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3화 (3/212)

1. 리드미컬 세이버 (3)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노트들. 노트들은 쉴 새 없이 단천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저토록 많은 갯수의 노트들이라면 몇 개쯤, 아니면 하나쯤이라도 새어 나갈 만도 하건만.

[Perfect combo!!]

[Perfect combo!!]

[Perfect combo!!]

단 하나의 노트도 단천의 몸에 닿지 못하고 있었다.

중계 TV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홀린 듯이 단천의 플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여기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리드미컬 세이버」를 아는 플레이어들은 아니었다. 애초에 리듬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마이너한 게임이었으니까.

하지만. 게임의 난이도를 몰라도, 게임의 방식을 몰라도, 심지어는 게임이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사람을 눈을 휘어잡는 ‘플레이’ 라는 것이. 세상에는 있다.

단천의 움직임이 바로 그런 것처럼.

“우와아!”

“말도 안 돼!”

“미쳤다! 진짜!”

자신에게 쏘아지는 모든 노트들을 조금의 오차도 없이 막아내고 있는 단천의 모습에 사람들은 쉴 새 없이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단지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와···.”

그녀 자신도 리드미컬 세이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단천이 지금 하고 있는 플레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척 봐도 알 수 있다.

“저러다 백만 점 뚫겠는데?”

“벌써 80만점 넘었어!”

리드미컬 세이버의 점수 산정 방식은 굉장히 엄격하다. 초반에는 쉽게 콤보를 인정해 주지만 콤보 수치가 올라가면 갈수록 콤보를 인정해 주는 타이밍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리고 종래에는 콤보를 인정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내로라하는 고인물들조차 콤보를 100개 이상 이어가는 게 불가능할 정도의 빡빡한 판정.

그뿐만이 아니다. 콤보 스코어에 따라 난이도도 조정된다. 10만점을 단위로 노트들에 새로운 기믹들이 추가된다.

10만점부터는 노트가 날아드는 방향이 추가되고, 20만점부터는 오랫동안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노트가 추가되는 등.

그렇기에 「리드미컬 세이버」는 점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점수를 올리기가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가게에서도 100만점이라는 점수를 걸어놓은 것일 테고.

[콤보 점수 : 900,000]

“90만 점 넘었다!”

[마지막 레벨이 적용됩니다.]

마지막 기믹이 적용되자, 단천을 향해 날아들던 노트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보이는 것은 단지 저 멀리에서 날아오는 노트들 뿐.

그리고 그 노트들조차도 어느 위치를 기점으로 계속해서 증발해 버린다.

“뭐야?”

“버그인가?”

“아저씨! 저기 버그 난 것 같은데요!”

갈라야 하는 노트가 사라져서 모두가 버그라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도 단천의 검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촤라라라락!

[Perfect combo!!]

[Perfect combo!!]

[Perfect combo!!]

[콤보 점수 : 901,300]

그리고 단천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올라가는 콤보 숫자와 콤보 점수.

“뭐야. 그냥 계속 점수 올라가는데?”

“칼만 휘둘러도 점수가 올라간다고?”

아니. 칼만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천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뭔가가 희미하게 잘려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들려오는 노트들이 잘리면 나오는 효과음.

그 모습을 보던 관객들의 머리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오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설마.”

“투명 블럭들이 날아오고 있는 거야?”

“······와.”

단천은 보이지 않는 노트들을 잘라내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날아오기 시작하는 노트들의 위치와 형태를 기억하고.

날아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정확하게 가른다.

서걱!

말로 하기는 쉬워도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미쳤다!”

“우와아아!”

그리고 다시 한 번. 탄성이 구경꾼들에게서 터져나왔다.

***

보이지 않는 노트들을 대면했을 때에도 단천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암기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중원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었으니까.

심지어 암기의 조종인 사천당문의 만천화우는 보이지 않는 암기를 쉴 새 없이 뿌려댄다. 심지어 그 방향이 계속해서 바뀌기까지 한다.

