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Y13-197화 (197/296)

00197  2011-2012 정규시즌(Regular Season)  =========================================================================

선수들과 코치진은 평상시와 다르게 굳은 얼굴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선수들은 서로 아무런 이야기도, 아무런 장난도 치지 않은 채 뜨거운 물에 몸을 씻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노비츠키의 말에 라커룸으로 모였다.

"윤, 부상은 좀 어때?"

하지만, 라커룸 밖에서 잠시 따로 불려진 영재는 노비츠키와 키드, 테리, 매리언 앞에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조금 아프지만 꿰메기만 하면 되는 거 같고, 피도 조금 흐르지만 대충 지혈도 된 거 같아요."

노비츠키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고, 나머지 세 선수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피부가 찢어진 부상은 농구선수들에게는 가벼운 부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인대나 뼈에 문제가 생기는 게 흔한 세계였다.

"윤, 우리 넷은 라커룸 안에서 쓴소리를 좀 할 거야. 물론, 우리들부터가 부족한 것을 먼저 인정하고, 앞으로의 경기는 이런 식으로 지지 말자고 할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도 알고 있어. 윤, 너가 그런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다는 걸. 그리고 부상을 당한 상태이니까 먼저 가도 아무도 너를 탓하진 않을 거야."

주장인 노비츠키의 말에는 배려가 가득 들어있었다. 실제로도 이번 경기가 전반까지 가비지로 흘러가지 않은 원동력이라고 한다면 다름아닌 영재의 끈질긴 수비와, 웨이드를 상대로 주눅들지 않고 충분히 제 몫을 해 준 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에도 붕대를 감고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몸을 날리는 허슬을 보여준 건 그 누구보다 베테랑 네 명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무리하지 말고 들어가 봐. 어차피 너는 충분히 열심히 했고, 우리를 포함한 나머지가 못한 거니까."

넷 중 가장 날카로운 성격의 테리도 영재에게 부드러운 말투로 말할 정도이니, 영재가 팀에 헌신적이라는 건 모든 선수들이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아, 저한테 많이 신경 써 주시고, 좋게 봐 주시는 건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아무리 제가 그렇게 잘 하게 보였어도 결국 경기는 진 거 잖아요."

영재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살짝 아래로 떨구었다.

"전부 이길 수 없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지고 싶지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졌다는 건, 아무리 제가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해도 못 난 경기력을 보인 팀의 팀원인 제게도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큰 부상도 아닌데 중간에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도 같이 들어갔다가 가는 게 낫죠."

...

"짜식, 멋있는 척 하긴?"

매리언은 책임감이 강한 친구라는 생각에 등을 가볍게 쳐 주었고, 키드와 테리, 노비츠키도 의젓한 영재의 말에 더 이상 먼저 가라고 말할 순 없었다.

"그래. 그러면 더 이상 말하진 않을게."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영재를 보던 네 선수는 영재를 들여보내고 잠시 밖에서 어떻게 이야기할지 의논했다. 머리에 붕대를 두른 채 라커룸으로 들어오는 영재를 본 브루어와 챈들러가 영재에게 괜찮냐고 슬쩍 말을 걸었지만 영재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둑어둑해진 크리스마스 당일 밤.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을 시간이지만 댈러스 선수단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덕 노비츠키와 제이슨 테리, 제이슨 키드, 숀 매리언은 굳은 얼굴로 선수들에게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

...

"어떻게 생각하냐?"

가장 다혈질인 테리가 먼저 입을 열었고, 선수들은 그저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끝까지, 투쟁심있게 쫒아갔으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었어. 물론 우리는 투쟁심있게 경기에 임했지.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쫒아갈 수 없었어. 4쿼터 3분여를 남기고 우리는 48분의 경기 중 처음으로 손 하나로 셀 수 있을만한 점수차로 좁혔다고. 딱 3점 차이까지 말이지."

...

"그런데, 그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턴오버와 무리한 슛으로 순식간에 세 포제션을 내 줬어. 어째서 그런 결과가 나온 거지?"

테리의 다그침에 선수들은, 그리고 영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가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경기에 진 이상 연대책임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비판을 영재는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단축시즌이야. 휴식일도 적고 66경기밖에 없다고. 평상시처럼 82경기를 여유있게 펼치는 상황이 아니라고. 한 경기 한 경기의 중요성은 예년보다 훨씬 중요해. 게다가 오늘 경기가 어떤 경기였지? 크리스마스에 벌어진 개막전이야. 우리 경기를 보러 경기장을 가득 채워준 팬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경기였다."

뒤이어 말을 하는 노비츠키는 옅은 한숨을 내쉬더니 선수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 잘못이다. 내가 먼저 솔선수범해서 몸을 끌어올려야 했어. 하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끝까지 경기를 했으면 해. 나부터도 후반부엔 발이 질질 끌리는 못난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끝까지 뛰어줬으면 한다."

