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48화 (146/159)

148. 소년기(130) - #차원의 틈에서 삼겹살을!

좋아.

크렐루스 씨가 승낙을 했으니 이제 요리만 하면 되는 건가.

“그러고 보니······.”

생각해보니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고 있었다.

-흐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나는 고개를 들어 크렐루스 씨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고개를 끝까지 들어야만 보이는 그의 눈동자를 보던 나는 뒷머리를 긁었다.

“어, 그게······. 크렐루스 씨는 엄청 크죠?”

-네 기준에서 본다면 크겠지.

내 기준이 아니라 아티로스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기준으로 봤을 때도 엄청나게 크겠지.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해도 드라고스 산맥보다 더 거대할지도 모른다.

이걸 어쩐다.

-그건 왜 묻는 거지?

내가 멈칫하자 크렐루스 씨가 물었다.

“지금 제가 만들 수 있는 요리의 양이면 간에 기별도 안 갈 것 같아서요.”

아니, 간에 기별이라도 가면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우리가 모기에 물렸을 때 모르는 것처럼 아예 맛 자체를 못 느낀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흐음······. 그런 거라면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크렐루스 씨가 별거 아니라는 듯한 투로 말하더니, 주변으로 잔잔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돌연 비눗방울 속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체구의 사람이었다. 게다가 나와 똑같이 생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불편한 옷을 입은 사람처럼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흐음, 이게 인간의 몸인가? 갑갑하군.”

“크렐루스 씨?”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크렐루스 씨구나.

하기야, 이 상황에서 나타날 만한 사람이라면 크렐루스 씨 말고는 없겠지.

게다가 본래의 모습이나 지금이나 특유의 중성적인 목소리와 어딘가 나른한 듯한 말투는 여전했고.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감탄은 잠시 접어두고 부랴부랴 가방을 열어 조리도구를 꺼냈다.

“호오, 그건 뭐지?”

“이건 조리도구라고 해요.”

“조리도구라······. 그럼 그 음식이라는 걸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라는 건가?”

“네! 맞아요!”

“호오······.”

크렐루스 씨가 눈을 빛냈다.

보아하니 조리도구에 큰 흥미가 생긴 듯했다.

애당초 이곳에 흥미를 가질 만한 게 없거니와 크렐루스 씨에게는 도구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리라.

문득 노인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신이라고 다 전지전능한 건 아니라고 했었지.

나는 크렐루스 씨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화로에 불을 지폈다.

“호오, 이건······.”

화르륵,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꽃을 유심히 보던 크렐루스 씨가 손을 뻗었다.

“그거 뜨거워요!”

내가 서둘러 경고했으나 크렐루스 씨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그의 손이 불꽃에 닿았다.

정작 크렐루스 씨의 손은 지극히 멀쩡했으며, 그의 표정에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이게 뜨거움이라는 거군.”

너무나도 태연자약한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크렐루스 씨를 보고 있으면 비스테르가 떠오른단 말이지.

비스테르들도 아직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그에 반해서 호기심과 탐구심은 몹시도 강하다.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족족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니는 모습을 곧잘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지만, 막상 그들은 어지간한 성인장정보다 강하다.

그랬기에 밤낮할 것 없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고.

지금도 불을 잡겠다고 손을 오므렸다가 피는 크렐루스 씨도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으나 실상은 무시무시한 신이다.

비스테르와 신.

그 스케일은 다를지언정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래, 명색이 신이니까 불에 닿는다고 다치거나 하진 않겠지.

“음······. 그나저나, 뭘 만들어야 하나.”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배낭을 살펴봤다.

그곳에는 각종 향신료를 비롯하여 깔끔하게 손질된 식자재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일단 음식이라는 걸 처음으로 접한다고 하니까, 너무 자극이 센 건 피해야겠지.

“역시 삼겹살이 최곤가.”

여태껏 다양한 음식을 먹었고, 또 소개했다.

그중에서도 삼겹살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축제에서도 삼겹살이야말로 단연 인기가 많았으며, 작금에서는 어딜 가더라도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이 되었다.

오죽했으면 삼겹살을 먹겠답시고 우리 마을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 다 했지.

덕분에 마을에는 푸줏간까지 생겼다. 나도 몇 번 가봤는데, 이전에 도리아 아주머니랑 마찰이 있었던 크로든 아저씨가 푸줏간을 담당하고 있었다.

베테랑 사냥꾼이었던 만큼 고기를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크로든 아저씨가 손질한 고기가 제일 맛있다지.

나도 먹어봤는데, 확실히 누가 손질하느냐에 따라서 고기의 맛이 다르긴 하더라.

내가 오늘 가져온 고기도 크로든 아저씨가 손질한 삼겹살이었다.

