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9 서머리그(Summer League) =========================================================================
영재는 그렇게 개인 훈련에서 많은 성장을 이어나갔고, 어느덧 서머리그의 끝자락인 7월 15일이 되었다. 당일 아침부터 영재는 자신도 모르게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먹고 있었다.
"왜 그래? 뭐, 숨겨 둔 애인이라도 와?"
가볍게 아침식사를 하면서, 어느새 친해진 보브아는 농담반 진담반처럼 낄낄 웃으며 고기와 야채가 가득 들어간 햄버거를 게걸스레 먹었다. 영재는 오늘따라 한국적인 맛이 땡겨서 그런지 매운 칠리 소스를 햄버거에 뿌린 뒤 나이프로 잘라 먹으며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무슨 헛소리야. 숨겨 둔 애인이 뭐냐. 숨겨 둔 애인이."
"에헤- 또 그런다. 너 보면 연애는 어떻게 하나 싶다. 맨날 하루 종일 훈련하고 분석하고 무슨 연습 중독도 아니고. 그렇게 살면 답답하지 않냐?"
영재는 칠리맛 나는 햄버거를 우물우물 씹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아직은 관심 없다. 생길 때가 되면 생기겠지. 당장은 그저 농구하는 게 제일 즐거운걸."
"에휴, 이 재미없는 녀석. 근데 그러면 왜 그렇게 가만히 있질 못하는 거야?"
"너가 보기엔 별 거 아닐 수도 있는데, 오늘은 그냥 워싱턴이랑 경기가 있어서 조금, 아주 조금 기대가 될 뿐이야."
워싱턴 위자즈(Washington Wizards). 영재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몇 주전, 자신의 눈 앞에서 첫 번째로 호명된 그 선수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말이다. 마법사를 형상화한 로고가 박힌 모자를 쓴 채 해맑게 웃고,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남자.
"존 월..."
"존 월이라. 하긴 서머리그에서도 대단하다고 하던데."
보브아는 우적거리던 햄버거를 넘기지도 않은채 웅얼거렸다. 영재는 으윽- 하는 신음과 함께 슬쩍 튀는 고깃덩이를 피했다.
"들리는 말로는 서머리그 mvp도 따놓은 당상이라고 벌써부터 시끌시끌하더라고. 하기사 득점과 어시스트 두 개 다 최상위권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려나. 기자들이나 언론들도 죄다 존 월 얘기뿐이니."
"어쩔 수 없지. 그만큼 실력있는 선수인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포인트가드로써 필요한 넓은 코트비젼(Court-Vision), 적군을 속이고 아군에게 양질의 패스를 뿌리는 패싱센스, 수비를 찢는 돌파와 능수능란한 드리블링, 거기에 미드레인지 슈팅까지 준수했다. 그의 몇 없는 약점이라면 3점 슛과 하이포스트 뒤의 이른바 롱2(3점슛은 아니지만 미드레인지 보다 더욱 먼 곳에서의 슈팅) 의 부정확함, 그리고 돌파시 가속이 붙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약점은 알지만 우리가 공략할 수 없다면 그건 약점을 아는게 아닌거지."
보브아의 푸념섞인 말에 영재는 킥킥 웃으며 남은 햄버거를 보브아의 그릇에 쏟아넣으며 말했다.
"그렇게 쭈그러져 있으면 여자한테 인기 없다?"
"뭐래? 뜬금없이. 키만 큰 누구보단 훨씬 매력적이니까 좀 쭈그러져 있어야 얼추 맞지."
"어쭈? 코트로 와 봐. 정신 좀 차려야겠네!"
영재와 보브아는 장난을 하다 못해 이젠 서로 헤드락을 걸면서 투닥거렸다. 그렇게 보브아랑 엉겨서 코트로 나가던 중, 영재는 테이블에서 혼자 조용하게 밥을 먹는 한 동양인 선수가 눈에 밟혔다.
