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8 2011년 오프시즌(Off-Season) =========================================================================
"큐반. 플랜 C입니다. A와 B는 이미 지나갔으니, 그 다음 최선책을 택하면 됩니다."
"플랜 C라. 드래프트 진행에 따라 별다른 변수는 없는 모양이군요."
"예. 특별히 접촉해온 구단도 없고, 저희도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게 없기 때문에 기존 플랜대로 가면 될 겁니다."
큐반은 자신도 참여하고 합의를 본 세 가지의 플랜을 모두 검토했고, 승인을 했기에 별 이견 없이 넬슨의 말을 받아들였다. 마지막까지 세 선수들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결국 큐반 본인이 선택한 선수가 플랜 C가 되었고, 그 선수를 뽑게 된다는 것에 큐반은 왠지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큐반은 픽 사이의 결정 시간 5분 동안 뜸을 들이는 척 하더니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전화기 너머로는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힘차게 대답하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큐반은 잘 부탁한다며 전화를 마무리했다.
"2011년 NBA 드래프트 29번째 픽을 가진 댈러스 매버릭스의 선택은.... 챈들러 파슨스!!"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챈들러 파슨스도 가족과 지인들의 품에 안겨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기쁜 감정을 숨기지 못할 것이다. 드래프트 테이블에는 로터리 픽 지명 예상자를 포함해 1라운드가 확실시되는 선수들만이 초대받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리고 이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영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TV를 응시했다. 자신이 바라던 바였다. 몇 달 전, 절친이었던 카와이 레너드 덕분에 NCAA를 자주 시청했던 영재는 파슨스를 경기에서 보며 순간적으로 깨달았던 것이 있었다. 댈러스의 드래프트는 매년 실패작이었던 것이 기억났고, 파슨스가 2라운더였다는 것이 기억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 뒤로도 목 드래프트를 종종 살펴보았고, 댈러스가 뽑을 수 있는 순위에 거론되는 선수 중에 성공한 선수들은 싱글러와 버틀러, 파슨스였다. 자신은 갓 루키였고, 구단에 입김을 넣을 수 없었기에 워크아웃 기간을 노려 참관을 요청했고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아쉬운 점은 세 선수 중 파슨스만을 워크아웃했지만, 다행히도 파슨스는 워크아웃에서 괜찮은 기록과 워크에틱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자신도 칭찬을 많이 하며 그의 점수를 높였고, 결국은 그가 댈러스에 뽑히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댈러스는 보브아에 이어 자신까지 성공했기에 이번 루키는 트레이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기에 내년 시즌이 기대되는 영재였다. 예전에는 루디 페르난데스를 얻기 위해 픽을 트레이드했지만, 자신이 자리잡으며 슈팅가드를 보강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믿음에 기반한 생각이었다.
2010년 6월 28일. 샌디에이고 주립 대학.
영재는 편안한 복장으로 누군가를 코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평상시에 운동을 할 때 입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영재는 슬슬 공을 튕겨보았다.
정말 기본적인 한 손 드리블부터 시작하면서 조깅하듯 달리는 영재. 세 바퀴 정도 코트를 크게 돌더니 영재는 공 하나를 더 가지고 와서 양 손으로 드리블을 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뛰는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영재는 코트를 뱅뱅 돌았고 그 도중에 양 손으로 튕기던 공은 한 치의 오차도, 펌블도 없이 안정감 있게 드리블링이 되고 있었다.
"후."
영재는 오랜만에 모교 체육관에 들러서 공을 드리블 하고 있었다. 프로 농구 선수들에게는 비시즌이었기 때문에 영재뿐만이 아니라, 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샌디에이고 주립대학의 황금세대들도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평상시에도 종종 SNS로 연락을 하던 사이였기 때문에 오랜만에 이 기회를 빌어 만나기로 한 것이다.
"헤에~ 한 시즌 못 본 사이에 더 괴물이 되어버렸네?"
한층 더 능글맞아진 목소리. 영재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리자 뒤를 휙 돌아보았고, 그 자리에는 자신처럼 편안한 복장을 입고 오른손을 흔들면서 천천히 걸어오는 D.J 게이가 있었다.
"이야~ 조란 드라기치와 영혼의 콤비! 유니카야 말라가의 명불허전 1번! 그간 잘 지냈어 주장?"
영재는 시즌 중에도 간간히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아즈텍스의 멤버들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서로의 기사도 보면서 지냈기 때문에 게이가 얼마나 노력해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갔는지 알 수 있었다.
"올 시즌에 NBA를 뒤흔든 Y13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민망해 죽겠네."
