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5 2011년 오프시즌(Off-Season) =========================================================================
[교도소의 생활이 풍족하거나 이전의 삶처럼 만족스러울 리 없다. 하지만 하나 둘, 우드베리의 생존자들과 함께 힘을 모아 생활을 하게 되니 조금씩이지만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릭, 조금 더 깊게 땅을 파야 해요."
"고마워. 브랜."
우드베리의 미치광이 거버너는 사라졌다. 하지만 호시탐탐 이 교도소를 노리고 있음은 분명했다. 우리는 안드레아를 떠나보내야 했지만, 희생이 없는 삶은 지금 이 세계에선 사치일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에 익숙한데, 브랜."
"한국에서 부모님이 농사를 지었거든요."
나는 워커를 죽이고, 사람을 죽이는 일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나의 아들 칼이 나에게 한 말 대로, 나는 모든 일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 무리를 이끄는 대장도 아니고, 그저 나는 농사일을 하는 한 사람으로써 교도소 안에서 내 몫을 해 내고 있었다.
키가 훤칠한 브랜이 칼과 나를 성심껏 도와준다. 우드베리에서도 농사일을 담당하던 브랜은 앳되지만 꽤나 남자 같은 얼굴로 듬직하게 우리를 돕고 있다. 간간히 기침을 하긴 했지만 가벼운 감기라면서 일을 꾸준히 도와주는 브랜을 보니 든든한 느낌도 들 정도였다.
"글렌하고 동향이라던데, 이야기는 잘 통하는가?"
그러다보니 브랜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이 밭도 브랜의 노력으로 조금씩이지만 결실을 맺고 있었다.
"싸우는 법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있습니다. 글렌 형이 잘 대해줘서 적응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브랜의 미소는 아직까지 우리가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젊은이들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컷! 좋습니다!"
릭을 열연하던 앤드류 링컨은 브랜의 역을 꽤나 잘 소화해 낸 동양인 청년에게 악수를 건넸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괜찮은 연기였습니다. 농구선수라 연기는 한 번도 안 해보셨을 텐데 말이죠."
"감사합니다. 잘 봐주셔서 저도 잘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시원시원하게 뻗은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는 숯검댕을 묻혀도 숨겨지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런 잘 생긴 청년은 머쓱하다는 듯 쑥스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얼른 가죠. 여기서 있다간 들킬 수 있습니다."
저 쪽에서 따로 촬영 대기중인 출연진을 슬쩍 보던 링컨은 그 청년에게 익살스럽게 웃더니 청년과 함께 허겁지겁 교도소 세트장 안으로 들어갔다.
"자, 찍습니다. 컷!"
["..."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녘. 곤히 잠에 빠졌던 브랜은 몸이 이상함을 느끼고는 잠에서 깼다.
"커억!!"
간간히 기침을 하긴 했지만 갑자기 숨이 막힐 듯 목과 가슴이 아파오자 브랜은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었다.
"허억, 허억..."
브랜은 가쁜 숨을 간신히 참으며 샤워장으로 비칠비칠 걸어갔다. 단지 감기가 좀 심해서 그런 거라고 애써 외면하면서 뜨거워 미칠 것 같은 가슴에 찬 물이라도 끼얹으면 괜찮을 거라며 계속 웅얼거리는 브랜.
쏴아아-
"컥, 컥... 커억!!"
하지만 상의를 벗고 찬물을 온 몸으로 맞던 브랜은 입에서 피를 토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
"크어어... 어억..."
숨이 멎었던 브랜의 눈은 다시금 떠 졌다.]
["아아아악!!!"
분명히 개운한 아침을 맞이해야 했지만, 고요해야 할 아침은 누군가의 비명소리에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무슨 일이에요?!"
비명소리에 놀라 달려온 릭과 글렌, 데를, 메기, 베스. 다섯 명은 이 비명소리가 도대체 어디서 난 것인지, 무엇 때문에 난 것인지 몰랐다.