양 팀 스타팅 명단
댈러스 매버릭스(3승 0패)
로드리고 보브아 PG 6-2(188cm)
윤영재 SG 6-5(196cm)
J.R 기든스 SF 6-5(196cm)
오마르 샘핸 PF 6-11(211cm)
무사 세크 C 7-4(223cm)
워싱턴 위자즈(2승 0패)
존 월 PG 6-4(193cm)
커티어 마틴 SG 6-4(193cm)
마이크 스위트니 SF 6-8(203cm)
트레버 부커 PF 6-9(206cm)
자베일 맥기 C 7-0(213cm)
코트 위에 10명의 선수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도열하고 있었다. 파란색의 댈러스 서머리그 원정 유니폼을 입은 다섯명의 선수들과, 반대편 하얀 바탕에 빨간 색이 들어간 워싱턴 서머리그 홈 유니폼을 입은 다섯명이 서로를 보며 각자 마음 속으로 감정을 다스리고 있었다.
'존 월...'
영재는 자신의 왼편에 서 있는 보브아를 마주보는 존 월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대학 컨퍼런스 리그 때 상대했던 매튜 델라베도바를 시작으로 그라비스 바스케스, 로드리고 보브아, 타이 로슨과 붙어왔던 영재였지만 존 월은 그들과는 어찌 보면 급이 다른 선수였다. 물론 존 월은 이제 루키였기에 2년차인 보브아나 로슨보다 당장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아마 올해 내에 그들을 넘어설 것이다.
'수비시에 윤이 존 월을 전담마크 한다. 워싱턴의 파워포워드인 트레버 부커와 센터 자베일 맥기는 이미 nba에서 뛴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다. 그만큼 실력이 좋고,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존 월이 공격을 전개할 때 이 둘이 많은 도움을 줄 거다. 특히 2대2의 픽 플레이시 스크린 수비에 주의해야 한다.'
어느덧 말을 놓고 하나의 선수로 대해주는 드웨인 케이시의 지시에 영재는 천천히 곱씹으며 작전을 완벽하게 이해하도록 노력했다. 부커와 맥기. NBA경력이 있다 하나, 서머리그에 뛸 정도라면 경력이 짧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일 터이다. 충분히 극복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
특히 벤치 쪽에서 앉아있는 릭 칼라일 감독과 마크 큐반 구단주가 오늘따라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서머리그 두 번째 경기부터 경기를 관전하고 선수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했기에 익숙해졌지만, 오늘 만큼은 두 사람이 경기를 본다는 것이 부담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존 월 한명으로 인해 느껴지는 중압감이라고 생각하니 영재는 존 월을 보며 전의를 불태울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2010 라스베가스 섬머리그, 한창 상승세인 워싱턴 위자즈와 댈러스 매버릭스의 경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ESPN의 마이크 브린입니다.]
[캐스터 브라이언 던톤스 입니다. 섬머리그인데도 특별편성이 될 만큼 nba를 관심있게 보시는 분들이라면 오늘 경기를 굉장히 기대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오늘 경기는 댈러스는 4번째 경기, 워싱턴은 3번째 경기입니다. 양 팀 모두 패배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워싱턴 위자즈의 영건, 2010 드래프트를 존 월 드래프트로 만든 1순위의 존 월이 오늘 경기 역시 선발로 나오기 때문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댈러스 매버릭스의 영건이 결코 모자라지는 않다고 생각이 듭니다.]
브라이언 던톤스는 아! 하는 감탄과 함께 카메라로 줌인이 되는 두 선수를 보며 목소리를 높혔다.
[작년 2009 드래프트 25순위 로드리고 보브아와 이번년도 25순위 영재 윤이 있군요!]
[그렇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25순위로써 댈러스 매버릭스 내에서도 기대하고 있는 신예입니다. 만일 맵스의 기대대로 두 선수의 기량이 만개하면 현재의 백코트 듀오인 제이슨 키드, 제이슨 테리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유형의 백코트(포인트가드-슈팅가드) 듀오가 탄생할 수 있겠습니다.]
마이크 브린의 해설과 함께 점프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자아! 자베일 멕기! 7-4(223cm)의 무사 세크를 상대로 어마어마한 점프력으로 공을 따 냅니다! 무사 세크, 신장이 아깝습니다. 왜 이리 점프가 낮은가요!]
