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6화 (6/212)

1. 리드미컬 세이버 (6)

검을 휘두르던 단천은 슬슬 질려가고 있었다.

‘그다지 맛이 없어.’

단천은 사천당가를 떠올렸다. 처음에 사천당가를 떠올렸지만. 리드미컬 세이버를 하면 할수록 사천당가와 리드미컬 세이버는 달랐다.

사천당가의 암기술은 단순히 쳐내기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나름대로의 격조와 아름다움이 있었다.

반면 지금 신청곡들은 어떠한가. 유저들이 만든 창작마당의 난이도들은 그저 어렵기만 할 뿐이었다.

많은 갯수의 리듬 노트들을 집어넣고, 쳐내기 어렵게만 만들어놓은 물건에 불과했던 것이다.

[full perfect!]

“이번 곡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 와이씨; 이걸로도 만족이 안 되냐

> 지루해하는 표정 실화냐 ㅋㅋㅋ

> 이 사람 진짜 뉴비 맞음??? 할거 다 한 썩은물 표정인데?

단천의 나른해하는 반응과는 달리 채팅창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있으니 방송은 잘 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컴맹부터 시작하는 스트리밍」에 따르자면 스트리머는 누구보다 자신이 즐거워야 한다고 했었다.

슬슬 즐거움이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슬슬 방송을 여기까지 할까. 슬슬 신청곡도 없는 것 같은데.”

> 왜벌써끝내왜벌써끝내왜벌써끝내왜벌써끝내

> 근데 뭐 난이도 있는 곡들을 거의 다 클리어 해버려서 더 할 컨텐츠가 없긴 해

> 이 게임이 이렇게 하루컷이 나는 게임이었냐 ㅅㅂ

“좋아. 신청곡이 없다면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 유미 : 132 - 441 - 771 신청이요

단천이 방송을 끝내려는 찰나에. 하나의 채팅이 올라왔다.

> 유미좌도 왔네 ㄷㄷㄷ

> 하루만에 도장깨기 끝판왕까지 등판 ㅋㅋㅋ

채팅창의 반응을 보아하니 꽤 유명한 창작마당 메이커인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한 곡만 더 하도록 하지. 이 곡을 마치면 방송 종료다.”

채팅창에 올라온 숫자를 입력하자. 주변의 화면이 일변했다.

[곡 : 청홍검]

[제작자 : 유미]

처연한 가야금 음률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날아오는 느릿한 노트들.

> 청홍검이네

> 근데 노래가 너무 느리지 않냐?

> 초반부야 그렇지 ㅋㅋ

단천의 검도 느린 음률에 따라 느릿하게 움직였다. 첫 부분은 나쁘지 않다. 음악에 따라 플레이어를 춤추듯 움직이게 만드는 노트들.

느릿하게 시작되었던 노래가 서서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단천의 몸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노래 좋네. 이거 누구 곡임?

> 유미가 작곡도 다 한 걸로 암

> 능력자는 능력자인듯

단천은 채팅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청홍검’의 난이도가 높아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난이도로만 따지자면 신청곡 중 가장 밑바닥으로 생각해도 상관없을 정도의 난이도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단천의 눈은 다가오는 노트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까지와의 곡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 그것은 곡에 담겨 있는 의식이었다.

그저 어렵게, 난해하게,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던 지금까지의 곡들과는 다르게. 검을 휘두르는 사람을 인도하듯 만들어져 있는 노트들.

그 노트들을 따라가다 보면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추게 되는 검무劍舞.

> 이거, 이렇게 간지나는 곡이었냐?

> ㅇㅇ 원래 이럼

> 원래 이렇기는 개뿔이 ㅋㅋㅋ 다른 클리어영상 천 개를 봐라 이런 느낌이 하나라도 나는지 ㅋㅋㅋ

> 리드미컬 세이버가 망해서 클리어 영상이 천개는 커녕 열개도 없어요

> 팩트···멈춰···

‘미려하군. 사천당가의 향기를 여기서 맡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물론 암기로 일가를 이뤘던 사천당가의 것에 비하면 훨씬 조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미라는 제작자의 곡에는 분명한 사천당가의 느낌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마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경지로 갈 수 있으리라.

