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8화 (8/212)

1. 다키스트 에이지 (2)

“이 다키스트 에이지라는 게임. 할만한가?”

다키스트 에이지. VR게임의 명가인 소드아트 사의 초창기에 만들어진 1인용 VR게임이다.

이 게임은 누구나가 이름은 아는 유명세에 비해서 유저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게임 자체가 너무나도 어렵고 불쾌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 유저 악의적인 게임 디자인임

> 게임 더럽게 만들었다는 말이 절로 나오지

> 게임 하고 있으면 차라리 공부를 하고 싶어진다 ㄹㅇ

악랄하기 그지없는 난이도와 맥락없이 만들어져 있는 함정들 덕분에 다키스트 에이지는 ‘뉴비 분쇄기’, ‘하지 마라고 만든 게임’, ‘게임 시간보다 부활 시간이 더 긴 게임’과 같은 평가를 듣고 있었다.

> 클리어율이 대충 0.1% 안쪽일거임

> 환불한 사람들까지 치면 그것보다 클리어율 낮겠지

> 0.1%면 그냥 다른게임 하는게 낫지 않음?

다른 게임을 하는 것을 은근히 종용하는 채팅창의 분위기.

“그거 나쁘지 않군.”

하지만 단천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난이도가 높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진입장벽이었겠지만. 실전과도 같은 게임을 바라는 단천에게는 오히려 메리트였으니까.

단천은 주저 없이 다키스트 에이지의 구매버튼을 눌렀다.

“자. 이제 게임 CD가 배송될 때까지···.”

[다키스트 에이지를 다운로드합니다.]

“···는 기다릴 필요가 없겠군.”

> 진짜 어디서 살다 온 거임?

> 청학동에서 오셨다니까요??

> 컨셉한번 특이하네 ㅋㅋㅋ

“지금 웃는 놈들 아이디 기억해 뒀다.”

> 다른 아이디 파 오면 되지 ㅋㅋㅋ

> 엌ㅋㅋㅋ

단천이 비웃는 인간들을 처리할 방법을 고심하고 있는 사이에 게임 다운로드가 완료되었다.

단천이 다키스트 에이지를 실행하자 강렬한 가속도가 느껴졌다 사라졌다. 단천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바로 게임 시작인건가.”

친절하게 게임의 옵션을 보여주던 리드미컬 세이버와는 달리 다키스트 에이지는 바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 ㅇㅇ 안내문이나 설정같은 거 없음

> 걍 혼자서 다 알아서 해야됨

> 그냥 무작정 내던지는 게 이 게임사 스타일임

단천이 있는 곳은 빛이 거의 들지않는 어두침침한 감옥이었다. 검게 핀 이끼들과 벽 여기저기에 말라붙어 있는 마른 피딱지들이 음습함을 부채질했다.

> 분위기부터 좀 무섭네

>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름

평범한 게이머라면 어두침침한 분위기에 압도당했을 상황.

하지만 단천은 이미 닳을대로 닳은 무인이었다.

“상황은 매우 좋다.”

> 뭔 개소리야

> ???

“피딱지가 말라붙어 있다는 것은 이곳에서 고문이나 살인이 이뤄진지 오래 됐다는 뜻이고, 이끼가 끼어 있다는 것은 이곳을 관리하는 자가 거의 없어 방치됐다는 뜻이다.

감시가 없거나 거의 무력화된 상황일 테니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 맞는··· 말인가?

> 아니 음습함에 압도를 당하시라고요 냉정하게 분석하지 마시고

> 진짜 이사람 어디서 온 거임?

> 청학동 해외파병 천마부대에서 오셨다고 합니다

상황을 파악한 단천은 주변을 경계하며 삐걱거리는 문을 열어젖혔다. 문을 열자마자 주우라는 듯이 바닥에 검이 놓여져 있다.

+

【부러진 직검】

【반으로 부러져 버려진 직검입니다.】

+

“별로 쓸만한 무기는 아니군.”

> 어차피 오래 쓸 무기도 아니니까

> 곧 없어질 무기임

> 빠르게 ㄱㄱㄱ

게임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시청자들 중 일부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종용했다.

단천은 직검을 집어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그르륵.

가래 끓는 것과 짐승의 울음소리 중간쯤으로 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를 내뱉은 것은 집채만한 크기의 괴물이었다.

