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Y13-109화 (109/296)

00109  2010-11 정규시즌(Regular Season)  =========================================================================

에밀리와 영재는 서로가 바쁘기도 하고, 하는 일도 다르고 일을 해야 하는 장소도 너무나 달랐다. 에밀리의 경우에는 워킹데드 시즌 2의 촬영지가 미국 중부에 위치한 농장이었고, 그에 비해 영재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홈과 원정 경기를 소화해야 했다.

원정 3~4연전을 가면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 정도는 피곤에 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할 때는 몇 배는 피곤했다. 동부에서 서부로 가면 한 시간씩 늦춰지는 것이지만,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할 때는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매일 7시에 일어나던 사람이 8~9시에 일어나는 것과 5~6시에 일어나는 것 중에 어느 게 더 피곤할지를 생각하면 간단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영재가 시즌을 치르는 동안에는 영재가 홈 연속경기가 있을 때 에밀리가 피곤함을 감수하고 촬영 틈틈이 영재에게 만나러 오기로 했고, 비시즌에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영재가 에밀리를 종종 찾아가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거리가 멀고,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게 이렇게 힘든 거였네요. 원거리 연애가 힘들다, 힘들다 얘기는 들었지만, 실감하는 건 처음이에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을 단아하게 뒤로 질끈 동여매고 스튜를 끓이는 에밀리의 뒤에서 백허그를 한 영재는 에밀리가 들리도록 귀에 속삭였다. 그러자 에밀리는 귀가 간지러운지 킥킥 웃으면서 영재의 얼굴을 밀어내곤 스튜를 휘휘 저었다.

"간지러워요!"

"그래요? 난 잘 모르겠던데."

"내가 정말 간지럽게 속삭여 줄게요. 이리 와 봐요."

하지만 6-5 (196cm) 나 되는 영재가 허리와 목을 꼿꼿이 세운 채 도망다니니, 5-4 (164cm) 의 에밀리가 도무지 영재의 귀를 잡아당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의 1피트 이상 차이가 나니 에밀리가 팔을 쭉 뻗어도 영재의 머리끝에 닿을까 말까했다. 결국 땀을 잔뜩 내고서야 영재는 스르르 의자에 앉아 목을 슬쩍 수그렸고, 에밀리는 한참이나 영재에 귀에 대고 속닥속닥 귓속말을 하다가 '간지럽죠?' 를 반복했다.

결국, 둘이 먹어야 할 스튜가 새까맣게 타 버렸고 영재는 전화를 걸어 피자 한 판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식사량을 고려해 엑스트라 라지를 시켰다. 일반 라지 크기 한 판으로는 자신 혼자 먹고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 스튜... 직접 만들어준 거 먹고 싶었는데."

"... 미안해요. 음! 피자 맛있는데요? 먹어봐요, 자~"

까맣게 탄 스튜가 떠올라서 인지 에밀리는 황급하게 영재의 입에 피자를 쑤셔 넣었다. 그렇게 우걱우걱 피자를 먹은 두 사람은 남은 피자를 하나씩 따로 비닐팩에 포장하여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나중에, 꼭 실온에서 해동시킨 다음에 전자레인지로 돌려요."

"왜요?"

"냉동된 채로 전자레인지에 해동시키면 식감도 껌처럼 변하고, 소화도 안 되서 별로 안 좋대요. 단골 맛집에서 아는 셰프님이 주신 팁이에요."

영재는 아는 셰프? 라는 말에 가늘게 눈을 뜨며 에밀리를 응시했다.

"그 셰프님, 남자에요?"

"그럼요~ 유명하진 않아도 요리 진짜 잘 해요!"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다 알면서 순진한 척 말을 하는 건지 참 난감했다. 에밀리라는 사람 자체가 때 묻지 않았다곤 하지만 간혹 이런 반응을 보이면 영재는 에밀리가 자신을 질투 나게 하려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 셰프님, 키 커요?"

