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8 2010-11 정규시즌(Regular Season) =========================================================================
- 오랜만입니다. 윤. 빌 더피입니다. 어제가 데뷔 첫 더블더블 이었다더군요.. 축하합니다. -
"아 고마워요. 어제는 정말 최고의 날이었죠."
그와 더불어, 한 동안 뜸했던 빌 더피 역시 영재의 활약을 축하해주는 겸, 여러 가지 업무상 문제로 전화를 걸어왔다.
-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 걸로 아는데, 이젠 좀 괜찮습니까?"
빌 더피의 걱정스런 말투에 영재는 옆에 있는 한 여자의 머리카락을 오른손으로 슥슥 쓰다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자업자득이었죠. 저 자신이 스스로에게 패배했던 것뿐입니다. 이젠 괜찮아요."
- 필요하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저도 선수 출신이고 고객들의 상담도 여럿 해줘본 적이 있습니다. 음, 다름이 아니라 요즘 윤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스폰서나 광고 제의와 인터뷰 제의들이 여럿 들어와서 말입니다. 다시 한 번 얘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제안? 이란 생각에 영재는 옆에 있는 한 여자의 허리에 팔을 감고 조금 더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그 여자는 못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영재의 옆구리를 쿡- 찔렀지만 못 이기는 척 영재의 옆으로 다가왔다.
"시즌 중에 광고나 촬영은 조금 부담스럽고, 인터뷰는 몇 개만 더피 씨가 골라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렸던 것 같은데..."
- 예. 지금 윤의 지침대로 광고나 프로그램 요청은 다 시즌 후에 답해주겠다고 미뤄 두었고, 인터뷰도 몇 개만 골라서 했었죠. -
영재는 시즌 중에 CF를 찍고 싶은 생각은 아직까지 없었다. 시즌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고, CF라는 것이 하루 만에 끝나는 작업이라 하더라도 경기 스케쥴이 빡빡한 미국 스포츠에서 자신이 CF까지 찍을 정도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자신에게 들어오는 광고라면 십중팔구는 한국 기업의 광고일 것이었다. 굳이 한국 기업의 CF를 찍어서 구설수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영재였다.
"이전에 의논한 사항대로 진행하면 될 거 같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 문제랄 건 없습니다. 다만 한국에서의 일정을 대략 잡아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저희도 스케줄을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한국에서의 일정이라. 최종전만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댈러스는 이미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상태였다. 게다가 이 기세를 몰아간다면 나아가 파이널 무대도 치룰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믿고 있었다.
"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서 파이널까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유 있게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6월 말에 스케줄을 모아주세요. 한국에서 찍어야 할 광고나 인터뷰 같은 것 말입니다. 방송은 빼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직 방송까지 할 단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CF도 세 개를 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쪽 관련 스케줄은 시즌 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영재의 통화가 조금 길어지자, 나란히 앉아있던 여자가 영재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귀여운 얼굴로 영재를 올려다보았다. 영재는 슬쩍 미소를 짓더니 자신의 머리를 여자의 머리에 맞댄 채 통화를 이어나갔다.
-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그 다음 문제는 국가대표팀입니다. 구단에서 말을 해 준지 좀 되었으니 어느 정도 생각이 마무리 되셨겠지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년은 아직 CBA(Collective Bargaining Agreemnent, 노사단체협약)협상이 여의치 않아 리그가 열릴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적당한 핑계가 없이 한국 국가대표팀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한국 내 이미지는 많이 안 좋아질 겁니다. 우선은 대한민국 국적인 이상 군대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요. -
군대 문제.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남자라면 맞딱드릴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시즌 초부터 다양한 추측성 기사가 쏟아져 나올 정도로 영재의 군 문제, 그리고 국가대표 합류는 대한민국 농구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영재의 활약이 높아질수록 그 관심은 더욱 커져갔다.
영재도 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병역면제는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만이 가능했다. 솔직히 올림픽에서 메달권에 들어서는 건 기대하기 어려웠다. 미국은 논외로 치더라도 스페인, 아르헨티나, 프랑스는 NBA리거들이 즐비할 정도였다. 그 외에도 슬로베니아, 러시아, 브라질, 캐나다 등을 넘어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쥐꼬리만큼도 들지 않았다.
결국 유일한 방법은 아시안게임뿐이었다. 그나마도 필리핀, 레바논, 중국 등에 고전했지만 아시아 레벨은 자신이 가세한다면 충분히 금메달을 노려볼 만 했다. 실제로도 전생에 대한민국은 2014년에 우승을 했었다. 아시아선수권은 올림픽 진출권을 따내 경험을 쌓기 위한 것이라고 봐야 했다.
"구단 측에서는 무리하지 않는 선이라면 괜찮다는 의견을 말해 주었습니다. 군 문제 해결은 확실히 필요하다고 구단 측에서도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비시즌에 무리해서 내년에 문제가 될까 걱정이 됩니다. 일단 구단에서는 지역 대회는 나가지 말고 아시아선수권부터 나가면 좋겠다고 넌지시 권유했습니다."