【섀도우 비스트】

【시체와 죽음의 냄새를 삼키려 배회하는 괴물.】

> 사망 플래그 떴다 ㅋㅋㅋ

> 곧 첫 게임오버 보겠네 ㅋㅋㅋ

> 피지컬 판별기 떴드아ㅏㅏㅏ

채팅창에서 게임오버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휘익!

섀도우비스트가 단천을 향해 도약했다. 섀도우 비스트의 앞발이 간발의 차이로 단천의 몸을 스쳐지나갔다.

와드득!

섀도우 비스트의 발에 찍힌 바닥이 그대로 짓이겨졌다. 단 한 방만 맞아도 몸이 무사하지 못할 것은 불보듯 뻔했다.

게임을 방금 시작한 플레이어의 몸으로는 닿는 순간 즉사다.

> 몇 초 정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냐?

> 대충 5초?

> 야 그래도 피지컬이 있는데 10초정도는 버티지 않겠냐?

채팅창에서는 단천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반면 클리어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섀도우 비스트는 애초부터 잡으라고 만들어진 몬스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키스트 에이지」의 난이도는 높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계속해서 죽음을 맞이하고 부활해야 한다.

이 ‘부활’을 위해서 다키스트 에이지가 선택한 길은  다름아닌 플레이어를 언데드로 만드는 것이었다. 무수히 살아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언데드가 된다면 게임 오버를 맞이한다고 해도 괜찮으니까.

언데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일단 죽으면 된다.

데미지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쓸모없는 무기.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한 몬스터. 이 상황은 플레이어를 반드시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레벨 디자인(level design)이다.

고인물들은 처음 섀도우 비스트를 만나면 플레이할 생각도 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야 당연했다. 섀도우 비스트를 상대하는 것은 시간 낭비였으니까. 애초에 낮은 능력치로는 회피도 한계가 있고, 스테미너도 금방 바닥나 버린다. 난다긴다 하는 플레이어들도 채 30초도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것이 바로 이 섀도우 비스트인 것이다.

그런데.

쉭!

쉭!

쉬쉬쉭!

> 몇 초 지났냐?

> 왜케 여유로움?

> 왜 안죽음? 핵쓰냐??

섀도우 비스트의 공격은 단천의 몸에 전혀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

‘확실히 몸이 느리게 움직이는군.’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던 리드미컬 세이버와는 다르게 다키스트 에이지에서의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단천이 평범한 플레이어였다면 눈 앞의 섀도우 비스트에게 죽고 말았을 것이다.

쉬쉬쉬쉭!

단천은 섀도우 비스트의 공격을 느릿한 발걸음으로 계속해서 피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환약 하나 정도의 간극이던 공격의 회피가 이제는 한지 한 장 정도로까지 줄어들어 있었다.

이런 곡예가 가능했던 것은 단천이 가지고 있는 경험 때문이었다.

‘게임 안에서 몸만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뿐이지, 미세한 움직임, 호흡과 같은 부분들은 조절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해야 할 것은 하나.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적의 공격을 피해낸다. 그리고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서 공격을 시도한다.

확실한 기회를 잡아채자마자 단천의 검이 섀도우 비스트의 몸에 날아들었다.

하지만.

파캉!

검이 날카로운 금속음을 내며 튕겨났다.

> 엌ㅋㅋ 공격이 통하겠냐고 ㅋㅋㅋ

> 섀도우 비스트면 최소 4강 이상 무기로만 데미지 박힘

> 그냥 얌전히 죽고 스토리나 진행합시다

단천의 회피에 잠시간 말을 잊었던 채팅창이 다시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공격이 먹힐 리 없다는 수많은 채팅들. 채팅창의 반응과는 달리 단천은 다시 공격을 피해내기 시작했다.

‘역시 그냥 가져다 대는 것으로는 통하지 않는군.’

강철과 같은 비늘과 같은 외피가 검을 튕겨낸다. 단천은 과거에 상대했던 철강시를 떠올렸다. 평범한 도검을 튕겨내는 피부를 가지고 있는 괴물. 그리고 단천은 그런 괴물들을 수없이 도살했던 괴물을 죽이는 괴물이었다.

사라락!

단천의 검이 달려드는 섀도우 비스트의 몸을 향해 다시 날아들었다.

