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Y13-26화 (26/296)

00026  각자의 길로  =========================================================================

영재는 오랜만에 캐쥬얼 정장을 차려입고 마른 침을 삼켰다. 자신에게 에이전트가 먼저 접촉을 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그 에이전트가 바로 빌 더피 정도나 되는 거물 에이전트라는 건 영재로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빌 더피는 NBA에이전트 수익 10위권 안에 꾸준히 드는 거물 에이전트 중의 하나입니다.)

'정말?! 그거 잘 된 거잖아!'

멜리는 그런 자리일수록 깔끔하게 보여야 한다면서 친누나가 동생 면접을 위해 코디를 해 주는 것 처럼 이런저런 옷을 세심하게 신경써 주었다. 아즈텍스의 멤버들에겐 아직 계약이 확실시 된 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멤버들은 잘 해 보라며 전화나 메세지로 영재에게 응원을 해 주었다.

"후아."

분명 전생에서도 에이전트와 이런저런 일을 처리해 왔던 영재였다. 하지만 거물 에이전트와는 단 한번도 마주한 적 없는 영재에겐 당연히 긴장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똑똑-

"아, 들어오게."

피셔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영재는 마지막으로 와이셔츠의 깃을 가다듬고는 피셔 감독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 Y13.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빌 더피란 사람입니다."

빌 더피. 6-5(196cm)의 영재와 시선이 비슷할 정도로 풍채가 좋은 흑인계(피부가 밝은) 남자. 부리부리한 눈과 강인한 인상. 하지만 그럼에도 웃음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남자가 양복을 입은 채 악수를 건넸다.

빌 더피가 한 인터뷰 중에서, 이런 말이 있었다.

'농구장 안팎에서 돈을 버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직함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인지 빌 더피는 스포츠 에이전트를 다룬 영화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 주연)'의 주인공인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와 자주 비교가 되며 'NBA계의 제리 맥과이어' 로 불릴 정도였다.

"반갑습니다. 영재 윤입니다."

"자, 일단 앉으시죠."

빌 더피의 권유에 영재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피셔 감독을 살피곤 소파에 앉았다.

"우선 NCAA All-America 2nd Team에 뽑히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전국 선수 중에 11명 안에 들은 것이 아닙니까."

"아, 감사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여기에 뽑힐 줄은 몰랐습니다. 얼떨떨하더군요."

더피는 얼떨떨하다고 말하면서도 최대한 무덤덤하게 표정을 관리하는 영재를 보더니 잠시 뜸을 들이고는 미소를 지었다.

"초면에 이런 말은 실례일 수 있지만 윤은 참 재미있어 보이는 사람이군요."

"네?"

빌 더피는 별 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자신의 가방에서 서류를 한 움큼 꺼내들면서 말을 이었다.

"에이전트라는 것이 사실 별 게 아닙니다. 사람을 마주하는 일이죠. 그러다 보니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제 '감' 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고, 맹신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맞아 떨어지더군요. 제가 윤에게 느낀 '감'은 재미있다는 겁니다."

더피는 목이 말랐는지 앞에 놓인 물을 마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윤의 자료를 그 어떤 선수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흥미롭게 봤습니다. 이 무수한 자료들로 '영재 윤' 이란 선수를 판단하더라도 충분히 판단은 가능하죠. 하지만 저는 궁금했습니다."

"어떤 점이..."

"첫 인상은 어떨까. 내가 악수를 건넬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생각을 이야기 할까... 이런 것이죠. 우선 정장을 차려 입고 오시는 고객들은 거의 없지만, 윤은 정장을 차려입고 왔죠. 제가 격식을 차리는 편은 아니지만, 특히 한국에선 중요한 자리에 참석할 때는 정장을 입는 것이 어느정도 관례가 되어 있다보니... 예상한 대로 정장을 입고 오셨더군요. 하지만 특이하게도 캐쥬얼 정장이고 신발만큼은 농구화죠. 그리고 브랜드 역시 유명 브랜드가 아니고 많이 입은 옷으로 보여집니다. 적어도 사치를 부리는 성격은 아니라는 거죠. 그 점에서 저는 윤에게 첫 번째로 재미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영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빌 더피가 아닌 거물 에이전트 들은 모두 이런 식일까? 아니면 자신의 기준에 따라 선수를 판단할까? 이런 생각에 영재는 놀란 것을 애써 참아내며 덤덤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도 재미있습니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하시면서 표정을 관리하시는 것 같더군요. 보통 그 나이대의 스포츠 스타들은 그러기 힘든데 말입니다. 그런 사소한 부분들이 꾸준한 경기력을 내는 기반이 되는 거라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 윤은 아즈텍스에서 1학년답지 않게 기복 없는 꾸준한 플레이를 보여 주었소. 코트 바깥에서나 내부적으로나 감정의 기복도 적었고."