"에이, 윤보다 작죠."

"그럼, 잘 생겼어요?"

머뭇대면서도 끝까지 다 물어보는 영재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빤히 바라보던 에밀리는 그제야 무슨 뜻인지 파악한 듯, 웃음을 참다가 이윽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 그 셰프님, 잘 생겼죠~ 50대의 중년미가 물씬 풍기시는 게 정말 멋지세요~ 꺄하하~ 질투하는 거에요. 지금?"

"아니 뭐, 그게 아니고 저도 나중에 같이 갈 건데 셰프님 알아두면 좋잖아요? 그냥 그렇다고요."

영재는 순간 당황했지만, 대충 얼버무렸고 에밀리도 웃으면서 그냥 넘어가 주었다. 두 사람은 집에만 있는 것이 갑갑했는지, 바깥바람이라도 쐬러 가기로 했다. 이미 어두워진 밤이었지만, 차라리 밤을 틈타 가볍게 드라이빙을 하는 것도 나름대로 낭만적이겠다고 생각한 영재는 슬쩍 밖을 둘러보더니 애마인 SUV를 끌고 집 앞에 세웠다.

에밀리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낀 채 주변을 슬쩍 둘러보다가 SUV에 올라탔고, 영재는 능숙하게 SUV를 몰고 텍사스 시내와는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한적한 시외를 돌면서 에밀리는 모자와 선글라스도 벗은 채, 벌써 초여름이 느껴지는 4월의 밤바람을 맞으며 미소를 지었다.

"휴, 낮에는 덥더니 그래도 밤이 되니까는 선선하네요?"

"그러게요. 게다가 밤에 드라이빙 하는 것도 운치 있고 좋은데요?"

얼굴에 바람을 맞고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낮의 바람은 후덥지근한 느낌이 났지만 밤이 되자 꽤나 시원한 느낌이었다. 주욱 창문을 열고 계속 드라이빙하던 영재는 이젠 슬슬 창문을 닫자고 했다.

"너무 바람 많이 쐬다가 감기 걸리면 큰일 나요. 우리 나라에는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말이 있어요."

"내가 애도 아니고 고작 이걸로 감기에 걸리겠어요?"

투덜대긴 했지만 영재의 농담 섞이 한마디에 에밀리는 작게 웃으면서 창문을 닫았다. 그러는 동안 영재는 길을 벗어나 잠시 차를 대고는 언제 챙겼는지 집에서 보온병에 담긴 김이 나는 아메리카노까지 한 잔 건네주니 에밀리는 따듯함과 안락함에 자신도 모르게 몸이 노곤해져 버렸다.

"이제, 슬슬 들어가서 잘까요?"

"응... 가요."

집에 돌아온 두 사람은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서로 일어나 있을 때는 스킨십도 하고, 뽀뽀도 하고 느긋하게 딥키스도 하는 사이라지만 영재는 잠자리만큼은 철저하게 구분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절대로 함께하지 않았다.

"여긴 윤의 집인데... 이러면 너무 미안하잖아요."

에밀리의 고집도 의외로 강했다. 영재가 자신의 집인데도 멀쩡한 침대 놔두고 소파에서 자겠다는 것에 에밀리도 침대에 눕지 않고 영재와 나란히 걸터앉아 영재를 설득하려 했던 것이다.

"난 괜찮아요. 사실 혼자 있을 때 침대에서 잘 안 자요."

"거짓말! 일부러 침대 놔두고 소파에서 자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어디 있긴요, 여기 있지. 나 거짓말 안 해요."

사실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실 저 소파도 긴 편이긴 했지만 영재가 다리 쭉 뻗고 자면 발끝이 비죽 튀어나와서 불편하긴 했다. 그래서 영재는 소파에 잘 눕지도 않는 편이었다.

"...혹시, 내가 불편해요?"