- 아시아선수권대회라면 9월이군요. 미리 소집된다고 해도 일정에는 지장이 없겠습니다. 한국에는 꽤 오래 체류하게 되겠네요. 윤 입장에서도 경기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점은 좋습니다만, FIBA(국제농구연맹)룰에 잘 적응하셔야 합니다. 직접 느껴보지 못하셨을 텐데, NBA룰과 FIBA룰은 많이 다릅니다. 파울 개수, 공격제한시간, 3점 거리, 경기 시간 등 많은 점이 다르니 잘 적응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유럽 리그의 에이스들이나 명장들이 NBA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죠. 유럽 리그는 거의 FIBA룰을 따르고 있거든요.
"네. 그러잖아도 시즌 후에 좀 공부를 해야겠더군요. 그리고 FIBA룰에 적응했다가 내년에 다시 NBA룰에 적응해야 하니 말이죠."
- 이제 이야기가 필요한 부분은 다 끝난 것 같습니다. 그럼, 남은 시즌도 부상 없이 좋은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읽어보시고 언제든 궁금한 점은 연락주세요.-
더피와의 전화가 끝나고, 영재는 스마트폰을 소파 옆에 툭- 던진 채,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여자의 볼을 콕콕 찌르면서 미소를 지었다.
"몇 주 만에 보는 건데... 촬영이 많이 힘든가 봐요?"
약간은 수척해진 에밀리가 영재와 나란히 앉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게요. 주연급 촬영은 이번이 처음이라 좀 힘들었나 봐요."
에밀리는 볼을 콕콕 찌르던 영재의 손을 잡았고, 먼저 깍지를 끼웠다. 꽤나 과감하게 깍지를 끼는 에밀리를 음흉한 눈빛으로 보던 영재는 시선을 거두고는 의미 없이 켜둔 티비를 잠깐 시청했다.
- NBA의 정규리그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현재 61승 20패를 기록하며 NBA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서부의 댈러스 매버릭스는 60승 21패의 샌안토니오와 마지막까지 서부 1위를 경합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동부는 시카고 불스가 1경기를 남겨놓고 61승 20패로 2위인 마이애미 히트와 3경기 차이로 1위를 확정지은 상황입니다. -
"윤, 서부 1위 자신 있어요?"
똘망똘망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에밀리를 보며 윤은 별 말 하지 않은 채 에밀리의 오똑한 코를 검지로 꾹- 눌렀다.
"아이, 콧대 낮아져요!"
"워낙에 오똑한데 좀 낮아지면 어떻다고 그래요? 그렇게 똘망똘망하게 날 보면 어디라도 건드리고 싶단 말이에요."
두 사람은 영재의 슬럼프 이후 처음으로 만난 것이었지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온기를 느꼈다. 더피의 전화도 두어 시간을 그렇게 나란히 앉아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만지고, 손을 만지면서 의미 없이 켜 진 TV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받은 전화였다.
"하고 싶은 거 없어요?"
에밀리의 걱정스런 표정과 말투에 영재는 고개를 가로로 저으면서 에밀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담해서 품 안으로 쏙 들어오는 에밀리를 내려다 본 영재는 전생에서 갈고 닦은 '스킬' 들이 스멀스멀 떠올랐지만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자신을 다독였다.
에밀리한테 까지 연애의 기술이나 스킨십의 기술, 원나잇을 성공시키는 화려한 언변이나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진솔하고 아기자기하게, 그리고 소소하지만 진지하게 에밀리를 대하고 싶었다.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2시간이 훌쩍 지나갔는데. 뭘 하려고 하면 시간이 너무 아까울 거 같아요."
"그게 아니라... 나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하는 거잖아요. 난 정말로 괜찮아요. 윤, 힘들면 공개해도..."
영재는 에밀리의 배려에 기분이 좋았지만, 기분이 좋은 건 좋은 것이고, 공은 공이었다. 영재도 그렇고 에밀리도 그렇고 이런저런 루머들에 휩싸인 상황이지만 여기서 시인을 해 버리면 어쩔 수 없이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제 첫 시즌이고, 에밀리도 첫 주연이잖아요. 조금, 자리를 잡으면 공개해요. 나도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려요."
"피- 종이를 먹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게 아니고요? 염소 씨."
염소라는 별명이 이제는 입에 밴 듯, 에밀리는 귀엽게 메에에- 소리를 내며 영재를 놀렸다. 영재는 미간에 슬쩍 힘을 주며 화가 난 척, 에밀리를 쏘아보았다.
"자꾸 그러면, 확 해버립니다?"
"뭘요?"
20살, 아니 10대라고 해도 믿을 법한 초 동안의 외모였지만, 에밀리는 영재보다 무려 6살이나 많은 여자였다. 물론, 살아 온 세월을 모두 더해보자면 영재는 30살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말이다. 짓궂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반짝이는 에밀리의 표정에 영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마에 기습적으로 입을 대고 떨어졌다.
"..."
잠시 에밀리를 응시하던 영재는 화장기가 없음에도 빨간 앵두 같은 에밀리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대고 떨어졌다.
"...해."