"뭐... 주장이 잘 해서 그런 거니까."
게이는 그런가? 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 짧은 머리였던 게이는 언제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는지 제법 어울리는 드레드 락을 하고 있었다.
"이젠 살 판 났나봐? 외모도 가꾸시고, 턱수염도 기르고? 그래서, 스페니쉬 걸은 어때? 기대한 것처럼 대단해?"
영재의 농담에, 게이는 피식 웃더니 말보다는 직접적인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슬쩍 꺼낸 게이는 한 장의 사진을 선택하더니 영재에게 들이밀었다.
"어떠냐?!"
"어... 확실히 대단하네."
정말 대단했다. 뭐랄까, 육감을 넘어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신체적 한계의 끝을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눈대중으로 봐도 엄청난 크기에 얼굴은 그야말로 앳된 10대의 얼굴. 이건 어떤 남자가 봐도 사기급 베이글녀였다.
하지만 영재는 잠시간 흥미를 보였을 뿐 금방 담담해졌다. 물론, 엄청나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게이도 그런 영재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재미없다는 듯 스마트폰을 집어넣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어째 대학생 때랑 다를 게 없냐. 이런 미녀를 보고 그런 반응이라니."
"예쁘네."
심플한 한 마디, 그게 다였다. 게이는 재미없다는 듯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는 공을 집어 들었다.
"그러면, 어디 한 번 Y13의 실력을 볼까?"
"주장, 1:1 하려고? 포지션 차이 생각해야지. 주장이랑 나랑 키 차이 꽤 난다고?"
확실히, 게이는 NCAA 시절의 신체 그대로였다. 6-0(183cm) 의 단신 포인트가드. 하지만 깡말랐던 그의 몸은 어느덧 그럴듯하게 벌크업이 되어 작지만 단단한 돌멩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너만 성장한 건 아니니까. 한 번 해보자고?"
게이는 공을 천천히 드리블하기 시작했다. 졸업 직전 시즌부터 드리블에 안정감을 가지기 시작했던 D.J 게이는 유니카야 말라가에서 조란 드라기치와 함께 합을 맞추며 시즌 평균 27분을 뛰면서 11.9 득점에 2.1 리바운드, 9.1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유니카야 말라가의 준우승을 이끈 주역이었다.
영재는 드리블이 한껏 낮아지고 안정감을 찾은 게이를 보면서 쉽게 생각하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게이는 영재의 사이드스텝을 확인해 보기 위해 좌우로 살짝 드라이브 인을 할 듯 스텝을 밟았고, 영재는 역시나 엄청난 속도로 게이를 단숨에 따라잡아버렸다.
'이거, 진짜 괴물이네.'
대학 시절에 비해 벌크업도 해서 전체적인 스피드가 떨어졌을 줄 알았더니 스피드가 그대로 유지된 채 힘이 좋아져 버렸다. 물론, 댈러스 매버릭스의 뛰어난 코치진의 관리를 받은 탓도 있었지만 1년을 넘게 훈련하고 있는 요가나 필라테스 덕에 전신의 근육이 한껏 유연해진 덕도 있었다.
투퉁!
그러다 급작스럽게 게이의 드라이브 인. 영재는 단단한 몸으로 파고드는 게이를 막아내면서 속으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록 NBA 입성은 할 수 없었지만 스페인 리그의 크리스 폴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득점력이나 스타일은 조금 다를 수 있어도 키가 같고 단단한 체구라서 그렇게 불리는 듯 싶었다.
하지만 영재도 그저 게이에게 놀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게이의 돌파를 제어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그야말로 입맛에 딱 맞는 돌파루트로 게이가 돌파하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칫.'
게이는 결국 돌파를 단념하고는 재빨리 뒤로 스텝백을 구사했다. 영재는 눈에서 이채를 내뿜으며 앞으로 팟! 하고 다가왔다. 그 한 번의 스텝이 어찌나 빠른지, 게이는 식겁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공은 손에서 떠난 상태였다.
타아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영재의 오른손에 그대로 막혀버린 슛은 사이드라인 밖으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 하! 기가 막힌다. 1시즌 전 까지만 해도 나, 슈팅 없는 가드인 거 뻔히 알면서 슈팅할 거를 알고 따라왔다고?"
"아... 그런 거지. 슛 없는 가드가 거기서 스텝백을 할 리가 없잖아. 게다가 1:1 상황인데. 한 명에게 수비를 집중하면서 놓치면 민망하잖아."
영재의 덤덤한 말에 게이는 정말로 괴물이 다 된 영재를 보면서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뻐할래야 이뻐할 수 없고,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선수가 바로 영재였다.