‘아쉽군.’

지금 이 유미라는 사람이 있는 곳은 무림이 아니었다. 사천당가의 비전을 배우기는커녕 사천당가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 곳인 것이다.

단천은 깊은 아쉬움을 느꼈다. 제대로 키우기만 하면 하루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난이도의 스테이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터인데.

그런 아쉬움을 담고. 단천의 검이 마지막 노트를 베어갈랐다. 깔끔한 착검着劍이 마무리된 단천의 입이 열렸다.

“나쁘지 않았다.”

오늘 처음으로 튀어나온 칭찬이었다.

> 킹쁘지 않았닼ㅋㅋ

> 이 사람 입에서 이 말 나온 거면 거의 극찬 아니냐?

> 나쁘지 않군(극찬)

“조용히 하고.”

> 애초에 채팅이라 처음부터 계속 조용했는데?

> ㅇㄱㄹㅇ ㅋㅋㅋ

> 채팅이 시끄러울 수는 없지 ㅋㅋㅋㅋ

채팅창을 본 단천의 눈이 급격하게 좁아졌다. 저 시덥잖은 채팅을 한 인간의 아이디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리를 틀 수가 없었다. 방송을 종료할 시간이 됐으니까.

결코 채팅을 제재하는 방법을 몰라서는 아니었다.

“예고한 대로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다.”

> 안대ㅐㅐㅐㅐㅐ

> 그래도 눈이 즐거웠다

> 내일도 방송하지???  내일도 방송하지???  내일도 방송하지???

> 아직 즐찾 안한 흑우들 없제?

“그럼. 좋은 하루 보내도록.”

> 천-바

> 천-바

> 천-바

방송 종료를 알린 단천은 방송 종료 버튼을 눌렀다.

[방송을 종료합니다.]

“후우우.”

캡슐에서 나온 단천은 길게 호흡을 뿜어냈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온 몸이 나른하다.

가상현실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도 신체활동처럼 신체의 신경을 사용한다. 자연스럽게 오래 게임을 하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다.

VR게임은 신체를 쓰는 것만큼이나 신체의 신경을 혹사하는 일인 것이다.

이런 혹사를 이겨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물론 운동이다.

“···뭐. 어차피 체력단련은 하려고 했었으니까.”

무슨 운동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던 단천의 눈에 캡슐 바깥에 달린 모니터가 들어왔다.

+

[유저에게 온 귓속말입니다.]

[유미 : 안녕하세요]

[유미 : 제 곡 클리어 해 주셔서 감사해요]

+

모니터에 찍혀 있는 것은 ‘청홍검’을 만들었던 유미라는 시청자의 채팅이었다.

“···음.”

사실 감사를 표하고 싶은 쪽은 이쪽인데.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천당가의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해 줬으니.

“그래도 고맙다고 할 필요는 없지.”

사실 저쪽에서 고마워하는데 굳이 이쪽에서도 고맙다고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었다.

성격상 맞지 않기도 했고.

+

[BJ천마 : 무슨 용무십니까.]

[유미 : 혹시 방에 매니저가 있나요?]

[유미 : 괜찮으시다면 제가 매니저를 맡아 드리고 싶어서요!]

+

“매니저라.”

단천이 오랫동안 타지생활을 해 왔다고는 하지만 매니저가 무엇인지 정도는 안다. 연예인의 스케쥴을 관리하고 귀찮은 잡무를 대행해 주는 사람. 연예인을 대리해서 교섭, 협상, 일정 조절과 같은 일까지 맡는 것이 바로 매니저다.

