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6 2010-11 정규시즌(Regular Season) =========================================================================
댈러스의 팀 훈련은 여느 팀과 마찬가지로 팀 차원의 공격/수비 시스템을 가다듬는 훈련이 주를 이루었다.
센터를 중심으로 한 지역방어를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수비하고, 바레아와 영재가 번갈아가며 두 명의 빅맨과 스태거드 픽앤롤을 연습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댈러스는 키드-영재-매리언-챈들러 중의 2명 이상이 코트 위에서 수비시스템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플랜에 따라 다양하게 짜여진 시스템을 이해하고 몸으로 습득할 필요가 있었다.
리그에서도 가장 다양한 작전을 구사하는 감독 중 하나인 칼라일의 그러한 철학은 지금의 댈러스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탓에 BQ가 낮은 선수나 루키들은 칼라일의 로테이션 라인업에 들기도 쉽지 않았다.
"윤, 괜찮겠나?"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의사도 왜 제가 그러는지 정확히 말하지 못하겠다더군요."
정신과 의사가 영재의 트라우마 원인을 정확하게 집어낼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재가 전생의 이야기를 의사에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원인이 전생의 부상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는 의사로써는 뚜렷한 원인을 찾기 어려웠다. 그가 보기에는 뜬금없는 상황일 테니 말이다.
단 이틀 만에 모든 트라우마를 떨쳐냈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죽음의 기로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그 기적과도 같은 경험과 더불어 자신이 당했던 부상과 유사한 장면이 없었기 때문에 그간 묻혀 있었던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 영재는 애써 지금까지의 여정을 떠올리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직 자신에게 일어난 일도 아니었으며, 시기적으로 생각해보면 자신이 부상을 당한 시점은 무려 8년 뒤의 일이었다. 게다가 팀, 선수들, 자신 주변의 사람들까지 모든 상황은 그때와 달랐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다보니 의욕이 다시 생긴 것이다.
"말하기 힘든 일인 것 같고 자네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들었으니 굳이 캐묻거나 하진 않겠네. 하지만, 경기력에 문제가 생기는 건 자네에게도, 우리 팀 입장에서도 곤란해. 우선 적응을 한다는 느낌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정신상담은 가능하네. 주치의와 경기 전에 한 번씩 상담을 받는 것도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하네."
영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은 한국처럼 정신과 진료나 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영재도 별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상담을 받아 자신의 끔찍한 기억을 어느 정도 떨쳐 낼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상담을 받을 생각이 있었다.
"자, 이제부터 두 팀으로 나뉘어 공격과 수비를 맡는다. 수비팀은 센터가 페인트존을 지키고 2:2 수비시에는 스위치를 하지 말고 끝까지 따라가도록 한다. 볼핸들러의 돌파를 억제하고 점퍼를 강요하는 걸 우선으로 한다. 그리고 공격팀은 상대가 지역방어임을 감안하고 픽앤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골밑을 파고든다. 나머지 선수들을 활발히 움직여서 공간을 넓히고 슈팅할 찬스를 만들도록 한다."
영재는 공격팀으로 배치되어 보브아, 마힌미와 한 조가 되었다. 보브아는 영재에게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젠 좀 괜찮냐고 물어왔고, 영재는 자신을 과신하지 않았기에 솔직한 심정으로 해 봐야 알 거 같다고 말해주었다.
삐이-
테리 스토츠 코치의 휘슬소리에 수비팀인 키드, 바레아, 노비츠키가 각각 자신의 마크맨 앞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보브아로부터 시작한 공격. 보브아는 공을 몰고 탑까지 도착하자, 마힌미가 어설프게 스크린을 섰다. 영재는 이때다 싶어 매치업 상대인 바레아를 달고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재는 애써 자신을 컨트롤하며 내가 다친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생각하며 점차 발목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발목엔 발목보호대가 단단하게 영재의 발목을 감싸주고 있었다.
'?!'
달리는 속도는 여전했지만 뭔지 모를 이질감에 영재는 움찔할 수 밖에 없었다. 보브아가 자신의 앞에서 부상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조금이나마 겪어 봤다고 우쭐댔던 자신이 한심했다. 결국 영재 본인도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재가 보브아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보브아에 비해 더 많은 삶을 살아왔다는 점이다.
문득 삶이라는 게 참 허망하다고 느낀 영재는 마치 삶을 다 산 노인과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에 슬쩍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바레아와의 몸싸움이 벌어질 것 같으면 영재도 자신도 모르게 힘을 빼고 있었다. 경기 때의 그 엄청난 활동량은 여전했지만 과감함이 죽었다. 이것이 일시적으로 겁을 먹어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몸이 제어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질적인 문제로 굳어버렸는지는 영재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만, 지금 당장의 훈련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과감함을 되찾든가 격렬한 몸싸움을 최소화해서 해결을 봐야 한다는 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키드는 어설픈 마힌미의 스크린을 크게 돌아나왔다. 노비츠키를 붙잡은 것으로 만족한 마힌미는 짜여진 전술대로 자신도 곹밑으로 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보브아는 키드가 스크린에 걸리지 않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 허둥댔지만, 곧이어 자신의 눈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와 스크린을 서 주는 것에 망설임없이 그 스크린을 또다시 타고 넘었다.
