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4화 (4/212)

1. 리드미컬 세이버 (4)

“역시. 현대는 편하기 그지없단 말이지.”

단천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21세기 문명의 위대함을 다시금 절감했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가 있으면 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21세기의 장점 아니겠는가.

정보의 바다에서 원하기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기 그지없다.

“역시. 도서관은 최고야. 스트리밍 시작법도 배울 수 있고.”

「컴맹부터 시작하는 스트리밍」

단천은 새벽같이 정보의 바다. 즉 도서관에 가 빌려온 스트리밍 책을 펼쳐들었다.

다른 여러 스트리밍 관련 서적도 있었지만 가장 오래된 책을 빌려왔다. 아무래도 오래 됐다는 것은 그만큼 정보의 검증이 이뤄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무공 비급만 해도 원본이 가장 가치있지 않던가.

단천은 너덜너덜해진 책이 뜯어지지 않도록 표지를 살살 넘겼다.

“제 1장. 스트리머 시장이란 무엇인가.”

단천은 도서관에서 건져온 책을 무공비급이라도 읽는 양 읽어갔다. 책을 읽어 나가는 데에는 거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독자 생활을 오래 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속독 덕분이다.

“흐음, 흐음. 좋았어.”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던 단천이다. 자신의 손으로 뭔가를 직접 하는 것이 얼마만이던가. 선을 연결하고 키보드를 누르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즐거움이었다.

[게임의 정격 용량은 1000W로 고정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높은 전압이 걸리면 게임이 다운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단천은 자신의 「카오스 맥스 트리플 헤드 블루 아이즈 캡슐」의 정격 용량을 5000W에서 1000W로 내렸다.

설치 기사들이 와서 게임 모드로 제대로 세팅해 놓는다고 했었는데. 이런 세세한 조정까지는 전혀 손대지 않은 모양이다.

“이래서 정보가 중요하다는 거지.”

만약 「컴맹부터 시작하는 스트리밍(2009년 저) 」이 없었다면 게임 세팅부터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애정을 담아 빌려온 책을 몇 번 쓰다듬은 단천은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했다.

“좋았어. 가입 완료.”

스트리밍 사이트인 「트인낭」에 가입을 완료한 단천은 캡슐 안에 몸을 실었다.

[게임의 정격 용량이 낮습니다.]

[게임의 그래픽 품질이 낮습니다.]

[게임의 지연 속도가 낮습니다.]

[이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괜찮아. 그대로 진행해. 믿을만한 책이 알려주는 대로 세팅했거든.”

[게임을 진행합니다.]

[스트리밍 모드가 감지됩니다. 스트리밍을 시작하시겠습니까?]

“그래.”

[스트리머 모드 ON]

[스트리머명이 없습니다.]

[스트리머명을 설정해 주세요.]

“스트리머명이라.”

단천은 머릿속에서 「컴맹부터 시작하는 스트리밍」을 떠올렸다.

[BJ명은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방송의 방향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의 아이덴티티라.’

자신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명칭이라면.

“단 하나뿐이지.”

단천은 두 검지손가락을 매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놀려 BJ명을 적어넣었다.

타닥···탁. ···탁.

···타닥.

[스트리머 ‘BJ천마’님. 스트리밍을 환영합니다.]

***

「리드미컬 세이버」는 좋은 말로라도 인기가 있는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VR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의 코어 팬층이 단단했다.

그리고 이 코어 팬들이 모이는 게시판도 존재했다.

[리드미컬 세이버 게시판]

물론 코어 팬들이 모여 있다고는 해도 게임이 오래 된만큼 그렇게 활성화된 게시판은 아니다. 보통은 조용하게 하루에 글 몇 개만 올라오는 게 전부인 게시판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리세게」가 오랜만에 들썩이고 있었다.

[제목 : 하드코어 올콤영상 떴다!]

[내용 : 어제 상도동쪽 캡슐방 갔다가 찍은 영상임]

리세게에 올라온 리드미컬 세이버 플레이를 찍은 하나의 동영상 때문이었다.

동영상에는 한 명의 남자가 날아오는 모든 노트들을 갈라내는 플레이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봤다면 대단하다고 박수를 쳤을 영상.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던가. 이 영상을 바라보는 고인물들의 반응은 그 이상이었다.

─ㅁㅊ. 지금 게임 내내 풀 퍼펙트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거임?

└ 하드코어 모드 풀 퍼펙트는 처음 보네 ㄷㄷㄷ

└└심지어는 쥐고 있는 무기도 커스텀 안한 기본 검 아니냐? 그걸로 풀 퍼펙트를 한다고?

└└└대체 얼마나 고인 놈인 거야 ㅋㅋㅋㅋㅋ

풀 퍼펙트. 「리드미컬 세이버」의 리듬 노트들을 정확한 위치에서, 정확한 타이밍에 타격했을 때 떠오르는 추가 판정이다.

