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4 2010-2011 파이널(Final) =========================================================================
귓속말로 슬쩍 속삭이던 로렌의 말에 스티브는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다. 멜리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모양인지 에밀리에게 '저랑 영재는 그런 사이 아니에요~' 라며 재빨리 선수를 쳤다.
"다들 왜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어, 안 그래, 오빠?"
"어엄... 그럼 그럼."
사실 스티브도 이야기를 듣고 방송을 볼 때까지만 해도 둘 사이에 뭔가가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설마 그게 순수한 우정이고 동료애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멜리의 질문에 얼버무리듯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
에밀리는 질투라기보다는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고 꽤나 예쁜 편인 멜리와 영재의 대화를 지켜보며 불안감을 살짝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개방적인 사회이고, 영재와 얕지 않은 관계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눈앞에서 그런 장면을 보고 불안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영재는 에밀리를 슬쩍 보고는 그녀의 마음이 짐작이 갔다. 그래서 모두들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에밀리의 손을 잡아주었다. 에밀리는 깜짝 놀라서 영재를 토끼눈으로 바라보았고, 영재는 뭐 어떠냐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오올~"
"꺄아아~ 손 잡았어, 응? 오빠! 나도 남자친구 생기면 저럴까? 아아~"
"남자친구 만들려면 일단 그놈의 워커홀릭 성향부터 버려야 할 거 같다만... 맨날 일에만 빠져 사는데 어디서 남자가 나타나겠냐."
스티브가 멜리에게 타박을 주었지만, 멜리는 그런 스티브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계속 자신만의 상상에 빠져서 순정만화의 여주인공마냥 행복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왜 그랬어요?"
"... 미안해요. 그냥, 좀 불안했어요."
영재는 이대로 놔둬선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스티브와 멜리, 로렌에게 양해를 구하곤 에밀리와 잠시 부엌으로 나와 에밀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에밀리는 영재에게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윤은, 파이널 홍보 마지막 장면에 나올 정도로 대단한 선수에요. 그리고, 끝까지 신인왕 경쟁을 하고... 솔직히 나는 윤이 NBA 선수로써 높은 곳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가길 바래요."
"에밀리."
"하지만 난... 이제 처음으로 워킹데드에 합류했고 일단은 주연급에 포함은 되었지만 아무것도 이룩한 게 없어요. 음악도, 연기도. 게다가 나이도 여섯 살이나 많고..."
에밀리의 끝모를 걱정에 영재는 에밀리를 꽉 껴안더니 턱을 에밀리의 정수리 위에 올리고는 딱딱- 이를 부딪쳤다.
"악, 앗!"
에밀리는 자기 나름대로 진지하게 이야기한 것인데도 장난처럼 받아들이는 영재에게 뭐라 한 마디 하려 했지만, 영재 역시 장난으로 에밀리의 이야기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다. 에밀리를 의자를 꺼내 앉히고, 영재는 에밀리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더니 눈높이를 맞추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가 잘났고, 누가 못났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에?"
영재는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말에 당황한 에밀리의 손을 잡았다.
"우리가 잘 어울리니, 안 어울리니. 그리고 누가 잘났고, 누가 부족하고. 그런 건 누가 정하는 거예요? 우리를 보는 시선? 아니면 언론? 아니면 팬?"
"..."
"결국, 우리 둘이 좋으면 되는 거잖아요. 나 역시 에밀리가 이번 기회로 배우로써, 가수로써 높게 비상할 거라 생각해요.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렇기 때문에 그 전까지 괜한 구설수에 오르거나 기자들에게 시달릴까봐 걱정했던 거예요. 그것 때문에 에밀리의 앞길에 자칫 방해가 될까봐 걱정이 되서 공개하지 말자고 한 거예요. 나 또한 아직 신인이고 시즌 중에 가장 중요한 경기가 남아 있고요."
에밀리는 영재에게 계속 말해보라는 듯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는 사람들은 있을 거예요. 다만,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파파라치들도 이미 몇 장의 사진을 언론사에 뿌렸고 실제로도 꾸준하게 기사화는 되고 있으니까요. 그나마 아직 우리 둘 다 그렇게 유명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인 거라고 생각해요."
"네..."
"워킹데드 촬영도 끝이 났고. 나도 이제 곧 시즌이 끝나요. 조금만 시간을 가지면 충분히 공개해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그러니까, 내가 비밀로 하자고 한 거에 대해 불안했던 거라면 그러지 마요. 정 불안하다면 시즌이 끝나자마자 바로 공개해도 괜찮아요."
