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6 2011년 오프시즌(Off-Season) =========================================================================
그들은 어느덧 게티 센터에 도착했고, 차를 주차하면서 영재는 수줍게 말하는 에밀리를 보더니 열어놨던 차 창문을 모두 닫았다. 창문은 외부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선탠이 잘 되어 있었고, 에밀리는 이제 내리나보다 하는 생각에 안전벨트를 풀었다.
"으읍! 음..."
영재는 속으로 반칙이라 생각했다. 저런 식으로 진솔하고 가감없이, 순수하리만큼 이쁜 모습으로 속마음을 숨기지 않아주고,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에밀리가 옆에서 수줍어하고 있으니 영재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창문을 몽땅 닫아버리고 에밀리의 입술을 탐한 것이다.
"아, 아아... 윤... 이제 내려야 하는, 읏!"
에밀리는 살짝 틈이 생겨 떨어져 영재를 말리려 했지만, 영재는 에밀리랑 떨어지기 싫은 모양인지 아예 왼 손으로 에밀리의 허리를 부드럽게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오른손으로는 마주보는 에밀리의 오른쪽 어깨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그러자 에밀리도 그 전과는 달리 영재에게 바짝 달라붙어 양 팔로 영재의 머리와 어깨를 감싸안으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두 사람은 차를 주차하고 10분이 넘어서야 상기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은 영재와 에밀리의 모습에 오! 하며 놀랬지만 왠지 모르게 입술이 유독 빨간 것 같아 고개를 갸웃 거릴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게티 센터를 돌아다니며 마음이 힐링되는 것을 느꼈다. 영재의 경우 예술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저 멍하니 에밀리의 뒤를 따라다녔지만, 그런 영재가 보기에도 엄청나 보이는 작품들이 수두룩했다. 에밀리가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면서도 입술이 부어서 따가웠는지 가끔씩 입술에 차가운 물병을 가져다 대는 모습이 박식한 에밀리보다 더욱 귀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구경하다가 저녁노을이 질 쯤, 두 사람은 렌트카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는 숙소 한 방에 들어가는 것도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당당히 들어가게 되자 에밀리는 영재에게 팔짱을 끼면서 조금 쑥쓰럽다고 수줍게 말했고, 영재는 뭐 그런 거에 신경쓰냐면서 에밀리의 허리를 좀 더 감싸 안았다.
방에 들어오니 두 사람은 생각했던 그런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한 시간 동안 뻘쭘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에밀리가 먼저 씻고 나온 뒤, 영재가 씻고 나왔고, 서로가 씻는 동안 다른 사람은 침대에 앉아서 뻘쭘하게 티비를 보는 척 초조한 마음을 숨길 뿐이었다.
룸서비스를 주문해 식사도 하고, 간식도 먹고, 침대에서 나란히 앉아 손도 잡지 않은 채 멀찍이 떨어진 채 TV도 보던 두 사람은 호텔의 분위기에 조금 적응했는지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일 있을 ESPY 행사에 같이 참석하는 것이 기대된다. 옷은 내일 뭘 입을까? 거기 가면 누가 있을까? 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다가 방에 비치된 술을 에밀리가 마신 것이 사단이 되었다.
그 이후부터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영재는 샴페인 향기가 나는 에밀리의 향기에 이끌려 있는 힘껏 껴안았고, 에밀리는 살짝 오른 취기에 영재를 감싸안고 떨어지지 않았다.
"..."
그리고 깨어난 영재는 옆에서 자신의 팔을 잡고 잠든 에밀리를 보면서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어젯밤에 일어난 일이 정말로 사실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영재는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여자로 안 보여? 그냥, 좋은 누나일 뿐이야?'
'이제 안 참을래. 더 이상은 안 참아. 윤이라면 안 참아도 돼.'
에밀리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에밀리와 처음으로 같이 밤을 보냈다. 아찔할 만큼 황홀했던 기억이 영재를 휘감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에밀리가 자신의 팔을 꽉 껴안는 것에서 짜릿한 느낌을 영재는 받을 수 있었다.
