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49화 (147/159)

149. 소년기(131) - #44년이요?

크렐루스 씨의 의욕 넘치는 표정과 말투에 픽, 웃은 나는 먼저 시범을 보였다.

“자, 이 젓가락으로 삼겹살을 집어서······.”

내 행동을 보던 크렐루스 씨가 느릿느릿 손을 움직였다.

사시나무처럼 덜덜덜, 떨리는 젓가락이 살짝 벌어지며 그 사이로 삼겹살 한 점을 집었다.

“이제······는······. 입에 넣는 건가?”

그는 혹여나 삼겹살이 떨어지기라도 할까, 걱정스러웠는지 몹시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도 입에 넣는다고 물어보는 거로 봐서는 먹는 행위가 뭔지는 아는 것 같았다.

음······.

일단 첫 점은 그대로 먹어보는 것도 괜찮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크렐루스 씨가 슬그머니 젓가락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젓가락에 묻은 기름으로 인해 삼겹살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윽!”

화들짝 놀란 듯, 크렐루스 씨가 잽싸게 양손으로 젓가락을 잡았다.

삼겹살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상태로 잡혀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핏발 선 눈으로 삼겹살을 노려보던 크렐루스 씨가 끝끝내 결단을 내렸는지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젓가락을 움직여 삼겹살을 입에 넣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슬금슬금 목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내 뒷목이 다 뻣뻣해졌다.

아니, 이게 무슨 첩보 영화도 아니고 말이야.

고작 삼겹살 한 점 먹는 게 이렇게까지 긴장감이 넘칠 일이야?

이런 내 생각과는 별개로 크렐루스 씨는 일생일대의 기로를 맞이한 듯 무척이나 진중한 얼굴이었다.

이내 토트리처럼 목을 길게 내민 크렐루스 씨가 잽싸게 삼겹살을 입으로 물었다.

그 모습이 꼭 먹이를 낚아채는 살쾡이 같기도 했다.

“후후.”

입술에 삼겹살을 문 크렐루스 씨가 작게 웃었다.

방금 아등바등 젓가락질을 할 때의 모습을 잊었는지, 꽤 자신감 넘치는 미소였다.

방금 보였던 그 승부욕도 그렇고, 저 자신감 넘치는 미소도 그렇고.

예상외로 감정표현이 풍부한 신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내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뿌듯한 미소를 짓던 크렐루스 씨가 입에 문 삼겹살을 씹기 시작했다.

오물오물.

작은 입술이 쉼 없이 움직이며 부지런히 씹던 중이었다. 돌연 크렐루스 씨가 멈칫하더니, 전신을 부르르르 떨었다.

뭐지?

설마, 무언가 문제라도 생긴 건가?

크렐루스 씨에게 있어서 생애 처음으로 맞이하는 식사다. 즉 음식이라는 게 어떻게 작용할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셈.

어쩌면 알러지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던 찰나였다.

“이, 이게······. 이게 맛이라는 건가?”

“네?”

다소 뜬금없는 말에 내가 반문했지만, 크렐루스 씨는 애초부터 답변을 바라고 던진 말이 아니었다는 듯, 삼겹살을 씹어 삼켰다.

꿀꺽.

삼겹살을 삼킨 크렐루스 씨가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홱 고개를 돌렸다.

한동안 자글자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응시하던 크렐루스 씨가 다시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째선지 시커먼 어둠을 바라보는 그의 눈가는 촉촉했는데, 언뜻 아련함이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했는가. 나는. 나는.”

“저기, 괜찮으세요?”

내가 묻자 크렐루스 씨가 고개를 삐딱하게 꺾어 날 쳐다봤다.

“후후후, 지금 괜찮냐고 물었나?”

“······예. 괜찮냐고 물었는데요.”

“네 눈에는 내가 괜찮아 보이나?”

“전혀요.”

저런 눈빛으로 홀로 중얼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진짜로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이 느낌······. 이건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 거냐!”