"워, 워커가 침입했습니다! 워커입니다!!"
허겁지겁 달려온 사람의 외침에 다섯명은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한번 더 꽉- 잡은 채 비명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쩝쩝...
탄탄한 상체에 낮익은 뒷모습. 릭은 그 모습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농사일을 하지 않는 네 사람은 워커로 변해 죽은 사람의 내장을 뜯어먹는 게 누구인지 한 번에 알 수 없었다.
"브랜... 어쩌다가..."
브랜의 이름을 읊조리는 릭의 말에 그제야 네 사람은 워커로 변한 사람이 브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자를 뜯어먹던 브랜은 릭의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턱-
"... 윤?!"]
"컷!! 에밀리, 브랜에게 윤이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에밀리는 갑자기 나타난 영재를 보면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브랜, 아니 영재는 상의를 입지 않고, 코와 입에 잔뜩 묻힌 피를 닦지도 않은 채. 하얗게 까뒤집힌 눈동자로 에밀리를 응시하더니 비칠비칠 일어났다.
"윤? 왜, 왜 그래? 무섭게..."
"카아아악!!!"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달려드는 영재를 보며 에밀리는 깜짝 놀라 꺄악 하며 비명을 내질렀고 영재는 에밀리를 붙잡자마자 부드럽게 포옹하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아직... 윤으로 보이니..."
"히이익?! 유, 윤! 무서우니까 그만 해!!!"
소녀같이 깜짝 놀란 에밀리를 보면서 영재는 그제야 깔깔 웃었다. 앤드류 링컨과 노먼 리더스, 스티브 연, 로렌 코헨, 그리고 주변에 있던 촬영진들도 영재의 깜짝 등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면서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 LA에서 훈련하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좀비분장을 한 영재는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싱긋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괴상한 설렘으로 에밀리도 당황스러웠다.
"이전에 공항에서 그랬잖아. 깜짝 놀라게 해 준다고. 그래서 왔지. 원래는 응원차 가볍게 들리는 목적이었는데 여기 계신 감독님하고 링컨 씨가 짧게 까메오로 촬영에 참가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고, 에밀리에겐 당연히 극비로 했지."
"이익!!"
에밀리는 옆구리를 콱 틀어쥐고 영재에 품에 파고들고 싶었지만 촬영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 하지만 이렇게 서프라이즈로 나타나는 영재도 신선하고 두근거려서 그런지 당했다는 느낌 보다는 기쁘다는 느낌이 더욱 선명한 에밀리였다.
"자, 그럼 다시 촬영 갈게요. 두 분, 만남의 회포는 나중에 푸실 시간 드릴 테니 얼른 끝내죠?"
촬영감독의 능글맞은 목소리에 에밀리도 영재도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빨개졌고, 영재의 첫 스크린 데뷔이자 브랜의 처참한 죽음은 다행히도 무사히 촬영이 마무리 되었다.
["워, 워커가 침입했습니다! 워커입니다!!"
허겁지겁 달려온 사람의 외침에 다섯 명은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한번 더 꽉 잡은 채 비명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쩝쩝...
탄탄한 상체에 낮익은 뒷모습. 릭은 그 모습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농사일을 하지 않는 네 사람은 워커로 변해 죽은 사람의 내장을 뜯어먹는 게 누구인지 한 번에 알 수 없었다.
"브랜... 어쩌다가..."
브랜이라고 읊조리는 릭의 말에 그제서야 네 사람은 워커로 변한 사람이 브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자를 뜯어먹던 브랜은 릭의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캬아아악!!!"
베스는 달려드는 브랜을 보더니 이를 악 물고는 머리에 철창을 힘껏 꽂아넣었다.]
"우와, 이렇게까지 강하게 찔러 넣다니! 에밀리, 내가 그렇게 좋아?"
"응! 그 정도로 좋은걸?"
