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키스트 에이지 (4)
서걱!
언덕을 뛰어내려간 단천은 가장 먼저 눈 앞에 있는 커다란 구울을 베어넘겼다.
“멈춰!”
뒤에서 브라딘이 소리치거나 말거나. 단천의 움직임은 이어졌다. 두 마리, 세 마리. 검격 한 번이 이어질 때마다 바닥에 몬스터들의 시체가 쌓여나갔다.
“지금 뭐 하는 건가!”
“사냥.”
“이렇게 많은 몬스터들을 우리가 상대할 수는 없어! 죽을 거라고!”
단천은 브라딘의 말을 무시한 채 다음 몬스터들로 뛰어들었다. 다시금 이어지는 유려한 검의 움직임.
촤좌좌작!
검에 직격당한 몬스터들의 몸이 또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 ㅗㅜㅑ 진짜 컨트롤 오지긴 하네
> 미쳤다 ㅋㅋㅋ
> 진짜 핵 쓰는거 아님?
> 개잘핵ㅋㅋㅋㅋ
단천은 쓰러트린 구울 중 하나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구울의 시체가 뒤집어지며 그 아래에 숨어 있던 꼬마아이의 몸이 드러났다. 단천은 꼬마아이의 목을 잡아다 던졌다.
휙!
꼬마아이의 몸이 피레네 마을의 입구로 던져졌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단천의 말은 담담했다. 그리고 몇 번의 검격이 더 이어졌다. 빠르게 몬스터들이 줄어들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영원할 수는 없었다. 단천의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섀도우 비스트를 상대할 때와는 다르다. 섀도우 비스트는 단천에게 어그로가 끌려 있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적을 상대할 때라면 얼마든지 공격을 피해내고 반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몬스터를 죽이고 나면,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은 몬스터들을 향해 다시 뛰어들어야 했다. 호흡이 남아날 리가 없다.
여섯 번째 몬스터 무리에게 달려들었을 때. 단천의 몸이 위험하게 휘청였다.
“···이런!”
당혹성을 토해낸 브라딘이 품에서 약병을 집어던졌다. 파스스스! 바닥에서 깨어진 약병에서 쏟아진 강산에 닿은 몬스터들의 몸이 녹아내렸다.
“도와줄 필요 없었는데.”
“도와줄 필요 없기는!”
단천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신체능력을 쥐어짜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줄타기야말로 단천의 장기였다. 단천이 있었던 혈귀단은 전장의 최전선에 서는 부대였다. 죽을 상황과 아닌 상황을 구별하는 데는 단천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그런 단천이기에 방금도 위험한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 방금 도움 못 받았으면 게임 오버였잖아
> ㄴㄴ 천마님이면 방금도 여유였지
> └겨드랑이 땀이나 닦고 이야기해
물론, 시청자 일부와 브라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목숨을 버리고 싶어 환장한 건가? 목숨은 단 하나뿐이다!”
단천은 중원에서 자신이 처음 몸담았던 혈귀단을 떠올렸다.
혈귀단은 오갈 데 없거나 고아인 아이들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지위가 있는 자들이라면 목숨을 내놓고 훈련해야 하는 혈귀단에 들어올 필요가 없었으니까.
단천이 처음 무림에 떨어져 속했던 곳이 혈귀단이었다.
혈혈단신인 꼬마들만 모여 있는 곳이었으나 그만큼 서로간의 유대는 깊었다. 5년간의 죽음과도 같은 수련이 이어졌다. 수련이 끝나고 난 뒤의 혈귀단은 서로가 서로에게 형제나 다름없는 관계가 됐다.
그리고 천마신교에 입교하기 위한 마지막 임무는.
‘혈귀단의 단원 중 한 명을 죽이는 것이었지.’
피로 피를 씻는 중원. 그 중원에서도 최악인 천마신교에 떨어졌던 만큼 언젠가 살인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기 위한 마음의 준비도 해 놨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했다는 것이 같이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를 죽여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항명은 죽음뿐인 선택지.
“맞다. 목숨은 하나뿐이지.”
“그런데 왜···!”
단천은 혈귀단의 대원을 죽이는 대신 천마신교에 항명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에 목숨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
[브라딘의 신뢰도가 크게 올랐습니다!]
[히든 에피소드가 완전히 개방되었습니다!]
[히든 에피소드 ‘구원자’ 에 진입했습니다. 이후의 게임 오버는 완전한 게임 오버입니다.]
> 와 이게 이렇게 굴러간다고?
> 대체 어디까지 앞을 보고 있었던거냐
> 이걸 스토리를 예측하고 이렇게 간다고?? 스토리 진행의 천재인가?
히든 에피소드가 완전히 열렸다는 공식적인 메시지에 채팅창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금이 히든 스토리라는 것이 반쯤은 확정적되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메시지창으로 나오는 것은 다른 일이다.
“내가 잡병들을 맡을 테니. 네가 ‘종언의 시종’을 처치해라.”
> 근데 종언의 시종은 어떻게 처리함?
> 지금 장비로 이길 수는 있냐???
> 지금 죽으면 게임 오버인데;
채팅창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종언의 시종은 게임 종반부에 들어서서 강화된 무기들이 있어도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보스급의 몬스터다.
심지어 상대해야 되는 유저는 종언을 시종을 상대해 본 고인물도 아니고 이제 첫 회차인 뉴비인 상황.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채팅창의 분위기는 하나로 모아졌다.
> 일단 게임 여기까지 하고 게임 종료 ㄱㄱㄱ
> 말랑튜브에서 공략 보고오자 ㄱㄱㄱ
> 공략이라도 보고 플레이해야됨 패턴 개어려움
바로 일단 게임을 종료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자는 것. 하지만 단천은 게임을 종료하지 않았다.
