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5 회귀(回歸) =========================================================================
정체성
이른 새벽. 한 학생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저벅저벅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어후."
꺼진 불 중에서 자신이 사용할 곳의 불만 켠 영재는 기다란 가방에서 농구공을 몇개 꺼내 코트에 늘어놓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지."
한 달여간 자신의 몸에 적응하며 약점을 보완했다곤 하지만, 영재는 첫 번째 자체 연습게임을 포함한 그간 훈련 및 자체연습게임에서 보여 준 자신의 플레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입학 전 혼자 연습할 때에도 느낌이 좋았긴 했지만, 그래도 실전에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연습에서는 실전보다 훨씬 성공률이 높다. 당연히 체력 문제나 수비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전생에 돌파후 레이업이 주 옵션이었고, 낮은 확률의 3점과 미드레인지가 가장 큰 흠이었던 포인트가드가 본인이었고, 신체 사이즈도 작고 근육이 붙지 않아 파워가 평균 이하였던 것도 바로 본인이었다.
그 단점을 상쇄하고, NBA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영리하게 플레이를 해야 했고, 포인트 가드로써 코트 비전이나 센스, 패스 등을 더욱 더 갈고 닦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약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
영재는 발 밑에 놓여있던 농구공 하나를 집어들고는 그대로 슈팅을 뛰었다.
슉-
영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연습이라곤 하더라도 전생의 영재가 기록한 3점 성공률은 커리어 평균 29% 였다. 29%. 10개 쏘면 기껏해야 3개의 3점 성공만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애매한 외곽슛을 가진 가드. 제일 좋았던 시즌도 33%에 불과했다. 보통 스팟업 슈터들은 30% 후반을 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런 영재가 완벽한 클린으로 3연속 3점을 성공했다?
"어려져서 내 몸이... 조금씩 변하는 걸까?"
영재가 추론할 수 있는 건 이것 밖에 없었다. 전생의 몸과는 달리, 지금의 몸은 조금 더 건강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나쁜 습관이 배어있지 않는, 순수한 몸의 상태라는 것. 전생의 영재 역시 훈련을 하며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 보려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몇 년이 넘게 일정하지 않은 슈팅 매커니즘과 바디 밸런스 때문에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이나 경험은 그대로이지만 몸은 어려지면서 '리셋' 이 된 것이니 다시금 자신의 악습을 다잡게 되고, 본인이 알고 있는 '이상적인' 슈팅 매커니즘을 소화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예전의 자신이 실수했던 것들을 토대로 올바른 훈련과 자세를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바디 밸런스가 확연히 좋아져서 일정한 위치에서 슈팅을 쏠 수 있게 되었다. 손끝의 느낌 역시 훨씬 예민해져서 보다 정교한 슛이 가능해진 것 같았다.
슉-
슉-
"......"
계속해서 들어가는 깔끔한 슈팅. 영재는 자리도 옮겨서 슈팅을 해 보고, 달리다가 슈팅을 시도하는 풀업 점퍼도 시도해 보았다. 그럴 때 마다 공은 기가 막힐 정도로 쏙- 들어가거나 튕겨 나오더라도 아슬아슬하게 림을 핥고 흘러나왔다.
확실히 스팟업(Spot-up)점퍼는 많이 좋아졌으나, 풀업(Pull-up)점퍼와 스텝백(Step-back)점퍼는 아직 조금 부족했다. 즉 무빙 이후 슈팅의 안정성이 부족한 탓이었다.
"핫!"
콰앙!
그리고 원핸드 덩크. 전생의 영재는 6-1(185cm)의 키와 특출나지 않은 점프력 때문에 덩크를 거의 써 먹을 수 없었다. 실전에서는 안전한 레이업을 올려 넣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물론 크리스 폴과 같은 6-0(183cm)의 신장으로도 파워풀한 덩크를 찍는 선수가 있긴 하지만 영재는 동양인이다.
어쩔 수 없는 신체적 능력의 한계가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벌써 6-2(188cm) 정도까지 컸고, 계속해서 키가 크고 있었다. 전생에서 그렇게 되지 않았던 벌크 업도 눈에 보일 정도로 성과가 나오고 있었다. 점프력 역시 훨씬 나아졌다.
끼익- 끼익-
림에 매달린 채 아무도 없는 코트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영재는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 림에서 손을 떼고 탁- 착지했다.
같은 시간, 서재에 앉아 골몰을 하는 한 노인이 검지 손가락을 탁- 탁- 책상에 두드리더니 노트를 덮고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노인은 바로 스티브 피셔 감독.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아즈텍스의 농구부를 이끌고 있는 수비 농구의 대가였다.
