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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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숲에 차가운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모든 생물은 동면에 들어가고 굶주림에 지친 몬스터 들이 더욱더 날 뛰기 시작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밀림은 전체가 늪지대로 변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했지만 그만큼 아름다웠다. 

우기가 시작되면 적어도 7일은 비가 내리기 때문에 식량을 구하기 위해 샨을 동굴에 남겨 둔 채 혼자 사냥에 나왔다. 

축축한 빗줄기가 시야를 가릴 정도였지만 투두둑하는 소리를 내며 푸른 잎사귀에 떨어지는 물방울 끝에선 시원하고 기분 좋은 풀내음이 퍼져 나왔다. 

으르릉 거리는 몬스터들의 울부짖음을 신중하게 살피면서 아직 동면에 들어가지 않은 작은 동물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동굴에 혼자 남겨 둔 샨이 걱정되긴 했지만 라쉬인 그로서의 방어능력을 믿었기에 눈앞에 나타난 모처럼의 사냥감들을 포기 하지 않았다.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몬스터(변형 동물)들은 평소보다 더 흉폭하고 지랄 맞았고 또 강했다. 

날카로운 발톱이 어깨를 찢고 지나가는 것을 생생히 느끼면서 연한 뱃가죽에 칼을 찔러 넣자 다른 한 놈이 뛰어 올라 내 팔을 물었다. 

누런색으로 빛나는 눈깔에는 먹이에 대한 광폭한 탐욕이 흘러넘치는 것을 무감정하게 쳐다보면서 

허벅지에 차고 있던 총을 꺼내 그대로 머리를 갈겨주자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세찬 빗줄기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핏자국들을 씻어 내리면서 밀림 속에 은은한 혈향을 퍼지게 한다. 

그와 동시에 모처럼의 피냄새를 맡은 몬스터 들이 꾸역꾸역 밀려오기 시작했다. 

혹시나 몰라서 장검을 샨에게 맡긴데다 더 이상 총알을 낭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격 무기로서 단도를 택했다. 

집단적으로 내 목덜미를 공격하기 시작하는 녀석들에게 칼끝을 세우며 익숙한 동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몸 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열기가 서서히 피부위로 침투해 올라왔다. 

두꺼운 가죽 아래 칼을 박아 넣고 잔인하게 그어 올리자 몬스터의 몸이 반으로 찢겨져 나갔다. 

처참한 시체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집단 적으로 달려들던 놈들 중에 하나가 살해당한 동족에게 달려 들어 그 살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얼마 후 또다시 놈들 중 몇이 공격을 멈추고 그 무리에 합류한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동족의 시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몬스터의 모습에 참을 수 없이 구역질이 올라왔다. 

공격 대상을 바꾼 몬스터 들이 부상당한 동료들을 차례차례 공격하며 잡아 먹는 동안 

나는 손에 넣은 사냥감들을 가지고 샨이 기다리고 있을 동굴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그 새 동료를 다 먹어 치운 모양인지 다시 나를 추격해 오는 몬스터들을 하냐 하나 제거해 나가는 동안 희미하지만 샨이 있는 방향에서 비명소리를 들려왔다. 

그 순간 불안감으로 인해 심장이 팔딱거리면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다리가 떨려 왔다. 

얼굴을 할퀴는 나뭇잎들을 정신없이 베어 가면서 우거진 밀림의 숲을 빠져나가려고 미친 듯이 몸부림 쳤다. 

얼마나 뛰었는지 목이 하얗게 말라오고 숨이 턱까지 차왔지만 결코 멈출 수 없었다. 

미쳐버린 이 숲에서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사냥 따위 나오지 않을 걸 그랬다. 

행복감에 취해 머뭇거리지 않았으면 지금쯤 이 숲을 빠져 나갔을 지도 모른다. 

