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1화 (11/212)

1. 다키스트 에이지 (5)

[종언의 시종을 처치하셨습니다.]

[피레네 마을이 생존했습니다!]

> 방금 뭐냐ㅑㅑㅑ

> 방금 죄다 패링으로 뚫어버린 거임?

> 그게 보인다고???

처음 게임을 시작한 뉴비가 히든 에피소드를 개방하고, 첫 에피소드를 깔끔하게 완료한 상황.

이런 상황이라면 시청자들은 보통 다음 에피소드가 어떻게 될지를 추측하기 마련이었다.

반면 지금 방송의 채팅창은 단천의 플레이에만 쏠려 있었다.

정석적인 종언의 시종 공략법은 장기전으로 가서 모든 촉수들을 잘라낸 다음 본체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단천은 이런 공략따위는 무시하고 촉수들이 날아오는 중심부로 그대로 걸어가서 종언의 시종의 목을 날려버린 상황.

원래는 불가능한. 아니,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종언의 시종을 처리해 버린 상황인 것이다.

[장래희망백수 님께서 5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엄마 나 커서 BJ천마가 될래요!엄마 나 커서 BJ천마가 될래요!엄마 나 커서 BJ천마가 될래요!]

[맥심vs카누 님께서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간장검 님께서 5,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사막여우 님께서 5,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뒤이어지는 후원 공세. 단천은 「컴맹부터 시작하는 스트리밍」에서 후원금에 대해서 뭐라고 나와 있었는지를 떠올렸다.

─ 후원금 메시지가 올라오면 감사하다는 제스쳐를 꼭 보입시다! 시청자 분들은 방송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니까요!

감사의 제스쳐. 자신의 방송을 시청해주고, 굳이 낼 필요가 없는 돈인데도 후원의 의미로 돈을 내 주는 사람들이다. 충분한 감사의 인사를 표해야 했다.

‘충분한 감사 인사.’

까딱.

단천의 고개가 위아래로 1mm정도를 움직였다.

> 방금 그게 감사 리액션임??

> 감사 리액션(고개 1mm 움직이기)

> 천마님이··· 고개를 1mm나 움직여주셨어!(왈칵)

채팅창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평범한 스트리밍이었다면 후원 리액션에 대해서 왈가왈부가 나왔겠지만 단천은 방송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천마’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줘 왔다.

이제 슬슬 시청자들도 단천의 모습이 컨셉이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 상황.

덕분에 단천의 반응이 거의 없어도 시청자들은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반응이 압도적인 기묘한 상황.

단천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단천은 시청자들을 가스라이팅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게 모르게 시청자들을 한층 더 세뇌한 단천은 주변을 돌아봤다.

“몬스터들은 거의 다 처리되어 가는군.”

구울과 싸우고 있는 것은 뼈로 만들어진 기사. 데스 나이트. 물론 데스 나이트를 만든 것은 브라딘이 분명했다. 브라딘은 데스 나이트들을 지휘하며 후방에서 약병들을 던져대고 있었다.

본래라면 구울들을 상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데스 나이트의 숫자였지만, 구울들을 지휘하던 종언의 시종이 사라진 상황. 본능을 따라 움직이는 괴물들을 도살하는 데에는 많은 병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아아아!

섬짓한 비명소리와 함께 마지막 구울이 쓰러졌다.

“잘 끝냈군.”

“···정말로 혼자서 종언의 시종을 처치했군. 죽을 각오까지 했었는데.”

“생존자들은 얼마나 있지?”

“사망자는 거의 없다.”

“다행이로군.”

단천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브라딘이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었다.

“동료가 되기는 싫다고 했었지.”

“그래. 나는 믿을 만한 인간만 동료로 둔다.”

“그렇다면 수하는 어떤가.”

“수하?”

“네 덕분에 내가 지키던 마을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모두 네 덕분이다. 그리고··· 네가 있다면 이 저주받은 세계가 바뀔 수 있다는 기묘한 확신이 든다.”

[브라딘의 제의]

[브라딘은 당신의 수하가 되어 당신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할까.’

단천은 수하를 쉽게 거두지 않았다. 천마교주의 위에 오르기 전에도 그랬다. 배신과 귀계가 난무하는 곳에서 수하를 쉽게 거둔다는 것은 목숨을 여벌로 가지고 다니지 않는 이상에야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비록 브라딘이 목숨을 걸고 자신과 함께 싸웠을지언정, 그리고 그가 약자들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언정 단천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하지만.

