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2화 (2/212)

1. 리드미컬 세이버 (2)

단천은 검을 들어올렸다. 검의 무게가 느껴졌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알맞은 무게다.

단천은 이 VR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콘크리트 냄새와 탁한 공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 중원에 떨어졌을 때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몸이.

‘가볍다.’

팔다리가 물 먹은 솜 같던 원래의 몸과는 달리 몸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인다.

미묘하게 자신의 생각보다 부정확하게 움직이는 면이 있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확실히 몸을 움직이기 편하다.

단천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VR를 신기해하고 있는 중에 알림음이 들려왔다.

[리드미컬 세이버가 시작됩니다.]

[단계 : 1]

“아. 잊어버릴 뻔했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지금 리드미컬 세이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VR기계를 따서 단지은에게 집세라도 내기 위해서는 그래도 꽤 괜찮은 점수를 내야 한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노트(note)들.

단천은 검을 들어올려 노트를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되어서 그런지 노트들의 속도는 느릿느릿했다. 게임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붉은 색은 베기. 파란 색은 찌르기인가.”

첫 몇 번의 노트들을 흘려내자마자 금방 적응이 됐다.

‘암기를 쳐 내는 느낌으로 플레이하면 되겠군.’

쉭!

Perfect!

쉬익!

Perfect!

쉬익!

Perfect!

검을 휘두를 때마다 완벽한 타이밍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퍼펙트 메시지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

“아직도 리드미컬 세이버 하는 사람이 있네.”

“저거? 엄청 오래 된 게임 아니야?”

게임룸의 플로워의 TV 앞에서 단지은은 단천의 플레이를 바라봤다.

“칼 드는 폼이 좀 들어 본 폼인데?”

“그렇지?”

“···쟤가 검을 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단천은 검은 물론이고 막대기조차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리드미컬 세이버 안의 단천은 꽤 그럴듯하게 검을 들고 있었다.

무협지에서 검을 쥐는 법을 배우기라도 한 거겠지.

그렇게 무협지를 읽더니 VR게임을 처음 시작하자마자 고른 게임도 칼 휘두르는 게임이다.

화면 안의 단천은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더니 검을 들어올렸다.

서걱!

Miss!

“폼은 그럴듯한데 잘 하지는 못 하나봐.”

단지은의 속에서 뭔가가 울컥했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단천은 리드미컬 세이버는 커녕 VR게임도 처음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게임 좀 못 할 수도 있지.”

누구에게도 안 들리게 혼잣말은 웅얼거린 단지은은 화면을 바라보며 주먹을 꼭 쥐었다.

몇 번 검을 휘적거리며 miss를 몇 번 띄우던 단천의 검이 처음으로 노트를 제대로 갈랐다.

Perfect!

“오. 이번엔 제대로인데? 퍼펙트잖아!”

“뭐, 방금 동작 보면 완전 초보자였잖아. 뒷걸음질치다가 한 번 우연으로 맞출 수도 있지. 다음 번에도 계속 퍼펙트 뜨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Perfect!

Perfect!

Perfect!

구경꾼의 말을 비웃듯 단천의 검이 날아드는 노트들을 정확하게 갈라 버렸다.

“···라고 할 뻔했네.”

“야! 인두 들고와! 손가락 지지게!”

“저 사람 초보자 맞아?”

그 다음도, 그 다음도 단천의 검은 계속해서 노트들을 갈라냈다.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단지은은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는 단천의 모습을 바라봤다. 화질이 그리 좋지 않아서 표정을 잘 읽을 수는 없었지만···.

‘즐거워 보이네.’

맨날 병석에서 어디서 구해온 책만 읽어서 책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역시 VR게임방에 단천을 데리고 온 것은 잘 한 일이었다.

VR(Vertual Reality)은 플레이어의 신경망을 읽어내어 게임을 조작한다. 단천이라도 게임 속이라면 자유롭게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단천에게 딱 맞는 물건이다. 병원에서는 여러 문제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지만. 단천은 더 이상 병원 신세를 질 이유도 없고.

단지은은 휴대폰을 꺼내 검색창에 ‘VR게임 캡슐’을 검색했다.

“뭐가 이렇게 비싸.”

구형 캡슐 하나만 해도 400만원대. 심지어 최신형 캡슐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마음 같아서는 방금 병원을 나온 동생에게 최신형 캡슐을 사 주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다.

“···중고는 얼마나 하려나.”

