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화 (1/212)

1. 리드미컬 세이버 (1)

칠대천마 단천.

이 이름이 무림에서 가지는 이름은 특별하다.

그의 위명이 특별한 것은 단순히 그가 무림 역사의 핵심인 천마의 이름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천은 대대로 천마의 혈통만이 교주가 되는 천마신교에서 자신이 가진 힘만으로 천마의 위爲를 강탈한 인간이자.

중원의 내노라하는 모든 고수들을 무릎꿇려 자신이 천하제일인임을 증명한 괴물이자.

정, 사, 마의 모든 인간들을 무릎꿇린 다음 홀연히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기인奇人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가 소림의 무명승에게 패배해 죽었다고도 말하고, 누군가는 더 이상 적수를 찾을 수 없는 무림에 한탄하고 은거했다고도 말한다.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천마가 우화등선을 했다고도 하지만 그럴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한 야사에 따르자면 천마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왔으며 할 일을 마친 그가 원래 세계로 돌아갔다고도 말하지만.

어느 야사가 그렇듯이 신빙성은 없는 이야기다.

***

“···돌아온 건가.”

단천은 주변을 둘러봤다. 싸구려 느낌이 나는 침대와 중원에는 없는 전기로 돌아가는 의료기기들.

희미하기 그지없는 기억을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확실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무림으로 떨어지기 전에 그가 지내던 병실이다.

기억 저편에 묻어 두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돌아오다니.

단천은 침대에서 일어나 몸을 투로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검이 없는 게 아쉽군.’

21세기의 병실에서 검을 찾는다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를 알면서도 단천은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깡말라 있는 팔다리를 얼마나 휘저었을까. 그가 있던 병실의 문이 열렸다.

병문안을 올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자신의 유일한 혈육이자, 못난 동생 뒷바라지를 해 온 누나.

단지은이다.

“천아. 잘 지내고 있었냐? 누나가 오랜만에 왔···.”

말을 이어나가던 단지은의 눈이 서 있는 단천에게 고정됐다.

단천의 눈이 조금은 나이가 들어 버린 단지은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일어났구나.”

“오랜만이야. 누나.”

대답은 없었다. 단지은이 눈물을 펑펑 흘리며 단천을 꽉 껴안았기에.

***

“아무 이상 없습니다.”

단천의 몸을 검사한 의사가 차트를 신기하다는 듯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10년 전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병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단다. 침대에 계속 누워 있었던 탓에 부족한 근육량만 제외하면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고도 했다.

“제가 의사 생활 30년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러면 바로 퇴원해도 되는 거지요?”

“그래도 당분간은 상황을 지켜보는 게···.”

“그래. 천이 너는 방금 일어났잖아.”

“아니. 밖으로 나가고 싶어.”

단천의 말에 단지은이 단천을 바라봤다.

단천이 병원 밖을 나가본 것도 한참이 됐다.

그러니 병원을 나가고 싶어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면 일단은 퇴원하는 걸로 하자. 대신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말하는 거다?”

“알았어.”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그가 다시 병원에 돌아올 일이 없을 것이다.

이미 자신의 몸을 짚어 자신의 몸 상태가 좋은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병원에 있으면서 병원비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구태여 이런 걸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을 걱정하며 보고 있는 단지은에게 혈도니 진맥이니 하는 말을 해 봤자 역효과일 테니까.

퇴원 절차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짐이랄 것도 거의 없었다.

쇼핑백 하나에 들어가는 짐을 챙기고 병원을 나서자마자 단지은이 물었다.

“그래서, 뭘 가장 먼저 하고 싶어?”

“잘 모르겠네.”

솔직한 대답이었다. 무림에 처음 떨어졌을 때에는 지구로 돌아가면 할 일을 수천 가지는 적어 놨었는데.

막상 돌아오고 나자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지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돈 되는 일부터 찾아 볼까 싶은데.’

세상의 모든 것이 돈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은 그만큼 줄어든다.

뭣보다 자신은 단지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아왔다.

그러니 뭘 해서라도 단지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단천 자신의 신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은 사라졌지만 몸은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신체능력이 부족하니 몸을 써서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없다.