[역시 자베일 멕기, 운동신경 만큼은 역대 최고라고 불리는 빅맨답습니다.
BQ(Basketball IQ)가 낮은 탓에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턴오버를 저지르지만 저런 면 때문에 기대를 버리기가 어렵겠죠!]
멕기는 점프볼을 따자마자 곧바로 존 월에게 공을 건네주었다. 영재는 그저 공을 튀기는 것 뿐인데, 존 월을 보며 오싹한 느낌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킥킥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투퉁!
존 월의 불규칙한 드리블.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헤지테이트 스텝. 역시나 그간 만나왔던 선수들보다는 한 수 위인 듯했다. 발이나 몸, 다리를 전체적으로 보는 와중에도 존 월은 코트를 빠르게 훓었다.
'코트의 흐름을 잘 읽고 있다.'
공격시에만 코트비전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영재 역시 대인수비를 철저히 하면서 코트 전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존 월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엎치락 뒤치락 하는 것 역시 파악하고 예측해야 했다. 그게 바로 BQ가 뛰어나다고 극찬을 받는 윤영재의 진면목이었다.
'스크린!'
영재는 월의 길을 터 주기 위해 스크린을 걸러 오는 트레버 부커가 자신의 뒤에서 앞으로 달려오려 하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선택해야했다. 부커가 나오는 순간 존 월은 매끄럽게 림으로 달려들 것이다. 사이드 스텝이 좋다고 하더라도 미리 예측하지 않고서는 존 월의 가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쾅!!!
삐이익!!
영재는 존 월을 마주보며 두 팔을 벌리다가 자신의 앞으로 나오며 양 손을 모으는 부커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월을 향해 달려드는 척 했다.
[아아! 트레버 부커의 오펜스 파울입니다!]
[트레버 부커가 존 월에게 스크린을 걸어주기 위해 나오는 동작이었죠? 스크린 상황에서 움직이게 될 경우 상대와 마찰이 이루어지면 무빙 스크린 파울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찰나의 순간, 트레버 부커가 움직이는 와중에 두 손을 모아 스크린을 할 의사를 보이니, 윤이 곧바로 부커와 부딪히죠?]
[아- 그렇군요. 다시 보니까 존 월을 앞에 둔 채, 자신의 앞으로 나오려는 부커와 부딪히는 모습입니다. 참 영리한 플레이입니다. 이러한 수비가 가능한 선수들이 많나요?]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윤이 영리한 선수라는 것을 반증하는 장면이죠. 존 월 이라는 초대형 유망주를 상대로, 100% 막기 어렵겠다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이크 브린의 말대로, 영재는 존 월을 막기 위해 굳이 존 월만을 막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존 월을 막는 것은 곧 워싱턴의 공격을 끊고 공격권을 가져오면 되는 것이었다. 트레버 부커의 어설픈 스크린이 보인 이상 영재는 놓칠 이유도, 놓칠 필요도 없었다.
"후우."
공격권이 넘어왔고, 오늘도 역시 보브아가 포인트가드 롤을 맡았다. 하프라인을 넘어와 공을 퉁기는 보브아 역시 긴장이 되는 모양인지 평상시와는 달리 어울리지 않는 한숨을 내쉬며 침착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보브아의 맞상대는 커티어 마틴(6-4/193cm). 워싱턴 위자즈 역시 그간의 경기를 분석하며 포인트 가드인 존 월을 영재에게 붙이고, 그 대신에 수비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슈팅가드인 커티어 마틴을 보브아 마크맨으로 작전을 짠 것이다.
보브아는 손가락 2개를 들어올리고 좌우로 한 번 흔들면서 선수들에게 전술지시를 했다. 탑의 위치까지 도착한 보브아는 어느덧 18초 남은 공격제한시간을 한 번 확인하고는 천천히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투둥- 퉁!