“스토리는 이대로 진행한다.”
단천이 방송을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세 가지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현재 시청자 수 : 1,087명]
시청자 수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100명이 안 되던 시청자가 순식간에 1000명까지 늘어나 있었다. 지금 게임을 중간에 끊는다면 흐름이 끊어지는 상황이다. 공략에 실패할때의 리스크보다도 시청자 수가 늘어나게 하는 것의 메리트가 더 컸다.
두 번째는 다른 방송의 인터셉트. 히든 스토리가 해금이 됐다면 다른 다키스트 에이지 방송에서도 히든 스토리를 공략할 가능성이 있었다.
난이도를 생각해 봤을 때에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지만, 아예 발생하지 않는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 그냥 공략 한번만 보고 하면 안 됨? 시간도 얼마 안 드는데.
“그러기 싫다.”
그저 게임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그것이었다.
‘시청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스트리머가 게임을 즐기는 것.’
─이라고 「컴맹부터 시작하는 스트리밍」에서 그랬다.
그러니 바로 공략에 들어가는 게 맞다.
> 이거 맞냐?
> 암만 그래도 보스급인데 공략은 보고 가는 게 맞지 않냐??
단천은 채팅창을 무시한 채 종언의 시종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과과과!
거대한 흉물체의 몸에서 수십 개의 촉수가 발작적으로 터져나왔다.
종언의 시종이 가지고 있는 오프닝 패턴 가운데 가장 어려운 ‘촉수 비산’이 터져나온 것이다.
> 패턴 망했네 ㅅㅂ
> 리트 각이다 ㅠ
> 망함 촉수비산 패턴이면 알고도 못 피함
‘촉수 비산’ 패턴을 본 고인물들의 채팅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수십 개의 촉수들이 무작위적으로 날아드는 촉수 비산은 고인물들도 상대하기 까다로워하는 패턴.
패턴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플레이어가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채팅창은 BJ천마가 첫 게임오버 창을 보게 되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확신이 실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파바바박!
반으로 두동강난 부러진 직검이 날아드는 모든 촉수를 하나하나 잘라 버렸기 때문이다.
“별 것 아니군.”
> 이래야 천마님이지!!!
> 믿고 있었다고!!
> 그래 ㅅㅂ! 공략집 그게 뭐냐!!! 우리한테는 피지컬이 있다!!!
[돌아온새싹님 10,000원 후원!]
[방금 플레이 보고 환불했던 다키스트 에이지 재구매했습니다!! 저도 나중에 저런 플레이 하는 게 꿈이에요!!]
> 새싹이···되살아났어?!
> 천마님이 죽은 자를 되살리셨다!!! 경배하라!!!!
> 근데 저렇게 하려면 그냥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르지 않냐?
단천의 플레이를 본 채팅창이 부서질 듯 올라갔다. 몇 초 전까지 리트 각이니, 공략을 봤어야 했느니 하는 소리는 쏙 들어간 상태였다.
단천은 담담했다. 그리 어려운 플레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전보다 쉽다.
분명히 이전에 상대했던 섀도우 비스트보다 공격이 더 빠르고 날카롭다.
부정형적이고, 빠르고, 흐를 듯이 유동적인. 아름답기까지 한 촉수의 움직임들. 본래라면 지금의 단천으로써는 상대하기 버거워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도 기묘할 정도로 상대하기가 쉽다. 이전에 몇 번 상대해보기라도 했던 것처럼.
‘···매화검법···인가?’
형태는 다르지만 촉수의 움직임은 분명히 매화검법의 묘리와 맞닿아 있었다. 심지어 체력 소모도 심하지 않다. 검을 타이밍 맞게 가져다대는 것만으로도 종언의 시종의 공격이 튕겨 나간다. 수천 번은 검을 맞대서 익숙한 검식이 아니라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단천의 시선이 채팅창으로 옮겨갔다.
> 와 씨 촉수 수십 개가 날아오는데 죄다 칼타이밍 패링을 하네 ㅋㅋㅋ
> 리드미컬 세이버 하던 가닥 어디 안 가쥬???
> 패링머신 BJ천마! 패링좀 그만 잘해!!!
“···패링이 뭐지?”
> ??????
> 니가 지금 실시간으로 하고 있는 걸 패링이라고 해요
> 타이밍 맞춰서 상대 공격 튕겨내면 소모한 만큼 스테미너 돌려줌
> 뉴비인지 썩은내나는 석유인지 하나만 정하라고 ㅋㅋㅋ
그런 시스템이 있었군. 단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묘할 정도로 상대가 쉽더라니만 이 게임의 시스템 덕분이었을 줄이야. 공격을 쳐낼 때마다 소모했던 것 이상의 스테미너가 회복되니 당연히 공략이 쉬울 수밖에.
하마터면 날아드는 촉수를 매화검의 검식을 흉내낸 것으로 착각할 뻔 했다.
‘이런 시스템이 있다면 지금처럼 주변을 돌면서 공략을 할 필요가 없지.’
주위를 돌며 촉수를 잘라내던 단천의 몸이 종언의 시종의 몸을 향해 움직였다.
촉수의 최대거리에서 움직일 수 있던 바깥과는 달리 종언의 시종에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촉수의 공격은 거세진다.
단천이 외부에서 촉수만을 쳐내고 있었던 것도 이 이유 때문이었지만. 스테미너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콰과과과과과!
단천의 몸이 종언의 시종에게 가까워져갔다. 한 걸음 가까워질 때마다 공격은 거의 두 배씩 늘어났지만, 종언의 시종의 공격은 단 하나도 단천의 몸을 건드리지 못했다.
열 걸음.
다섯 걸음.
세 걸음.
그리고
제로(zero).
서걱!
반쪽으로 조각난 검이. 종언의 시종의 몸통을 베어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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