노비츠키의 이야기에 선수들의 표정은 제각기 복잡미묘했다. 작년의 우승을 경험해서 마음 한 구석에는 우승을 한 팀이니까, 라면서 안일하게 생각했던 선수들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지만,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는 노비츠키와 매리언의 몸 상태를 보면서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라며 불만족스러운 속내를 숨기는 선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반응은 다시 한 번 해 보자는 긍정적인 분위기였다.

"한 번 더 해 보자고. 응? 슈팅이 안 되면 동료들을 믿고, 한 발이라도 더 움직이자고. 자기 컨디션에 영향을 받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한 발이라도 더 움직이는 거는 가능하잖아?"

유쾌한 성격으로 라커룸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는 타이슨 챈들러가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선수들에게 말했고, 선수들도 박수를 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2011년 12월 30일.

영재는 이마에 두른 붕대를 풀고 밴드를 붙인 채 에밀리와 댈러스 시내를 유유히 걷고 있었다.

"아~ 좋다."

영재는 4쿼터 말미까지 시소게임으로 흐르던 치열한 경기를 승리로 가져온 것이 기뻤고, 경기가 끝난 뒤 이렇게 에밀리와 댈러스 근교를 드라이브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다. 오후 경기였기 때문에 경기가 끝나고도 충분히 데이트를 할 시간이 있었다.

"경기 내내 긴장했어... 혹시 이마를 또 부딪치면 어쩌나 해서."

에밀리의 걱정에 영재는 안 다쳤으니까 괜찮은 거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차피 영재 입장에서 이런 부상은 부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다친 걸 걱정해주는 여자친구에게 너무 가볍게 말할 수도 없었다. 운동선수에게 타박상 정도는 일상이었지만, 그걸 보고 마음쓰지 않을 여자가 어디있겠는가.

영재는 차에 탑승해서 운전대를 잡은 채 바깥을 바라보면서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개막전 이래로 내리 3연패를 하면서 기세가 팍 꺾인 댈러스였지만 홈구장에서 열린 토론토 랩터스와의 경기에서 간만의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에 기분이 한결 나아질 수 있었던 것이다. 4경기만의 리그 첫 승리였다. 해를 넘기지 않고 첫 승리를 거둔 탓에 선수들은 모두 즐거운 기분으로 연말연시를 보낼 수 있겠다고 즐거워했다.

'레안드로 발보사였지.'

영재는 자신이 상대한 발보사의 환상적인 드리블 스킬을 떠올리면서 아직도 오싹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오프 때의 바레아가 바로 이런 느낌일까? 라면서 영재는 발보사의 미친 활약을 효율적으로 저지한 것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다.

라슈얼 버틀러는 이제 노장 반열에 접어들고, 10분 이상 시간을 배분받지 않기 때문에 많이 맞부딪칠 일이 없었지만, 그 대신 벤치에서 시작해서 엄청난 골밑돌파와 픽앤롤, 속공을 구사하는 발보사에게 영재는 꽤나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참 힘든 경기였어."

"응, 발보사 선수가 정말 잘 하더라고. 그래도, 윤이 더 잘 하던데?"

발보사는 32분을 뛰면서 16득점 2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턴오버가 무려 4개나 생기면서 자신의 경기력을 제대로 유지시키지 못했다. 물론 4개의 턴오버 중 2개는 영재에게 스틸을 당한 것으로 파생된 턴오버였기 때문에 전체적인 기록은 괜찮아 보일 수 있으나 썩 좋은 경기력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영재는 단 27분을 뛰면서 19득점 4리바운드 7어시스트 3스틸 1턴오버라는 시간 대비 엄청난 기록을 뽐내면서 팀의 105 대 84의 21점차 대승을 이끌어낸 장본인이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숀 매리언의 컨디션 상승, 타이슨 챈들러의 꾸준한 기량, 코리 브루어의 흐름을 바꾸는 에이스 스타퍼 능력, 새로운 선수들이 차근차근히 적응을 해 나가는 모습 등을 비추어 봤을 때, 영재는 팀의 상황이 썩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힘내면...'

분명 작년의 기세를 다시 되찾아 올 수 있을 것이다. 영재는 그렇게 다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지루할 법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에밀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영재가 생각을 모두 정리할 때 까지 기다려 주고 있던 것이다. 영재는 괜히 에밀리에게 미안해서 장난스럽게 에밀리의 질문에 대꾸해 주었다.

"내가 좀 잘 하긴 해."

영재의 귀여운 거만함에 에밀리는 말이나 못하면~ 이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경기장에서 보는 영재는 그 누가 보더라도 멋진 선수였고, 반할 수밖에 없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자신의 옆에서 오롯이 자신만을 바라봐 주는 건 에밀리로서는 큰 행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윤, 이제 집에 들어가자. 상처에 소독도 하고 오늘 경기까지 뛰었는데 무리하게 데이트하고 싶지 않아."

