영상 보고 온 거 아님?
“저도 게임 하면서 한두 번 경험해본 적밖에 없습니다. 아마 고인물들이면 다들 한두 번은 경험해 봤을 걸요? 절대 처치가 안 될 상황에 몬스터가 처치되는 상황.”
[구정물맛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나도 경험한 적 있음; 버그인 줄 알았는데;]
[칠성보다제로 님이 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ㅇㅇ 이거 확실히 있음 나도 몇번 경험함.]
“봐요.”
아마 풀창고의 말뿐이었다면 신뢰도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풀창고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증언들이 극점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극점을 대체 어떻게 죄다 노려서 찌를 수 있느냐는 겁니다.”
발생 조건도, 상황도 랜덤인 상황에서 단천은 숨쉬듯이 극점을 찔러왔다. 너무 자연스럽게 찔러와서 다른 게이머들이 죄다 단순한 크리티컬이라고 생각을 해 왔는데.
크리티컬이 아니라 도시 전설에 가까운 극점이었을 줄이야.
그렇게 시청자와 풀창고가 모두 경악을 터트리고 있는 와중에.
‘어째 몬스터들이 크기에 비해서 비실비실하더라니. 그래서 쉽게 죽는 거였군.’
단천은 그저 무덤덤하게 상황에 대한 복기를 끝내고 있었다.
“천마님? 혹시 극점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질문을 던지는 풀창고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사실상 단천에게 자신의 영업 비밀을 말해줄 수 있냐고 묻는 것이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단천은 이 ‘극점’을 숨길 생각이 딱히 없었다.
“그거 어려운 건 없습니다. 말씀대로 정확한 타이밍에 약점을 찌르면 될 뿐이니까요.”
“···그 정확한 타이밍이라는 게 언젭니까?”
“적의 움직임이 시작되기 직전. 기. 그러니까, 호흡이 시작되려고 하는 시점입니다.”
모든 것들은 움직임을 시작하기 직전에 가장 약해진다. 뛰어오르기 직전의 곤충의 몸이 굳고, 날아오르기 직전의 새가 가장 위태롭게 가지에 매달리듯이.
상대의 약점을 찌를 때 가장 최적의 타이밍이 바로 이 움직임이 시작하는 시점인 것이다.
그리고 찌르는 곳은 정해져 있다. 혈도. 그것도 치명적인 사혈을 찌르면 된다.
“···그건 그렇다치고. 공격해야 하는 지점은요?”
“그건 파괴하고 싶은 곳의 급소 부분을 공격하면 됩니다. 대표적으로는 인중, 명치, 기해와 같은 부분이요.”
> 인중 명치는 알겠는데 기해는 어디냐
‘요새 사람들은 기해가 어딘지도 모르나. 세상 어떻게 살려고.’
“몬스터들의 약점은 그럼···.”
“대충 보면 알 수 있죠.”
“말씀대로라면.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점을 공격한다. 그것도 몬스터마다 약점이 죄다 다른 지점을 공략한다. 이건 그냥 재능의 영역이네요.”
풀창고의 말을 들은 단천은 생각에 빠졌다.
단천이 방금 말한 것은 혈귀단에서 밥 먹고 산 놈들이라면 모조리 다 할 줄 아는 잡기술이었다.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수십 번 겪고 난 무인이라면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일종의 요령.
하지만 지금은 21세기다.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그런 전투가 있다고 한들 칼과 창이 아닌 현대무기로 전쟁을 하니까.
지금 사회에서는 하늘이 내린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면야 극점을 찌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가 보네요.”
> 게임도 재능으로 하는 더러운 세상 ㅠ
> 처음부터 재능 미쳤던거 알아봄
> 우리는 그냥 보고 감탄만 하면 된다!
단천의 말을 들은 풀창고는 자신이 '극점'을 찌르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떠올렸다. 상대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정확한 시점에 점이나 다름없는 약점을 골라서 파괴한다.
하나만 해도 어려운데 둘 모두를 노리고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체 이 양반은 뭔데 이걸 간단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는 거지.'
BJ천마는 지금 이 조건을 물이라도 마시는 것처럼 쉽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해 왔다.
실로 어마어마한 능력. 60억분의 1, 아니, 그 이상의 것이라고 봐도 무방한 능력이었다.
풀창고 자신이 이걸 실전에 쓸 수 있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보면 열등감에 먼저 빠진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수준의 격차일 때의 이야기.
어마어마한 차이를 목도하면 오히려 열등감이 아니라 경외심을 가지게 된다.
"대단하네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이 순간. 풀창고는 단천의 개인적인 팬이 되었다. 반짝이던 눈으로 단천을 쫓던 풀창고가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여기에 왔던 이유를 기억해냈다.
"아! 잡썰이 길었네요! 그러면 신체 강화를 좀 합시다! 신체 강화를 하면 컨트롤이 좀 더 편해지실 겁니다!”
“호오.”
컨트롤이 편해진다는 말에 단천의 눈이 반짝였다. 안 그래도 게임을 시작하고서부터 느릿한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체를 강화하고 싶으시다면 브라딘에게 말을 거시면 됩니다!”
“내 신체를 강화하고 싶다.”
[신체 강화를 시작합니다.]
[강화하고 싶은 능력치를 고르십시오.]
[현재 능력치 : 마력 10 생명력 10 지구력 10 속도 10]
“아마 능력치는 다 10일 겁니다. 이 능력치를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얻은 ‘어둠’을 사용해서 강화하는 방식이죠.”
“각 능력치들은 어디 연관이 있습니까?”
“음. 마력은 마법 무기를 쓰는 데 쓰이고, 생명력은 체력, 지구력은 스테미너, 그리고 속도는 글자 그대로 속도를 늘릴 수 있습니다. 보통은 마력을 제외하고는 고르게 능력치를 올리시는 게···.”
“브라딘. 속도를 최대한 올려줘.”
“지금 주군께서 가지고 있는 어둠으로는 속도를 이 정도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속도를 70 올리시겠습니까?]
[Y/N]
단천은 주저 없이 Y 버튼을 눌렀다.
[속도가 80이 되었습니다.]
잠시 단천을 바라보던 풀창고가 입꼬리를 올리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남자라면 스텟 하나에 분배죠!”
> 태세변환 무엇 ㅋㅋㅋ
"아, 천마님이 하시는 거면 다 옳은 거죠!"
비로소. 광신도 하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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