‘그러니 이 정도는 쉽지.’

지금 자신이 플레이하고 있는 리드미컬 세이버는 친절하게 노트들의 시작점과 날아오는 방향을 알려주기까지 한다.

그러니 못 쳐낼 이유가 전혀 없다.

단천은 기분이 좋아졌다. 이 세상에 온 순간 더 이상 천마로서 남은 것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남은 것이 있었다.

무림에서 그가 쌓아온 지식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즐거웠다. 오랜만의 검무劍舞가.

즐거웠다. 이제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자신의 무武가. 무공은 없을지라도 조금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마지막 노트가 날아오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촤아악!

[하드코어 인피니티 모드 클리어!]

단천의 검이 마지막 노트를 베어내자 거대한 팡파레 소리와 함께 화면이 바뀌었다.

[최종 스코어 : 1,120,000점]

“···백만 점은 넘었군.”

스코어를 확인한 단천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이거. 어떻게 끄는 거지.”

컴퓨터 게임이면 그냥 종료하면 된다. 그런데 이놈의 VR게임이라는 것은 어떻게 종료를 해야 하는지가 영 감이 오질 않는다.

몇 번 공중을 휘적거리던 단천은 무림에 처음 떨어졌을 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상태창?”

물론 이번에도 반응은 없었다. 단천이 살짝 민망함을 삼키고 있을 때. 알림 메시지가 떠올랐다.

[퓨쳐퓨전 게임방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용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다음 번에 다시 이용해 주세요!]

그리고 그대로 세상이 꺼졌다. 왜인지 주변이 시끌시끌했다. 헤드셋이 가리고 있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헤드셋을 벗고 캡슐을 나서자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뭡니까?”

“플레이 봤어요! 엄청나던데요?”

“싸인! 싸인 해 주세요!”

“싸인 없습니다.”

자신의 플레이를 본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오락실의 뒷자리나 PC방에서 잘하는 플레이어를 뒤에서 구경하는, 그런 느낌인 거겠지.

어쨌거나 자신의 검술을 좋게 봐 줬다니 기분은 좋다.

“천아. 엄청 잘한다! 이런 칼질은 어디서 배운 거야?”

“무협지에서 배웠어.”

“무협지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 줘?”

“어.”

“···나도 시간 날 때 무협지나 좀 읽어둘 걸.”

“아. 상품 받으러 가야지.”

“상품이 있어?”

“어. 백만 점 넘으면 VR캡슐을 준다고 하던데.”

“VR캡슐?”

VR캡슐이라는 말에 단지은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백만 점 넘었으니까 VR캡슐 맞죠?”

“···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카운터를 맡고 있던 알바생이 당황해서 전화를 어디론가 걸자, 몇 분 뒤에 캡슐방의 주인이 뛰어들어왔다.

“저, 그, 백만 점을 넘으셨다고···.”

점주가 말꼬리를 흐렸다.

애초에 이벤트성으로 만들어놓기는 했지만 리드미컬 세이버는 점수를 내기가 엄청나게 어려운 게임이다.

백만 점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품을 백만 점으로 걸어놓은 건데.

실제로 백만 점을 넘는 인간이 나올 줄이야.

실제로 지금 상품으로 걸어 놨던 캡슐은 마련해 두지도 않은 채였다.

점주의 눈이 빠르게 굴러갔다.

“저. 죄송하지만 이벤트 기간이 지나서 수령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원래 이벤트 기간이 지난 주로 종료가 됐는데 배너가 계속 걸려 있었던 모양입니다.”

되도 않는 소리에 단천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무림에서도 이런 인간들은 수없이 많았다. 앞에서의 말과 뒤의 말이 다른 인간.

이곳이 중원이었다면 분근착골으로 제대로 입을 열게 만들었겠지만.

이곳은 중원이 아니었다.

‘···어떻게 한다.’

