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Y13-166화 (166/296)

00166  2011년 오프시즌(Off-Season)  =========================================================================

"오늘은 이야기할 게 꽤 많습니다. 그래서 직접 찾아온 것이기도 하고요. 윤이 파이널 우승을 하는 바람에 시간적인 여유도 많지 않습니다. 하하."

빌 더피는 너스레를 떨면서 영재에게 농담을 건네며 분위기를 풀었고, 영재도 그런 더피의 의중을 파악했는지, 약간은 긴장을 풀면서 미소를 지었다.

"걱정해 주시는 거 감사합니다. NBA는 플레이오프가 길어서 컨텐더 팀 선수일수록 휴식기가 짧다는 맹점이 있기도 하고, 이 팀에 가고자 했을 때부터 각오한 부분입니다."

NBA는 정규시즌이 82경기인데 반해 플레이오프는 최대 28경기(7전 4선승제를 4차례)나 된다. 전 세계의 어떤 단일리그도 정규시즌 대비 플레이오프 경기수가 이렇게 많은 리그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당장 댈러스도 16승 5패라는 좋은 성적으로 우승했음에도 21경기나 치뤘던 것이다. 플레이오프를 탈락한 팀들보다 두 달 이상이나 시즌이 긴 것이다. 보통 정규시즌이 4월 초~중순에 마무리되며 파이널은 6월 중순에 마무리된다.

그러다보니 오프시즌에 무언가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서머리그가 7월, 트레이닝 캠프가 9월에 열리다보니 실제로 쉴 수 있는 시간은 두 달 반 정도였다. 그 와중에 개인훈련도 해야 하고, 시즌 중에 할 수 없는 각종 사적인 일들을 해야 했다.

"그래서 에이전트가 존재하는 것이죠. 최대한 농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각종 스케줄을 조율하고 농구 외적인 것들을 담당해 주는 것. 그렇게 해서 시즌이 다시 시작할 때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하... 그래서 말인데, 이번 시즌은 솔직히 어떻게 될지 예상이 되질 않는군요."

영재도 모를 수가 없는 꽤나 민감한 문제. 그것은 바로 직장폐쇄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선 직장폐쇄는 무조건 일어날 겁니다. 6월 30일까지는 이전 CBA가 적용되므로 7월 1일에 시작할 겁니다. 문제는 얼마나 오래 갈 것이냐는 것이죠. 95년 같은 경우는 조기에 협상이 타결되어 거의 정상적인 시즌을 치뤘습니다. 반면 98년에는 해를 넘겨 1월에야 시즌이 개막했죠. 제 생각으로는 98년과 비슷하거나 더 오래갈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양 측의 입장 차이가 크기 때문에 극적인 합의가 없다면 해를 넘길 가능성도 다분하죠."

빌 더피의 말에 영재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피할 수 없는 직장폐쇄라면, 동향을 살피면서 최대한 몸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했다.

"그렇다면 빨라도 연말, 혹은 시즌이 통째로 날라갈 수도 있다는 거군요. 충분한 대비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웬만하면 시즌 개막만큼은 정상적으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영재는 새로운 CBA협상이 12월에 타결되어 11-12시즌이 단축시즌으로 치러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는 없었고, 시즌 개막이 미뤄지는 것은 사실이므로 그 동안 자신을 발전시키고 경기감각을 유지할 방법을 생각할 필요는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빌 더피의 이야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은 것이고, 속으로도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선 직장폐쇄 기간에는 선수들과 구단은 모든 접촉이 금지됩니다. 전화는 물론이고 SNS까지도 말입니다. 당연히 구단 시설도 이용할 수 없고, 연봉도 지급되지 않습니다. 여러 모로 준비를 해야 할 게 많습니다. 일단 첫 번째로 이야기할 것은 윤에게 필요한 개인 트레이너 고용 건입니다."

직장폐쇄가 되면 자연스럽게 구단과 선수는 접촉이 불가하다. 이는 직접적인 만남을 포함해서 메시지, 전화통화 등 모든 연락 수단의 차단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재 역시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 하는 부분이었고, 개인적으로도 트레이너를 고용하게 되면 좀 더 체계적인 훈련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후보군을 몇 명 추리긴 했습니다만, 윤의 연봉으로는 유명 트레이너를 고용하는 건 솔직히 금전적으로 불가능하죠. 유명 트레이너들은 NBA 구단 코치가 가능할 정도의 경력자들이니까요. 그래서 윤이 선호하는 조건과 맞을 만한 트레이너들을 찾아봤습니다."

대부분이 3~40대의 젊은 남성이었고 영재의 조건에 따라 더피는 총 3명의 후보를 추려내어 보여주었다. 영재는 3장의 이력서를 훑어보다가 마지막 이력서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오랫동안 읽어보았다.