'서투른 게 참 귀엽다고 해야 할까.'
하나부터 열 까지 모두 참으려하다가 결국엔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는 모습부터 해서, 몸이 떨린다던가, 뭔가 서투르지만 열심히 하려는 모습에 그런 상황임에도 웃음이 새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엄청났지.'
영재는 에밀리의 금발머리를 손으로 슥슥 쓰다듬으면서 휴- 하는 한숨을 내 쉬었다. 아직까지도 힘이 조금은 빠진 느낌에 영재는 이 여자 조심해야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혼자 웅얼거리다가 잠 든 에밀리를 꽉- 껴안았다.
"으응... 조금만 더..."
"옷 하나도 안 입은 채로, 나랑 붙어 있는데도 더 자려구?"
"괜찮아... 윤이니까... 그러면 나 조금만 더..."
영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하하! 웃더니 에밀리의 정수리에 턱을 올리곤 딱딱- 입을 닫았다.
2011년 ESPY 어워드.
영재와 에밀리는 엄청난 인파가 모인 LA 특설무대 포토존에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촬영을 마쳤다. 이런저런 질문이 날아왔고, 두 사람은 더 이상 서로의 관계를 숨기지 않으며 솔직하게 서로에 대해 말해 주었다.
영재는 입장 후 여러 선수들을 만났다. 주로 NBA에서 맞부딪혔던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면식이 있는 코비 브라이언트, 러셀 웨스트브룩을 시작으로 영재와 라이벌리를 구축한 선수들이 영재와 에밀리를 보고는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코비, 아시아 투어는 잘 갔다왔어요? 한국도 갔던데 어땠어요?"
"아 윤, 그간 잘 지냈나? 나야 잘 다녀왔지. 근데 내가 한국 갔다온 건 어떻게 알았나? 나를 검색해보기라도 하는 거야? 이번에 한국이 아마 세 번째 방문이었을 거야."
오랜만에 만난 코비는 여전한 모습이었다. 그는 경기장 내에서는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한 선수였지만, 이런 곳에서는 털털한 사람이었다. 영재가 자신이 한국에 잘 갔다왔냐는 인사를 건네자 웃으며 받아쳤다.
"에이, 당신 같은 슈퍼스타가 한국에 방문했으니 난리가 났죠 뭐. 이래뵈도 한국 인터넷도 종종 본다구요. 당연히 알죠."
"하하, 그렇게 되나? 하긴 자기 나라 소식 챙겨보다보면 당연히 봤겠군. 투어는 재미있었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아이들을 봐서 즐거웠지. 한국이라...애들이 열심히 하더군. 좀 아쉬운 건 어린애들이 즐기기보다는 지쳐있는 느낌이랄까. 학생들이 왜 농구를 하는데 즐겁기보다는 지쳐있는지 모르겠어."
코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보기에는 미국 학생들에 비해 열의가 좀 아쉬웠고, 즐겁게 농구하기보다는 열심히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자신이 듣기로는 8~9학년(중2~중3)아이들을 데리고 한 클리닉이었는데 즐기기보다는 시험을 치듯이 하는 느낌이었다.
"아,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우리나라 특유의 문제점인데, 고쳐질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어릴 때부터 운동하는 애들은 공부를 안하고 하루 10시간 이상 운동만 하거든요. 그러니 즐거울 리가 없죠. 지루하면 지루했지. 뭐 저도 9학년까지는 그런 생활을 했었으니까요. 나름 장점도 없는 것 같진 않은데...단점이 더 커보이는 게 사실이죠."
영재는 한국의 엘리트 양성 위주의 교육을 떠올렸다. 체육 특기생들은 형식상 오전까지는 수업에 들어가지만 사실상 잠만 잘 뿐, 공부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훈련하고 선배들, 선생들의 강압적인 교육을 받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당연히 즐거울 수가 없었다.