추가 판정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스코어 추가도, 이득도 존재하지 않는다.

있는 것이라고는 노트들이 터질 때 좀 더 반짝이며 화려하게 터진다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본래 게임의 고인물들일수록 게임에 아무 의미없는 ‘멋’에 열광하는 법.

리세게 유저들은 처음 보는 게이머의 플레이에 한껏 열광하고 있었다.

물론 열광하는 플레이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 저거 주작 아님?

└ 이딴 똥겜을 누가 주작까지 하냐 ㅋㅋㅋ

└└ 아니 이 판이 좁은 건 죄다 알고 있을건데 저 플레이어 누군지 아는 사람 있음? 아무도 없잖아. 근데 갑자기 나타난 놈이 다짜고짜 풀 퍼펙트를 풀콤 넣는다고?

└└└ 인생 피곤하게 산다 너는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플레이의 조작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존재했던 것이다.

[첨 봤을 때부터 좀 의심스럽긴 했음]

[플레이 영상이 조작으로 보이는 12가지 이유들.jpg]

[저 플레이어 얼굴 아는 사람도 없잖아]

[뭐만 하면 주작이라고 하고 보네. 너네들 인생도 주작이냐?]

[내 인생이 주작이 아니었다고···?]

[인생은 당연히 조작이지 ㅋㅋㅋ]

[내가 지금 인생을 실시간으로 조져먹고 있을 리가 없잖아 ㅋㅋㅋ]

조작 논란은 순식간에 점화되어 조그마한 게시판을 활활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논란이 활활 타오르고 있을 시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이 BJ천마라는 사람. 지금 논란 되고 있는 플레이어 아니냐?]

***

“일단 방송을 켜기는 했는데. 무슨 게임을 해야 하나.”

아니. 애초에 게임이 있기는 한가?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할 게임을 먼저 골랐어야 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게임 목록 확인.”

[캡슐에 설치된 게임 목록을 로딩합니다.]

[설치 게임 : 1종류]

「리드미컬 세이버」

“리드미컬 세이버가 있다고?”

[미확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동생아. 캡슐이 있는데 게임 하나 없을 게 분명하니 네가 재밌게 했던 리드미컬 세이버 선물해놓고 간다.

받기 싫어도 받아! 퇴원 선물이라고 생각해! 다른 게임 필요하면 말하고. 재밌게 해.]

단지은이 게임 하나 없을 게 분명한 자신을 위해 리드미컬 세이버를 선물해 준 것이다.

덕분에 할 게임이 생겼다. 캡슐을 끄고 CD방에 가서 게임을 사 와야 할 수고는 던 것이다.

리드미컬 세이버를 실행하자 전에 한 번 봤던 화면이 떠올랐다.

“어디 보자. 지난 번에 했던 게임 모드가. 하드코어 모드였었지.”

하드코드 모드 위의 모드를 찾으려던 단천의 손가락이 멈춰섰다.

하드코어 모드가 게임 난이도의 최고 모드였던 것이다.

“···이 게임. 컨텐츠가 부실하네.”

평범한 게이머라면 수백 시간을 부어넣어야 맛이라도 볼 수 있는 것이 하드코어 모드였지만, 그건 단천이 알 바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른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청자 수 : 0명]

···첫 시청자가 들어오기 전까지 몸을 푼다고 생각해도 되고.

“하드코어 모드 실행.”

[하드코어 모드를 실행합니다.]

지난 번에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아오는 리듬 노트들.

서걱!

[perfect!]

단천의 검이 날아오는 리듬 노트를 갈라냈다.

처음 할 때 초반 몇 개는 놓쳤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일이 없었다.

수려한 검격들이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리듬 노트들을 얼마나 갈라내었을까.

> 못보던 방송이네

> 뉴비 ㅎㅇ

첫 채팅이 올라왔다. 하지만 대답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슬슬 본격적인 노트 콤비네이션이 시작되고 있었기에.

단천은 대답 대신 검을 휘둘렀다.

서걱!

[perfect!]

> ㅗㅜㅑ

> 지금 풀 퍼펙트 터진 거임?

[perfect!]

[perfect!]

[perfect!]

> 지금 계속 풀 퍼펙트 뜨는 거임?

> 얼마전에 상도동에서 풀퍼펙한 그 인간 맞음?

[perfect!]

[perfect!]

> ㅅㅂ 님 뭐임

> 뭐냐고

> 그러고 보니

[perfect!]

[perfect!]

[perfect!]

[perfect!]

> 일단

> 이걸

> 나 혼자 볼 수는 없지

> ㄱㄷ 게시판에 방송 링크 걸었음

단천이 채팅에 신경쓰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시청자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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