[조나스 임 (Jonas Yim)]

1980. 3. 23(31세)

- 1999 ~ 2004 : Region Highschool Head Coach

- 2005 ~ 2009 : Maryland Coach

- 2010 ~ 2011 : California Santa Margarita Coach

현역 선수로서의 경력은 없었지만, 코치로서의 경력은 나이치곤 꽤나 화려했다. 아마, 젊은 시절부터 아예 코치로 길을 잡은 케이스일 터였다.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고등학교, 대학교의 코치를 모두 경험했고, 여러 곳에서 일해봤으니 적응력도 좋을 듯했다.

"... 음, 이 분을 고르고 싶네요. 이 분과 미팅을 잡아주실 수 있나요?"

영재는 조나스 임의 이력서를 내밀었고, 빌 더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보는 안목이 탁월하시군요. 안 그래도 조나스 임은 이 말을 꺼내자마자 굉장히 흥미로워 했습니다. 마침 임의 직장이 캘리포니아 지역이라 샌디에이고와 가깝습니다. 윤과 미팅을 하고 싶어하길래 며칠 뒤에 윤이 샌디에이고로 간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오전에 참석하실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행사에 직접 참가해서 윤의 모습도 보고,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날 행사를 같이 참관하고 행사 이후에 미팅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임에게는 제가 연락을 따로 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연락처도 여기 놔두고 가겠습니다."

빌 더피는 말을 많이 해서 목이 말랐는지 영재가 대접해 준 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다음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직장폐쇄와 리그 상황에 대해서는 종종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정기적으로 메일을 보내드릴 테니 읽어보시고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다면 문의를 해주시면 됩니다. 그 다음 이야기 할 건 한국 국가대표팀 및 광고와 관련된 겁니다. 그간의 윤의 행적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을 바라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더피의 마음씀씀이는 영재 역시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시 과거에 얽매이고 현재를 외면한다면, 영재는 분명 후회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활동이 필요하다면, 영재는 가서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제게 필요한 것을 버리고 싶진 않습니다. 한국에서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곳에도 NBA를 보고, 좋아하는 팬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예전부터 계속 협회에서 요청이 오고 있다고 하셨죠?"

빌 더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요청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어이없기는 하지만, 국가대표에 합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뉘앙스라 저희로서는 매우 거부감이 심합니다. 축구처럼 강제 차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선수들이 국가대표 차출 요청에 흔쾌히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부상이나 FA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죠. 일단은 한국에서 윤의 인지도는 폭발적입니다. 언론 플레이도 있겠지만, 여론도 당신의 합류를 바라고 있는 상황이고요. 아마 국가대표가 된다면 거의 영웅 대접을 받을 거라 생각되긴 합니다."

영웅 대접이라. 영재는 자신이 스스로 영웅 대접을 받을법한 선수인가 싶어 쑥쓰러웠지만 요청 과정은 썩 유쾌하지가 않았다. 그래도 국가대표라면 모름지기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은 자리라는 건 변함없었다. 자신의 선배 격이라 할 수 있는 최진수가 잦은 국대 차출로 결국 미국 대학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한국으로 리턴한 것도 눈앞에서 지켜본 그였다.

"그렇겠지요. 노비츠키나 바레아, 보브아, 마힌미 다들 이번에도 국가대표팀에 갈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제게 국가를 위해서라면 부상이나 커리어도 포기해야 한다는 애국심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명색이 제 조국이고 국가대표로서의 자부심은 있습니다."

댈러스는 유럽 출신 선수들이 많았고, 그래서 그들은 매년 여름마다 국가대표로 자주 나서곤 했다. 빌 더피는 긍정적인 부분을 설명한 이후, 순차적으로 부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영재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한국의 NBA, 농구와 관련된 인기는 여전히 바닥이고, KBL의 좋지 않은 리그 운영으로 농구에 관한 신뢰도도 바닥인 수준입니다. 이번 시즌에 한국에서 농구의 인기가 조금 올랐지만, 그건 전적으로 당신 덕분입니다. 국내 스포츠의 인기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해외에 진출한 스타의 인기가 높아진 것일 뿐이죠. 윤, 만일 정 껄끄럽다면 지금이라도 미국 국적 취득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제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충분히 윤의 잠재력이라면 향후 미국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는 것도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더피의 말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애국심, 그리고 국가대표로서의 자부심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올 시즌을 끝낸 뒤, 자신도 충분히 미국 국가대표팀에 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무언가 개운한 뒷맛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영재는 더피에게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 한 뒤 현관문 밖으로 나와서 SUV에 탑승했다. 시동은 걸지 않은 채 잠시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에 영재는 문을 잠근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엄마는 오늘도 집에 없다. 아빠도 오늘, 집에 없다. -

앳된 중학생의 소년은 영어로, 그리고 그 아래에 똑같은 의미의 한글을 적으면서 혼자 커다란 집 안에서 계속 노트 위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 한국에서 있을 때 까지만 해도 엄마도, 아빠도 좋았다. 밤 늦게야 오시긴 했어도 날 보면 웃곤 해 주셨다. 하지만, 미국에 오기로 한 1년 전 부터 엄마 아빠는 바뀌었다. -

그 소년은 교복을 벗지도 않은 채 점심도, 저녁도 거르면서 계속 노트 위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 집을 청소하러 오는 아저씨들만 일주일에 2번 씩. 음식을 가져다 주는 아주머니가 매일 저녁. 그리고 내가 쓸 수 있는 돈도 매일 그 아주머니가 준다. 쓰기엔 모자람이 없는 돈이다. 먹고 자고 놀고... 뭘 하든 충분했다. -

소년은 그렇게 노트 위에 계속 글을 쓴다. 그러다가 벨이 울리면 나가서 음식과 돈을 받아온다. 음식을 먹고 소년은 무의식중에 티비를 켠다.