"오, 아니에요. 에밀리, 그건 정말 아니에요."

영재는 에밀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속삭였다.

"그저, 소중하게 여기고 싶어서 그러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이 침대는 싱글 사이즈잖아요. 둘이 자기엔 너무 좁아요."

"..."

에밀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대에 누웠다. 더 이상 고집을 부리는 것도 영재가 잘 시간을 뺏는 것이라 생각하니 뭐라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침대를 더 사든지 해야 할 것 같았다.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요. 푹 자요."

전날 에밀리와 비밀리에 데이트를 하고 나니 영재는 없던 힘도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전생에는 여자와 하룻밤 자고 경기를 하게 되면 힘도 빠지고 온 몸이 축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에밀리와의 만남은 영재에게 완벽한 자양강장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오, 오늘 표정이 썩 좋네? 오늘 경기, 기대 좀 해도 되나?"

오전 9시, 평소와 같이 팀 연습을 위해 코트로 나온 타이슨 챈들러는 역시나 제일 먼저 체육관에서 슛을 던지고 있는 영재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슛 감이 썩 좋네요. 나쁘지 않겠어요. 전체적으로 몸 컨디션도 좋은 것 같아요."

"하긴. 오늘 경기에서 이겨야 샌안토니오를 제치고 서부 1위를 확정지을 수 있으니까. 신이 날 법 하지. 거 참, 데뷔시즌부터 정규시즌 1위팀에서 뛰는 루키도 참 몇 없었을 텐데."

"어휴, 게다가 만약 2위로 밀려나면 상대는 멤피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요. 거기랑 붙으면 스트레스 엄청 받고, 하루 종일 지친단 말이죠. 그리고 나도 우리 팀이 1위하는데 나름 힘썼다고요?"

"그거야 뭐 인정하지. 그나저나 멤피스랑 걸끄럽다라... 난 잘 모르겠는데 말이지. 아, 하긴 거기 가드들이 좀 질척질척하지. 나도 랜돌프랑 굳이 만나고 싶진 않기도 해."

챈들러도 공을 집어 들고는 자유투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선수들도 하나 둘 와서 개인 정비를 하고, 슈팅감각을 가다듬으면서 최종전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어느덧 릭 칼라일 감독마저도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상대할 뉴올리언스 호네츠와의 홈 경기에 사용될 전술적인 부분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최종전이라는 것은 정규 리그의 마지막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가올 플레이오프의 시작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모두의 경기감각과 컨디션을 확인해 볼 생각이다.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고작 이틀 쉬고 플레이오프 1차전이다. 마지막 경기에서 지면 플레이오프에 좋을 것이 없겠지."

확실히, 댈러스 선수들의 평균나이가 높다는 것은 후반기에 들어 독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물론 이번 드래프티 중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영재와 부상에서 돌아온 보브아의 회복, 바레아의 각성 덕분에 가드진의 키드와 테리는 그나마 나았다. 그러나 매리언과 노비츠키를 비롯한 포워드, 센터진의 점점 누적되는 피로의 회복속도는 젊은 선수들 보다 늦을 수밖에 없었다.

시즌 초에는 무려 37~38분을 뛰던 노비츠키가 후반기에 들어 점점 출전시간이 줄어들고 이윽고 최근 5경기에서는 31분까지 줄어들었다. 브루어의 가세로 매리언이 4번에서 뛰는 시간이 늘었고, 가드진의 활약이 좋으면서 노비츠키의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키드와 테리 역시 30분 초반을 소화하다가 후반부가 되니 20분 후반까지도 출전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칼라일 감독의 선택은 단순히 경기를 던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플랜B를 만들기 위해 선수들의 컨디션을 재점검한다는 의미가 강했다.

"뉴올리언스의 크리스 폴이 복귀했다고 하지만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시간 경기를 소화하기 힘든 상태일 것이다. 그러니 크리스 폴에 대한 개인 마크는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완벽한 몸 상태가 아니더라도 크리스 폴은 크리스 폴이다. 윤, 자네가 막아야 할 상대다."

