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Y13-78화 (78/296)

00078  2010-11 정규시즌(Regular Season)  =========================================================================

"야, 야! 거기서 쏴야지!"

탕탕!

"아 씨, 거 말 많네! 안 그래도 쏘고 있으니까..."

[HEAD SHOT!!]

"아오! 기다려 봐, 내가 일단 깨 줄 테니까!"

"......"

비디오 게임기 주인인 영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머쓱한 표정으로 컨트롤러를 살짝 내려놓고 보브아의 플레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현란하게 컨트롤러를 조종하는 보브아를 보니 소싯적에 꽤나 게임을 해 보던 것 같았다. 그렇게 게임에 열중하던 보브아는 기어이 협동 미션을 홀로 깨버리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팔을 위로 쭉 뻗어올렸다.

"하하하!"

"...... 보브아. 솔직히 말해. 집에 게임기 있지?"

"아니? 없는데. 그냥 니 컨트롤이 발컨인거야."

발컨이란 말에 영재는 분한 나머지 이를 갈았지만 보브아의 게임실력에 토를 달 수가 없었다. FPS 장르 중에서 극악의 난이도라 불리는 헬 오브 듀티의 2인 협동 미션을 홀로 깨버릴 정도라면 영재가 아니라 누가 와도 보브아에게 감히 컨트롤로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약속대로 저녁 해줘야지!"

"알겠어, 알겠다고. 대충 만들어 줄 테니까."

보브아는 대충이란 말에 발끈하며 영재에게 이것저것 따지는 시어머니처럼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자기 때문에 이 게임을 깬 것 아니냐부터 시작해서 기껏 초대한 사람에게 대충 만들어 주는게 뭐냐까지 나오자 영재는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여자친구한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고 해 줄테니까 잔소리 그만 좀..."

"엑- 여자친구도 없는 놈이 뭘 안다고. 그냥 정성스레만 만들어 줘라."

마지막까지 신경 거슬리는 말을 내뱉는 보브아를 한번 째려 본 영재였지만, 뒤돌아서서는 슬쩍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지난 경기부터 보브아의 부상도 완치되어 경기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칼라일 감독 역시 보브아의 경기감각과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하기 위해 영재와 키드의 출전시간을 조절하여 보브아에게 부여하기 시작했다. 궁극적으로 매버릭스가 원하는 것은 보브아와 영재가 다음 시즌부터 키드와 테리의 노쇠화를 메워주고, 천천히 세대교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경기 결과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피닉스와의 경기에서 1패를 추가한 것 이외에 7경기 동안 6승 1패로, 댈러스는 44승 12패로 호조의 성적을 이어나갔다. 페쟈 스토야코비치는 잔부상으로 인해 많은 시간을 뛰진 못했지만 그간 3,4번을 오고가며 혹사를 당하던 숀 매리언에게 숨통을 트이게 해 준 장본인이었다. 평균 15분 남짓을 소화하며 8.5 득점, 2.4 리바운드로 그리 눈에 띄는 기록은 아닐지라도 2점, 3점슛 성공률이 46%, 40% 로 댈러스의 농구 철학과 딱 맞아 떨어지는 스트레치형 포워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보브아도 그리 나쁜 기록은 아니었다. 부상에서 완벽히 회복된 것이 아니었기에 두 경기에서 10분 내외를 뛰며 키드의 백업으로 나섰는데 5.5점에 1.5어시스트로 무난한 기록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댈러스의 입장에서, 그리고 릭 칼라일의 입장에선 보브아에게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더욱 드러나기 시작한 게 문제였다.

보브아는 기본적으로 수비보다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정확한 슈팅이 강점인 선수였다. 특히 그의 엄청난 스피드는 타 팀에서 트레이드의 대상으로 요구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상에서 회복한 보브아는 특유의 스피드가 한풀 꺽여버린 듯했다. 댈러스의 입장에선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당장 바레아만 놓고 보더라도 2011년에 접어들면서 3점 성공률이 예년으로 회복하며 이미 4번째 가드 자리를 꿰찬 상황.

그런 상황에서 보브아가 계속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칼라일 감독의 입장에선 굳이 보브아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미 키드와 테리 영재만으로도 대부분의 출전시간을 채울 수 있었기 때문에 바레아의 출전시간도 매우 제한적인 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 로스터가 워낙 잘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후."

그래도 서머리그에서부터 서로 여기까지 올라온 친구이자 동료인 보브아가 이렇게 실력이 퇴보하는 것을 보기 싫었던 영재는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보브아를 살뜰하게 챙기고 있었다. 자신과 가장 나이차가 적었던 동료였고, 가장 자신과 먼저 뛴 동료였기 때문이다. 집에 가끔씩 초대해서 게임도 하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게임도 같이 하고, 팀 훈련 이후에는 1:1 대결 같은 것을 하면서 보브아의 재활과 경기 감각 회복에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자, 먹어."