"영재 윤."
피셔 감독은 노트북으로 다시 한 번 영상을 되돌려 처음부터 영상을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뛰는 한 동양 선수가 간결하게 드리블 돌파를 하더니 자신에게 수비가 붙는 그 순간, 비어있는 선수에게 공을 뿌려준다.
"포인트 가드로써 충분한 스킬과 코트 비전. 그리고 센스."
경기를 넓게 보고 조립하여 전체적인 팀의 공격력을 상승시키는 포인트 가드로써 손색없는 선수.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2점, 3점을 막론하고 패스를 받자마자 위로 솟구쳐 오르는 스팟업 점퍼를 기가 막히게 림 안으로 꽂아넣는다.
그렇다고 레이업과 같은 골밑 마무리가 안 좋은가? 그 것도 아니다. 일단 레이업이 올라가면 거의 득점을 한다고 할 정도로 골밑 마무리는 이미 NCAA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달리다가 수비수를 달고 쏘는 풀업 점퍼나 터프샷 역시 성공률이 괜찮았다. 이 정도면 NCAA에선 단연 최고의 스코어러가 될 재목이었다. 피셔 감독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두 가지.
"어떤 자세와, 어떤 상황에서 슈팅을 하든. 일정한 자세와 일정한 포물선을 그린다."
"그리고 꾸준하다..."
다른 대학의 에이스나, MOCK 드래프트 (NBA 드래프트 전 다양한 언론 및 사이트의 가상 드래프트) 의 1라운드 안에 드는 선수들과 달리 폭발력은 떨어질지언정 매 경기 꾸준하게 일정 득점 이상을 올려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꾸준함은 결국 기복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되며, 기복이 없다는 것은 멘탈이 흔들리지 않고, 그간의 엄청난 훈련량을 대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피셔 감독과 영재는 밤새 많은 고민을 안은 채 잠에 들었고, 아침이 되자마자 피셔 감독은 다른 일을 모두 제쳐두고 영재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영재 역시 바라던 바였기 때문에 약속시간 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많이 기다렸나?"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피셔 감독 역시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는지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했다.
"자네도 고민이 있는 듯 하니, 우선 내 생각부터 말해보겠네."
"네."
"난, 자네가 슈팅 가드로써 더욱 성공할 거라 생각하네. 내가 누군가를 확신하고, 확답을 내릴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나는 자네가 슈팅 가드로써 아즈텍스에서 뛰어주길 바래."
영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피셔 역시 영재의 대답을 바라는 건 아니었는지 잠시 숨을 돌리더니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네의 정체성에 혼란이 올 거라는 건 알고 있네. 고교 시절까지 자네는 포인트 가드였지. 자네의 포인트 가드로써의 능력을 의심하진 않네. 하지만, 포인트 가드로써의 영재 윤은 분명한 한계가 있네. 또한 자네의 키가 계속 자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지."
"......"
"넓은 코트 비전. 경기 조립 능력. 날카로운 패스와 뛰어난 돌파력. 준수한 골밑 마무리. 다 좋네. 하지만... 그런 선수는 솔직히 말하자면 많네. 아즈텍스의 경우 냉정하게 말하자면 미드 메이저 컨퍼런스에 속해 있네. 자네가 아무리 포인트가드로써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NBA팀들에게 그리 매력적인 카드는 아닐걸세."
피셔의 말에 영재는 자신도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점차적으로 1,2 번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슈팅이 좋은 포인트 가드, 리딩이 되는 슈팅가드라는 개념이 나오며 퓨어 포인트가드(선패스 위주의 슈팅이 약한 가드-키드,론도,루비오 등)의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그 시류 속에서 영재는 퓨어 포가를 지향했지만 결국 슛 없는 포인트 가드는 반쪽짜리이며, 슛이 없으려면 그 만큼 신기에 가까운 경기 조립이 가능해야 했다.
다행히 영재의 과거에는 팀이 유기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자신에게는 좋은 돌파 및 골밑 마무리와 자유투 능력이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뛰어난 스크리너와 외곽 슈터, 리딩을 맡아줄 동료까지도 있었다.
'내 전성기...'
영재는 솔직히 자신 없었다. 그렇게 매달렸던 포인트 가드의 포지션에서 최고는 커녕 그저 준수한 백업 포인트 가드가 자신의 한계였던 것을 떠올리면 피셔의 말에 백 번이고 동의할 수 있었다. 자신의 코트비젼과 패싱은 NCAA에서는 최고 수준일지언정 NBA에서는 아니었다.
