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누워 천장만을 바라본다.
동굴천장에 맺힌 투명한 물방울이 내 얼굴위로 툭하고 떨어지자 흠칫 몸이 떨려 왔다.
동굴안은 온통 피 냄새로 진동을 했지만 나는 조금도 움직 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고개를 돌리면 원망을 가득 담은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나를 덮쳐 올 것만 같았다.
눈가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려 귓바퀴를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가까이에 누워 있는 샨이 지금이라도 살아나서 나를 죽여 줬으면 좋겠다.
몬스터의 피와 살점으로 더럽혀진 동굴 벽을 쳐다보면서 고요한 정적 속에 나는 천천히 죽어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차갑고 무서운 죽음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따뜻한 온기가 다정하게 손 내밀어 왔다.
“류.”
부드럽지만 건조한 목소리. 하지만 분명 기분 좋은 울림.
그 목소리는 모든 것을 공명시키며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고 집요하게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바로 곁에서 느껴지는 숨소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그저 이 상태 그대로 영원히 죽어 있고 싶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서늘한 체온은 쉴 새 없이 흐르는 내 눈물을 닦아내다
잠시 동안 얼굴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매만지다 떨어지더니 곧 부드러운 입술이 식어가던 내 입술을 덮어왔다.
살짝 벌어진 메마른 입술사이로 뜨겁고 촉촉한 혀가 침투해 들어왔다.
눈꺼풀 위로 느껴지는 뜨거운 입김이 죽어가고 있던 나를 천천히 삼키기 시작한다.
피를 머금고 있는 군복이 벗겨지고 단단하고 매끄러운 맨살이 직접적으로 닿아온다.
“....아....”
유두가 강하게 빨려지는 순간 찾아온 쾌락에 본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얼어버렸다고 생각한 내 손가락은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감아올리고 있었고 기분 좋은 체온에 집착하며 정신없이 그 몸에 자신을 비벼댔다.
점점 농밀해 지는 애무로 인해 아랫도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눈을 떠. 류.”
“........”
긴 손가락이 내 분신을 부드럽게 감싼 후 강하기 쥐어짜는 순간 고통에 경련하며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런 내 눈동자 위에 붉은 입술이 키스를 퍼부었다.
“....류....”
“......”
“류 아리마사.”
“......”
“내가 누구지?”
“.....”
아름다운 바다 빛 눈동자 속에 격한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 그 격렬한 파도에 휩쓸려 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반사적으로 몸을 떨며 고개를 돌리자 억지로 내 턱을 잡아 챈 후 시선을 마주쳐 온다. 마치 늪처럼 깊숙이 빠져 들어 다시는 빠져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대답해.”
“.......”
멍하니 있자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 쪽이 타버리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왔다. 신음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자 다시 귓가에 감미롭게 속삭인다.
“류..”
“..으윽...”
“.....아리마사.”
“하아...”
“..그래......도망치고 싶다면 얼마든지 도망쳐.”
“...아...”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목이 졸려오는 것과 동시에 어깨에 박혀 있던 칼이 심장 쪽으로 그어내려 진다.
“.....그 어떤 곳에서도 항상 난 너와 함께 일 테니까.”
광기에 물든 푸른 눈동자가 무감각하게 얼어가는 뇌신경을 자아 뜯고 풍부한 울림을 담은 부드러운 목소리는 청각을 마비시킨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원망. 울분으로 굳어가던 전신이 마치 유리파편처럼 산산조각으로 깨어진다.
인식한다는 건 무서운 것이다.
가장 무서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싫은 것을...
무서운 것을 머릿속에서부터 지워버리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버리는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이 만든 그 견고한 벽을 깨부수려고 하는 존재였다.
파괴자.-killer
그리고 지키는 자-guardian
killer or guardian
그 아슬아슬한 경계부분에 서 있던 나.