단천이 눈 앞의 인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 지를 고민하던 그때 단지은이 앞으로 나섰다.

“감당 가능하시겠어요?”

“네?”

“저. 변호사거든요.”

단지은이 점주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법정 싸움까지 가면 지연이자랑 변호사비까지 물어 내셔야 될 텐데요. 지금이라면 하이엔드 대신 중고가 캡슐 정도로 만족하겠지만요.”

“어, 어, 그, 하지만 그래도 백만 점을 돌파하셨으니 저희가 캡슐을 상품으로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지은이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나. 변호사였어?”

게임방을 나오자마자 단천은 단지은에게 물었다.

단천이 기억하는 단지은은 매사에 좀 서툴고 어벙한 기가 있는 누나였다. 그런 누나가 변호사가 됐다니.

“빽도 인맥도 돈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법을 알아야만 손해를 안 보고 살 수 있거든.”

“···그렇구나.”

10년이라는 시간은 자신의 생각보다 긴 시간인 모양이다. 햇병아리같던 고등학생이 세상에 지쳐 변호사가 되게 할 수 있을 만큼.

“캡슐은 중고로 팔기 전까지만 우리 집에 둘게.”

“VR캡슐을 판다고? 왜?”

“누나한테 월세 내야 되니까.”

“무슨 놈의 월세야! 그냥 우리 집에 살아!”

“아니. 금전관계는 확실하게 해야지.”

단천의 표정은 단호했다. 혈육 관계이든 뭐든 집에 더부살이하면 당연히 돈을 내야 한다는 표정.

‘그래서 리드미컬 세이버를 한 거구나.’

돈이 될 만한 상품을 따서 월세를 내기 위해서 이벤트에 참여한 것이리라.

“집세를 정 내야 한다면 천천히 내도 돼. 나중에 몰아서 내도 되고. 그러니까 캡슐은 쓰다가 팔자.”

“사용하면 중고가 되잖아. 신품으로 팔아야 제 값 받고 팔지.”

단천의 표정은 단호하기 그지없다. 단지은은 리드미컬 세이버를 하던 단천의 표정을 떠올렸다.

그렇게 즐거워하는 단천의 얼굴을 단지은은 처음 봤었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단천에게 VR게임을 더 시켜주고 싶다.

“천이 너. 게임 엄청 잘하더라.”

“그다지 잘하진 않아. 운 좋게 나한테 맞는 게임이 있었을 뿐이지.”

“혹시 스트리머 해 볼 생각 없어?”

“···스트리머?”

“그래. 스트리머. 게임 방송을 해 주고 돈을 버는 사람들 말이야.”

“프로게이머잖아.”

“아니. 프로게이머랑은 달라.”

단지은은 떠듬거리면서 게임 스트리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누나 말은 게임을 해 주면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이 돈을 낸다는 거지?”

“그렇지.”

그러고 보니 그런 직업이 있었다는 걸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모르잖아. 네가 게임을 잘 하기도 하고, 기왕 비싼 캡슐 생긴 김에···.”

“팔지 말고 스트리머를 해 보라고?”

“그래. 집세는 달아 놓을 테니까 스트리머 해서 돈 벌면 그때 내.”

확실히 게임을 하는 것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것만한 일이 없기는 하다.

어디 나갈 일도 없으니 몸을 단련할 시간도 벌 수 있을 테고.

결정적으로 「리드미컬 세이버」를 하며 단천이 느꼈던 것은 게임 안이라면 현대 세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훈련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훈련을 할 수 있다면 검술실력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 터였다.

‘···굳이 검술실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가 싶기는 하지만.’

해 보고 정 안 되면 중고로 캡슐을 팔아넘겨도 괜찮을 것이다. 가격이 떨어지는 게 문제지만···.

‘최대한 깔끔하게 쓰지 뭐.’

“한 번 해 볼게.”

게임 스트리밍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이곳은 무림이 아니다. 정보를 얻는 방법이야 지천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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