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7화 (7/212)

1. 다키스트 에이지 (1)

새벽이 겨우 시작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 새벽. 달리기를 마친 단천은 집의 문을 열어젖혔다.

“후우.”

숨이 턱끝까지 차 있는 상황에서 단천은 바로 가부좌를 틀어올렸다. 평범한 사람은 물론이고 운동을 좀 했던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쉽지 않은 루틴.

하지만 단천에게는 숨 쉬는 것보다도 익숙한 과정이었다.

단천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시작했다.

이 세계에도 과연 기氣가 존재할까? 다시 단전을 만들 수 있을까? 무공의 수위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머리를 찌르는 수많은 의문들. 하지만 의문은 빠르게 해소됐다.

‘이곳에도 기는 존재한다.’

희미하고, 탁기가 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는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저 특이한 느낌 정도로만 치부하고 마는 ‘무언가’. 하지만 단천은 이 무언가가 바로 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그 기운을 몸 안에 갈무리하는 것.

단천의 호흡이 깊어졌다. 단천이 스스로 만들어낸 독문심법이자 그를 독보적인 경지로 이끌었던 내공심법인  천단공을 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우웅.

운행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행하던 심법이었지만 이 몸으로 운행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온갖 약들을 사용하며 몸에 쌓인 노폐물들이 꽤 남아있었다.

‘노폐물들을 치우려면 꽤 걸리겠군.’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서두름은 심마를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단천은 그저 서서히 자신의 몸을 관조하며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운행을 했을까. 단지은의 방문이 열렸다.

“천아! 누나 회사 다녀올··· 꺅! 이게 무슨 냄새야!”

문을 들어서던 단지은이 코를 감싸쥐었다. 덩달아 소주천에 심취해 있던 단천의 운행이 깨어졌다.

단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천마신교에서 자신의 운행을 방해했다가는 팔다리가 성하지 못하게 된다.

방해를 한 놈을 호법을 맡은 담당자와 함께 수련동에 6개월은 쳐박아도 합당한 상황이지만···.

‘누나라서 봐 줬다.’

“누나. 남의 방에 들어올 때에는 노크를 해야지.”

“···여긴 방이 아니라 거실인데. 그보다 이게 무슨 냄새야?”

단천의 몸에서 퀘퀘한 냄새가 나는 노폐물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심법이 제대로 운행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는 했지만.

문제는 여기가 단천이 언제나 운공하던 천마동이 아니라 환기가 그다지 잘 되지 않는 실내라는 점이었다.

“···너 혹시. 게임 너무 오래 하다가 캡슐 안에 지렸···.”

“병원에서 매일 복용하라던 약 중 하나가 터졌어.”

“······.”

단지은은 VR캡슐 안을 꼼꼼하게 확인하고서야 단천의 말을 조금은 믿는 눈치가 됐다.

단지은과는 어제 아침 이후에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쳤다. 규칙적으로 잠을 자는 단천과 달리 변호사라는 직업이 워낙에 삶을 갉아먹는 인생인 탓이다.

“아. 그보다 첫 방송은 잘 됐어?”

“나쁘진 않았어.”

“몇 시간정도 했는데?”

“대충 세 시간 정도?”

체력이 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싶을 때 방송을 끝냈으니. 세 시간 정도가 맞을 것이다.

“누나. 나 후원받을 계좌 만들어야 돼.”

“후원받을 계좌?”

“어. 방송 도네이션(donation)받을 계좌가 있어야 후원금을 쏴줄 수 있대.”

“···천아. 후원금이란 건. 후원금을 쏴 줄 사람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거야.”

“줄 사람들 있어. 오늘 후원해 주기로 약속한 사람도 있고.”

“벌써 후원해주겠다는 사람이 생겼어?”

“어. 몇 명 정도.”

“그 사람들이 약속 어기고 후원 안 하면?”

“안 하면?”

‘천마대를 풀어다가 잡아 족쳐야지.’

란 말이 턱끝까지 나왔던 단천은 겨우 말을 참아냈다.

“아무튼. 그 사람들이 목숨이 여러 개라서 만에 하나 후원을 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으로 내뱉은 약속인데 목숨을 이야기할 것까지야.”

“···언제가 됐건 후원이 나올 때 받을 수 있도록 후원계좌를 열어 놔야 돼.”

“그건 그렇긴 하네. 후원 계좌는 이 계좌 쓰면 되겠다.”

단지은이 내민 휴대폰에 적혀 있는 것은 단천의 이름이 있는 계좌였다.

“이거. 내 계좌야?”

“네가 퇴원하면 주려고 열어놨던 적금 계좌야.”

“잘 쓸게.”

계좌 안에 들어있는 돈은 거의 없었다. 돈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최근까지도 계속 반복한 내역이 나와 있는 적금계좌.

중요한 건 남아있는 금액이 아니다.

‘돈이야 채워 가면 될 일이지.’

계좌가 하나 생겼으니 이제 후원만 받으면 된다.

“첫 후원금 들어오면 어디 쓰고 싶어?”

“일단 집부터 바꿔야겠지.”

