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Y13-167화 (167/296)

00167  2011년 오프시즌(Off-Season)  =========================================================================

영재는 한국에 애증의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았고, 국가대표로서 가졌던 기억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 그리고 한국에는 연이 닿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국가대표로 지내는 선수들 정도. 그나마도 지금의 그들은 자신과 연이 닿지 않은 상태였다. 어릴 때 친구들도 미국에서 힘들게 지내면서 연락이 끊겼다.

철컥-

영재는 SUV에서 내리더니 스마트폰을 꺼냈다. 5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영재는 더 이상 기다리게 하는 건 실례라는 걸 알았기에 얼른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더피의 앞에 앉았다.

"국적은 아직 별로 생각이 없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생각해보도록 할게요. 우선은 흘러가듯이 그대로 가겠습니다."

영재의 말에 더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영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딱히 연고가 없더라도 국적이란 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웬만큼 큰 상처를 받지 않고서야 자신의 모국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다. 전 세계에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자신의 모국이 약소국일지라도 모국 국가대표로 최선을 위해 뛰고 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국가대표는 한국 농구협회의 요청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언제쯤 합류하길 바랍니까?"

"당장은 휴식이 우선 필요합니다. 협회에서는 언제 합류하길 원한다고 합니까?"

영재는 올 시즌 100경기 이상을 뛰었다. 게다가 매 경기 27분 이상을 뛰었고, 우승 이후에도 수많은 스케줄로 아직 휴식이 부족했다. 야오밍도 자신에게 비시즌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잦은 국가대표 합류로 인한 부상을 조심하라는 조언을 해준 바 있었다. 자신도 전생에 잦은 국가대표 합류로 인해 NBA에서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고, 체력이나 부상 문제로 고생한 기억이 있었다.

"최대한 빠른 합류를 원하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침체된 농구의 인기와, 최근의 부진한 국제대회 성적을 당신을 통해 만회하려는 것이겠죠. 그들에게 윤의 입장이나 상황을 고려할 생각은 없을 겁니다. 이건 윤과 제가 챙겨야 하는 부분입니다. 윤이 파이널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6월 동아시아 대회부터 합류하라고 했을 겁니다."

더피의 대답을 듣자마자 영재의 감정은 씁쓸함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했다. 차이점이라면 자신이 을의 위치가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예전처럼 국가대표에 목맬 이유도 없었다. 자신의 컨디션과 스케줄에 맞추어 합류하는 게 나았다. 그들이 자신에게 텃세를 부리고 갑질을 한다면 그냥 서로 갈 길을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아쉬운 건 그 쪽이니까.

"사정 봐줄 생각이 없군요. 한국 국가대표팀의 스케줄표가 혹시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읽어보시고 결정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만약 당장 결정이 어렵다면 나중에 따로 연락해주셔도 됩니다. 어차피 급한 일은 아니니까요."

더피는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맨 위에는 간단한 일정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는 각 대회별로 상세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5월16일 ~ 6월 5일 1차 훈련

6월 10일 ~ 6월 15일 동아시아선수권대회(중국)-이벤트성 대회

7월 1일 ~ 8월 4일 2차 훈련

8월 6일 ~ 8월 14일 윌리엄 존스컵(대만)-아시아농구선수권의 전지훈련 성격

8월 16일 ~ 9월 12일 3차 훈련

9월 15일 ~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중국)-올림픽 출전권(1위 직행, 2~3위는 향후 최종예선)

"윌리엄 존스컵은 참가해야겠군요. 그렇다면 적당히 2차 훈련에 합류하면 될 것 같은데. 7월 1일은 무리입니다. 구단 스케줄은 물론이고, 미뤄둔 것들도 다 처리를 먼저 해야겠습니다."

빌 더피도 영재의 말이 타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선수인만큼 관심없는 국가대표 스케줄을 무리하게 따름으로써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컨디션 난조를 겪게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조사한 바로는 저 훈련 스케줄에 빠지는 선수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대회나 부상 등을 이유로 며칠 전은 되어야 풀 전력이 된다는군요. 말씀대로 미뤄둔 스케줄도 꽤 많습니다. 일단 한국에서 광고를 세 개 정도 찍어야 합니다. 귀국은 언제쯤 할 생각입니까?"

실제 한국 대표팀은 언제나 그렇듯이 부상 회복을 이유로, 대학생들이나 상무 출신들은 다른 대회를 이유로 늦게 합류하는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빠르게 합류해봤자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한국 회사의 많은 광고요청 중에 세 개를 골라내두었는데, 그것을 할 시간도 필요했다.

"7월 17일 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번 달 말까지는 해야할 것들이 있고, 케이시 스미스 트레이닝 코치에게 가서 비시즌간 훈련 일정과 방법을 좀 배워둘 생각입니다. 이 부분을 제대로 배워두면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기 때문에 미룰 순 없습니다. 그 이후인 17일에 LA에서 개최되는 ESPY 어워드 행사에 참가한 후 곧바로 귀국할 생각입니다."