시즌 3의 1차 촬영도 잠시 막을 내림과 동시에 출연자들에게도 짧은 휴식이 생겼다. 영재가 와서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준 건 아니었고, 영재가 먼저 제작진에게 언제쯤 1차 촬영이 끝날지 물어본 후 그 기간에 맞춰 왔기 때문에 영재는 1차 촬영 종료 직전에 와서 에밀리를 놀라게 해줄 수 있었다.
영재는 정말 리얼하게 촬영된 영상을 보면서 감탄했고, 에밀리도 꽤나 괜찮은 연기를 펼친 영재를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워킹데드 촬영은 1주일 동안 휴식기에 접어들었고, 에밀리와 영재는 17일 LA에서 벌어지는 ESPY 어워드(ESPN이 주최하는 스포츠 시상식)에 같이 참석하기로 했다.
"어워드가 내일이니까! 오늘은 실컷 놀고 먹을래!"
에밀리는 그간 촬영을 하며 참아왔던 욕구를 해소한다는 생각에 평상시보다 더욱 밝은 목소리로 말했고, 영재는 그런 에밀리를 보면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평상시에도 귀엽고 이쁜데 저런 상태가 되니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귀여워 진 에밀리를 보면서 영재는 에밀리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에밀리는 밖에서도 점점 과감해지는 영재를 보면서 난감한 듯 얼굴을 붉혔다. 2011 ESPY (Excellence in Sports Performance Yearly) 어워드가 열리는 LA 에서 하루동안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데이트를 즐기기로 하자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지만, 밖에서도 오른손으로 허리를 감고 걸어다니는 건 아직까진 에밀리에게 낮선 일이었다.
"싫어?"
"아니... 좋아. 그냥, 조금 어색할 뿐이야."
에밀리는 얼굴을 붉혔지만 그래도 이전처럼 고개를 슬쩍 숙이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재를 마주보면서 떨리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길거리를 거닐면서 주변의 시선에 당당해진 것이다.
가볍게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정처없이 거리를 걷던 두 사람은 점심시간 전에 도착하자고 했던 곳으로 가기 위해 차에 탑승해서 여유롭게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게티 센터! 드디어 가는구나~"
에밀리는 황홀한 표정으로 카페라떼를 홀짝였고, 영재는 능숙하게 차를 몰다가 신호대기에 걸리자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마시기 위해 컵을 들려고 했다.
"자, 마셔. 운전 중인데 위험하잖아."
에밀리는 대신 컵을 들어주고 빨때를 꽂아 영재에게 내밀었고, 영재는 쪽쪽 아메리카노를 빨아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술 쪽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게티 센터가 유명하다고만 들었는데 그렇게 대단한 곳이야?"
에밀리는 당연하다는 듯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영재에게 조잘조잘, 귀여운 목소리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게티 센터가 어떤 곳이냐면, 어마어마한 석유재벌이었던 장 폴 게티라는 분이 생전에 수집했던 모든 예술품을 전시한 곳이야. 정말 대단하다니까? 산타모니카 산 정상에 지어서 LA 전경이 아래로 쫙 펼쳐진 그 아름다운 곳에 세워진 대규모 전시장, 아~ 빨리 가고 싶다"
부우웅-
"그래도 안전운전 할거야.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지?"
"으... 내가 애도 아니고! 당연히 참을 수 있지!"
가끔씩 애 취급을 하는 영재를 보면서 에밀리는 약간 눈을 흘겼지만, 영재는 그 때 마다 별 반응 없이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나. 윤을 만나면서 이상하다고 느낀 적 있어."
"어? 뭐가?"
"윤은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데, 이야기 하는 것부터 해서 행동하는 거, 경험했다는 일들... 절대로 스무 살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성숙하잖아."
영재는 의외로 촉이 좋은 에밀리의 말에 움찔 했지만,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영재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반한건가 봐."