"호오, 하루 종일 운동만 한다라... 그 어린 나이에 말이지? 나 같아도 안 즐거울 거 같긴 하다. 어린 나이는 어린 나이답게 해야 하는데 좀 아쉽구만.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 그러면 나중에 보자고."
"먼저 가요."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던 둘은 이야기가 길어지자 코비가 먼저 다른 사람들을 만나러 이동했다. 영재도 동료들이나 다른 지인들과도 인사를 나누기 위해 코비를 먼저 보냈다.
"윤. 우승하고 나니까 얼굴에 금칠한 것처럼 인상이 쫙 폈는데?"
하얀 정장바지에 갈색 구두, 금색 넥타이에 하얀 와이셔츠, 마지막으로 검은 정장상의를 입은 멋스러운 존 월의 모습에 영재는 슬쩍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월, 너도 대단한데? 그렇게 멋지게 차려입으면 내가 뭐가 돼?"
확실히, 영재는 정장이라기엔 약간 캐쥬얼스러운 느낌이 있는 옷차림이었다. 애초에 정장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이런 자리임에도 숨이 막히는 정장 보다는 검은 정장바지에 살짝 패인 V넥의 하얀 반팔티에 가죽점퍼 느낌이 살짝 나는 듯한 디자인의 캐쥬얼 정장상의에 레몬 모양의 펜던트가 달린 커플 목걸이와 손목시계로 마무리 한 영재의 모습은 각이 잡힌 느낌이라기 보단 댄디한 느낌을 많이 주는 느낌이었다.
"에이, 그건 너가 답답하니까 싫은 거겠지. 그래도 그 정도면 예의는 갖췄네?"
"물론이지. 옆에 내 사람이 있는데 예의도 안 지키면 예의없는 사람이지."
에밀리는 뽀얀 피부에 어울리는 순백색 원피스를 단아하게 입은 채 존 월에게 인사를 했다. 존 월은 그런 에밀리의 자태에 슬쩍 넋이 나갈 뻔 했지만 이내 흠흠 하고 평정심을 되찾더니 영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언제 저런 미인을 얻었대? 부러워 죽겠구만. 난 갈란다. 다음에 보자고?"
"그래. 다음에 보자고, 아. 잠깐."
영재는 잠시 존 월을 불러세우더니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 존 월에게 건네주었다. 그건 다름아닌 영재의 연락처가 적혀있는 임시 명함이었다.
"심심할 때 연락해. 언제 연습이나 같이 하자고."
영재는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뻗어 전화기 모양을 만들더니 오른손을 귓가에서 흔들었다. 그러자 존 월도 미소를 지으며 영재의 제스쳐를 따라하고는 그대로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도 2011 NCAA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짐머 프레뎃, 빅 이스트 (BIG EAST) 컨퍼런스 토너먼트에서 최고의 모습을 선보인 캠바 워커 등의 이번 드래프트 신인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영재는 드디어 댈러스 매버릭스 멤버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다 오지는 않았고, 노비츠키, 키드, 테리, 챈들러, 매리언, 바레아, 카디널까지 일곱 명이 참석했다. 자신까지 포함하면 8명이었다.
"이야~ 안녕하세요!"
하지만 영재는 뒷전이었고,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에밀리에게 모두들 시선이 쏠려 인사를 하기 급급했다. 에밀리는 그런 모습에 당황하긴 했지만 최대한 밝게 웃으면서 영재의 팀 동료들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었다.
"에- 나는 안 보여요?"
"아, 왔어?"
영재의 툴툴거림에 팀원들은 영재를 놀리는 듯한 인사를 하고 말았다. 영재는 너무하다 싶어서 입을 비죽 내밀었지만 이미 에밀리가 대화의 주축이 되어버리니, 그것도 나름대로 기분이 좋은지 영재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특설행사장은 그야말로 만석이었다. 하지만 수상 후보에 오른 댈러스 매버릭스의 선수단들은 적당히 보기 좋은 앞좌석, 그야말로 노른자 자리에 배정이 되었다. ESPY 어워드는 그야말로 스포츠 종목에서 한 해 동안 엄청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한 곳에 모이는 축제의 장이었다. 그래서인지 NBA를 포함해서 NFL, MLB, MLS, WNBA... 게다가 스키, 테니스 등의 종목에서도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 각종 유명인사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우와..."
