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3)

비쉬(공격자)와 라쉬(방어자)는 전투 능력에 의해서도 구별 되어 지지만 그보다도 먼저 성격적 성향에 의해 나누어지게 된다. 

공격적이면서도 차분한 이성의 소유자는 공격자 비쉬로 수동적이며 온화한 유전자와 감정적인 면이 강한 인간은 방어자 라쉬로 구별지어진다. 

라쉬는 여성적인 성향으로 팀 내의 분열이 일어났을 때 그 원활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동시에 

전투와 살인에 대한 스트레스로 비쉬(공격자)가 정신적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 정신적 균형을 위해 필요한 존재 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비쉬(공격자)가 전투 스트레스가 극도에 다다랐을 때 표출되는 육욕을 충족 시켜줘야만 하는 존재가 라쉬(방어자)였다. 

보통 그 대상은 페어를 이룬 비쉬에 국한 되는 것이었지만 팀 내에 라쉬(방어자)가 모두 사망했을 시에는 

팀의 모든 비쉬(공격자)의 교미 상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 그 들 사이에 불문율이었다. 

현재 자신과 페어를 짜고 있는 류는 전혀 그런 관계를 요구해 오고 있지 않았지만 

팀 내에 샨을 제외한 라쉬가 전부 사망해 버림으로써 샨은 팀 내의 비쉬들의 맛좋은 욕구 배출구로인식 될 수 밖에 없었다. 

페어지만 공격자인 류와 자신의 입장은 다르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품지 않는 다 해도 다른 비쉬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다리를 벌려야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는 이상 함부로 몸을 내어 주기 싫은 게 사람 마음이라 

샨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달려드는 놈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전투 때 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라쉬로서 가디언에 입대한 주제에 순결 운운하는 건 확실히 비웃음을 살만한 짓이었지만 

류가 자신을 봐주건 봐주지 않건 그도 건드리지 않는 몸을 단지 라쉬라는 이유로 다른 놈들에게 짓밟히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전투라는 것은 언제나 예측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생각지도 않은 기습을 받게 되는 가 하면 목이 떨어지기 직전에 기적적으로 구출되기도 한다. 

그 날의 전투도 그랬었다. 

게릴라전을 연상시키는 기습적인 공격에 적들의 몸이 갈기 갈기 찢겨 갔다. 

능력자인 이안을 필두로 그 오른 쪽엔 류, 왼 쪽에는 잭. 스나이퍼로서 진저와 라쉬인 샨이 한 팀이 되어 더할 수도 없게 적들을 참혹하게 몰아 붙였다. 

흩뿌려 지는 피의 홍수에 짜릿한 쾌감을 느끼면서 적들을 하나 둘 꺽어 나가는 동안 샨은 비록 라쉬였지만 군인으로서 더할 수 없는 승리감에 젖어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거기 부터였다. 

라쉬로서 익숙하지 않은 승리감에 취한 샨이 자신의 역할에서 벗어나 비쉬(공격자)의 역할을 하려는 순간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던 균형은 우스울 정도로 한순간에 깨어져 버렸다.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로 한순간에 군인들의 전투가 개별의 가디언의 살육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류가 자신을 보호하려고 필사적이었다는 걸 샨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목숨을 건 전투에서 남의 목숨까지 걱정할 여유는 없어지는 법. 

자신 때문에 자잘한 상처를 입어가는 류를 보다 못한 샨이 무리에서 떨어 진 후부터 그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 쳤다. 

자신 있는 방어 능력을 앞세워 지옥 같은 피바다에서 도망치고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을 추격하는 무리들. 적과 아군을 불문하고 살인의 광기에 사로잡인 비쉬들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라쉬들에 대한 사냥을 시작했다. 

샨은 허파가 말라버리기 직전까지 도망치다 뒷덜미가 잡혀서 수풀 속에 처박혔다. 

그리고 나서도 필사적으로 저항하다 거칠어진 누군가에 의해 발목이 꺽여졌을 때 여린 몸은 더 할 수 없이 참혹하게 유린 되어 지기 시작했다. 

애널이 거대한 흉기에 의해 잔인하게 쑤셔지고 강한 사내내가 나는 하얀 정액이 꾸룩거리면서 

뱃속을 가득 채워진 후에도 미친 사내들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몰랐다.