확실히, 에밀리는 그간 만났던 남자들이 전부 연상이었다. 그래서인지 연하인 남자들을 보면 왠지 그냥 애기 같고, 철없어 보여서 남자라고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왠지 영재는 달랐다. 분명 행동이나 말투는 스무 살이라고 봐도 되었지만, 그 속에서 문득문득 습관처럼 배어나오는 연륜이나 매너, 프로정신 등은 절대로 스무 살의 그것이 아니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좋지? 그러니까 에밀리는 남자 잘 만난 거라구. 어디 가서 자랑해도 돼?"
자랑해도 된다는 영재의 말에 에밀리는 슬쩍 웃으면서 목걸이를 매만졌다. 조그만 레몬 모양 실버 팬던트가 달린 특이한 목걸이는 영재가 손수 주문제작을 한 목걸이었다.
"나, 이 목걸이에 담긴 윤의 생각이 너무 좋아서, 여기저기 말 하고 다니는 걸?"
영재는 그냥 기하학적이고 이쁘기만 한 펜던트 보다는 자신이 직접 시간을 들여 꽃말을 뒤적거려보면서 에밀리와 자신의 관계를 상징할 수 있는 골드 펜던트를 맞추고 싶어했다.
"레몬꽃이 열의와 성실한 사랑을 뜻한다고 윤이 그랬잖아. 꽃을 펜던트로 만들면 너무 복잡해서 이쁘지도 않고 조잡할 거라는 설명에 레몬 펜던트로 대신 했다는 윤의 말이 너무 귀엽고 감동이어서... 가족한테도 말했어."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 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은신설야님///첫 코 감사합니다~
시카의노예님/// 충분히 영재의 입장에서 실리를 챙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 세탁을 위해 더 많이 돈을 쓰는 경우도 흔한걸요.
goimosp님/// 미국 스포츠는 대부분이 서비스타임이 있습니다. 유럽축구도 웬만한 신인급은 주급이 한번에 오르지는 않긴 합니다. 물론 이 정도로 노예계약은 아니겠지만요 ㅋㅋ
ㅎ0ㅎ님/// 다친다면야 보험료를 협회에서 내줘도 별 의미가 없죠. 그저 다치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ㅎㅎ
Lazze님/// ㄷㄷㄷ 아니었습니다
울트라10님///넵. 그래도 농구가 야구보다 서비스타임도 일찍 끝나고 연봉 상승폭도 큽니다. 단점이라면 슈퍼스타급 선수의 연봉이 야구보다 낮다는 정도? 말씀대로 스타의 위력이 큰 스포츠라 부가수입도 많죠.
찬란한유산님, CountOfDark님, 사라질영혼님, 파이넨시아님/// 코멘 감사합니다~~
그랜드라인님/// 그 점은 제가 잘못 이해했군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부상은 언제나 조심해야죠. 협회가 보험금을 내줘도 부상당하지 않는 건 아니니... 그리고 아직 아무 것도 해놓은 게 없는데, 벌써부터 나 작은 대회에는 차출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아마 여론도 등돌릴 겁니다. 저부터도 그 선수 비난할것 같네요. 뭘 해줬다고 벌써부터 자기 실리 챙기냐고요. 이후에 대회 좀 우승시키고, 메달도 따면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후 시즌을 거치면서 발언권을 높일 생각입니다. 코멘으로 의견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심찌질열등남님/// 옙. 그렇습니다.
친님/// NBA연봉관련 글이 A4지로 수십 장이나 되죠 ㅋㅋ. 저희도 연봉 관련 쓸 때 검색하곤 합니다. 웬만큼은 외우고 있는데, 그래도 헷갈리는 게 있을 정도로 복잡해요.
잿빛그림자님/// 쿠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비드리히님/// 원고료 쿠폰 주신 분들께도 다 감사드립니다. 후원 쿠폰은 닉넴이 뜨다보니 따로 감사인사를 드리는 거에요 ㅎㅎ. 앞으로도 즐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