그런 곳에 에밀리가 한 자리를 잡고 있으니, 에밀리도 떨리는 모양인지 주변을 둘러보면서 쿵닥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하지만 영재는 괜찮다면서 에밀리의 오른손을 잡아주면서 긴장을 풀게 했다.
"이제, 이 곳에 있는 사람들과 동등한 연기자 겸 가수가 될 건데 긴장을 왜 하고 있어?"
"아, 아직은 아니잖아. 확실히 될 지도 모르고..."
하지만 영재는 단호한 말투로 에밀리의 말을 끊었다.
"확실히 돼. 날 믿어."
영재의 확신에 왠지, 에밀리도 조금은 자신이 생겼는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ESPY를 즐기기 시작했다. ESPY는 역시나 엄청난 행사답게 하나부터 열까지 화려하고 또 화려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 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어제는 연재를 쉬어 죄송합니다. 알러지가 어제 심해서 하루 종일 아팠네요. 약먹고 뻗었다가 일어나보니 자정이 넘어있었습니다.
@ESPY 어워드는 꽤나 화려하고 인지도 높은 행사입니다. 그래미나 아카데미상 못지않죠. 전미 스포츠 시상식 중에 대표적인 시상식입니다.
@실제로 코비는 7월 14~15일에 내한했었습니다. 2006년에 이어 5년만의 내한이었습니다. 코비 이름을 건 투어였고, 꽤나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고등-대학생들 대상으로 클리닉도 했고, 중학생들 상대로 1:1 대결도 했고, 조현일, 손대법 편집장과 토크쇼도 했었죠. 코비가 내한한 게 세번째였었다고 합니다. 이 때 반농담이긴 했지만, 직장폐쇄가 길어지면 KBL에 오는 건 어떻겠냐고 했을 때, KBL에서 뛰는 것도 흥미로울 거 같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개구리파워님/// ㅠ.ㅠ 일상을 쓰다보니...
일루미네님/// 만나는 기간이 짧다보니 좀 열심히 데이트를~~
은신설야님/// 저희도 시립니다 ㅠ.ㅠ
rtg98님/// 그렇습니다. 30개 구단주 중 유일한 흑인이자, 매년 스포츠 스타 수입 탑5 안에 들죠. 농구 선수 중에는 거의 매년 1위일 겁니다. 신발가게 사장님이라 ㅋㅋ
울트라10님/// 코비는 A-로드랑 비슷할겁니다. 재작년에 3천만 달러를 넘었으니까요. 근데 그 아래인 조 존슨이나 덕 노비츠키보다 높은 MLB선수들이 여럿입니다. NBA는 맥시멈이 정해져있지만, 야구는 그게 없다보니...근데 이제 내후년부터는 농구가 야구를 앞지를 겁니다. 3천만 달러 이상 연봉자가 두 자릿수가 될 거 같아요 ㄷㄷ. 르브론 맥시멈이 4천만 달러에 가까울 거 같던데;;;
ㅎ0ㅎ님/// 저희도 외롭습니다 ㅋㅋ
CountOfDark님, -DarkANGEL-님, 파이넨시아님, 오마리온님/// 코멘 감사합니다!! 내일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소심찌질열등남님, goimosp님/// 말씀 감사합니다. 하루종일 운동만 하는 선수는 없으니까요 ㅎㅎ
하님/// 몰입감이 좋았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자주 코멘서 뵈요~
우유동자님/// 이미 예매율이 바닥을 치는 모양입니다;; 왜 예전에 제대로 안 잡고, 그냥 덮었는지 원... 여하간 우리나라 머리쓰는 분들은 일단 덮고보자는 식이 너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