더피는 미소를 지으면서 서류가방 안에서 두툼한 문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알겠습니다. 향후 미국 내 스케줄표는 여기 두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예전부터 이야기했던 것을 상세하게 적어둔 것입니다. 그리고 직장폐쇄 후 훈련할 곳이 마땅치 않으면 회사로 찾아오십시오. 회사가 제휴한 짐이 있습니다. 비시즌에 루키들이나 해외 선수들, 자유계약 선수들을 위한 곳입니다."

두 사람은 이후로도 몇십 분에 걸쳐 향후 세부 스케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2010-2011 NBA 모든 경기가 끝나고,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준비한 모든 구단 행사도 대부분 끝이 났다. 특별한 일이 없는 선수들은 아직 댈러스에 남아 있었고, 그들은 개인적인 휴식기를 가지기 전 마지막으로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에 모두 모여 어떤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왠지 모르게 그간 장난도 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던 활발한 분위기가 아닌 차분한 분위기에서 선수들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진중한 표정의 흑인. 나이는 이미 50을 넘긴 중년의 아저씨이지만 검은 슈트가 잘 어울리는 단단한 몸매는 자기관리가 철저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다들 왜 그렇게 조용히 있나? 뭐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나?"

의외로 드웨인 케이시는 밝은 미소로 선수들을 하나하나 토닥여주었고, 선수들은 드웨인 케이시에게 아쉬운 투로 인사를 건넸다. 어차피 이 직장들은 비즈니스이고, 케이시는 해임되는 것도 아니고 영전하는 것이니 축하를 해야 할 일이었다. 다만, 그런 좋은 코치가 떠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노비츠키, 자네의 나이는 이제 순응해야 할 게 되었어. 무리하지 말고 플레이를 나이에 맞게 바꾸는 게 필요할 거야. 그렇다면 자네는 충분히 롱런할 수 있는 슈퍼스타야."

"키드, 자네를 보면서 나는 항상 자네를 존경했네. 남들은 은퇴를 바라볼 시점에 자네는 아직까지 코트를 누비고 있으니까. 그 도전정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매 순간 자네를 보면서 많이 배웠네."

이런저런 진심어린 이야기를 건네던 드웨인 케이시는 마지막, 영재의 앞에 우뚝 서더니 허허- 하고 웃어버렸다.

"그래... 이번 시즌. 가장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 줘서 고맙네. 윤, 자네가 없었으면 이번 시즌이 이렇게 해피엔딩이 되진 않았을 테지."

영재는 드웨인 케이시의 말에 조금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젠 케이시 감독이 된 케이시 코치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영재의 어깨를 토닥였다.

"데릭 암스트롱 코치의 막연한 훈련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 신인 선수임에도 자신을 키워달라고 경기 중에 시위하듯 맹활약을 펼치면서 어필하고... 조금은 오만방자 할 수 있는 시기인데도 참, 담백하게 자신을 평가하고 단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그 조용하고 엄청난 열정에. 정말 많은 걸 배웠네. 그리고 다짐했지. 자네를 제대로 키워보자고."

"코치."

케이시는 처음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토닥이던 걸 멈추고 영재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이제 나는 다른 팀의 감독이 되지만, 지난 1년 간. 자네를 제대로 키워보기 위해 노력했네. 아니, 노력이라기 보단 나도 같이 성장하면서 나아가고자 했네. 어떤가, 1년 간 자네는 성장한 거 같은가?"

영재는 그 말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에서의 멋진 첫 1년이었습니다. 성장은 말할 것도 없죠. 이젠, 더욱 클 겁니다. 다음 해에 코치의 팀과 붙어서 코치가 나를 보면서 허탈한 웃음을 지을 정도로."

케이시 코치는 그걸로 충분하다며 영재의 어깨를 마지막을 토닥이며 캐리어를 끌고 유유히 걸어갔다.

"자,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토론토 랩터스랑 할 때는 힘 좀 빼 주고! 하하!"

토론토 랩터스로 부임하게 된 드웨인 케이시 감독은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고, 댈러스 매버릭스의 릭 칼라일 감독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다가 단호히 말했다.

"봐줄 생각은 없어. 일단은 축하하네. 이번이 두 번째 감독직인가. 이번에는 미네소타 때처럼 실패하질 않기 바라네. 3년간 여러 모로 도와줘서 고마웠네."

이제 두 사람은 코치와 감독이 아닌, 당당한 두 사람의 감독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5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 때에 케이시는 미네소타의 감독, 칼라일은 인디애나의 감독이었다. 이제는 다시금 코트 위에서 서로 상대로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될 터였다.

"그래, 나도 즐거운 시간이었어. 이 곳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지만, NBA 감독직이라는 제의를 거절할 코치가 어디 있겠나. 나도 가서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 시작해 봐야지. 그러면 다음 시즌에 봅세."

2011년 6월 25일 뉴저지 주 뉴악 프루덴셜 센터.

"2011년 NBA 드래프트 27번째 픽을 가진 뉴저지 네츠의 선택은.... 자주안 존슨!"