절규하듯 외치는 크렐루스 씨를 보던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맛있다?”

“맛있다?”

“네. 아마도 지금 크렐루스 씨가 느끼는 건 맛있다는 감정일걸요?”

“그렇군. 그랬어.”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크렐루스 씨가 양팔을 좌우로 펼쳤다.

“맛있다! 삼겹살, 이건 아주 맛있다!”

“······.”

크렐루스 씨는 그저 삼겹살이 맛있다는 걸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근데, 괜스레 내 얼굴이 붉어지는 건 왜일까.

한동안 “삼겹살 맛있다!”를 외치며 내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던 크렐루스 씨가 조금은 침착해진 얼굴로 날 쳐다봤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지?”

크렐루스 씨의 말에 나는 짝, 손뼉을 쳤다.

그러고 보니 이제까지 내 이름조차 밝히질 않았구나!

“저는 아이넬이에요.”

“아이넬······. 아이넬이라······.”

크렐루스 씨가 내 이름을 몇 번이고 곱씹더니, 돌연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나, 크렐루스는 약속하지. 오늘부로 너의 수호신이 되어주겠다.”

“수호신이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삼겹살을 먹다가 부르르 떨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내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들더니······.

이제는 수호신이 되어주겠다고?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래?

“혹여나 너에게 해악이 되는 존재가 있다면 언제든 내게 말하라. 내 놈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주리라. 아니, 그놈이 세상에 흩뿌린 아주 사소한 흔적조차도 모조리 소멸시켜주마.”

크렐루스 씨의 무덤덤한 목소리를 들은 나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저건 더 볼 것도 없이 진심이다.

“어, 저기······. 감사한 말씀이지만, 딱히 해악을 끼치는 존재는 없어서요.”

내가 애써 웃으며 말하자 크렐루스 씨가 입맛을 다셨다.

“그런가? 아쉽게 됐군. 그래, 당장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아이넬, 훗날에라도 너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말하라.”

왠지 말하지 않으면 내 영혼을 소멸시킬 것 같았다.

마른침을 삼킨 나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후후후. 좋다. 마음에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대답에 만족했는지, 크렐루스 씨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자, 이러다 삼겹살 식겠어요. 얼른 더 드세요.”

짐짓 화제를 돌리고자 삼겹살을 권했다. 이에 크렐루스 씨는 아차 싶다는 얼굴을 하더니, 냉큼 젓가락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직 젓가락에 채 적응하지 못한 크렐루스 씨는 좀처럼 두 번째 삼겹살을 맛보지 못했다.

“에잇!”

제딴에도 답답했는지, 크렐루스 씨가 냅다 젓가락을 내팽개치려고 했다.

하지만 차마 던지진 못하겠는지, 홀로 씩씩거렸다.

“호.”

좋은 생각이라도 난 걸까.

크렐루스 씨가 슬쩍 자신의 왼손을 쳐다보더니, 빠르게 손가락으로 삼겹살을 잡았다.

뒤이어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손가락에 잡힌 삼겹살을 그대로 젓가락 사이에 끼웠다.

“후후후후.”

그럴 거면 그냥 손가락으로 먹는 게 편하지 않을까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렇다고 대놓고 말을 하자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서 억지로 삼킨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는 건 아니니까.

손가락으로 먹든, 손가락으로 집어서 젓가락에 끼워서 먹든.

맛있게만 먹으면 그만이겠지.

“이번에는 그냥 드시지 말고, 이걸 찍어서 드세요.”

나는 아까 꺼내뒀던 접시를 내밀었다.

“그건 뭐지?”

삼겹살 하면 빠질 수 없는 바로 그것.

“쌈장이라는 거예요.”

“쌈장?”

“네! 음······. 일종의 소스인데. 쉽게 말하자면, 그 삼겹살을 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뭐, 그런 거예요.”

“뭐, 뭐라? 삼겹살을 더 맛있게 만들어 준다고? 여, 여기서 더 맛있어진다는 거냐?”