 입과 아래를 통해 몸 안으로 지속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정액이 한계를 넘어 

애널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가 샨의 입에 붉은 캡슐을 억지로 집어넣었다. 

샨은 무의식 중에도 그것을 뱉어 내려고 했지만 곧이어 목안으로 흘러 들어온 정액과 성기에 결국 삼킬 수밖에 없었다. 

길고 긴 육욕의 시간이 지난 후 샨은 눈을 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상황을 기억해 냈다. 

이곳은 전장이라 아무도 그를 지켜 줄 수 없었다. 류와는 낮의 전투에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류가 그의 곁에서 멀어진 시점에서 비쉬들은 잔인한 육식동물로 변해 약한 그를 집단적으로 잡아 먹었다. 

몸 아래를 내려다 보자 온 몸은 사내들의 오줌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허벅지 사이는 정액과 피로인해 참혹하게 물들어 있어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구역질이 올라왔다. 

한 두 번 당해본 일도 아닌데 눈앞이 아찔해 지면서 억울함과 분노로 인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버린 발목을 억지고 짜 맞추면서 샨은 문드러진 자존심과 끔찍한 고통에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물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몇 백 미터나 기어간 후 간신히 자신의 몸을 닦으면서 샨은 약간 부풀어 있는 자신의 아랫배를 만졌다. 

손가락을 집어넣어 아무리 긁어 내려고 해도 이미 몸속에 가득 찬 정액은 서로 응결되어 조금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왠지 눈물이 났다. 

라쉬로서 강간당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가디언으로서 입대하자마자 그 상급자를 비롯해서 페어를 짰던 비쉬들에게 언제나 당하던 일이라 육체적 고통 말고는 그다지 고통 스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제의 그 짐승들은 자신에게 가장 모욕적이고 치욕적인 흔적을 남기고 갔다. 

행위 중 사내들이 먹였던 그 약....은 시하임(번식을 위한 임신 촉진제)임이 틀림없다. 

가디언들은 최고 군인인 만큼 우수한 인간들만 선발된다. 

그 우수한 유전자들이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전투에서 죽어버리는 손실을 염려한 정부는 남성도 임신할 수 있게 만드는 약 ‘시하임’ 을 개발했다. 

생존만큼 강한 욕구로 설명되는 성욕은 죽음으로 인한 공포로 미쳐 버린 인간들을 지배하고 그 아래에서 라쉬들은 희생된다. 

군인이면서도 여성의 역할을 강요받는 라쉬들은 반 미쳐버린 비쉬들에 의해 강제로 약을 복용한 뒤 몸 안에 가득찬 정액과 자신의 피로 생명을 만들어 낸다. 

지금 샨의 몸 안에 남아있는 수십 명이나 되는 남자의 정액과 그 속에 들어 있는 유전자는 그 누구보다 강력한 생명체를 만들어 내겠지만 

그 모태가 되는 샨의 정신과 육체를 갉아 먹을 것이다. 

남자로서 그리고 군인으로서 최고의 모욕.

아무리 그런 취급에 익숙해져 있다고 해도 라쉬 역시 어디까지나 엘리트 군인이었다. 

후에 아무리 엄청난 보상이 주어진다고 해도 그 굴욕을 끝까지 견디는 인간을 드물어서 출산을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손으로 그 아이를 죽여 버리거나 출산 전에 자살해 버리기가 일수 였다. 

그리고 설령 살아 있다고 해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능력은 태어나는 아기에게 고스란히 빼앗겨 버리기 때문에 

가디언의 신분을 잃고 보통의 민간인이 되어 버린 상태에서 자신을 임신시킨 남자의 노리개로 농락당하다가 

끝내 살해당하는 것이 수태를 한 일반적인 라쉬들의 삶이었다. 