영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 폴, 현 시대 넘버원의 포인트가드로서 실력만큼은 그 누구도 무시하지 않지만 유독 우승이나 MVP와는 연이 없는 불운의 선수. 영재는 그런 크리스 폴과 최종전에서 다시 한 번 맞붙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온 몸이 짜릿짜릿하기 시작했다.

칼라일의 설명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기본적인 자료는 이미 코치들을 통해 전달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칼라일의 짧은 말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을 놓치지 않았다.

"어후!"

그렇게 점심까지 먹고 나니 경기까지는 아직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남은 상황. 노비츠키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영재와 챈들러, 보브아, 브루어 등이 모여 있는 곳에 슬쩍 다가가 입을 열었다.

"안 피곤해?"

"피곤은 한데, 자도, 자도 피로가 안 풀리는 거 같아. 아우, 나도 벌써 늙었나."

노비츠키는 무표정을 고수하면서 챈들러의 뒤통수를 툭- 올려쳤다. 챈들러는 왜 그러나며 투덜댔지만, 노비츠키는 미안하다면서 '그냥 기분이 좀 별로였어.' 라고 능청스레 말했다.

"그래도 다들 피곤하면 좀 자둬. 어차피 아직 경기는 일곱 시간 가까이 남았으니까. 피곤해서 경기 중에 다리 풀리지 말고."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 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시차 적응 문제는 미국 스포츠에서 루키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대학농구나 마이너리그는 비슷한 지역에서만 하지만 MLB나 NBA는 전미를 대상으로 하니까 말이죠. 미국이 동부와 서부 양 끝은 4시간이나 차이납니다. 그래서 포틀랜드가 시차에서 가장 손해를 본다고 하죠. 홀로 서북부 끝에 있거든요.

abcd가나다라님/// 첫 코 감사합니다!!

은신설야님, Laytime님, huhcafe님, 여신유리찬양님/// 코멘 감사합니다!!

캐바밤님/// 오타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할 때 왜 그걸 놓쳤는지ㅠ.ㅠ

마케렐레님/// 이번 오프시즌부터 현실과는 많이 달라지겠지요. 그 부분도 오랜 시간 조사해서 대략 샐러리 표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입니다.

ㅎ0ㅎ님/// 하하... 안타까우시겠습니다만, 좀 참아주십쇼 ㅎㅎ

-DarkANGEL-님, 지존천하님, misscherry님, 쿤다라님, 파이넨시아님, 오마리온님/// 항상 코멘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모용사묵ㄱ지님/// 어느새 귀여운 이미지로 ㅋㅋ

ㅡMinTㅡ님/// 적당한 양념이면서 분위기 전환도 되고 좋죠 ㅋㅋ

chaikopusuki님/// 칭찬 감사합니다!

눈꽃향내음님/// 아직은 풋풋합니다ㅋㅋ 연애초기는 뭐 ㅋㅋ

달의물방울º天님/// 음 야오밍은 이 시즌에 큰 부상을 입죠. 그리고 딱 이번 시즌이 끝나고 은퇴합니다. 11년 7월경일 겁니다. 그래도 영재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NCAA를 거친 데다가 빅맨이 아니라 좀 덜합니다. 게다가 슈퍼스타 스멜이 나면 좀 덜하기도 합니다. 야오밍은 신체가 너무 사기적이라 좀 더 심하게 견제를 당한 것도 있죠. 아마 미국 출신이었다면 샤킬 오닐 이상이 될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영재도 어느 정도의 텃세는 당하죠.

coltes45님/// 음, 많지는 않은 편이죠. 그래도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건전하다고 합니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우리나라보다 건전한 편이라고도 하더군요. 물론 함부로 일반화하면 안되겠지만요. 게다가 영재는 한국적인 사상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