"억!"
키드는 갑작스런 스크린에 깜짝 놀랐고, 스크린에 막힌 뒤에야 그 스크린의 주인공이 영재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내외곽을 돌면서 공간을 만들던 영재가 갑자기 스크린을 서 버리니 예측을 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나이스!"
보브아는 영재의 스크린을 타고 넘어 가볍게 레이업을 올려넣었다. 영재는 보브아와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미소를 지었고, 그 모습에 키드와 노비츠키도 대견한 듯 영재를 토닥여 주었다.
영재는 그들의 격려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표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스크린을 서면서 순간적으로 키드가 악마처럼 보였을 정도로 무서웠던 영재였다. 순식간이었지만 몸이 부딪히는 순간 챈들러의 부상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마 공중에서 몸이 충돌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
"음."
하지만 칼라일 감독과 테리 스토츠 코치, 드웨인 케이시 코치는 영재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던 탓에 영재의 플레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간파할 수 있었다. 우선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공격과 수비팀을 바꿔 영재의 플레이를 다시 한 번 지켜보기로 했다. 어차피 지적한다고 해서 바로 바뀔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도 포함되었다.
키드의 앞에 선 영재는 아까의 스크린 성공에 자신감이 좀더 생긴 모양인지 발목을 확실하게 돌려주고는 수비에 임했다. 키드의 스피드가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재는 언제라도 보브아와 스위칭을 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턱!
왼쪽 윙 지역에서 노비츠키의 스크린을 타고 넘는 키드. 영재는 노비츠키의 스크린을 돌아넘기 위해 스핀을 하려 했지만, 발목이 생각보다 신통치가 않았다. 절대로 스핀을 돌아 스크린을 넘어갈 수 없겠다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부드럽게 스텝이 밟히지 않았고, 발목이 뻣뻣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나아졌어.'
영재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더이상 머뭇대다가는 떨쳐내기 더 힘들것 같았기 때문에 무리한 감이 없지 않았다. 영재 스스로가 이런 트라우마가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당황스럽고,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깊고 아픈 빅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건 정면으로 부딪쳐서 이겨내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전 생각해요. 트라우마는 오래 걸리면 더 극복하기 힘들어요. 가능하면 빠르게 극복하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요?]
에밀리가 해 준 이야기를 되새기며 영재는 발목에 힘을 바짝 주었다.
퍽-
노비츠키와 충돌한 순간, 영재는 되려 겁을 떨쳐내기 위해 더욱 빠르게 스텝을 밟았다.
"핫!!"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탄성이 새어나왔다. 100% 완벽한 상태라고 할 순 없었지만, 필라델피아 전 이후로 가장 부드럽게 발목이 꺾이고, 속도가 붙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키드에게서 바레아로 가는 패스의 루트까지 제대로 끊어낸 영재는 온 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만 표정 만큼은, 농구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학생이 첫 덩크를 내리찍었을 때의 짜릿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일단 훈련 중에는 어느 정도 할만 할 것 같았다. 아직 실전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재는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았다. 스트레칭과 요가에 투자하는 시간이 이전보다 배로 늘었고, 격렬한 충돌을 포함한 연습경기 후에는 왠지 모를 통증이 발목에서 느껴져서 병원을 들러봤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에 영재는 하루의 마무리를 얼음찜질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한 가지 더 바뀐 점이 있다면, 신발을 벗고 같이 침대에서 앉으며 티비를 보고, 실없이 웃으면서 노래를 불러주는 에밀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아까운 휴가임에도 자신 때문에 이 곳에서 있어주는 에밀리가 고마워서, 영재는 좀더 힘을 낼 수 있었다.
"네브레스카(Nebraska) 대농장이라..."
티비를 보면서 웃던 두 사람은 어느덧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추억에 젖고 있었다.
"우리 나라 중부 대평원의 한 곳이고, 옥수수 밭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에요. 어릴 때는 그게 당연한 집 앞의 모습이라 생각했는데, 점점 그 풍경이 그리워지게 되니까 옥수수밭의 풍경이 참 멋지다는 걸 알게 되었죠."
영재는 양 발목을 얼음 주머니로 문지르며 에밀리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광활한 옥수수밭이 늘어진 집이라, 영재는 아주 멋진 곳일거 같다고 이야기 했다.
