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드미컬 세이버 (5)
고인물들은 깐깐하다.
카드 게임에서는 사소한 순서가 틀렸다고 딴죽을 걸고, FPS에서는 에임이 느리니 빠르니하는 것을 따지는 족속.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꼬투리잡아 판단하는 사람들이 바로 고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 미쳤다 ㅋㅋㅋ
> 하드코어 모드 풀 퍼펙트로만 1500콤보중··· 이게···인간···?
> 버그냐 이거 ㅋㅋㅋ
그런 고인물들이.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한 명의 플레이에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환호를 뒤로하고 무심하게 이어지는 검격.
촤자자자작!
[perfect!]
[하드코어 모드를 클리어하셨습니다!]
“후우.”
단천은 마지막 노트를 갈라낸 다음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서야 채팅창이 눈에 들어왔다.
> 몇트만에 풀퍼펙트 한거임?
> 오늘 방송 처음 맞냐?
> 미쳤다 ㅋㅋㅋ
채팅창에 채팅을 치는 사람들이 꽤 늘어나 있었다. 시청자 수는 30명. 절대적인 수는 많은 것이 아니지만, 아무 기반 없는 첫 방송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단천의 신경은 다른 데 가 있었다.
‘왜 반말이지.’
모니터 너머에 있는 초면인 사람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은 예의의 기본 아니던가.
그렇게 나온다면 이쪽도 반말을 하는 수밖에.
“반갑다. 플레이는 잘 봤나?”
> 드디어 말하네
> 오늘 첫방송이야?
“오늘이 첫 방송이다.”
> 갓 시작한 신선한 뉴비 ㄷㄷ
> 상도동 캡슐방에서 플레이한 본인 맞음?
“상도동에 가기는 했었는데.”
> 리드미컬 세이버 플레이는 얼마나 한거임?
> 천 시간?
> 풀퍼펙트가 천 시간으로 되겠냐 ㅋㅋㅋㅋ
> 이 정도면 최소 만 시간의 법칙 각이다
단천은 머릿속으로 자신이 리드미컬 세이버를 얼마나 했는지를 떠올렸다.
“대충 두 시간정도 한 것 같군.”
> ?
> ???
> ??????
채팅창에 떠오르는 수많은 갈고리들.
> 말을 잘못 알아들은 모양인데
> 방송한 시간 말고
> 리드미컬 세이버를 몇 시간 했냐고
“그래. 리드미컬 세이버 시작한 지 두 시간이다. 방송은 한지 한 시간정도 됐군.”
> 허언증 미쳤네
> 플레이타임 인증 ㄱㄱ
“플레이타임 인증?”
삐빅.
단천의 플레이타임이라는 말에 반응해 플레이타임이 떠올랐다.
[리드미컬 세이버 플레이타임 : 127분]
> ???????
> 이게 왜 진짜임
> 진짜 2시간이네 ㅋㅋㅋ
채팅은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리듬게임은 암기와 반복이 중요한 게임이다. 어떤 노트가 올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만 빠르게 반응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단천의 플레이타임은 고작 2시간.
암기는커녕 노래가 뭐가 있는지도 다 알 수 없을 정도의 플레이타임인 것이다.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채팅을 잠시 바라보던 단천의 입이 열렸다.
“근데. 이 게임, 다른 컨텐츠는 없냐? 게임이 무슨 2시간 하니까 할 게 없어.”
> 추가 컨텐츠가 있긴 있지
> 신청 단가 얼마냐
“신청 단가?”
> 유저 창작 스테이지 신청 단가 얼마냐고
리드미컬 세이버는 유저가 직접 노래에 맞춰서 만든 스테이지를 공유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그 덕분에 업데이트가 더 이상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 스테이지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스테이지라고 하는 것들이 더 이상 할 게 없어진 고인물들을 만족시키는 역할의 괴악한 난이도의 물건들밖에 없었지만.