OH MY GOD!!! WONDERFUL SLAM!!!

우적우적 밥을 먹는 소년에게 유일한 낙이라면, NBA 경기를 보는 것이었다. 그 때 만큼은 오지않는 엄마도, 아빠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동양인이라고 차별받던 학교에서도 NBA를 많이 알게 되고, 이야기를 나누고, 농구를 연습하면서 경기를 뛰다보니 차별도 많이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경기가 끝나면 여지없이 소년에겐 외로움이 찾아왔다.

- 엄마, 아빠가 일에 미친 것 같다. -

- 집은 아무래도 좋은건가 보다. -

그렇게 원망스러운 글씨들을 쭈르르 써 내려가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한 마디의 문장만이 빼곡하게 남은 종이를 채우게 된다.

- 보고 싶어요. -

그렇게 1주일, 2주일이 지나면서 소년은 점점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1주일에 한 번은 의무감에 시달리는 듯한 역겨운 표정으로 소년을 보는둥 마는둥 했던 부모였지만, 이렇게까지 오래 보이지 않으니 소년도 점점 불안해 진 것이다.

"..."

정신을 차려보니 소년은 장례식에 참석해 있었다. 부모님은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는 꽤나 큰 회사에서 엄청난 능력으로 회사를 성장시켜 온 주역이었다. 그야말로 주인공같이 찬란한 인생이 회사에 가면 있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고 했을 정도였다.

아이가 있으면서도 그 부부는 아이보다 회사가 좋았단다. 누구의 엄마, 아빠, 누구의 배우자 보다 회사의 중요 간부인 자신이 더 좋았단다. 그러다가 출장 중에 사고로 죽어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사는 둥 마는 둥 하다보니 엄청나게 컸던 집은 조그맣게 변했고, 남들이 평생 만지기 힘들 정도로 쌓아두기만 했던 많은 재산들은 이리 뜯기고 저리 뜯겼다. 그래도 중형 기업을 대기업으로 끌어올린 두 사람의 공이 컸기에, 회사에서 직접적으로 소년의 부부가 남겨놓은 유산을 법적 절차를 통해 아무도 손 대게 하지 못하게 한 후, 소년에게 남은 돈이라도 고스란히 물려주었다.

그 돈은, 적어도 소년이 대학생 때 까지는 살 수 있는 돈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 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NBA는 플레이오프가 너무 깁니다. 구장 수용 인원이 적다는 한계로 인해 수입을 늘리려고 1라운드도 5전 3선승제를 7전 4선승제로 확대했죠. 애초에 30개팀의 리그에서 16강을 한다는 것도 희한한데 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플레이오프 수입이 정규시즌에 거의 맞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수들의 부상이 너무 타이트한 스케줄 때문이라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선수들도 연봉을 줄이고 싶지 않아하다보니 이렇게 되더군요.

메이저리그는 와일드카드를 포함해도 8강이죠. 작년인가부터 와일드카드도 단판승부를 추가하긴 했습니다. 이게 다 경기장 수입과 중계권 수입을 늘리려는 꼼수기는 합니다.

햄톨님, 울트라10님, goimosp님, 라피르and진트님/// 예압. 파슨스면 좋은 픽이죠.

ㅎ0ㅎ님///그나마 연기자는 좀 낫습니다. 몰아서 스케줄 하고 휴식기가 기니까요. 뮤지션 계열들은 레알 스케줄이 들쭉날쭉... 그나마 미국은 공연 위주라 좀 낫긴 하죠. 우리나라는 죄다 행사 위주니;;;

강자일님/// 슈팅가드 한정해서 80 초반이면 상위권일 겁니다.

-DarkANGEL-님, CountOfDark님/, 사라질영혼님, 찬란한유산님, 백사킬러님, 파이넨시아님, 오마리온님// 코멘 감사합니다!! 내일도 좋은 하루 되세요~~

미얄마님, 봉래산의니트히메님/// 그렇습니다. 우승권 팀이 상위픽을 가져서 루키가 팀의 우승에 주축이 된 경우는 근래에는 팀 던컨 정도입니다. 샌안토니오가 딱 한 시즌 데이빗 로빈슨의 부상으로 하위권에 쳐져서 1픽을 먹어서 던컨을 픽했습니다. 이런 희귀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하위픽이고, 그 하위픽이 첫 해에 터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죠.

비오는날엔우울해님/// 라임이 좋으시군요 ㅎㅎ

chaikopusuki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읽는동안 즐거운 시간 되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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