전생의 자신과 같은 선수는 차고 넘쳤다. 이 말에 말이다.
"나는 자네를 전술에 따라 1,2번 모두 소화를 시킬 예정이네. 그리고 그러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아즈텍스에는 확실한 득점 자원이 별로 없네. 특히 자네와 같은 안정적인 슈터가 없어. 그렇기에 나는 자네를 슈팅가드로 뛰었으면 하네. 이게 첫 번째 이유.
두 번째는 자네에겐 기복이 별로 없네. 팀의 스코어러라고 한다면 위험한 순간 분위기 반전을 시킬 수 있는 폭발력도 중요하지만, 항상 꾸준한 득점을 해 주는 것 역시 중요하네. 자네에겐 그런 꾸준한 슈팅력이 있어. 적어도 게임에 투입하면 팀 내 최다 득점은 아닐 수 있겠지만 항상 예상하는 수준을 상회하는 득점을 꼬박꼬박 넣어줄 거란 기대를 하게 만드네.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안정적인 수비력이 있지. 안정적인 득점원은 승리의 보증수표로 봐도 무방하지."
영재는 피셔의 말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자네가 리딩이 되는 슈팅가드가 될 거라 생각하네. 아주 좋은 능력이지. 게다가 수비력 또한 나쁘지 않아. 그저 단점으로 꼬집힐 부분이라면 고교 시절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줘서 플루크일 수 있다는 정도... 그리고 앞서 말한 폭발력의 문제겠지. 또한 정체성이 혼란스런 선수의 경우 능력이 만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치는 경우지... 하지만,그 길이 바로 자네의 길이라고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네."
비록 영재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엄연히 아즈텍스의 포인트 가드는 D.J 게이 이다. 팀 케미스트리 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주장인 게이의 자리를 뺏고 포인트 가드로 뛴다면 팀 화합의 문제도 그저 지나칠 순 없게 된다.
영재는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보니 피셔 감독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약간이나마 자신이 전생에 몸담았던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연상되는 것 같아 기분 좋은 미소를 띄웠다.
선수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의미 없는 플레이란 없도록 하는 감독. 시스템 속에서 팀으로 선수가 뛸 수 있게 해 주는 명장.
"나를 믿고 따라와 보지 않겠나?"
영재는 사실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회귀를 해서 어려졌다고 한들, 그는 기껏해야 언드래프티를 통해 D리그를 전전하다가 간신히 합류한 밑바닥 중 밑바닥이었다. 물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력 만큼은 대단했지만 그래도 백업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간신히 백업 멤버가 되어가던 찰나에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태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주연이 될 거라 생각했는가? 그렇다면 오산이었다. 영재는 절대로 자신을 주연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더더욱 노력했고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 했고, 무엇보다 자신은 팀을 위해 뛰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차였다.
"사실, 제 고민도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동일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독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더라도 따를 생각이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해 주시고, 저를 생각해 주시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팀을 위해 뛸 준비를 할 것이고, 감독님을 믿고 따라가겠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저도 모르겠지만 부디 감독님께서 원하시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피셔 감독은 멘탈마저도 마음에 드는 영재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오른손을 내밀었다. 영재는 허리를 굽히면서 피셔 감독의 오른손을 양 손으로 공손히 잡았다.
============================ 작품 후기 ============================
★선작.추천.코멘.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스팟업(Spot-up) : 움직임 없이 공을 받아 제자리에서 시도하는 슈팅
풀업(Pull-up) : 몇 발 달리다가 멈춰서 시도하는 슈팅
스텝백(Step-back) : 빠르게 한발 뒤로 물러나 수비와 거리를 두고 시도하는 슈팅.
당연히 스팟업의 성공률이 가장 높고, 풀업과 스텝백 3점의 성공률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영재가 3점이 안 좋다는 것은 NBA선수 기준이며 포인트가드는 보통 스팟업보다는 풀업과 스텝백의 비중이 높습니다. 그래서 슈팅가드보다 포인트가드들이 평균적으로 3점 성공률이 낮습니다.
anwkdk님/// 스쿠프는 레이업으로 가는 과정 중의 일부로, 당연히 체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플로터의 경우에는 NBA에서는 단신이어도 플로터 외의 다양한 골밑 스킬들을 사용합니다. 물론 주인공도 플로터를 사용할 줄 압니다.
할라우 님, card1님///ㅠ.ㅠ 아직 초반이라 죄송합니다. 최대한 많이 빨리 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