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51화 (149/159)

151. 소년기(133) - #에프렐 마을로!

크렐루스 씨와 헤어진 나는 곧장 마을로 복귀했다.

“휴우.”

내가 차원의 틈에 있었던 시간은 길어봐야 5시간 남짓.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왠지 진이 빠져버린 기분이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나와 반디를 따라온 정령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얼추 그 숫자만 수백이 넘었으며, 생김새도 뿜어내는 기운도 제각각이었다.

“신기하네.”

정령들이 모여있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깥에 있는 정령일수록 더 강한 힘을 내뿜는다는 거다.

반면에 중심부에 있는 정령일수록 뿜어내는 기운도 그 크기도 작았다.

딱 봐도 자신보다 약한 정령을 지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정령들의 저런 행동을 보면서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나르비 씨가 이르길, 정령들 사이에도 상성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한다.

일례로 얼음의 정령과 화염의 정령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피한다고 한다.

이건 서로를 싫어하는 걸 떠나서 각 정령의 속성 때문이라나.

쉽게 말해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관계라고 보는 게 적절했다.

반면에 지금은 모든 정령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다. 개중에는 상극인 정령들이 상당수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반디 덕분이겠지.”

명색이 정령의 왕이다.

나야 정령의 왕이 뭘 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래도 정령들이 서로 화합할 수 있게끔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 정도는 쉬이 추측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부터 어쩐다.”

정령들을 아티로스까지 데려온 것까지는 좋다.

빠르든 늦든 그들을 구하는 건 당초의 계획이었으니까.

다만 정령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미처 생각해두지 못했다.

내가 고민하고 있자, 저 멀리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넬!”

“아아.”

역시는 역시인가.

날 찾아온 사람은 나르비 씨였다.

최근에 알게 된 건 요정은 정령과 깊은 관계가 있단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서 그녀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요정에게는 정령의 피가 섞여 있다지 아마.

물론 정령이 생명체가 아닌 만큼 실제 피가 섞인 건 아니겠지만, 관계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래서인지, 나르비 씨는 유독 정령의 기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증거로 내가 서 있는 곳은 마을에서 벗어난 곳이다.

즉 내가 먼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위치를 알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보나 마나 내가 데려온 정령들의 기운을 느끼고 찾아온 거겠지.

후우우웅!

나르비 씨는 가장 좋아하는 쿠키를 발견했을 때처럼 신속하게 내 앞으로 날아왔다.

어찌나 다급했는지, 그녀는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해 날 지나쳤다가 다시금 되돌아왔다.

“헥헥, 아이넬!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어떤 걸 물어보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 그냥 그렇게 됐어요.”

내 말에 나르비 씨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그냥 그렇게 됐다니요?”

“음······. 설명하자면 조금 복잡하긴 한데······.”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그러니까, 맹약이 깨진 정령들이 본래 있어야 할 페아로스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둠 속을 떠돈다고 하셨잖아요.”

“네? 아······. 네, 그랬었죠. 어? 그, 그럼 설마!”

“네. 차원의 틈에 갇혀 있던 정령들이에요.”

“세상에! 어떻게. 어떻게 그들을?”

나르비 씨가 경악하며 물었다.

아무렴.

어떤 이유에선지 나르비 씨는 자신의 나이를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지식과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상당히 오랜 세월.

어쩌면 세 자리 숫자 이상의 연수를 살아왔으리라 짐작된다.

중요한 건 그녀가 차원의 틈에 갇힌 정령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지금도 그 방법을 찾아다니고 있었다는 거다.

하물며 나는 우연히 홀로 앉아있는 나르비 씨를 본 적이 있다.

축제가 열릴 당시였는데, 어째선지 그녀는 무척이나 우울한 얼굴로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픽, 꺼져버릴 등불처럼 몹시도 위태로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나는 나르비 씨에게 다가갔다.

혹시 무슨 무슨 고민이라도 있다면 내게 말해달라고 얘기하자,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머나먼 곳.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는 기나긴 시간을 고통스러워하는 정령들이 있다.

근데, 자신이 이렇게 행복한 순간을 만끽해도 되는 거냐며 넋두리를 토해냈다.

두서는 없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정령들을 구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도 분해하고, 또 슬퍼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녀의 넋두리가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졌다.

조만간 그녀가 마을에서 떠날 것 같았다.

그랬기에 나는 가능한 빨리 정령들을 구하려고 했던 거였고.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내 얼굴을 쳐다보는 나르비 씨를 보며 웃었다.

“아주 좋은 분을 만났고, 도움을 받았어요.”

“좋은 분······이요?”

“네. 크렐루스 씨라고 하는데, 혹시 아세요?”

내 질문에 나르비 씨가 고개를 저었다.

역시 나르비 씨도 모르는구나.

“뭐,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네요. 확실한 건 그분이 없었더라면 정령들을 무사히 구출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 그랬군요.”

“안 그래도 나르비 씨한테 물어볼 게 있었는데요.”

“물어볼 거요?”

“네. 정령들을 구한 것까지는 좋은데. 사실 저는 정령에 대해서 잘 아는 게 아니라서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음······.”

나르비 씨가 슬쩍 고개를 돌려 정령들을 쳐다봤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무겁게 입을 여는 나르비 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저는 정령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요.”

“자유요?”