물론 신체야 단련을 하면 되긴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몇 달, 혹은 연 단위로 신체를 단련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굳이 따지면 신체 단련을 할 시간은 있겠지만 그 동안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다.

‘···뭘 해서 돈을 벌어야 되려나.’

“어, 하고 싶은 게 딱히 안 떠올라? 예전에 하고 싶었던 그런 건 없어?”

“예전에 하고 싶었던 거?”

중원에서는 무엇을 목표로 삼았던가.

“···천하제일인?”

“무협지 이야기 말고.”

“천하통일?”

“······.”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단천의 말에 단지은이 머리를 긁적였다. 바깥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는 동생이다. 보는 게 무협지 말고는 딱히 없었으니 밖에 나와서 할 일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됐다.

‘내가 뭘 할지 정해줘야 되겠네.’

단천 또래의 남자애들이 뭘 좋아하더라.

10대, 20대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거라면 역시 게임이다.

“VR 게임방이나 가 볼까?”

***

단지은의 손에 이끌려 VR게임방에 들어가자 수십 개의 캡슐이 들어가 있는 공간이 나왔다.

게임방 한 구석을 커다랗게 장식하고 있는 TV 안에서는 플레이어들의 플레잉을 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일단 VR게임방은 처음이지? 일단 키오스크에서 회원 등록부터 해야 돼.”

“키오···.”

“키오스크라고, 요새는 죄다 주문을 이걸로 해.”

단천이 키오스크에서 자신의 신상정보를 입력하자 곧바로 카드 한 장이 튀어나왔다.

“빈 자리 찾아볼 테니까 그 동안 너는 구경 좀 하고 있어!”

자신 대신 카드를 받아든 단지은이 빈 자리를 찾아 방을 돌아다니러 떠났다.

단천은 벤치에 앉아 주변을 돌아봤다. 새롭게 나온 수많은 게임 광고들을 훑어보던 단천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리드미컬 세이버 이벤트!]

[리드미컬 세이버의 점수에 따라 상품을 드립니다!]

“리드미컬 세이버?”

화면 안에는 검을 들고 있는 남자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길쭉한 모양의 리듬 노트를 베어 넘기고 있었다.

온 사방에서 날아드는 노트를 검 한자루로 베어내는 모습.

평범한 사람이 봤으면 현란하다고 느꼈을 동작들이지만···.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데.”

단천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상품 목록 : 100,000 : 캡슐 이용권 30분

200,000 : 캡슐 이용권 1시간

···

1,000,000 : 신형 게임용 VR캡슐]

“···게임용 VR캡슐이라. 저거. 비싸려나.”

10년 전의 최신형 컴퓨터 가격이 100만원에, 최신형 그래픽 카드 가격이 50만원 정도였다. 그러니 컴퓨터가 업그레이드된 VR캡슐도 가격이 꽤 나갈 터였다.

‘저 VR캡슐이란 걸 따서 판다면 한 달 생활비 정도는 누나에게 낼 수 있겠지.’

“이 이벤트. 도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그냥 캡슐에 들어가서 리드미컬 세이버 실행하시면 자동으로 최고점이 집계돼요. 첫 한 번만 적용되니까 주의하시고요.”

보아하니 이벤트가 자동 집계가 되는 모양이다. 키오스키 뭐시기와 비슷한 원리겠지.

“천아! 여기 자리 났어! 빨리 와! 빨리!”

“알았어.”

단천은 단지은의 보챔에 캡슐로 향했다.

“누나는 안 하려고?”

“어. 나는 괜찮아.”

“알았어.”

단천은 더 묻지 않고 캡슐에 누웠다. 캡슐에 누워 헤드셋을 쓰자마자 화면이 점등했다.

[미래융합-퓨쳐퓨전 게임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실행하실 게임을 말씀해 주세요!]

“리드미컬 세이버 실행.”

[리드미컬 세이버를 실행합니다.]

잠깐의 현기증이 지나가자 풍경이 바뀌었다.

몸을 스쳐지나가는 바람과 흩날리는 풀들, 그리고 공기의 냄새까지.

“호오.”

압도적이기까지 한 현실감에 단천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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