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키스트 에이지 (6)
다음 날 방송 시각.
단천은 언제나 그렇듯 방송 시작 전에 가볍게 VR캡슐 세팅을 하고 있었다. 뭔가 달라진 건 없는지, 이상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작업.
작업을 완료한 단천은 마지막으로 서유나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유미 : 오늘 방송 엄청 재밌었어요!!]
[유미 : 피지컬 완전 대박!]
[유미 : 영상도 엄청 잘 뽑힐 거에요! 다만 업로드는 좀 늦을 것 같네요 ㅠ 야근이 많아서ㅠ]
[유미 : 야근 끝나고 퇴근해서 영상 만들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도착해 있는 서유나가 보낸 메시지들을 확인한 단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익명의 사람들이 보내오는 환호만큼이나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서유나가 보낸 수백 개의 반응을 읽어나가던 단천의 눈에. 특이한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스트리머 풀창고입니다.]
[혹시 시간 되신다면 레코딩 접속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밑에 나와 있는 초대 메시지. 단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런 메일이 뭔지 정도는 단천도 알고 있었다.
“스팸 메일이로군.”
뭔가 있는 척하면서 클릭을 하는 순간 불법 도박, 혹은 음란물이 있는 사이트로 연결이 되어 버리는 악성 메일.
단천은 가볍게 스팸메일을 지워버린 다음 방송 준비를 시작했다.
> 방송시작까지 1분! 지금부터 숨 참는다! 흡!
> 왜 안와ㅏㅏㅏ
> 방장!! 문열어!! 문!!
방송 시작까지 아직 시간이 있는데도 채팅창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다키스트 에이지」의 새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보다 내가 왜 방장이야.”
방장이란 이름에 단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이 소림사 주지도 아니고 방장이란 말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방송을 시작하셨습니다.]
“방장이 아니라 천마님. 혹은 지존이라고 부르도록.”
> 방송켜졌다ㅏㅏㅏㅏㅏㅏ
> 당장방송해당장방송해당장방송해당장방송해
> 빨리 공략 ㄱㄱㄱㄱ
> 여기가 그 괴물 피지컬 뉴비 방송입니까?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에 일일히 대답해 주려던 단천의 입이 멈췄다. 채팅창에 하나하나 반응을 해 주는 게 힘들 정도의 속도가 됐기 때문이다.
단천의 눈이 자연스럽게 시청자 숫자로 향했다.
[시청자 수 : 1,498명]
방송을 방금 시작했음에도 1500명에 가까운 수의 시청자 수가 찍히고 있었다.
단천은 굳이 시청자 수에 일희일비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일주일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이뤄낸 성과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성과였다.
인터넷 방송이 방송 시작 시점에는 시청자수가 그리 많이 찍히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초대형 스트리머와도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시청자.
물론 지금 시작 시점에 시청자가 많은 것은 이슈로 인한 일시적인 펌핑 효과였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커다란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해야할 것은.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것.’
펌핑 효과는 일시적이다. 하지만 이 펌핑된 시청자들을 오롯이 자신의 시청자로 만들어낸다면 영구적인 규모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단천은 일시적으로 유입된 이 시청자들을 휘어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물론. 유입된 이들이 바라는 것을 빠르게 보여주는 것.
“「다키스트 에이지」실행.”
[다키스트 에이지를 실행합니다.]
거두절미하고 다키스트 에이지를 실행하는 것이다.
“오셨습니까.”
화면이 전환되자마자 옆에서 부복하고 있는 브라딘에게 고개를 끄덕인 단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반쯤 부서져 있던 피레네는 꽤나 수복이 진행되어 있었다. 부서진 목책은 다시 세워져 있고, 허물어졌던 집들은 몇몇이 다시 만들어져 있었다.
에피소드가 넘어가면서 다소간의 시간이 지나간 것이다.
“주군. 이제부터는 무엇을 할 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흐음.”
[선택지가 주어졌습니다.]
[1. 피레네를 안전하게 지키며 ‘굴’을 기다린다.]
[2. 라군 성을 공략한다.]
단천의 눈 앞에 선택지가 떠오르자 모든 화면이 정지했다. 선택지를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하라는 뜻이리라.
다만 ‘굴’이 무엇인지, 혹은 ‘라군 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뭐가 이렇게 불친절해.”
단천이 설명이 불친절하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 단천이 들어와 있는 히든 스토리는 다키스트 에이지의 고인물이 우연히 발견한 것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스토리였으니까.
애초에 첫 회차인 단천이 들어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스토리가 만들어져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이건 게임사의 입장이이게 단천이 알 바는 아니었다.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선택지에 단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여기서 선택지를 고르지 않고 라군 성이 무엇이고 뭘 하는 곳인지에 대해서 찾아나가려면 꽤 시간이 들어간다.
자연스럽게 게임이 루즈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게 단천이 고민에 빠져 있을 무렵.
[풀창고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천마님. 제가 보기엔 1번 선택지가 좋습니다.]
후원 하나가 올라왔다.
> ?? 찐 풀창고 맞냐?
> 아이디 보니까 맞음
> 풀창고 방송안하고 여기서 뭐해ㅐㅐㅐㅐ
[풀창고 : 아니; 저 휴방한다고 그랬잖아요 원래 휴방일에 공지도 썼는데]
> 휴방공지 쓰면 맘대로 휴방해도 되냐???
> 요새 풀창고 많이 풀어졌다
> 초심때는 방송 하루에 30시간씩 했는데
풀창고라는 아이디에 채팅창의 반응이 꽤 뜨거웠다. 보아하니 단천과 같은 스트리머인 모양이었다.