에밀리의 말에 영재는 약간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핸들을 잡지 않고 있는 손으로 에밀리의 손을 잡아주었다.

"1월 1일에 원정경기라서 같이 있어줄 수가 없잖아. 그래서 오늘은 같이 있어주고 싶어서 그래. 마침 오늘 팀이 이겨서 다들 기분좋게 보내라고들 했고."

1월 1일에는 미네소타로 원정을 떠나야 하는 영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영재는 에밀리와 함께 신년을 맞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에밀리는 괜찮다면서 자신의 손을 잡은 영재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쥐더니 부드러운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면, 집에서 같이 12월 31일을 맞이하면 안 돼? 나, 윤이... 아니. 영재가 나 때문에 피곤해하고, 무리하는 건 싫어."

한국식으로 '영재' 라고 또박또박 발음해 준 에밀리 덕에 영재는 두 눈이 토끼마냥 커졌지만, 에밀리는 빙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 맞지?' 라고 장난스레 말했다.

"신선한데? 그렇게 들으니까. 알겠어, 그럼 집으로 가자."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굳이 뭘 해야 해? 라는 에밀리의 말에 억지로 뭔가 찾아서 하는 건 그만하기로 했다. 오래된 커플들은 반복되는 비슷한 데이트에 질리고, 새로운 걸 찾고 한다지만, 이 둘에게는 그저 서로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즐거움이 되는 듯 보였다.

띠리링!

간단하게 저녁을 챙겨먹고 커피를 마시고, 어깨를 맞댄 채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던 두 사람은 어느덧 자정을 지나 12월 31일이 되었다는 알람이 울리자 서로를 마주보더니 이내 쑥쓰럽게 미소를 지었다.

"해피 뉴 이어."

"응. 윤도 해피 뉴 이어."

"이렇게 하루 먼저 이야기 해서 미안해."

에밀리는 영재에게 그런 게 어디있냐면서, 1월 1일에 열릴 경기에서 이기는 게 최고의 새해 선물이라며 영재를 북돋아 주었다.

"..."

"..."

두 사람은 아무런 말 없이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았고, 에밀리는 살며시 눈을 감더니 영재의 허리를 양 팔로 감싸안았다. 영재는 벌써 2년차에 접어드는 에밀리와의 깊은 관계에 감사하면서, 에밀리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고 빗으로 머리를 빗어주듯 에밀리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에밀리의 입술에 가볍게, 하지만 점점 깊게 입술을 맞댔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 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DevilCross님, 망고쪼아님,  天聖帝님, 만렙님 후원 쿠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신년을 같이 못 보내서 꿩 대신 닭.

강철의혼님/// 빠른 코멘 감사합니다 ㅎㅎ

울트라10님, goimosp님/// 말씀대로 요즘에는 BQ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BQ라는 게 타고나는 것에 가까운만큼, 구단에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보니 말이죠. 전술도 다양해지고, 움직임이 복잡해지면서 BQ좋은 선수들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빅맨도 BQ가 좋아야 수비나 스크린 능력도 제대로 쓸 수 있죠.

오마리온님, 사라질영혼님, 이동석동님, 파이넨시아님/// 코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야베스님/// 그렇습니다. 르브론의 컨디션이 좋은 날에, 상대방의 컨디션이 안 좋다면 필연적으로 자유투는 늘어납니다. 실제 개막전에서는 16/19의 자유투를 기록했었습니다.

우유동자님/// 슈퍼스타급은 만능까지는 아니어도 다재다능은 필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축구도 요새 탑 스트라이커들 보면 골결정력 외에 볼 간수능력, 패스능력, 압박능력까지 다양하게 좋은 선수들이 대부분이죠. 농구도 요즘 에이스들은 득점 외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락 등 다양하게 좋은 선수들이 많습니다.

스페셜리스트의 가치도 올라가는 이유는 스페셜리스트가 만능형 선수를 보좌하는데 제격이라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농구 같은 경우는 슈팅 스페셜리스트를 많이 보유할 경우 만능형 선수의 다재다능함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보거든요. 축구도 만능형 공격수의 찬스메이킹을 받아먹어줄 득점 스페셜리스트가 있다면 완벽한 조화죠. 만능형 S급+만능형 A급의 조합보다 만능형 S급+스페셜리스트 A급의 효율이 더 좋은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NBA 빅맨들도 슈팅 레인지가 짧은 선수들은 자유투 국내선수만도 못합니다. 마크 가솔, 알 호포드, 던컨 같은 슈팅 좋은 센터도 80%를 넘기지 못합니다. 파포는 그나마 노비츠키, 알드리지, 보쉬 등이 있지만 이들은 슈터로 봐도 될 정도니까요. 자유투 60%를 못 넘는 대부분의 선수는 빅맨입니다.

용량브레이커님/// 원고료 쿠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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