“그렇군. 이 스테이지를 알려주는 대신 돈을 받는 건가.”
> 그렇지
> 빨리 알아듣네 ㅇㅇ
“···미안하지만 신청을 받아 주기는 힘들 것 같다.”
> 왜
“지금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런 스테이지를 사 줄 여력이 없다.”
> ?
> 뭐래는거야
> 돈은 신청하는 사람이 내는 건데?
“뭐···라고?!”
> 스테이지 신청하는 사람이 돈을 내야지.
“그러니까. 자진해서 스테이지를 만들고, 그 열심히 만든 스테이지를 스트리머에게 시키는데, 돈도 신청자가 낸다는 말이지?”
> 바로 그거임
> 표정봐 ㅋㅋㅋ
> 찐뉴비였네 ㅋㅋㅋ
> 요새는 청학동에도 와이파이 터지는데 어디서 살다 온거임?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방식이지만. 단천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다.
공짜로··· 아니. 돈을 받으면서 새로운 스테이지를 즐길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너무 비싸게 받으면 스테이지를 신청하는 사람이 적을 터.
“단가는··· 천원으로 하지.”
> 개혜자네
> 당장 신청간다
> 근데 후원이 막혀 있는데?
그러고 보니 아직 후원 계좌를 열지 않았었다.
“일단 신청하고. 후원금은 나중에 내도록.”
> 우리가 먹튀하면 어쩌려고?
“그런 놈들은 직접 찾아가서 받아내야지.”
> 패기보소 ㅋㅋㅋ
> 농담을 왜 이렇게 진지하게 해 ㅋㅋㅋ
> 누가 보면 진심인줄 알듯 ㅋㅋㅋ
> 스테이지 신청 : 112-198-7756
유저 스테이지의 숫자를 입력하자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극도로 높은 BPM의 노래.
높은 BPM에 맞춰 날아오는 엄청난 속도의 노트들.
그리고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단천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파바바바박!
[perfect!]
[perfect!]
[perfect!]
> 와 씨
> 처음 하는 곡 맞음?
> 무슨 죄다 퍼펙트가 떠 ㅋㅋㅋ
단천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채팅창은 계속해서 놀라움으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저가 만들어낸 스테이지는 심각하게 불합리하기 때문이었다.
고일 대로 고인 인간들이 자신의 만족감과 다른 유저들의 고통을 위해서 만들어낸 깰 수 없는 스테이지가 바로 유저 창작 스테이지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스테이지들이.
[풀 퍼펙트를 성공하셨습니다!]
“다음.”
[풀 퍼펙트를 성공하셨습니다!]
“다음.”
[풀 퍼펙트를 성공하셨습니다!]
“다음.”
하나하나 깨어져 나가고 있었다.
***
“지루해.”
강남역의 삼룡전자 사무실 서유나는 입을 삐죽이고 있었다. 노력을 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 누구나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다닌다.
누군가에게는 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왜인지 권태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서유나 대리. 맡겼던 작업은···.”
“모두 완료됐습니다.”
“역시 서유나 대리야. 점심 식사는 안 해요?”
“오늘은 도시락 챙겨 왔습니다.”
맡겨진 일들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며 서유나는 피로함을 느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이렇게 인생이 지나갈 것만 같은 느낌.
“이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인 걸까.”
알고 있다. 직장인의 삶이라는 게 다 이렇고, 모든 사람들이 대충 이것과 비슷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녀는 권태감은 있을지언정 그래도 살아가고 있었다. 다들 이렇게 사니까. 물론 이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그녀 나름대로의 배출구도 있다.
「리드미컬 세이버」가 바로 그것이었다. 업무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어느 날 충동적으로 지른 VR 캡슐에서 처음 접했던 리드미컬 세이버.
검을 휘두를 때마다 느껴지는 해방감과 노트들을 부술 때마다 느껴지는 쾌감에 그녀는 금방 중독되었다.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건 별개라서 아쉬워.’