멋쩍게 떨어진 영재는 갑자기 자신의 목을 양 팔로 감으며 웅얼거리는 에밀리를 보며 '뭐라고 했어요?' 라고 되물었고, 에밀리는 지긋이 두 눈을 감은 채 영재의 무릎 위에 앉아 고개를 들었다.
"약해요."
기분 좋은 숨소리. 박하향이 나는 혀, 그리고 보드랍고 촉촉한 입술. 영재는 슬쩍 눈을 떠 에밀리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느긋한 척, 기분 좋게 눈을 감고 있지만 조금씩 거칠어지는 숨소리라든가, 조금이라도 혀로 장난을 치면 움찔- 하는 모습이라든가. 그런 에밀리의 모습에 영재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더욱 짓궂게 하고 싶은 요상한 감정이 들었다.
숨을 못 쉴 정도로 거침없이 몰아붙이니, 머지않아 에밀리는 입을 떼려고 바동거렸다. 하지만 영재는 허리와 머리를 부드럽게 끌어당기고는 어디 도망갈 수 없게 꽉- 붙들었다. 그렇게 5분 이상을 키스하던 영재는 그제야 만족스런 표정으로 입을 떼고 상기된 에밀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좋아요?"
"..."
꽉-
"억!"
옆구리를 꽉- 꼬집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에밀리. 영재는 옆구리가 아픈 척 떨어져서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고, 에밀리는 상기된 얼굴이 가시지도 않은 채 드러누운 영재의 위로 올라타 영재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
"에밀리, 이거 좀... 위험한 자세 아니에요?"
"하아, 하아... 윤. 솔직히 말해봐요."
에밀리는 아직도 흥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살짝 숨을 몰아쉬고는 영재의 귀에 속삭였다.
"내가 처음이 아니죠?"
"음..."
"처음이라기엔, 너무 잘 하잖아요."
영재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에밀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영재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꽤나 매운 손으로 꼬집으니 간지럽기도 하면서 아픈 기분에 영재는 반항도 하지 못하고 항복을 했다.
"에밀리, 전에 반했던 여자는 있었어요."
"누군데요?"
에밀리는 아닌 척 했지만, 누가 봐도 긴장되는 표정으로 영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재는 속으로 큭큭 웃어버리더니 능청스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굉장히 잘 했어요. 노래 듣고 한 방에 반해버렸죠. 그 노래가 뭐냐면요, The Parting Glass라고..."
"아아! 이런 거짓말쟁이!"
에밀리는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아니면 영재에게 당한 것이 분했는지 이를 앙다물면서 영재의 옆구리를 마구 꼬집었고, 영재는 깔깔 웃다가 아프다가를 반복하며 몸을 비틀었다.
"아니, 이게 왜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이죠!"
"에잇!"
영재는 더 이상 간지러움과 아픔을 참을 수 없어서 에밀리를 번쩍 들고는 소파에 뉘였다. 그리고는 에밀리의 위로 올라가 지긋이 에밀리를 내려 보았다.
"유, 윤..."
에밀리도 스킨십이나 키스를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이건 아직 너무 빠르다는 생각에 살짝 긴장한 말투로 영재를 달랬다. 하지만, 영재는 진지했던 표정을 풀고 이내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팔굽혀펴기를 한 번 하며 에밀리의 이마에 뽀뽀를 했다.
"꺄-! 이게 뭐 하는 거에요!"
"뭐긴요, 운동하는 거지."
한참을 이마에 뽀뽀하던 영재는 에밀리를 일으켜주곤 다시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혹시, 내가 비밀로 하자고 해서 섭섭하지 않아요?"
"전혀요."
"왜요? 방송이든 라디오든 에밀리에 대해선 좋은 사람이란 말 말고는 못하는데."
"날 생각해 준다는 걸 아니까요."
에밀리는 싱긋 웃으면서 영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억!"
"그런 생각 말고 NBA 우승에 신경 써요. 나, 우승하는 장면 꼭 보고 싶으니까."
영재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잊지 못할 장면을 선사해 줄게요."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 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여러 독자분들의 의견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짜놓은 플롯대로 이야기를 끌어 나가겠습니다. 경기와 스포츠 내용을 주력으로 일상이 적절히 버무려지도록 잘 조절하겠습니다.
@FIBA룰과 NBA룰은 많이 다릅니다. 경기를 서술하면 차이를 묘사할 수 있겠지만, 국가대표 경기는 스킵하기로 했으니 말이죠. 비시즌에 국가대표로 소화하는 스케줄들은 설명이나 기사 위주로 갈 생각입니다.
@2011년은 선수노조와 구단주모임간의 갈등으로 직장폐쇄가 일어난 시즌입니다. 결국 단축시즌으로 66경기가 치뤄지죠. 그래서 비시즌이 유독 깁니다. 소설에서도 직장폐쇄는 그대로 갈 생각입니다. 물론 그 외에 팀의 선수단 구성이라던가는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영재가 있으니 중복 포지션 영입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죠.
@그리고 영재의 지금 기억이면 충분히 좋은 선수들을 리쿠르팅할 수 있습니다. 향후 이런 부분의 이야기도 나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