TV 속에서 데이비드 스턴이 27번 픽으로 뽑힌 선수를 호명했다. 그 모습을 회의장에서 지켜보던 댈러스 매버릭스 수뇌부들은 안타깝다는 듯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었다.

"하나의 선택지가 사라졌군요."

"어차피 최선의 선택지였던 해리스와 퍼리드는 한참 위에 지명됐지 않습니까? 자주안 존슨은 우리의 남은 선택지 중 최선도 아닙니다."

넬슨 단장이 살짝 아쉬운 소리를 하자, 제임스 화이트는 웃으면서 받아쳤다. 지난 회의 이후로도 계속된 회의를 통해 오늘 오전에 결정난 그들의 플랜에서 자주안 존슨은 선택지의 아래에 있었다. 가장 위의 선택지였던 토비아스 해리스와 케네스 퍼리드는 각각 19번과 22번 픽으로 샬럿과 덴버에 이미 뽑혀버렸다. 1~14번 까지의 로터리픽 만큼 치열하거나 긴박한 싸움은 아닐지라도, 팬들이 보기에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즐기는 이벤트일지라도 1라운드 하위픽을 가진 상위권 팀들 간에는 나름대로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다음 28번 픽은 시카고 불스로군요. 불스라면 가드쪽을 보강하고 싶어할 테니, 우리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보통 하위픽에서는 최고의 재능보다는 부족한 포지션을 보강하는 게 일반적이죠."

딕 베이커 스카우트가 첨언하며 TV를 바라보았다.

"2011년 NBA 드래프트 28번째 픽을 가진 시카고 불스의 선택은... 노리스 콜!"

노리스 콜의 선택에 회의장에 있던 실무진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예상대로군요. 그렇다면 플랜 C로 가는 것 맞습니까?"

제임스 화이트는 마지막이라는 듯 도니 넬슨과 릭 칼라일을 바라보며 물었고, 릭 칼라일은 이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도니 넬슨은 전화기를 들어 드래프트 현장에 참가한 마크 큐반에게 연락을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 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국가대표 관련은 이전에 투표를 바탕으로 저희가 후기(74편)에 적은 그대로입니다. 한국 국가대표로 참가하되, 간략히 진행될 예정입니다. 경기 서술은 거의 할 생각이 없고요. 이미 예전에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확정된 사항입니다. 요새 국농 승부조작 뉴스를 보면 한숨밖에 안 나오지만요.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 투표를 바탕으로 저희가 뱉은 말을 다시 바꾸기는 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협회의 병신력은 저희도 잘 압니다. 그 부분을 크게 확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소설은 NBA소설이니까요. 아마도 인터뷰, 기사, 대화 위주로 서술될 겁니다.

@그리고 절대 먼치킨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물론 영재가 아시아 대회에 뛰는 순간, 그 대회 내에서는 먼치킨이 되겠죠. 아시아와 미국 농구는 거의 고교와 프로급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딱히 다른 한국 선수들을 띄워줄 생각은 없습니다.

후기 내용으로 부족한 코멘만 리코멘 하겠습니다. 여러 분들의 코멘트는 후기로 충분히 답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혹여 후기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다시 코멘을 달아주시면 다시 리코멘해드리겠습니다.

삼편님///국가대표 대항전이라...축구에 비하면 인기가 없죠. 하지만 야구나 배구에 비하면 세계적인 인기는 꽤 높은 편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인기가 없죠. 제가 인기가 있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만... 영재로 인해서 올라갔다고만 했죠. 왜 여기서 먼치킨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여 제가 잘못 이해했다면 다시 코멘을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死ぬ님///직장폐쇄라는 게 좀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따로 용어설명 없이 넘어간 부분인데요. 자세하게 알아보시려면 네이버에 'nba 직장폐쇄' 라고 검색하고 두 번째 블로그(2011 NBA 직장 폐쇄의 전반적 배경과 주요 키워드들)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게 워낙 방대한 양이라 코멘트로 작성해 드리기에는 너무 길어질 것 같습니다. 저희조차도 자료 없이 말해보라고 하면 열 줄 이상 쓰기 힘들 정도로 세부내용은 어렵습니다.

@무념무상@님/// 말씀대로입니다. 미국 스포츠는 미디어, 언론의 영향을 많이 받죠. 경기 수는 물론이고 스케줄도 그렇죠.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보니 어쩔 수 없기는 합니다.

킹덤브라더스님/// 모티브를 따온 사람이 있습니다. 모티브라기엔 좀 거의 실존인물 그대로긴 합니다. '조나단 임'이라는 인물입니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보시면 나올 텐데, 꽤 유명한 사람입니다. 실제로도 NBA 포틀랜드에서 비디오 코디네이터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유능한 농구인입니다. 현역 NBA 감독중에 다섯명이 비디오 코디네이터 출신이니 향후 조나단 임이 NBA 감독이 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은신설야님, -DarkANGEL-님, 찬란한유산님, 사라질영혼님, 오마리온님, CountOfDark님/// 코멘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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