패배자이긴 싫지만 샨 역시 그렇게는 되는 것 역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죽어 버리려고 군화 사이에 끼워 두었던 단검을 들고 목을 그으려고 했을 때 마치 달콤한 환상처럼 류가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잘생긴 얼굴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나 있고 검은 군복이 피를 머금어서 무거워 보였지만 그는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맨손으로 칼날을 쥔 채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자신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챈 류의 미간이 찌푸려 졌을 때 

샨은 류의 얼굴에 난 상처가 전투에서 생긴 상처가 아니라 나뭇가지에 긁힌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자잘한 생채기들이 그가 자신을 찾기 위해 그만큼 필사적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아 샨은 기뻤다. 

“그러지 마.”

“........”

“죽으면 안 돼.”

“........”

나도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살 자신이 없어. 더구나 네 옆에서. 

“......너는 이해 못해. 류. 그러니까 나는 내 의지대로 행동할거야.”

“....그럴지도 몰라.”

칼날을 쥔 류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감에 따라 붉은 선혈이 바닥 아래로 뚝뚝 떨어진다. 

그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샨을 쉽게 칼날을 돌릴 수 없었다. 한순간의 감상으로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어 버렸다. 

그가 자신을 걱정하고 동정한다고 해서 이미 손에 잡힐 것처럼 정해진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비참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는 싫었다. 

특히나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나는 지금 네 고통과 아픔을 공감하지 못해. 하지만 너 역시 마찬가지다.”

“....?....”

“나는 네가 다친 게 마음이 아파.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려는 너 때문에 가슴이 따끔거려. 

하지만 너는 그 무엇도 느끼지 못하잖아? 본인이 아닌 한 그 사람 만이 가진 고통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유할 수 없다고 생각해.”

“.........”

“그렇게.....이해까지는 못해도....적어도 지금처럼 스스로를 포기할 마음이 들지 않게 옆에서 도와 줄게. 그 걸로는 안 되겠어?”

“.......”

“.......”

“...진심이야 그 말? 내가 어떤 꼴이라도 경멸하지 않을 자신 있어? 떠나지 않고 내 옆에 있을거야? 

잘 생각하고 대답해. 네 말 한마디에 대책 없이 기대버릴 지도 몰라. 그거 알고 하는 말이야?”

“.......그래. 진심.”

따뜻한 목소리와 다감한 회색의 눈동자가 지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싼다. 

“네가 원하는 만큼 기대도 좋아. 이런 나로 괜찮다면 얼마든지.....그러니까 이제 이거 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진중한 말 하나하나에 서서히 녹아간다. 

마침내 샨이 완전히 손에서 힘을 빼자 류도 칼날을 쥐고 있던 손가락을 천천히 폈다. 

툭하고 땅바닥에 떨어진 나이프에서 붉은 피의 결정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온다. 

류의 하얀 손에서 흘러 내리는 것과 같은 그 액체는 얼마 후 땅속으로 완전히 흡수 되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

“....응.”

“.......걱정했다.”

무릎을 굽히고 자신의 앞에 주저 않은 류의 눈동자가 잿빛의 긴 속눈썹 사이로 사라졌다. 

따뜻한 체온과 함께 다가온 피냄새에 샨은 기분 좋은 온기를 느꼈었다. 

류 옆에 있으면 라쉬로서의 절망감도 약한자로서의 울분도 청량한 공기에 파묻히는 것처럼 그렇게 일순간에 모든 것이 증발 되어 갔다. 

자신의 배를 따뜻한 천으로 감싸주는 류의 손길에 샨은 단단한 가슴에 기대어 펑펑 울기 시작했다.

“괜찮아.”

“....흑...흑..흐윽...”

“.........네 잘못이 아니야.”

“......으윽....흐...흑.”

“.....그만 울어. 착하지.”

“흑...나 따위....너무 싫어....전부 내 탓이야.”

“...이겼어. 신경 쓰지 마. 너는 할 만큼 했어. 잭도 진저도 이안도 모두 무사하니까 걱정 마.”

류는 무뚝뚝 했지만 어쩌다 한 마디 내 뱉을 때마다 사람 마음을 참 따뜻하게 해줄 줄 하는 남자였다. 

수태로 인해 부풀기 시작한 배를 만지작 거리며 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타닥타닥 타고 있는 모닥불에 지푸라기를 던져 넣자 화르르 하며 아름다운 불꽃으로 화한다. 

벌써 어스름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는 걸 보니 앞으로 한 시간도 채 안되서 밤이 되어 버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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