"이야~ 역시 Y13! 엄청나구만!"
엄청난 블락을 사이드라인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7명의 선수들은 박수를 치면서 코트 위로 올라왔다. 그리스 리그에서 평균 19분을 뛰면서 11.2 점을 넣은 최강의 식스맨 켈빈 데이비스를 필두로 울산 모비스의 골밑을 단단하게 지켜내며 평균 25분 동안 10.1 득점 12.1 리바운드 3.1 어시스트를 기록한 더블더블 머신, 말콤 토마스, 그리고 저번 시즌까지 NCAA 에서 활약을 펼친 브라이언 카웰, 빌리 화이트, 알렉 윌리엄스, 체이슨 타플리가 우르르 코트 위로 올라왔다.
"곧 있으면 학생들도 우르르 올 거야. 뭐, 모교 방문 행사라고 하지만 그냥 간단히 학생들한테 좋은 이야기 들려주고, 친선경기 형식으로 20분 뛰는 거니까 오랫만에 합 좀 맞춰보자고."
켈빈 데이비스 역시 한층 더 여유있는 모습으로 반갑게 인사했고, 말콤 토마스는 NCAA 시절 지적받던 체력과 힘을 보완하기라도 한 듯, 꽤나 우락부락해진 모습으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오~ 토마스. 웃는 거 보니까 요즘 사는 게 재미있나봐?"
"그럼, 재미없겠어? 아주 그냥 죽겠다니까?! 윤, 이게 다 니 덕이다!"
영재는 당황한 나머지 어버버 거렸지만 토마스는 영재의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었는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한 명이 더 도착했다.
"여어, 축하를 받아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왔구만! 오랜만이야!"
이번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5번 픽으로 지명된 카와이 레너드였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샌디에이고 주립대 2학년으로서 아즈텍스를 16강까지 끌고 올라간 장본인이었다. 지금이야 공식적으로 드래프트에서 지명되고 자퇴 절차를 밟았지만 말이다.
"내가 제일 늦었네. 다들 잘 지냈나보군? 토마스, 게이, 데이비스도 오랜만이야. 윤은 몇 번 봤었고. 올스타전이 제일 최근이었나."
"그러게. 오랜만이야. 너의 활약상 잘 봤어. 이번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것도 축하한다. 캬아, 우리 학교에서 2년 연속으로 1라운더가 배출될 줄이야. 그리고 그 세대에서 같이 뛰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추억이 어딨겠냐."
"고마워. 그래도 너희들도 잘 하고 있던데. 각자 자기들 리그에서 좋은 활약들을 하는 걸 봤어."
토마스가 예전의 삼총사답게 가장 먼저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전화로 축하하긴 했지만, 직접 봤으니 다시 한 번 축하한다. 나보다 높은 순위로 지명됐으니 나중에 한 턱 쏘라고?"
"넌 이미 스타잖아. 아직 데뷔도 못한 나한테 뭘 뜯어가려고 그래?"
"에이, 그래도 내 연봉이 네 연봉보다 적을 거라고? 크크"
"나 아직 연봉 한 푼도 못 받았다."
영재는 네 달 만에 보는 레너드가 반가웠는지, 장난부터 걸기 시작했다. 영재는 계속해서 장난을 걸었지만, 레너드는 여전히 포커페이스로 받아쳤다.
"자자, 장난은 그만하고. 어쨌든,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이제 슬슬 행사를 준비해 볼까?"
주장이었던 게이가 행사 준비를 위해 서로간에 반갑게 장난치는 것을 중단시켰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 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나라나라아님 후원 쿠폰 감사합니다!!
Luscinia님/// 넵 첫코시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미친Q님, -DarkANGEL-님, 사라질영혼님, 파이넨시아님, 오마리온님/// 코멘 감사합니다~~
ㅎ0ㅎ님/// 넵... 심각합니다 ㅋㅋ;;
울트라10님/// 하하... 파슨스는 나중에나 나올 겁니다. 직장폐쇄 때문에;;
goimosp님/// 네엡. 그렇습니다. 파슨스였습니다.
sis-yuki님/// ㅎㅎ 감사합니다. 1000편은 너무나 과분하네요 ㅎㅎ
블랙카페님/// 여러 번 후기에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보기 싫으시다면 그 부분을 스킵하시면 됩니다.
키라루피님/// 개막을 안할 수도 없으니 사면초가라는 생각입니다. 리그 파행을 할 수도 없으니...
rtg98님/// 넵. 그렇습니다. 교포 4세라서 그런가, 본인이 한국 교포라는 자각은 있는 걸로 아는데, 한국어는 잘 못한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