> 안 된다니까 ㅋㅋㅋ

> 백만번을 해 봐라 데미지가 먹히나 ㅋㅋㅋㅋㅋㅋ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는 채팅창. 다키스트 에이지는 리드미컬 세이버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오래된 게임이다. 그걸 봐 온 시청자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된다 하는 것쯤은 알고 .

날아든 검은 튕겨나갈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를 하고 있는 BJ천마라는 스트리머는 게임오버 화면을 보게 되리라.

그것이 타당하기까지 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모든 결론은 그 결론이 뒤집어지기까지만 참인 법이다.

서걱!

단천의 검이 닿자 피부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섀도우 비스트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 ???

> 뭐여

> 뭐시여 이게

“호오.”

단천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이화접목의 묘리를 이용했는데 이것이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물리법칙이 생각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군.’

단지 게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화접목이 먹혀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세계의 물리법칙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현실에 가까웠다.

‘아니. 현실에 가깝다기보다는 무림의 것에 더···.’

단천은 고개를 저어 자신의 착각을 지워냈다.

‘그럴 리가 없지.’

이 VR게임은 모두 21세기의 지구에서 만들어진 것. 게임은 만든 사람도, 게임이 움직이는 물리법칙 시뮬레이팅을 만든 사람도. 모두 21세기의 사람들.

자신이 있던 무림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자신의 느낌은 그저 위화감일 뿐인 것이다.

“아무튼. 첫 잡몹은 쉽게 처리했군.”

> 잡몹 아닌데요

> 아 ㅋㅋㅋ 처음 나왔으니 아무튼 잡몹이라고 ㅋㅋㅋ

> 잡몹 사냥완료!(아님)

단천은 직검에 묻은 피를 대충 털어낸 다음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아이템 루팅 안함?

> 템 먹고 가야지

> 아이템 왜 안먹음??

“루팅?”

> 시체에서 템 주워 가라고

> 빨리 루팅하셈 아이템 나옴

단천은 눈살을 찌푸린 채 반으로 갈라져서 죽은 섀도우 비스트의 시체를 바라봤다. 기묘한 점액질과 내장에서 흘러나온 액체들이 뒤범벅되어 있는 시체를 본 단천의 입이 열렸다.

“안 해.”

> 왜?

“시체 뒤지는 게 불쾌하다.”

시체에서 물품을 회수하는 일은 자신의 수하들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단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 진짜 미친놈이네 ㅋㅋㅋㅋㅋ

> 돌아이임????

> 빨리 루팅하라고ㅋㅋㅋ 템 강화해야지ㅋㅋㅋ

“안 한다.”

[청학동 맹꽁이서당 훈장 님 5,000원 후원!]

[어허! 지체높은 양반은 시체같은 걸 뒤지지 않는 법! 그런 건 아랫것들이나 해야 하는 일이거늘!]

“맞는 말을 하는 자도 있군.”

게다가 돈을 주면서 말을 하다니. 참으로 바람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 몬스터 사냥하는 건 양반이 하는 일임?

사소한 의문이 담긴 채팅이 올라왔지만. 단천은 깔끔하게 무시한 채 입구를 향했다.

단천이 발걸음을 옮긴 입구에서는 기묘한 차림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온통 흑색의 로브를 걸치고 있는 남자는 까마귀 모양의 가면을 들고 있었다. 까마귀의 부리 부분에 들어가 있는 수많은 이름 모를 약초들.

그가 역병 의사라는 것을 추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너.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남자는 경악한 표정으로 단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살아있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 놀랄만하지 죽어야 될 놈이 안 죽었는데

> 브라딘이 저렇게 놀라는 거 처음 봄 ㅋㅋㅋ

> 사실 우리 표정이 브라딘 표정임

단천은 남자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글자를 바라봤다.

【역병 의사 브라딘 : 네크로맨서】

이름의 색깔은 붉은 색이었던 섀도우 비스트의 것과 다른 초록색이었다. 아마도 플레이어에게 우호적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 터.

그렇다면 친해져 놓으면 심부름을 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시체를 뒤지는 일이라거나. 시체를 뒤지는 일이라거나. 혹은 시체를 뒤지는 일이라거나.

결론을 내린 단천의 입이 열렸다.

“너. 시간 좀 있나?”

“······.”

단천의 질문에 브라딘의 눈빛이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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