소위 발컨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녀의 실력이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는 다른 재능이 있었다.
바로 창작 스테이지를 만드는 재능.
그녀가 만든 창작 스테이지들은 극한의 어려움과 높은 완성도로 유명했다.
‘리세게’의 창작 스테이지계 1인자가 바로 그녀였다. 리드미컬 세이버 게시판에서 스테이지 메이커 ‘유미’를 말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한때는 리드미컬 세이버 게시판에 들어가면 ‘유미’가 만든 스테이지 클리어 영상으로 게시판이 도배되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것도 지금은 옛날 이야기지만.”
이제는 리드미컬 세이버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애초에 리듬 게임 자체의 인기도 거의 없어진 상황.
서유나는 도시락의 뚜껑을 열며 습관처럼 리드미컬 세이버 게시판을 열었다.
게시판을 열기는 했지만 평소처럼 게시판은 활기가 없이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오늘자 미쳐버린 뉴비]
[이게 사람이냐 인간이냐 ㅋㅋㅋ]
[BJ천마 반응속도 레전드]
“뭐지?”
다 죽어가던 리드미컬 세이버 게시판에 활기가 돌고 있었다.
추천글 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이 벌써 30개 가량. 다 죽어가는 게시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경이적인 수준의 글 리젠.
서유나는 홀린 듯이 그 중 하나의 글을 클릭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노래. 고인물들이 모인 ‘리세게’에서도 난이도로 악명 높은 곡이었다.
그리고 화면 안에서 춤추듯 검을 움직이는 한 플레이어.
“···우와아.”
서유나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올 퍼펙트도 올 퍼펙트였지만, 화면 안의 플레이어의 움직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었다.
서유나는 휴대폰의 자판을 누르기 시작했다.
─ 이거 플레이어 누구야?
답은 금방 돌아왔다.
└ 지금 방송하고 있는 BJ천마라는 뉴비. 며칠 전에 조작이라고 말 나왔던 영상 주인공임
└ 신청곡도 공짜로 받는 중
└ 공짜가 아니라 천원이라던데?
└ 신청하고 안 내면 되지 ㅋㅋㅋ
“그거, 조작 아니었구나.”
서유나는 중얼거렸다. 분명히 조작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작이 아니었다니.
그보다, 지금 방송중이라고?
서유나는 답변을 보자마자 트인낭에 접속했다.
[All Combo!]
> ㅁㅊ 또 올콤이네 ㅋㅋㅋ
> BJ천마! BJ천마! BJ천마!
서유나는 조그마한 휴대폰 화면을 빨려들어가듯이 바라봤다. 두 번의 영상에서 보던 것과 같은 완벽하고 유려한 움직임.
“우와아.”
다시 한 번 서유나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스테이지 클리어!]
[···이번 곡은 좀 별로였다.]
곡이 끝나자마자 BJ천마는 자신이 방금 클리어한 곡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일단 음악과 리듬 자체가 맞지 않고, 대부분의 노트들이 베기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단조롭고 뻔해.”
> 고인물들이 만든 난이도 평가하는 뉴비 ㅋㅋㅋ
> 떠흑 마이깟 ㅠㅠ
> 뉴비의 진심펀치가··· 고인물들을 덮친다···!
방금 곡은 ‘리세게’에서도 꽤나 난이도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 곡이었는데 저런 평가라니.
[이전 곡도, 그 이전 곡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쓸만한 스테이지가 더는 없는 건가?]
> 패기 ㅁㅊㄷ ㅋㅋㅋ
> 이게··· 천마?
노골적인 도발인데도 채팅창의 분위기는 오히려 호평 일색이었다. 하긴, 올콤보를 계속 터트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도발은 도발이 아니라 정당한 평가가 되어버린다.
서유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내 곡에는 어떤 평가를 해 주려나.”
궁금함이 생기자마자 서유나의 손가락은 자신이 만들어낸 스테이지의 번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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