내 반문에 나르비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더 이상 정령이 얽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아. 맹약 말씀하시는 거군요.”

“맹약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상 또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확실히 나르비 씨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맹약이라는 건 쉽게 말해서 계약이다.

에프렐과 정령 사이에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이었다.

어떻게 보면 에프렐과 정령은 대등한 존재이며,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일종의 약속 같은 거라고 보면 이해하기가 쉬웠다.

문제는 아티로스와 페아로스를 잇던 문이 닫히면서 발생했다.

맹약이 깨질 경우에 발생하는 페널티.

에프렐은 낙인이 찍히고, 정령은 페아로스도 강제로 역소환을 당한다.

과거에 정령들이 맹약의 상대를 정할 수 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이 낙인이 있고 없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에프렐도 이를 알기에 더 이상 정령들을 존중하지 않았고, 이제는 맹약이 지닌 의의가 아예 변해버렸다.

작금에는 오로지 정령을 부리기 위한 하나의 족쇄가 되었으며, 정령을 따르기 싫어도 따를 수밖엔 없었다.

그리고 이 맹약은 아티로스와 페아로스가 다시 이어지는 그날까지도 쭉 정령의 족쇄가 되겠지.

그리고 지금 나르비 씨가 말하는 자유란 정령이 맹약에 얽매이지 않는 걸 말하는 걸 테고.

“그거라면 별로 문제 될 건 없겠네요.”

내 말에 나르비 씨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 반디 님이 계시는 한······. 맹약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렇다.

정령이 맹약을 깨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에프렐에게서 받는 녹색 마나 때문이다.

녹색 마나는 곧 정령의 힘이자 생명이며, 부족해지면 정령의 힘이 약해지다가 끝끝내 소멸하는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본래라면 맹약이 깨진 정령들은 소멸당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정령들이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차원의 틈이었기에, 달리 말해서 그 공간이 지닌 특수성 덕분이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에프렐이 걱정되시는 거죠?”

“네. 아이넬의 말대로예요. 정령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해도 에프렐은 달갑게 받아들이진 않을 거예요. 아니, 어쩌면 무력까지 동원해서 막으려고 할지도 몰라요.”

그렇겠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아티로스 대륙에 존재하는 정령들은 그저 에프렐의 수족이다. 아니, 이것도 좋게 말한 거지 사실상 자기들 편한 대로 쓰이는 도구나 다름없다.

말 그대로 자신의 소유물과도 같은 정령들을 자유롭게 풀어준다는데 달가워할 에프렐이 어디 있겠는가.

나르비 씨의 말마따나, 에프렐은 어떻게든 막으려고 할 테지. 따라서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건 기정화 된 사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게 되면······. 아이넬의 마을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그럼, 아이넬도 위험해지는 거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나르비 씨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네.”

“나르비 씨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에프렐의 도구처럼 쓰이는 정령. 맹약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정령. 둘 중 하나. 그냥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거 없이 딱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고 싶어요?”

“그거야······. 정령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요.”

“그럼 그렇게 하면 되죠.”

“하지만······. 방금 말씀드렸던 것처럼 에프렐이 가만히 있진 않을 거예요.”

“그렇겠죠.”

내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자, 나르비 씨가 입술을 삐죽였다.

“진짜로 위험하다니까요? 아이넬이 몰라서 그러는데, 에프렐은 꽤 집요해요.”

위험하다는 걸 몇 번이고 강조하는 나르비 씨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르비 씨는 모르겠지만, 저 이래 봬도 꽤 무서운 사람이에요.”

“네? 아이넬이요?”

어딜 봐서 무서운 사람이냐는 듯한 눈빛에 나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진짠데요? 저 화나면 엄청 무서운 사람이에요.”

내가 진심을 담아 얘기했지만, 오히려 나르비 씨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날 쳐다봤다.

“진짠데.”

어째 내 이미지가 순한 양이 된 것 같단 말이지.

하기야.

내가 환생한 뒤로 지금까지 살면서 화를 내 본 적이 없긴 하지.

“아무튼, 정령들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에프렐이 마을에 들러야 할 것 같네요.”

“에프렐의 마을에 간다고요?”

“네. 정령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요.”

“근데, 아이넬은 에프렐의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저는 모르죠.”

“네? 그럼 어떻게 에프렐의 마을로 가시려고요?”

내가 당당하게 말하자 나르비 씨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반문했다.

“그거야 나르비 씨가 안내해주실 거잖아요.”

“그건······. 하아. 정말 아이넬은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것 같다니까요. 거기다 저보다 더 고집이 센 것 같고요!”

“자, 그럼 바로 출발하죠! 아, 그러고 보니······.”

정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가장 큰 관련이 있는 인물을 빼먹고 있었다.

“엘리니아 씨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나르비 씨도 뒤늦게서야 그녀가 떠올랐는지 민망하게 웃었다.

“확실히 그 아이도 에프렐이고, 차기 장로의 후보니까 이런 문제는 함께 의논했어야 했는데······.”

“이럴 게 아니라, 준비도 할 겸 엘리니아 씨한테도 물어보죠 뭐.”

“아, 조금 늦었지만······.”

돌연 나르비 씨가 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게 요정의 키스라는 걸까.

“정말 고마워요. 엘리니아와 우리 정령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준 것도, 이렇게 정령들을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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