요악하자면,

“···부교주와 같은 자리라고 할 수 있지.”

지금의 단천은 부교주는커녕 수하 한 명을 들일 자본도 없다.

+

[BJ천마 : 죄송합니다. 제가 돈이 없어서.]

[유미 : ?]

[BJ천마 : 매니저를 고용할 돈이 없다는 뜻입니다.]

[유미 : 아 ㅎㅎㅎ 방송 매니저는 기본적으로는 무급이에요]

[유미 : 채팅방 관리만 하는 거니까요]

[유미 : 나중에 다른 업무들을 하면 그때는 정식으로 계약도 하겠지만··· 저는 그런 계약을 할 일은 없을 거고요 저도 본업이 있으니까]

[BJ천마 : 그렇군요.]

+

돈도 받지 않고 채팅창 관리를 해 준다니. 충성심 높은 부교주라고 할 수 있었다.

매니저가 무료라는 말에 단천의 생각이 바뀌었다. 당장 지금도 채팅창 관리는 어려웠다. 유저 아이디를 치고, 차단 일수를 조정하는 일련의 일을 하기 위해서 단천은 이삼 분씩을 소모해야 할 터였다.

결정적으로 이 유미라는 시청자가 매니저가 된다면. 사천당가의 암기술을 가르칠 수 있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쉬움을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추뢰비도십이식이나 사문암뢰같은 기술을 상대할 수 있을지도. 그리고 더 나아가면···.”

만천화우.

그 짜릿한 초식을 생각한 단천의 몸이 잠시 떨렸다. 만천화우를 다시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사라졌다.

+

[BJ천마 : 그러면 좋습니다. 앞으로 매니저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미 :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BJ천마 : 아. 채팅창 관리가 가능하다면. 혹시.]

[유미 : 네?]

[BJ천마 : 아까 채팅창은 원래 조용한 거라고 한 사람을 제재할 수도 있습니까?]

[유미 : ㅋㅋㅋㅋㅋㅋ 가능하죠 ㅋㅋㅋ]

[유미 : 재밌는 분이시네요 ㅋㅋㅋ]

+

왜 웃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니 다행이다. 단천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탁.

서유나는 휴대폰을 닫았다.

서유나는 머릿속으로 ‘BJ천마’가 청홍검을 클리어하는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대로 움직여주는 유려한 움직임.

“···시청자 수가 몇 명이었더라.”

방송의 퀄리티와는 다르게 시청자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충 40명, 아니면 50명 정도쯤을 오가는 시청자 수.

아마 영상을 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BJ천마의 대단함을, 그리고 자신이 만든 ‘청홍검’의 대단함을 알아챌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수가 적다. 그것도 너무나도. 영상이 다시 ‘리세게’에 올라가기는 할 테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청자로 유입되는 사람들의 수는 적디적을 것이다.

“나만 보기는 너무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봐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영상을 그대로 올려 봤자 리드미컬 세이버를 하는 사람 말고는 보지도 않을 것이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서유나는 방법을 떠올렸다.

“매드무비.”

실력파 방송이라면 으레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 매드무비다.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스트리머가 사비로 매드무비를 많드는 경우도 흔했다.

스트리머들이 사비로 매드무비를 만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청자 유입에 도움이 되니까.

“···좋아. 하나 만들어 볼까.”

서유나는 영상 편집에 손을 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처음 리드미컬 세이버의 스테이지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최상의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건 타고난 집중력 덕분이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것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일단 시작할 수 있는 실행력 덕분이기도 했다.

서유나는 퇴근과 동시에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과 동영상 편집 관련 서적을 다운로드했고.

그 날 새벽까지 동영상 편집을 한 끝에, 서유나는 매드무비 하나를 업로드할 수 있었다.

[BJ 천마 - ‘청홍검’]

동영상 업로드를 마친 서유나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이 영상이 얼마나 큰 파장을 만들어 낼 지 모르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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