"대충 만든 거 아니지?"

"아니니까 얼른 먹어."

영재는 간단하게 펜네 파스타를 삶고 그 위에 토마토 소스를 듬뿍 끼얹은 뽀모도르를 만들어 주었다. 보브아는 한 입 먹더니 오! 하는 감탄과 함께 파스타를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고, 영재 역시 조금 파스타를 먹었지만 별로 입맛이 없었는지 몇 번 먹지 않고 옆으로 밀어내 버렸다.

"보브아,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영재는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보브아를 책망했지만 보브아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계속해서 파스타를 먹는 데 열중했다.

"보브아."

"밥맛 떨어지게 그런 이야기를 왜 지금 하는 거야?"

"나도 황당하니까 그렇지. 갑자기 칼라일 감독에게 왜 그런 말을 한 건데?"

보브아 역시 입맛이 딱 떨어졌는지 포크를 내려놓고는 영재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분노나 짜증은 하나도 섞이지 않은 그런 표정이었다.

"내가 힘들어."

"어?"

"내가 힘들다고. 너도 그렇고 댈러스 사람들도 그렇고, 다 힘들어. 부담스럽다고."

"......"

보브아는 자조섞인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부상 당한 다음에 속도가 없어진 내게 거는 기대감. 다시금 되돌아 올 꺼라는 헛된 희망. 엿이나 먹으라고 하지. 나라고 열심히 안 달려 봤는지 알아? 나라고 발목이 뻐근할 정도로 힘 내지 않은 줄 아냐고. 더 이상 속도가 나오지 않아. 이 이상의 속도가, 부상 당하기 전의 내 속도가 나오질 않는다고. 그래서 그랬어. 내게 기대를 가지지 말라고. 감독도 별말 안한 걸 너가 뭔데 말하는 거야?"

보브아는 구역질 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파스타를 옆으로 밀어내 버렸다.

"그리고, 너도 구역질 나. 다 보인다고. 조금 잘 한다고 우쭐거리고 있잖아? 같잖아 보이니까 잘 해 주는 거 아냐? 그래, 생각해 보면 서머리그 때 부터 나는 너를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지."

콱!

"이런 개새끼가!"

영재는 정말로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이에서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꽉 앙다물며 참지 않았으면 진즉에 보브아에게 주먹 몇 대 날아갔을 것이다. 그간 살아왔던 전생의 세월이 영재의 주먹을 간신히 참게 만들었다.

"애새끼처럼 쫑알대지마. 내가 이딴 새끼를 걱정하고, 일일이 신경써줬다니. 나야말로 구역질 나니까 꺼져. 이 위선자 새끼야. 미안하다, 같잖게 걱정한 걸로 보여서. 그 구역질 나는 걸 어떻게 참았어, 어? 세상에 너만 불행한 거 같지? 이 개새끼야!"

멱살을 놔버린 영재는 손에 더러운 게 묻었다는 듯 휴지에 쓱 닦아내곤 쓰레기통에 가차없이 던져버렸다. 보브아는 킥킥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 개같고 같잖은 새끼다. 어째서? 어째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건데? 그리고 너는, 왜 다 안다는 듯 나한테 그런 말을 한건데? 내가 부상 당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처럼 부상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했잖아. 안 그래?"

영재는 그런 보브아의 모습에 내던 화도 다 사라지고 말았다. 가슴 속을 간지럽히는 무언가가 자꾸 영재의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어린애 같은 보브아의 모습을 보면서, 영재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후."

영재는 더 이상 보브아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영재는 어느정도 초탈한 표정으로 보브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다 안다는 듯이 위에서 내려보고, 챙겨주는 척 하면서 이겼다는 듯한 우쭐한 느낌을 가지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러는 거잖아, 안 그래?! 지금도 그 표정!!"

"한 번만 이야기 할게. 너랑 같이 밥도 먹고, 같이 논 건 말이지. 하도 훈련장에서 풀 죽은 개새끼마냥 수그리고 다니는 게 친구로써 안타까워서 그랬던 거고. 1:1 대결이나 훈련을 같이 한 이유는 적어도 서머리그에서 날아다니던 로드리고 보브아를 보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그리고 영재는 차마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한마디를 더 웅얼거렸다.

'바로 나 처럼...'

보브아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버렸다.

"나도, 나도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알아... 아니,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구. 그냥, 그냥 모든 호의가 다 나를 깔보는 거 같아. 모든 게 다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 거 같다고. 경기를 뛰면서 이렇게까지 찜찜하고 뛰기 싫은 적이 없었단 말야. 그냥, 그냥...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다고."

영재는 그런 보브아의 모습에서, 부상당한 직후 자신이 겪었던 그 좌절감이 보였다. 저러다가 그 다음은 선택할 차례다. 스타일을 바꾸거나, 처절하게 본래의 실력을 찾기 위해 무리하거나, 포기하거나. 어떤 것이든 해답은 없다. 그저 그 중에서 가장 답에 근접한 것을 찾고 선택하는 것밖에.