‘왜인지 이 놈을 보면 그 놈이 떠오른단 말이지.’

혈귀단에 함께 들어와서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 살아남았던 단원이자, 같이 항명을 선택한 혈귀단의 부단주이자. 항명이 끝나고 살아남았을 때 자신에게 처음으로 충성을 맹세했던 첫 수하.

신산귀계 서윤학.

브라딘의 행동은 서윤학과 꽤 닮아 있었다. 물론 얼굴은 브라딘 쪽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잘생겼지만.

브라딘을 보며 서윤학을 떠올리던 단천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다. 수하라면 허락해 주지.”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브라딘을 수하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브라딘의 충성이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부복한 브라딘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떠오르는 또다른 메시지.

[‘구원자’ 의 첫 에피소드가 종료되었습니다.]

“···첫 에피소드가 종료되었다는군.”

단천은 본능적으로 방송을 여기까지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스트리밍은 웹소설과도 같다. 보고 있는 중에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루의 마지막이다.

시청자에게 다음날에도 방송을 보고 싶다! 혹은 봐야 한다! 는 마지막을 선사해서 시청자들이 다음 날에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이 스트리머에게는 필수적인 덕목인 것이다.

“오늘 「다키스트 에이지」는 여기까지 하지.”

> 와 여기서 끊는다고?

> 안 돼ㅐㅐㅐ

> 제발 조금만 더 해주시면 안될까요 집에 복실이가 아파요ㅠ

채팅창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채팅이 이어졌다. 이대로 방송을 그대로 종료했다면 아쉬움만 남을 터. 하지만.

‘아쉬움을 달랠 수단도 이미 있지.’

[다키스트 에이지를 종료합니다.]

[리드미컬 세이버를 실행합니다.]

다키스트 에이지를 종료한 단천은 바로 리드미컬 세이버로 넘어갔다.

> 와! 리드미컬 세이버!!

> 이 게임 아직 하는 거였어??

> 이게 뭔 겜임?

단천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리드미컬 세이버의 곡 선택에 들어갔다.

[곡 ‘달려라 토끼’를 재생합니다.]

[제작자 : 유미]

리드미컬한 드러밍과 함께 엄청난 수의 노트들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단천의 검.

파바바바박!

> 와 진짜 피지컬 뭐냐고 ㅋㅋㅋ

> 사람 맞냐 ㅋㅋㅋ

> 형아 나주거ㅓㅓㅓ

이전의 아쉬움을 씻어낼 만큼 완벽한 무위가 단천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리드미컬 세이버는 누가 봐도 룰을 알 수 있는 단순한 게임이다. 동시에 시각적인 만족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게임이기도 했다.

방송을 보고 남은 아쉬움을 다 태우기에는 완벽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All combo!]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다. 내일 보도록 하지.”

> 오뱅알~~~ 오늘 방송 너무 알찼다~~

> 천바!

> 진짜 내일 방송 시작하자마자 보러온다 ㅋㅋ 다 뒤졌다 ㅋㅋ

그렇게 ‘달려라 토끼’ 가 끝나고 났을 때. 방송이 끝났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방송을 끝내고 소파에 앉아서 심공을 끝낸 단천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움직임은 매화검이 맞는 것 같단 말이지.”

다키스트 에이지를 하며 봤었던 촉수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비록 그 모습이 기묘할 정도로 악의에 가득차 있었던 탓에 제대로 알아채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분명히 촉수의 움직임은 매화검법을 따라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흉내내고 있었다고 하는 게 옳겠지만.”

매화검의 묘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겉만을 흉내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진짜 매화검법이었다면 단천이 검을 맞대자마자 바로 알아챘을 테니까.

단지은에게 받은 노트북을 꺼내 인터넷을 켠 단천은 「다키스트 에이지 제작사」를 검색했다.

[다키스트 에이지의 제작사 : 소드아트]

“소드아트.”

홈페이지를 돌아봐도 딱히 이거다 하고 오는 부분은 없었다. 몇 번 더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단천은 노트북을 콱 닫아버렸다.

“귀찮게 이딴 짓을 내가 왜 해.”