[중고 : 블루 아이즈 VR 캡슐]

[가격 : 3,000,000]

중고 매물을 검색해 봤지만 중고 캡슐도 중고가 방어가 엄청나게 잘 된다. 수요가 많은 탓이다.

그래도 못 살 가격은 아니다. 그래. 동생이 병원에서 나왔다는데 이 정도쯤이야.

그래도 괜찮은지 알아보고는 사야겠지.

[동생 VR캡슐로 ‘블루 아이즈’ 사 주려고 하는데 이 정도 성능이면 괜찮나요?]

[└그거 살 바에는 그거보다 한 단계 위인 ‘트윈 헤드 블루 아이즈’ 사 줘라. 성능 차이는 엄청난데 가격 차이도 얼마 안 남.]

“···진짜네.”

성능 차이는 모르겠지만 사용자가 성능 차이가 압도적이라고 하니 틀리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도 가격은 10%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다.

[동생 사 주려고 하는데 ‘트윈 헤드 블루 아이즈’ 괜찮나요?]

[└트윈 헤드 살 바에는 돈 조금만 더 써서 트리플 헤드 블루 아이즈 사야지 ㅉㅉ 가격차도 별로 안 나는데.]

“···진짜네.”

[‘트리플 헤드 블루 아이즈’ 동생 사 주려고 하는데 괜찮아요?]

[└트리플 헤드 사는 놈이 ㄹㅇ 호갱이지 ㅋㅋㅋㅋ 그 돈으로 쿼드라플 헤드 사고 만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카오스 맥스 트리플 헤드 블루 아이즈 캡슐]

[가격 : 50,000,000]

“···뭐지.”

분명 중고가 300만원의 저렴한 중고 기체를 선물할 생각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5천만원짜리 캡슐이 돼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블루 아이즈를 살 바에는 트윈 헤드가 무조건 낫다. 트윈 헤드를 살 바에는 트리플이 낫고, 트리플을 살 바에는···.

“그러니까 카오스 맥스 트리플 헤드 블루 아이즈가 최선의 선택이란 거지.

···잘못 생각한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

단지은이 차분히 잘못된 부분이 어디인지를 복기하고 있는 도중에도.

“와. 저 사람. 잘한다.”

“계속 퍼펙트인데? 저거 맞아?”

“10만점 넘었는데?”

“야. 영상 찍어! 영상!”

단천의 플레이를 구경하는 구경꾼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

‘꽤 괜찮은걸.’

처음에는 노트들이 다소 느릿느릿하게 날아왔기 때문에 긴장감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난이도가 올라갔다.

그 결과, 지금은 꽤나 몸을 움직일 만한 난이도가 되어 있었다.

[Perfect combo!!]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메시지. 안 그래도 빠르던 음악의 BPM이 한층 더 올라갔다. 그에 맞춰서 날아오는 노트들의 갯수도, 속도도 늘어난다.

파바바바박!

[Perfect combo!!]

물론. 그 갯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날아드는 암기를 쳐 내는 일은 단천이 목숨을 걸고서도 수천, 수만 번은 반복했던 일이다.

목숨이 걸린 상태에서도 해 냈을진데, 이런 게임 안에서 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백만 점은 얼마나 남았지?’

─아니. 확인할 필요 없다. 점수가 얼마나 차올랐는지를 알게 되면 신경이 쓰일 테니까.

그런 것보다 당장 날아오는 암기들···이 아닌 노트들을 쳐 내는 데 집중하자.

촤라라라락!

그렇게 쉴 새 없이 단천의 검이 노트들을 갈라내기를 한참.

갑자기 음악의 리듬이 느려지고, 날아오는 노트들의 갯수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평범한 게이머라면 별 생각 없이 느꼈을 타이밍이지만. 단천은 오히려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슬슬. 뭔가가 오겠군.’

날아드는 암기가 현격히 줄어든다는 건. 상대가 호흡을 고르고 비축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폭풍의 눈과 같은 고요한 상태가 왔다는 것은, 그 고요만큼 거대한 태풍이 몰아닥칠 것을 암시하는 것.

그러니. 안심하지 않는다.

단천은 호흡을 정비하고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렇게 준비를 끝낸 순간.

[Final BOSS!!]

느려질 대로 느려졌던 음악이 이전에 없을 정도로 빨라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날아들기 시작하는 수천 수만 개의 암기들.

“역시나군.”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은 노트들.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될 법할 정도의 난이도이건만.

단천의 입꼬리는 쳐지기는커녕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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