잔걸음으로 한 번, 왼 쪽으로 몸을 기울인 듯 하다가 곧바로 오른쪽으로 빠져버리는 로드리고 보브아. 커티어 마틴은 첫 번째 움직임이 페이크임을 눈치채고 보브아의 방향을 읽어냈지만, NBA에서도 최상의 스피드로 평가받는 로드리고 보브아를 따라잡기엔 무리였다.
순식간에 로포스트 까지 치고 들어간 보브아. 하지만 곧바로 손이 들어오는 느낌에 보브아는 급하게 속도를 줄이고 공을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
존 월. 그의 스틸이 한 순간 훅- 들어올 뻔 한 것이다. 시야가 좁긴 하지만 헬핑 수비가 올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던 보브아였기에 간신히 스틸당하는 것을 모면했지만 등골이 서늘해진 것은 '역시 존 월이다' 싶을 정도였다.
"칫."
그제서야 보브아는 깨달았다. 공을 양 손으로 잡고 자신의 속도를 죽이기 위해 스틸을 이용한 것이지, 굳이 공을 뺏기 위한 스틸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영재가 부커의 스크린을 이용해 반칙을 유도해 낸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손가락 2개의 의미까진 읽어낼 수 없는 존 월이다. 보브아는 싱긋 웃더니 비어있는 곳으로 공을 뿌렸다.
자신의 돌파 후 좌우 코너를 이용한 공격을 하겠다. 보브아는 공격시 그렇게 말했고, 헬핑을 들어왔던 존 월이 맡아야 할 그 선수는 마크맨이 없는 상태로 보브아가 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봐도봐도 정말 이해할 수 없단 말이지.'
재빠르고 영리한 오프 더 볼 무브.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아군과 적군 상관하지 않고 적절하게 이용하여 빈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곳으로 파고드는 영리한 플레이. 바로 윤영재의 플레이였다.
============================ 작품 후기 ============================
★선작.추천.코멘.쿠폰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백코트 : 백코트는 공격 후 자신의 코트로 돌아가는 백코트라는 뜻도 있지만,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합친 가드진을 백코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포워드와 센터를 합쳐서는 프론트코트라고 합니다.
※코트비젼 : 코트를 읽는 시야 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야구의 포수나 축구의 플레이메이커처럼 선수들의 움직임과 게임의 흐름을 읽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8개 대진의 플옵 1차전이 끝났네요. 확실히 플레이오프는 빡빡합니다. 다들 팀 야투율이 엉망이네요. 시원시원한 돌파도 잘 없구요.
니앞에꽃미남님/// 1코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1)...님///하핫, 그래도 리그에서 손꼽히는 명장입니다.
마리넥스님/// 히로인은 잠정 결정은 해두었지만, 확정은 아닙니다ㅋㅋ
바람남님/// 재밌게 읽으시니 다행이에요ㅋㅋ
Invi님/// 최대한 어렵지 않게 조금씩 집어넣을 생각입니다.
우유동자님///우리의 완벽한 주인공!!
파이넨시아님/// 감사합니다~~
p78910님/// 댈러스 팬이시군요. 영재버프로 어디까지 강해질지.
그림자소년님/// 저 정도로는 부족하죠. 아직 더 커야 합니다 ㅋㅋ
백월량님/// 으음, 비슷하긴 합니다만, 가장 비슷한 건 WS(Win Shares)가 있습니다. WAR의 경우 대체선수레벨보다 얼마만큼의 추가승수를 가져다주는지에 대한 기록이고, Win Shares는 팀의 승수 중에서 해당 선수가 기여한 승수를 의미합니다.
zigichacha님/// 무난하지만, 골든스테이트의 우승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2순위로는 LA클리퍼스, 샌안토니오, 클리블랜드를 예상합니다. 애틀란타는 호포드의 부상 타격이 적잖을 걸로 보입니다.
쿤다라님/// 항상 코멘 감사합니다!!
AdYang님/// 최대한 많은 독자분들이 편하게, 재밌게 읽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기다려도밤은오지않고님///감사합니다!!
론즈하트님///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클리퍼스의 미드레인지가 잘 터지고, 샌안의 자유투가 엉망이라 쉽게 가져갔네요.
myus1004님/// 쿠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