“풀창고가 뭐 하는 사람인데.”
> 다키스트 에이지 스트리머가 풀창고를 몰라??
> 스트리머고 뭐고 어제 다키스트 에이지 시작했는데요?
> 방송 자체도 1주일이 안 됨 ㅋㅋㅋ
채팅창의 반응을 확인한 단천은 풀창고라는 사람이 과거에 다키스트 에이지를 스트리밍했던 고인물 중의 한 명이라는 것과, 꽤 유명한 스트리머라는 것을 알아챘다.
[풀창고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 그보다, 메일 확인 안 하셨나요? 레코딩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었는데.]
“메일은 받은 게 없었습니다만.”
[그···렇군요. 그러면 다시 링크 드리겠습니다! 링크 확인해 주세요!]
단천은 손가락을 들어 링크되어 있던 사이트를 열었다.
링크를 열자마자 호탕한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울려퍼졌다.
[아, 아아. 들리시나요!]
“···들립니다.”
[아. BJ천마님 반갑습니다! 스트리머 풀창고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다름아니라 연락을 드린 건 다키스트 에이지에 ‘원혼’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원혼?”
[아. 원혼부터 설명을 해야 되나요?]
원혼은 다키스트 에이지의 살인적인 난이도때문에 추후에 추가된 멀티 플레이 시스템이었다. 원혼 플레이어는 게임의 스토리에 관여할 수 없는 대신 보스전을 제외한 구간을 함께 진행할 수 있다.
[거기에 옆에서 바로바로 훈수도 할 수 있죠! 와하하!]
> 그냥 훈수두고 싶은 아재잖아 ㅋㅋㅋ
> 훈수 두고 싶어서 방송 쉬는 스트리머가 있다?!
> 훈수는 둘째치고 도움이 될려나?
> 에이 그래도 풀창고 컨이면 잡몹 구간은 프리패스지
스트리밍에서 1인용 게임에서 타인이 끼어드는 것은 원래 꽤나 금기다. 게임의 난이도를 의도치 않게 낮추거나 스포일러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팅창의 분위기는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다키스트 에이지」자체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데다가 스토리 자체가 워낙에 불친절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스토리나 설정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꽁꽁 싸매놓은 탓에 그냥 게임을 진행해서는 놓치는 부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키스트 에이지에서 살다시피한 풀창고가 있다면?
옆에서 놓칠 가능성이 높은 스토리나 뒷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그만큼 빠른 진행은 덤이고!
그러니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천도 귀찮게 정보 수집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모름지기 정보 수집이란 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는 게 단천의 생각이었다.
[원혼 '풀창고'가 당신의 세계에 들어오기를 원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한다.”
화아악!
검은 연기가 단천의 옆에 몽실거리며 떠올랐다. 떠오른 검은 연기는 빠르게 인간의 형체를 갖춰나갔다.
갖춰진 인간의 형체를 바라보던 단천의 눈이 살짝 떨렸다.
“······이거. 버그입니까.”
국부를 겨우 가리는 천쪼가리를 입고 거대한 몽둥이를 든 남자가. 단천의 눈 앞에 서 있었다.
당연히 버그가 의심되는 상황.
“아. 버그 아닙니다!”
단천의 눈이 풀창고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다시금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이 단천의 눈에 떠올랐다.
> 천마님 표정 ㅋㅋㅋ
> 눈 버렸다는 표정을 너무 노골적으로 짓는데 ㅋㅋㅋ
> 눈으로 말하는 중 ㅋㅋㅋ
“저. 그, 이게, 고인물 룩이라서요. 고인물이 이러고 안 다니면 고인물 취급도 안 해줘서. 사실 고인물 사이에서는 엄청 핫한 룩이에요 이게.”
“알겠습니다.”
“그, 원하시면 철갑의 기사단 룩으로 바꿔 오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하시니 알겠습니다! 천마님은 마음이 넓으시군요!”
“······.”
괜찮다는 한 마디에 풀창고가 가슴을 활짝 펼치며 가슴을 쾅쾅 두들겼다.
풀창고는 말하는 걸 곧이곧대로 들어먹는 성격인 모양이었다. 좋게 말하면 티 없는 인간성. 나쁘게 말하면 눈없새.
“혹시 천마님도 저와 같이 이 ‘남성상의 상징’ 룩을···.”
“저는 필요없습니다.”
단칼에 풀창고가 내민 천쪼가리를 거절한 단천은 풀창고가 시무룩해하거나 말거나 상황에 집중했다.
“그래서. 이 ‘굴’과 ‘라군 성’은 뭡니까?”
“굴은 다이어드 대륙에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몬스터가 나타나는 게이트입니다. 반면 라군 성은 대륙의 서부 지역에 있는 거점성채 중 하나입니다. 이 라군 성의 스토리가 비극적이기 그지없죠. 지금 있는 피레네의 스토리도 이 라군 성의 성주인 라군과 관계가···.”
“짧게. 한 줄 요약.”
“아. 죄송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굴’은 파밍 이벤트고 ‘라군 성’은 스토리 진행 이벤트입니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굴’을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지금 천마님의 아이템은 파밍이 하나도 안 된 상황! 말하자면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니까요! 와하하!”
> 알몸은 너잖아
단천의 생각을 대변하는 채팅 하나가 올라왔지만. 풀창고는 아무래도 채팅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원하는 정보는 얻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단천의 손이 망설임없이 움직여 선택지를 골랐다.
[2. 라군 성을 공략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