"헤이. 이거 먹어."

영재는 평상시에 잘 먹지 않는 다크 초콜렛을 냉장고에서 한 조각 잘라내 보브아에게 던져주었다. 보브아는 마치 풀죽은 아이처럼 초콜렛을 입 안에 넣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단 게 들어가니 마음이 진정된 듯, 보브아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영재 역시 괜찮다며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 이었다.

"그냥, 모르겠어. 요즘따라 더 그래."

"참 나. 잘 생각해 봐. 다른 선수들은 너가 있는 그 자리라도 올라서고 싶어서 아둥바둥하는데, 부상 한 번에 그렇게 휘둘리면 다른 선수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저 배나 부른 놈이구나 라고 볼거라고."

"그런가."

"그래. 그리고 내가 보기엔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너랑 1:1 훈련도 하고 있는 내가 보기에 말야. 그리고 스피드가 정 회복되지 않으면.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선택을 해야 할꺼야. 그 선택은 아무도 정해주지 않아. 너가 선택해야 할 몫이니까."

영재의 말은 보브아에게 한 자루 비수가 되어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대로 스피드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떤 선택이든 해야 한다는 것을.

"그냥, 운이 더럽게 없었다... 인거야. 무슨 의미따위 없다고. 그리고 남들이 선택해야 할 시기보다 조금 빠르게 온 것 뿐이야. 그거 뿐이야. 그런 거에 의미 부여하면 좋을 거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 내가 포인트가드로 뛰다가 대학 때 와서 슈팅가드로 뛰었을 때도 그랬고, 나라고 고민이 없는 거 아니고, 아픈 게 없는 건 아냐. 그러니까 같잖게 본다라든가, 그런 말은 하지 마. 그러고 있지 않으니까."

보브아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영재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영재도 별 말 하지 않은 채 초콜렛 한 덩어리를 더 떼어 보브아에게 던져주고, 식어버린 파스타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와르르 쏟아버렸다.

"씨발. 저게 다 얼만데."

"돈도 많이 버는 새끼가 쪼잔하게..."

"넌 닥쳐. 너 때문에 다 버린 거니까."

"예예. 입다물고 있겠습니다."

영재는 보브아가 집에 돌아가기 전, 주머니에 넣어놨던 티켓을 한 장 건네주었다.

"이거 뭔데?"

"루키 챌린지 경기 티켓. 나 아마도 주전으로 나올 테니까 너도 와서 보고 분발해라."

"아오, 얄미운 놈. 알겠어. 갈께."

보브아는 그렇게 티켓을 받아들곤 차를 몰고 휙 가버렸다. 영재는 이 기회에 남은 사람들에게도 티켓을 주기 위해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곤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 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클블이 애틀을 스윕했군요. 매 경기 평균 10개 이상 리바운드가 딸리는 인사이드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플옵에서 이게 문제가 될 거 같았는데, 결국은 클블전에서 감당을 못하네요. 서부는 휴스턴이 최초의 역스윕이 가능할 것인지가 화두겠네요.

@FPS게임명은 조금 바꿨습니다. 한 글자만 바꾼거에요 ㅎㅎ

※스트레치형 포워드 : 3점까지 가능한 슈팅레인지가 긴 포워드를 말합니다.

zigichacha님, 커요커요님, 카리아러브님, 깡씨앨리스님, 실용소설님, 달의물방울º天님, 권우현™님///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참 착잡하네요. 국농을 좋아하는 건 아니어도 이렇게까지 되는건;;; 제발 아니길 빕니다만, 정황상 불안하네요. 이러다가 더 여러 명 엮이는 건 아닌지도 걱정되고요.

정근님/// 고아는 아닙니다. 가족 얘기는 설정상 조금 뒤에 나옵니다. 기다려주세요 ㅎㅎ

찬란한유산님, 파이넨시아님, 천상별리님, 라피르and진트님, misscherry님, 오마리온님, 쿤다라님/// 항상 코멘 감사합니당~~

가연을이님, 여신유리찬양님/// 스1 올드팬으로써 참 안타까운 일이었죠. 그것만 아니었으면 그래도 몇 년은 더 갔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물론 마재윤만 하나 건 아니었지만, 마재윤의 위상이 위상인지라 가장 크리티컬이었죠.

huhcafe님, 난돠김님/// 연참은 시간이 되면 해보겠습니다 ㅠ.ㅠ 저희가 이래저래 자료조사하고 경기 보고 쓰다보니 조금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그리고 영재의 제스쳐는 슛을 성공시키고 자신의 등번호를 가리키면서 백코트하는 겁니다.

-DarkANGEL-님/// 저도 심판들도 조사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심판들 문제가 한두번이 아닌데 한번도 조사를 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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