눈물이 쏟아져 나와 시야가 흐려졌다.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 지 조차 알지 못하고 계속 울었다.
술이 가득 담겨져 있던 오래된 푸대가 터져버리듯이 긴 시간 동안 질식당해 있던 감정이 갑자기 폭발했다.
몸 안에서 새어나오는 피와 함께 그것은 커다란 물줄기를 이룬다.
나는 누구.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지?
알기 싫다. 알아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앞의 존재는 그 모든 대답을 알고 있다. 아니 걸어 잠근 문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나만이 진실을 알고 있다.
“왜...우는 거지....내가 널 아프게 해서?”
“.......흑....”
“....하지만 넌 그 이상으로 지독했잖아.”
마치 어린애 같은 투정.
넌 아마 내가 모르는 사람.
“쉬...그만 울어.”
“...으흑...”
“......우는 얼굴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지금 넌 나 때문에 우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화가 나.”
“......”
“....지금 당장 네 목을 물어뜯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진심을 말하는 푸른 눈동자. 살짝 일그러진 미간.
순식간에 상대방을 압도하는 존재감.
그리고 그 모든 것 속에 담겨진 나른한 살기.
그래 이...특유의 느낌. 그래. 난 널 알고 있는 것 같아.
“.....이안.”
목이 심하게 갈라진 듯 새어나온 목소리는 상당히 쉬어 있었다.
“...그래.”
환한 미소와 함께 어깨를 후벼 파던 단도가 빠져 나가면서 아찔한 현기증이 찾아왔다.
“.......이안....”
“.....응.”
아름다운 눈매가 휘어지면서 따뜻한 혀가 다시 내 입안에 들어와 끈적하게 내 혀를 빨아올린다.
내 중심을 자극하던 이안의 손가락은 기교 좋게 귀두를 쓰다듬은 후 갈라진 끝을 손톱으로 후벼 팠다.
고통을 동반한 쾌감에 몸을 튕기며 신음을 흘리자 낮은 웃음소리를 내며 내 벨트를 풀더니 곧 따뜻한 점막이 내 것을 착 감아 왔다.
오돌도돌하고 따뜻한 혀가 내 것을 강하며 빠는 느낌에 눈앞이 아찔해져 왔다.
극과 극의 행동을 오가는 녀석.
“이안....레이시하.”
좁은 목구명 안까지 파고 들어 가던 것이 샅샅이 핥아 진 후 이빨로 자극 당하자 참을 수 없는 쾌락에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윽...흐윽...”
내 신음이 몇 번이나 메아리치며 동굴 속을 울린다.
마치 달디단 과즙을 빠는 것처럼 그가 그렇게 나를 빨아 들였을 때 문뜩 목구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과 함께 무의식적으로 음란한 교성이 튀어 나왔다.
“샨!!!!”
그리고 그 순간 이안의 행동이 멈췄다.
“.......”
식지 않은 흥분이 온 몸을 갈작갈작 갉아 먹으며 그 뒤의 행위를 재촉하지만 그는 숨조차 쉬지 않는 듯
아무소리도 내지 않은 채 내 위에서 멍하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를 응시하는 투명하고 푸른 보석이 시리도록 아름다워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만져 보려 하자 그는 돌연 눈을 감고 사파이어를 봉인한다.
마치 무생물처럼 미동도 없어서 파르르 떨고 있는 옅은 갈색의 긴 속눈썹 만이 그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동안의 침묵 후 붉은 입술이 달싹거리면서 내뱉은 말은 섣불리 이해가 가지 않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너는...그렇게....”
헐떡 거리면서 뱉어내는 한마디 한마디가 왠지 가슴 한 켠이 찡해져 왔다.
“....너는 내가....그렇게.....”
목이 꽉 잠겼는 지 이안은 그 뒤의 말을 뱉어 내지 못했다. 그 대신 참았던 숨을 살짝 내뱉으면서 다시 내 분신을 자신의 입에 담았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