마침내 동굴 근처에 이르렀을 때 후각세포를 마비시키는 지독한 피 냄새에 가슴이 바작바작 타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폐포가 쪼개지는 고통을 참아내며 거칠어진 호흡을 숨 가쁘게 내뱉었다. 

여기저기에 낭자한 핏자국이 샨의 것이 아니기를 빌고 또 빌면서 천천히 동굴 쪽으로 다가갔을 때 우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 한 마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날카롭고 누런 이빨이 물고 있는 하얀 팔을 발견했을 때 내 안의 무언가가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버렸다. 

“아악!!!!!!!!!!”

뜨겁고 위험한 본능이 껍질을 깨고 나온 순간을 나는 분명히 인식했다. 

미쳐버리고 싶었지만 그 순간의 나는 결코 미쳐 있지 않았다. 

오히려 뿌옇게 내 전체를 감싸고 있던 껍질을 벗어버린 느낌이었다. 

손이 멋대로 움직이면서 기묘한 표식을 만들어 내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가느다란 선이 손 끝에 맺힌 후 공중을 향해 뻗어 나가자 

하얀 팔을 뜯어 먹고 있던 몬스터의 몸이 산산조각으로 찢기면서 더러운 피가 새빨간 안개를 만들어 냈다. 

그와 동시에 동굴 안에서 여러 마리의 몬스터 들이 튀어 나왔다. 

피로 얼룩진 그들의 누런 이빨과 흉흉하게 빛나는 누런 안광이 내게 가까이 오기도 전에 갈기 갈기 찢어진다. 

몸을 적시는 물방울은 차가웠지만 내 몸은 이해할 수 없는 열로 펄펄 끓어올랐다. 

손가락 끝에서 뻗어져 나오는 은색 실이 빗방울조차도 부셔 뜨리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휘감았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피가 주는 역겨움이 어느새 더할 수 없는 쾌감으로 변해 억누르고 있던 본성을 일깨웠다. 

저벅. 저벅.

속눈썹에 맺힌 물방울이 자잘하게 흩어지는 순간 나는 줄곧 부정하고 있던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지럽게 흩어진 몬스터들의 시체 속에 섞여 있는 하얀 인간의 손가락과...팔...다리의 조각들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지만 

울컥 치밀어 오르는 덩어리에 차마 만지지 못하고 눈을 돌려 버렸다. 

우적. 우적.

동굴 안에서는 아직까지 게걸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를 따라 들어가자 머리를 처박고 살을 파먹고 있던 몬스터 한 마리가 고개를 들며 내게 으르릉 거렸다. 

그리고 그 놈 아래에는 시뻘건 고깃덩이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누워 있었다. 

팔다리가 찢겨진 채 내장을 파 먹힌 시체는 더할 수 없이 참혹하고 역겨워서 도무지 내가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참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르는 토기 때문에 동굴의 차가운 벽면을 짚고 속에 있는 것을 모두 쏟아냈다. 

내게 이를 세우던 몬스터는 위험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허기를 참지 못해서인지 

그런 나를 무시하고 다시 시체의 배 부분에 머리를 처박고 살을 뜯어 먹기 시작한다. 

아닐 거야. 

샨이 아닐 거야. 

절대 그럴 리 없어. 

다른 녀석 일 거야. 

그 녀석은 라쉬인 걸. 몬스터 따위에게 쉽게 당할 리 없어. 분명 몸을 피했을 거야. 

스스로를 달래며 그렇게 모든 것을 부정하려는 찰나 피에 젖은 금발이 눈에 들어오면서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전신에 심한 경련이 일었다. 

눈을 감으려 해도 감을 수 없었다. 깜빡거리는 속눈썹 사이로 여러 개의 영상이 인식되었다. 

붉은 멍이 남아 있는 발목. 

찢겨진 황토색의 군복. 

연한 금발. 

마지막으로 내가 준 은제의 군용 목걸이가 맑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마침내 나는 마지막으로 지키고 있던 나 자신까지 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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