에밀리는 자신을 신경써주는 영재의 말을 듣고 깊은 곳에 남아있던 불안함과 걱정, 혼란스런 마음이 녹아내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버렸다. 숨기려고 닦아도 흘러내리고, 주체할 수 없어 훌쩍이는 에밀리였다. 영재는 그런 그녀가 부끄럽지 않도록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 가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에밀리."
"네."
"편히 말해봐."
...
"응."
영재는 에밀리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파이널 경기, 꼭 보러 와 줬으면 해."
에밀리는 영재의 마음을 이해했다늗 듯 양 팔로 그의 허리를 꽉 감으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2011년 5월 30일.
영재는 정말 오랜만에 7시를 넘어서까지 잠을 잤다는 생각에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옆자리에서 아직까지도 느껴지는 뜨듯한 온기에 영재는 슬쩍 눌린 듯한 매트를 손으로 매만지고는 기지개를 폈다. 일반적인 기지개라기보다는 이제는 버릇처럼 되어버린 스트레칭과 요가자세였다. 소름돋을 정도로 유연한 몸임에도 영재는 어딘가 불만족스러운지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다.
'다리.'
180도로 쫙 펴진 다리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통증. 아무래도 피로가 쌓이다보니 쉬고, 관리를 받아도 이미 온 몸은 너덜너덜한 상태일 것이다. 대학에서도 풀타임을 뛰어본 적이 없던 영재였다. 꾸준히 체력을 길러왔고, 정규시즌에서 어느 정도 관리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플레이오프 들어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곳 없다는 것이 더욱 이상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영재는 하루의 시작을 이런 식으로 찜찜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욱 불만족스러웠다.
"후."
굉장히 사소한 것일수도 있지만 하루의 시작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 마음에 계속 걸린 채였다. 그래서 영재는 찌푸린 표정으로 매트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표정을 확 바꾸게 해주는, 멀더라도 단번에 느껴지는 좋은 느낌. 영재는 정성들여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에밀리를 몇 걸음 뒤에서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는 에밀리. 영재와 눈이 마주친 에밀리는 아침햇살을 받아서 그런지 더욱 청초하고 아름다웠다.
"일어났어? 일어났으면 말을 해 주지~"
얇은 베이지색 나시에 짧은 면팬츠 차림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평생 동안 수없이 많은 여자를 봐 왔던 영재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성임에 틀림없었다.
"이젠 요리도 잘하네?"
영재는 쑥스러움을 숨기기 위해서 장난스럽게 에밀리에게 말을 걸었고, 에밀리는 그저 미소를 지어주더니 다시금 도마로 시선을 돌려 보기만 해도 싱싱해 보이는 채소들을 마저 손질했다.
"수고했어. 나머지는 내가 할게."
영재는 아침 일찍부터 이것저것 부지런하게 음식을 준비한 에밀리가 귀여워서 나머지는 자신이 하겠다고 했지만, 에밀리는 '다른 날은 괜찮아도 오늘은 안 돼!' 라면서 영재가 도마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을 온 몸으로 막았다.
"오늘, 정말 중요한 날이잖아. 오늘만큼은 내가 해 주고 싶어... 안 될까?"
안될 리가 없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영재는 그것만큼은 꾹 참아내고는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역시나 속에 많은 부담이 되지 말라고 차려준 건강한 야채들과, 기름기를 쪽 빼낸 삶은 고기를 보며 영재는 깜짝 놀랐다.
"이거, 수육이잖아?!"
아련하게 남아있는 한국적인 맛. 그러고보니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서 분주했던 걸 보면 아마 에밀리가 직접 알아보고 수육을 만들었을거라 영재는 추측했다.
"그게, 기름이 많은 음식이면 속도 안 좋을 수 있고 경기 뛸 때 힘들 거 같아서... 한국 음식 중에서 기름기는 적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고기 음식을 찾아보다가 해봤어."
김치 대신에 드레싱에 버무린 야채 샐러드였지만 영재는 큼지막하게 썰어진 수육 한 점과 샐러드를 기세좋게 입 안으로 넣었고, 에밀리는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영재를 바라보았다.
"음, 음! 이거 제대로다! 제대로야! 게다가 샐러드랑 같이 먹으니까 뭔가 독특하고 신선한 게, 밋밋하지도 않고 느끼하지도 않고!"
에밀리는 그제서야 환하게 웃으면서 영재와 같이 아침을 즐겼다. 에밀리는 이미 씻은 상태였기 때문에 영재는 조금 더 여유롭게 몸을 씻으며 오전 훈련을 나갈 채비를 마쳤다.