피셔 감독의 적절한 설명에 빌 더피 역시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윤의 실력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 단순히 운동실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고, 저 역시 실력만을 따지는 부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부터가 아직 한참 먼 에이전트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나는 선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고민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선수들과 그저 비즈니스 관계로만 묶이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명색이 선수 출신인데 선수들에게 공적인 도움뿐만이 아니라 사적인 도움도 충분히 줄 수 있으니까요."

영재는 더피의 마인드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일전의 에이전트들은 그저 전화 한 통으로 구두계약을 맺고 자신이 NBA 리거가 되었음에도 의례적인 축하인사를 건네곤 했었다. 자신이 에이전트에게 가져다 주는 돈의 크기에 따라 신경써주는 양이 달랐다. 머리로는 비즈니스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영재도 NBA에서 몇 년을 밑바닥부터 굴러 성장했던 선수다. 이것만큼은 빌 더피도 예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영재는 빌 더피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긴 했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계약은 계약이었다.

"좋은 마음가짐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과거 에이전트들에 대해 생각하던 영재는 긴장을 어느정도 풀고 빌 더피의 이야기를 끊었다. 물론 빌 더피가 어떤 의도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듣다 보면 그의 흐름에 따라가게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재는 그래도 서른 살 가까이까지 먹어본 사람이다. 풋내기 대학생들과 같은 레벨로 보여선 곤란하다.

"제 자료를 보시고 제 실력에 의심치 않으신다는 칭찬은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저는 미드메이저 컨퍼런스의 선수이고, NBA팀들이 보기엔 제가 매력적인 카드라고 느낄지는 저 역시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만, 메릴랜드와의 경기를 치르면서 나도 할 만하다라고 생각할 뿐이었죠."

더피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윤 역시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멘탈을 조절하고 감정 기복을 숨기는데 능한 정도로 생각했었다. 빌 더피가 아무리 선수와의 인간관계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본성은 에이전트이다.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자신이 포섭하고, 조금 더 에이전트 본인과 회사에 좋은 계약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선수에게 불리한 계약이나 광고를 진행해서 본인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아닐 뿐이다.

그렇게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새기고 곧바로 계약 이야기로 넘어가려 했는데, 의외로 영재는 자신의 흐름을 읽어낸 듯, 이야기를 끊어버리곤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게다가 본인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보통 어린 나이에 인기를 얻고, 자신처럼 띄워주면 거만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영재는 그렇지 않았다.

'냉정하고 공과 사가 확실하다. 그리고 비즈니스는 확실하게 라는 건가?'

더피는 만 19살 같지 않은 애늙은이 영재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웃음이 새어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하하!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의심을 하실 수 있는 부분입니다. 맞습니다. 윤은 그저 미드 메이저 컨퍼런스의 선수 중 하나일 뿐이지요.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그저 미드 메이저 컨퍼런스 선수는 여러 언론과 전문지의 Mock 드래프트 2라운드 상위순번에 예상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저 미드 메이저 컨퍼런스의 선수는 명문 메릴랜드를 상대로 에이스로 활약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없습니다."

더피는 탄력을 받은 듯, 조금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갔다.

"그리고 그저 그런 미드 메이저 컨퍼런스의 선수는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개척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거나, 너무 과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윤, 윤도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았습니까? 도전할 만 하겠다고. 전 그런 윤을 굉장히 높게 평가합니다. 자신을 과신하지 않지만 도전정신은 충만한 모습. 현실적이면서도 패기가 넘친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원하는 신인의 바로 그 모습. 이상적인 루키의 멘탈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제 눈이 틀리질 않길 바랍니다."