“아마도요?”

뭐, 쌈장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엄청나게 좋아하는 편이다.

백문이 불여일미라고 했다.

“자, 찍어서 드셔보세요.”

“그러지.”

크렐루스 씨가 삼겹살에 쌈장을 찍어서는 그대로 입에 욱여넣었다.

그와 동시에 크렐루스 씨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이어! 어머나게 마이아!”

보아하니 이거 엄청나게 맛있다, 라고 하는 것 같았다.

쌈장도 입에 맞나 보네.

행여나 아까처럼 또 맛있다를 연호할까 싶었던 나는 서둘러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크렐루스 씨의 앞에 쌓았다.

“여기 많이 있으니까, 실컷 드세요.”

* * *

마침내 다사다난했던 식사가 끝났다. 뒷정리를 마친 나는 볼록해진 배를 문지르고 있는 크렐루스 씨 앞에 앉았다.

그는 무언가 부족했는지, 내 배낭을 힐끗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후우, 아쉽군.”

아쉽다니.

크렐루스 씨는 내가 챙겨온 삼겹살을 모조리 다 먹었다.

그 양만 얼추 10인분이 넘었거니와, 틈틈이 채소 같은 것들도 먹었다.

즉 혼자서 거의 15인분의 음식은 먹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요. 다음에는 더 많이 챙겨오면 되죠.”

“다음에······라는 말은 또 이곳으로 오겠다는 이야기인가?”

“그럼요! 아니, 크렐루스 씨만 괜찮다면 아예 우리 마을에 놀러오셔도 되고요.”

“마을?”

“네! 아티로스라는 대륙인데, 혹시 아세요?”

“아티로스······. 으음······. 아아. 그 버릇없는 놈들이 오고 가던 차원을 얘기하는 거군.”

“버릇없는 놈들이요?”

“그래. 다케스티아라는 곳에서 넘어오는 놈들이지. 본때를 보여주려고 했다만, 녀석들의 수호신이 꽤 신경을 써주고 있어서 좀처럼 잡을 수가 없더군.”

“다케스티아!”

“다케스티아를 알고 있는 거냐?”

“네. 알고 있죠. 그······. 크흠.”

“음? 그······ 뭐냐?”

내가 무심코 뱉으려던 말을 억지로 삼키자 크렐루스 씨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까 크렐루스 씨는 내게 수호신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더불어 나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시키겠다는 말까지 했었다.

옛말에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고 했던가.

듣자 하니 다케스티아에도 따로 수호신이 있는 것 같았으니, 괜히 내가 잘못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우려가 있었다.

과장 조금 보태자면 정말로 차원 간의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내게 다케스티아라는 곳이 썩 좋게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티로스를 침공한 이들이 문제인 거지,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가봐야 할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너는 정령들을 찾는다고 했었지. 흠······. 정령이라. 그러고 보니 페아로스도 아티로스와 연결되어 있었지.”

페아로스도 알고 있는 걸 보니, 역시 차원의 틈을 관리하는 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지금은 아티로스랑 페아로스 사이에 있던 문이 닫히는 바람에 정령들이 차원의 틈에 갇히게 됐다고 들었거든요. 언제까지고 그들을 방치할 순 없어서 제가 데리러 온 거고요.”

“그렇군.”

“네. 저기······. 그래서 말인데요.”

“음?”

“혹시 정령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세요?”

아무렴.

크렐루스 씨는 이곳을 관리하는 신이다.

어쩌면 정령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정령들이라면 저쪽에 모여 있을 거다.”

크렐루스 씨가 방향을 가리켰다.

초롱꽃이 일러주던 방향과 똑같았다.

“혹시 얼마나 더 가야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음······. 글쎄다. 네가 있던 아티로스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얼추 44년쯤 걸리겠지.”

“네?”

잠깐만.

내가 잘못 들었나.

“그러니까······. 44년이요? 44일이 아니라?”

“44년이다.”

“······.”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 14년을 더 날아가야 정령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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