"영재는 어릴 때 한국에서 자란거죠? 한국은 어때요?"
영재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 하는 것을 꺼려했다.
"별로 좋은 기억은 없어요. 에밀리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집도 아니었고. 한국에선 정말 기억이 몇 개 없어서 이야기 할 게 없어요."
영재의 말에 에밀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영재는 대신 미국에서 보낸 학창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농구부 코치는 악마라 불릴 정도로 훈련이 엄청났었어요. 그러던 중 팀원 중 한명이 코치를 골탕먹이자고 했죠. 그래서 우리는 코치가 마시는 음료에 페페론치노를 섞었어요. 코치가 매운 걸 못 먹거든요."
"어머. 그래서요?"
"코치는 혀를 내민 강아지처럼 헥헥거렸고 우린 평상시보다 두 배는 강도있는 훈련을 받았죠. 흐흐, 그래도 뭐가 좋다고 웃으면서 훈련을 받았었어요."
에밀리는 쿡쿡 웃으며 영재의 이야기를 들었고, 영재도 그 때의 일이 떠올라서 즐겁게 웃었다.
어느덧 밤이 깊고 에밀리가 피곤한 눈빛으로 하품을 숨기는 게 영재의 눈에 보이자, 영재는 얼음팩 두개를 들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자요, 내일 출발해야 하잖아요."
"응... 미안해요. 그런데, 정말 괜찮아요? 소파에서 자면 불편할텐데..."
에밀리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영재를 바라보았지만 영재는 괜찮다며 에밀리를 침대에 뉘였다. 불가항력처럼 침대에 누운 에밀리는 영재가 베개도 손수 만져주고 이불도 덮어주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괜찮아요. 그러니 걱정 말고 잘 자요. 굿 나잇."
영재는 싱긋 웃으면서 에밀리의 뽀얀 이마와 볼을 손으로 어루만지곤 방의 불을 꺼주었다. 방에서 나온 영재는 소파에 털썩 드러누웠고,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 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월요일 시험이라 파이널 5차전을 라이브로 못 보는 게 아쉽네요. 라이브 보시는 분들은 저희들 몫까지 재밌게 보시길 바래요ㅋㅋ
@오늘은 리코가 조금 기네요. 아무래도 지난 편의 의문을 풀어드리려다보니 그렇습니다.
※스태거드(staggered) 픽앤롤 : 시간차를 두고 두 명이 스크린을 서는 방식입니다.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선수를 막아야할지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하죠. 대비가 안 되있다면 제대로 된 카운터를 날릴 수도 있는 전술입니다. 다만, 실행하는 쪽도 전술적 움직임이 좋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죠.
연휘가람44님/// 오옷 이틀만에 다 읽으셨다니!!
천사의사정님/// 으음??!!
쿤다라님, misscherry님, OLD-BOY님, 파이넨시아님/// 코멘 감사합니다!! 날씨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강자일님/// ㅋㅋ 저희도 휴일은 그렇게 보냅니다. 과제하고 2k하고 소설쓰고 농구보면 끝.
ㅎ0ㅎ님/// 후후후 그거슨 영업비밀ㅋㅋ
비켜봐님/// 초반부를 보시면 부상때문에 몸을 조금 사리긴 합니다만, 크게 나오진 않았죠. 이번에 터진 이유는 전생의 부상장면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전 동료들의 부상은 자신이 당한 부상과 다른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같은 장면에서도 선수마다 당하는 부상의 정도가 다릅니다. 트라우마라는게 단순히 농구 다시한다고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안 나타나다가 같은 현상을 당하거나 보게 되면 터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추신수 선수가 2011년에 좌완투수에게 공에 맞아 왼손 엄지 골절상을 당한 바 있죠. 추신수 선수는 그 이후 2년여간 왼손투수가 몸쪽으로 공을 던지는 것만 봐도 무서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른손 투수와 타격이나 수비에서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죠. 왼손투수가 바깥쪽으로 던져도 마찬가지였고요. 지금은 문제없다고 합니다.
더 자연스럽게 묘사하지 못한 점은 저희도 아쉽습니다. 더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도피칸님/// 그 말씀도 맞습니다만, 멘탈이라는 게 하나로 국한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비난이나 비판에 대한 멘탈은 튼튼한게 스스로의 실패에 대한 멘탈이 약한 경우도 있구요. 성적이나 업무에서는 좋은 멘탈인데 연애에서 유리인 사람도 있습니다.
프로그마님/// 첫 댓글에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트라우마라는 게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용사묵ㄱ지님/// 첫 댓글이시네요. 감사합니다^^
여신유리찬양님/// 댓글에 감사드려요. 저희 생각도 비슷합니다. 트라우마라는 게 어떤 커다란 분야일수도 있지만, 세세한 장면에서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