그 이후로 빌 더피는 자신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바탕으로 일사천리로 피셔 감독과 영재와 함께 영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해 나갔다. 영재의 플레이 스타일, 부상경력, 강점, 약점... 게다가 정신적인 측면까지 면밀히 분석해서 말하는 더피의 철두철미함에 두 사람은 몇 번씩이나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드래프트 참여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윤이 이대로 30~40번 픽 사이로 꾸준히 예상이 된다면, 아마 그 근처의 픽을 가진 팀들과 슈팅가드 유망주가 필요한 팀들이 윤에게 워크아웃을 초청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픽업(픽을 여러개 혹은 선수와 묶어 윗 순위의 픽으로 교환하는 것)이나 픽을 사서라도 윤을 지명하려는 구단도 있겠지요. 아직 계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기에 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순 없지만, 워크아웃은 꾸준히 참여할수록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고 더욱 높힐 수 있습니다. 워크아웃에서 본인의 가치를 높이는 경우도 심심찮습니다. 반대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긴 합니다."

영재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워크아웃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워크아웃이나 섬머리그(일종의 스프링캠프. 초청선수와 루키들로 구성된 선수단끼리 늦은 여름에 경기함) 같은 곳에서 부상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또한, 워크아웃에서 낮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도 있었고 말이다. 실제로 로터리 픽 (1~14픽 이내의 상위픽.회전하는 기계를 통한 확률뽑기라 로터리 픽으로 불린다.) 으로 예상되는 선수들은 본인이 원하는 팀을 선택하여 참가하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영재는 솔직히 말하자면 간절함이 극에 달했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겨를이 없을 정도로 영재는 처절하게 여기까지 기어올라왔다. 하지만, 단 하나의 걱정이 영재를 계속 괴롭히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와 똑같이 진행된다면, 골라야 할 텐데.'

바로 이것 이었다. 미래의 팀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영재이기 때문에, 탱킹을 노리는 팀에 가거나 구단 운영과 의료진이 좋지 않은 NBA 팀에 가는것은 영재의 입장에선 솔직히 조금이라도 욕심을 부려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영재는 그 자리에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더피도 그런 신중한 태도의 영재가 마음에 든다고 이야기 하며 자신의 명함을 내밀어 주었다.

"오늘의 대화로 윤과 제가 서로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면 전 그 것으로 만족합니다. 만일, 제가 마음에 드시고 진지하게 계약할 생각이 드신다면 이 번호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빌 더피는 말을 마무리하고 피셔 감독과 영재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문을 나섰다.

피셔 감독은 빌 더피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영재에게 물었다.

"윤, 어째서 확답을 주지 않았지? 저 정도의 에이전트라면 네가 연결할 수 있는 에이전트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인물이지 않나?"

"분명히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신중히 결정하고 싶습니다. 에이전트에게 휘둘리는 것은 사양이라서요."

"자네라면 나쁜 결론을 내릴 거라 생각되지는 않아. 그렇다면 부디 신중히 결정하길 바라겠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빌 더피라면 받아들여도 자네에겐 큰 힘이 되어 줄 거 같아."

"조언 감사합니다. 며칠 생각해 본 후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영재도 피셔 감독에게 인사를 건넨 후 집무실을 나서며 생각에 잠겼다.

============================ 작품 후기 ============================

★선작.추천.코멘.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빌 더피는 카멜로 앤써니, 스티브 내쉬, 야오 밍 이외에도 대니 그린, 클레이 탐슨 등의 에이전트도 맡고 있습니다. 더피에 대해

"더피가 무슨 말을 하든 그냥 믿으면 된다."  - 스티브 내쉬(04-05년 2년 연속 MVP)

"내 꿈을 이뤄주게 한 평생의 친구."  - 야오 밍(역대 최고의 동양 NBA리거)

두 스타는 이런 말들을 남겼죠. 야오 밍을 위해 사비까지 지출한 적도 있습니다.

에이전트도 고르는 데 생각외로 애먹었습니다. 탑10의 에이전트 다 검색했다가 가장 주인공에게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인물로 더피를 택했습니다.

백예님, 半님/// 감사합니다!!

고기를먹자님/// WWW(와일드 와일드 웨스트)행인가요ㅋㅋ. 서부 컨파가 파이널보다 어렵다고 해도 될정도죠. 물론 이 때 동부에도 마이애미와 시카고, 올랜도가있긴 하지만요. 서부로 가면 박터지게 구르겠죠.

우유동자님/// 신체가 전업 포가를 보기엔 좀 너무 큽니다. 게다가 요샌 포가/슈가 구별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죠. 그래서 아무래도 주 포지션은 슈가가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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