“···꿈이 거창한 게 내 동생다워서 좋긴 한데. 첫 후원금으로 집을 사는 건 무리 아닐까?”

단지은의 말에 단천의 고개가 잠시 모로 꺾였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 천마교주의 위에 있을 때에는 원하는 것이 있다면 취하면 되었으니. 금전감각이 무뎌질 만도 하다.

단천은 머릿속으로 주판을 굴렸다.

‘지금 내가 벌어들일 돈이 얼마나 되지?’

단천이 방송 중에 했던 곡은 50곡 가량이었다. 그러니 누적되어 있는 후원 예약금은 대략 5만원 정도.

첫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익이지만 뭔가를 맘 먹고 사기에는 적은 돈이다.

이리저리 손가락을 까딱거리던 단천이 결론을 내렸다.

“게임을 사야겠어.”

「리드미컬 세이버」도 나쁘지는 않다. 나름대로 매력도 있고, 창작 마당으로 나오는 곡들도 꽤나 구성이 좋고.

하지만 컨텐츠의 양이 그렇게 많지 못하다. 당장 어제 방송을 끝내기 직전까지만 해도 할 만한 컨텐츠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채팅창의 말로는 「리드미컬 세이버」자체가 오래 된 게임이라 제약이 꽤 많다고 했다.

그 덕분에 플레이하는 유저 수나 시청자수의 상한선도 또렷하다.

그러니 플레이할 다른 게임을 찾아 둬야만 했다.

결정적으로···.

‘다른 게임은 뭐가 있을지 궁금하단 말이지.’

더 이상 무공을 수련해서 쓸 데가 없다고 생각했었던 단천에게 VR게임은 새로운 활력소였다.

더 많은 게임을 접하고, 더 많은 게임을 해 보고 싶다.

그리고.

‘최고가 된다.’

무림에서 단천을 살아남게 만들었던 승부욕이. 이 세상에서 다시 생겨나고 있었다.

그렇게 단지은이 집을 나선 뒤. 혼자가 된 단천은 캡슐에 누웠다.

[방송 세팅이 완료되었습니다. 방송 송출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방송 시작 이틀째. 「컴맹부터 시작하는 스트리밍」에 의하자면 방송 초반에는 시청자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니 처음에는 시청자 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단천은 가볍게 마음먹은 뒤 방송 송출 버튼을 눌렀다.

[방송을 시작합니다.]

> 트하

> ㅎㅇㅎㅇ

> 천-하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몇명의 시청자가 채팅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해서 아무도 없던 어제와는 확연하게 다른 반응이다.

> 이게 그 미친 괴물 뉴비 방송임??

> 방송 떴드아ㅏㅏㅏㅏ

> 방송 이틀차 드가자ㅏㅏㅏㅏㅏ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 뭔가가 이상했다. 채팅창이 올라가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단천의 눈이 시청자수로 향했다.

[시청자 수 : 250명]

방송 초반부의 시청자수는 방송이 한창 진행중일 때보다 시청자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어제 단천이 방송중일 때의 시청자수는 분명히 40명 가량.

그런데 지금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250명이라니. 보통의 평균 시청자수는 방송 시작 시점의 4배 정도 이 정도면 평균 조회수 1000 가량의 두 번째 방송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상승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 말랑튜브 댓글 보고 왔음

> 와이씨 ㅋㅋㅋ 영상 돌려보는데 방송시작 딱되네 ㅋㅋㅋ

“말랑튜브 영상?”

‘말랑튜브는 실시간 방송이 주인 트인낭과 반대되는 UCC 사이트라고 했지.’

> 오늘 시청자 수 왜 이렇게 늘어남?

> BJ도 어벙벙한 표정인데 ㅋㅋㅋㅋ

> 말랑튜브 급상승 영상에 게임하는 거 떴잖음

> 여기 링크 드림

링크를 클릭하자 나오는 것은 3분짜리의 짧은 영상이었다.

[BJ 천마 - ‘청홍검’]

[조회수 : 120,771]

[제작자 : BJ천마 공식튜브]

“호오.”

단천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BJ천마라는 이름이 제대로 적혀 있는 것과 제대로 적혀 있는 음악, 방송 링크. 저작권이 본인에게 귀속되어 있음을 명확하게 알리는 꼬릿말까지.

서유나가 만든 영상이 분명했다.

영상 안에서 나오는 것은 단천 자신의 ‘청홍검’ 플레이였다.

최대한 이펙트를 절제하고 플레이와 노래만 들어가서 담백하게 편집되어 올라가 있는  영상.

이펙트가 점철되어 있는 다른 매드무비에 비하자면 이펙트는 전혀 없어서 단순하기 그지없어 보였지만.

오히려 이 단순함이 가야금으로 만들어진 ‘청홍검’이라는 노래와 단천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플레이를 부각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플레이 자체가 명품이라면 치장이 필요없는 법.

그 덕분에 ‘청홍검’은 올라온 지 8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조회수 10만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단순히 매드무비만이 유명세를 탔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이 영상은 공식 유튜브 채널이다. 영상에 달려 있는 방송 링크와 스트리머에 대한 정보까지 있는 상황.