"오늘 올거지?"
영재의 능청스런 말투에 에밀리는 웃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영재의 져지 깃을 탁- 잡아주었다.
"다녀올게."
영재는 나가기 전, 에밀리를 한 번 껴안고 가자는 생각에 무릎을 살짝 굽혀서 에밀리를 껴안았다. 하지만 껴안고 싶다는 어느샌가 볼에 한 번 뽀뽀만 하자, 입에 살짝 뽀뽀만 하자로 바라는 게 많아졌다.
"윤."
하지만 에밀리는 오늘 중요한 경기를 펼칠 영재가 걱정되었기 때문에 영재를 말리고는 그저 영재의 입에 살짝 뽀뽀를 하고 떨어졌다.
"중요한 경기 앞두고, 흔들리게 하고 싶지 않아."
"어...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말인데... 외출 할 때는 조금 긴 옷을..."
에밀리는 영재의 말에 자신의 옷차림을 살짝 보더니 약간은 쑥쓰러운지 모기소리마냥 조그만 목소리로 영재에게 속삭였다.
"여긴 집이잖아. 집이고 또...윤 앞에서 아니면 이렇게 안 입어. 어, 얼른 다녀 와! 이따 경기장으로 갈께! 이러다가 늦겠다!"
영재는 SUV의 시동을 걸고 평상시처럼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로 운전을 하고 갔지만, 계속해서 마지막에 한 에밀리의 말이 맴돌아서 그런지 미친 사람마냥 흐흐흐- 웃고 있었다.
'윤 앞이 아니면... 이렇게 안 입어.'
2011년 5월 31일 21시. 댈러스.
[안녕하십니까! ESPN에서 보내드리는 2010-2011 NBA FINAL!! 그 첫 번째 경기!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는 캐스터 마이크 브린! 해설에 스티브 커, 그리고 제프 벤 건디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반갑습니다!]
NBA의 시즌 마지막을 장식하는 파이널 경기답게 엄청난 열기로 가득한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모든 좌석에 꽉 들어찬 관중들은 HOOBASTANK의 강렬한 음악에 맞춰서 두근대는 감정을 발을 구르고 박수를 치면서 표출하고 있었다.
[드디어 이번 시즌 NBA의 마지막이 다가왔습니다. 제프? 스티브? 두 분의 해설가로써 이 마지막을 보는 느낌이 어떤가요?]
[홀가분하지만 아쉽다고 해야 할까요? 누구나 염원하는 무대이지만, 그만큼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자리이기도 하죠. 그 부담감을 이겨내는 팀이 남을 겁니다.]
[그 부담감을 이겨내는 건 명장의 덕목이기도 하고, 선수 리더의 능력이기도 하죠. 이 시리즈를 통해 아직 젊은 두 감독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고, 마이애미의 빅3와 키드, 노비츠키의 리더쉽도 결과가 나올 겁니다.]
[이번 매치업은 5년만의 리매치기도 합니다. 똑같은 팀이 5년만에 파이널에서 재회하는 경우죠. 2005-2006년에는 홈에서 2승 후 4연패라는 어이없는 결과를 안았던 댈러스 매버릭스. 웨이드의 역대급 퍼포먼스로 시리즈를 뒤집은 마이애미 히트. 심지어는 홈 어드밴티지를 댈러스가 가지고 있다는 점까지도 똑같습니다. 노비츠키와 테리, 웨이드와 하슬렘이 슈팅가드와 파워포워드로 그대로 뛰고 있는것도 똑같고요. 여러모로 흥미로운 매치입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 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은신설야님/// 빠르십니다 ㄷㄷ. 오늘도 첫코시네요 ㅋㅋ
dsmk12님, ㅎ0ㅎ님, 찬란한유산님, CountOfDark님, 파이넨시아님///항상 코멘 감사합니다!!
맛간냥이님///ㄷㄷ 초스피드 정주행하셨군요
goimosp님/// 하핫, 폭발시켜야죠. 물론 그래봤자 농구의 인기보다는 영재 개인의 인기가 되겠지만 ㄷㄷ
울트라10님///넵. 그래서 언더독 팀이었고, 후반기 부상자가 없었던 게 천우신조였죠. 조직력이 생명인 팀이라...
비켜봐님///현실이 너무 드라마틱해서 그거의 반이라도 재현이 가능할지 걱정입니다 ㅠ.ㅠ
라피르and진트님/// 스타일상 커리와는 아무래도 포변을 하든 안하든 비교가 될 거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