평생 정보 수집과는 먼 삶을 살아왔던 단천이었다. 정보 수집부터 분류, 분석, 판단을 모조리 하는 만능수하가 단천에게는 있었으니까.

“···정보 수집은 언제나 서윤학 그 놈 일이었는데.”

단천은 자신의 충실한 수하였던 서윤학을 떠올렸다.

─ 단주. 이게 이번에 분석해야 할 자료입니다. 많아 보이지만 저희 둘이 하면 사흘 밤 내로는 끝날 겁니다.

─ ···둘이 아니라 혼자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 단주, 단주! 왜 경공을 극성으로 펼치시는 겁니까! 뒤를 부탁한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야! 이 개새꺄!

하지만 충성심 깊은 서윤학은 더 이상은 이 세상에 없었다. 정보 수집을 할 사람도 이제는 없다는 뜻이다.

“서유나에게 이런 것들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중원이니 무공이니 하는 것들을 일일히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설명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도 없을 터였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단천은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뭐, 굳이 내 입장에서 찾아갈 이유는 없지.”

설령 ‘소드아트’가 실제로 무림과 관계있든 없든 단천 입장에서는 굳이 먼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뭔가가 필요하다면 저 쪽에서 알아서 찾아오게 만든다. 그게 단천의 철학이었으니까.

쓸데없는 시간을 할 바에는 내공을 쌓고 몸을 만드는 게 훨씬 이롭다.

가볍게 훌훌 생각을 털어버린 단천은 다시 가부좌를 틀어앉고 여유롭게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

그렇게 여유롭게 단천이 운기행공을 하고 있을 시각. 인터넷은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다키스트 에이지에서 새 스토리라인 확인됨!]

[BJ천마 오늘의 미친 피지컬 쪄왔다]

[이게 천마게시판야 인방게시판이야;]

평소라면 수많은 인터넷 방송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서로 제 할 말만 떠들던 인터넷 방송 게시판이 BJ천마의 이야기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간 드러나지도 않았던 히든 스토리를 열렸다. 그리고 그 와중에 보여준 믿겨지지 않는 피지컬까지 더해지니 기름에 불을 부은 격으로 이야기가 재생산되고 확산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덕분에 수없이 많은 스트리밍 시청자들에게 ‘BJ천마’라는 이름은 확실하게 각인되고 있었다.

그리고 BJ천마의 이름을 기억한 사람 가운데는 물론 스트리머도 존재했다.

“와이씨. 장난 아니네.”

「다키스트 에이지」의 고인물중의 고인물 스트리머. 풀창고는 BJ천마의 영상을 보고 땀을 닦아냈다. 자신도 난다긴다하는 고인물이었지만 BJ천마의 움직임은 격이 달랐다.

제로나 다름없는 반응속도. 정말로 전장을 수없이 겪었던 것 같은 빠른 판단력. 거기에 검의 움직임까지.

더 이상 다키스트 에이지를 하고 있지 않은 풀창고의 마음까지도 설레게 할 정도였다.

“···내일 3시부터 방송이라고 했지.”

스트리머는 모두 한 때는 시청자였다. 엄청난 플레이를 본다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방송을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지금 풀창고의 피는 BJ천마의 스트리밍을 보고 싶어 요동치고 있었다. 다행인 점이라면 내일이 풀창고의 휴방일이라는 점이었다.

문제는 스트리머 ‘풀창고’가 휴방일에도 매일같이 방송을 켜는 컨셉이라는 점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휴방일이거나 아니거나 정말 중대한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풀창고는 방송을 켰었다.

그러니 휴방 선언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믿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휴방 선언은 해야만 했다.

[내일 방송 휴방합니다.]

[진짜 진짜 진짜 휴방임]

[시즌 21328123호 ‘진짜’ 휴방 선언]

[어~ 내일도 방송할 거 알아~]

[방송 중독자가 무슨 휴방 ㅋㅋㅋ]

[풀창고 : 아니 진짜 휴방이라고요 진짜 내일 방송없음]

[응 안믿어~~]

[한화우승 vs 풀창고 휴방 닥전자 아니냐 ㅋㅋㅋ]

[└ 한화 진짜 내년에는 우승한다 올해는 살짝 힘들지만]

스트리머 풀창고의 휴방선언은 슬플 정도로 설득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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