영상을 본 사람들이 바로 방송으로 유입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 청홍검 미쳤다ㅏㅏㅏㅏ

> 어제 보자마자 지금까지 무한으로 돌려보고 있는 중 ㅋㅋㅋㅋ

> 안돼··· 나만의 작은 BJ천마가··· 하루만에··· 이렇게 커 버리다니···

많은 시청자가 순식간에 유입된 상황. 갑작스레 늘어난 관심에 당황할만도 한 상황이었지만. 천마신교의 백만 교도들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는 단천에게는 당황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방송을 시작하겠다.”

[리어카탈취자 님 10,000원 후원!]

[어제 신청곡 사용료!]

“오.”

그러고보니 어제 신청곡을 신청한 사람들에게 수금을 받아야 했다.

> 오 ㅇㅈㄹ ㅋㅋㅋ

> 와 이걸 진짜 돈을 내내 ㅋㅋㅋ

> 사나이의 약속···이니까···!

[보노보노 님 25,000원 후원!]

[아 그러고보니 후원 열렸나보네? 나도 곡 신청료!]

“오늘부터 후원이 가능하게 됐다. 어제 곡 신청을 한 사람들은 정산을 부탁한다.”

> 하루만에 후원받는 클라스 ㄷㄷㄷ

그 뒤를 이어서 후원 메시지가 계속 떠올랐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어제 곡을 이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제 받았던 신청곡을 생각하면 5만원 남짓이어야 할 후원금이 이십만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한 사람이 신청을 열번씩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 ㅋㅋㅋㅋ 진짜 천원 내랬다고 천원 내겠냐고

> 어제 퍼포먼스로 봤을 때 진짜 천원 내면 칼로 도륙낼듯 ㄷㄷㄷ;

“어제 내가 잘해서 그만큼 돈을 낸다는 건가?”

> 본인 입으로 잘했다고 말하니까 쪼끔 그러네요

> 맞는 말인데 열받음

> 그래서 오늘도 리세 하는거죠?

“오늘도 리드미컬 세이버를 하기는 할 거다.”

> 근데 어케 함?

> 어제 난이도 있는 곡 원트에 다 작살냈는데

> 남은 곡이 하나도 없음 ㅋㅋㅋ

“오늘은 신청곡 대신 ‘유미’의 곡을 하나 더 해 보도록 하지. 그보다는 새 게임을 찾아볼 거다.”

> 헐

> 우리 리드미컬 세이버 버리는 거야?

> 사실 어제 웬만한 곡은 다 끝내 버리기는 했지

> ㄲㅂ

채팅창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 말이 되냐 리듬게임을 3시간 겨우 했는데 할 컨텐츠가 없다는게 ㅋㅋㅋ

> 나는 3천시간 했는데도 아직 할게 남았는데 ㅠㅠ

> 게임 한 지 3시간짜리 뉴비 : 아 이 겜 망했네 컨텐츠가 없네

단천의 말도 안되는 피지컬 탓에 컨텐츠가 너무 빠르게 바닥이 난 탓이다.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으니 남은 것은 반복뿐. 똑같은 상황의 반복을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는 없다.

게다가.

> 파이널 이클레시아 ㄱㄱㄱ

> 얼마 전에 레전드 올림픽 2026 떴는데 하쉴?

> 이 피지컬으로 무슨 올림픽겜이야 당장 건샷으로 가야지

지금 시청자들은 단천이 가지고 있는 믿지 못할 피지컬을 본 사람들이다.

지금 드는 시청자들의 의문은 하나뿐.

‘BJ천마의 피지컬이 다른 게임에도 통할 것인가?’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시청자들은 제각각 자신이 좋아하는 피지컬류 게임들을 읊어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창 올라가는 채팅창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단천의 입이 열렸다.

“근데. 게임은 어떻게 사냐?”

> ??

> 얜 뭔데 게임 사는 법도 모름?

> 리드미컬 세이버는 어떻게 샀냐?

“누···지인이 사 줬다.”

> 진짜 청학동에서 오셨나

> ㄴㄴ 아디보면 무림에서 오신 천마님임

> ㄹㅇ 천마님이셨누 ㅋㅋㅋ

> 게임 사려면 ‘게임 구매’를 외치면 됨

“게임 구매.”

[스템 게임 한시적 할인!]

할인이라는 글자에 단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운이 좋군. 마침 게임이 할인하는 타이밍이라니.”

> 운이 좋기는 개뿔이 ㅋㅋㅋ

> 게임은 1년 365일 내내 할인중임 ㅋㅋㅋ 할인 품목만 바뀌지 ㅋㅋㅋ

자신의 운을 폄하하는 채팅창을 가볍게 무시한 단천은 ‘할인 중’ 마크가 박힌 게임들을 훑어내려갔다.

그렇게 훑어내려가던 단천의 눈이 한 곳에 멈춰섰다.

[다키스트 에이지]

[유저 평가 : 이겜 절대 하지마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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