그래, 기왕 처음으로 먹는 음식이다.

거기다 나는 크렐루스 씨의 입맛도 식성도 모른다.

즉 호불호가 없는 데다가 가장 맛있다고 소문난 걸 대접하는 쪽이 확실하겠지.

“잠깐만, 이것 좀 올릴게요.”

내 말에 불꽃에서 손을 뗀 크렐루스 씨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뭐지?”

“이건 불판이요.”

“불판?”

나는 대답 대신 화로 위에 불판을 얹었다.

“이렇게 아래에서 불이 올라오면서 불판을 뜨겁게 데워요. 그럼 여기에 고기를 올려서 구워 먹는 거죠.”

“호오.”

크렐루스 씨가 재차 팔을 내밀더니 이번에는 불판에 턱, 손바닥을 붙였다.

“음, 점점 뜨거워지는군.”

“아니, 무슨 온도체크기도 아니고······.”

“온도체크기?”

“그냥 혼잣말이에요. 아무튼, 고기 올려야 되니까 손 좀 치워주세요.”

“그러지. 그래서 그 고기를 먹는다는 건가?”

이내 크렐루스 씨가 손을 거두며 물었다.

“네. 이건 삼겹살이라는 건데, 엄청 맛있어요. 아마 드셔보시면 깜짝 놀랄걸요?”

“흐음.”

나는 적당하게 열이 오른 불판 위에 선홍빛 삼겹살을 툭, 얹었다.

치이이이익!

뜨겁게 달궈진 불판에 닿은 삼겹살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며,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훗.”

“왜 웃는 거지?”

내가 무심코 웃자 크렐루스 씨가 물었다.

“그냥 이 상황이 되게 웃긴 거 같아서요.”

“음? 웃긴가?”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원래 음식이라는 건 누구랑 어디서 먹느냐가 참 중요하거든요.”

삼겹살이야 어디서 먹어도 맛있지만, 그래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야외에서 구워 먹는 쪽이 왠지 더 맛있다고들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최소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모두를 불러 모아서 삼겹살 파티를 하곤 한다.

반면에 이곳은 어떤가.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둠뿐이며, 그마저도 비눗방울 속에 앉아있다.

게다가 나와 함께 있는 이는 차원의 틈을 관리하는 신인 크렐루스 씨였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뭐가 재미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 상황이 특이하다는 건 동감한다.”

“그쵸?”

이렇듯 차원의 틈에서 그것도 크렐루스 씨와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는 이는 나 말고 없지 않을까.

“어때요? 삼겹살 굽는 냄새는?”

“음······. 처음 맡아 보는 냄새다만, 어째선지 몸이 이상하군.”

“몸이 이상해요?”

“그래. 이 부근이 꿀렁거린다. 거기다 아까 불꽃을 만졌을 때처럼 통증이 있는 것 같군.”

크렐루스 씨가 명치 부근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도 배가 고파서 그런 걸 거예요.”

역시나 몸은 솔직하다니까.

비록 삼겹살이 뭔지도 모를지언정 육체는 이게 먹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거겠지.

“배가 고프면 통증이 생기는 건가? 인간의 몸이란 여러모로 이상한 점이 많아.”

“크렐루스 씨가 보기에는 이상할지도 모르겠네요.”

언제였던가.

전생의 나는 이따금 기계가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계라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살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인간관계나 업무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기계라면 상관없었고.

근데, 또 막상 기계가 된다면 즐거움을 느낄 수 없을 테니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끔찍할 것 같더라.

당시야 내가 워낙 힘들 때라서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없잖아 있었을 뿐.

지금은 그런 생각을 조금도 하질 않는다.

뭐, 애당초 내가 기계가 될 일이 없었지만 말이야.

아니지.

마법의 힘이라면 나 스스로를 기계처럼 만드는 것까진 가능하겠구나.

“으으······.”

새삼 내가 가진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은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본 크렐루스 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갑자기 두려움을 느끼는 거지?”

“그냥 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요.”

“무서운 생각? 내 기세에는 멀쩡하던 녀석이 고작 생각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건가?”

“이런 말이 있어요.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상상력 때문이라고.”

“상상력?”

“네. 상상력이요.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막연함과 불안에서 오는 부정적인 생각들. 뭐, 그런 거요.”

“호오. 인간은 그런 걸 무서워한다는 건가?”

“인간만 무서워하는 게 아닐걸요? 음······. 만약에 크렐루스 씨가 가진 모든 힘을 잃어버리고, 인간이 된다면 어떨 거 같아요?”

느닷없이 던져진 질문에 크렐루스 씨가 고심했다.

그 모습에 나는 또 웃어버렸다.

“왜 웃지?”

“그냥······. 아까부터 제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하는 모습이 왠지 귀여워서요.”

“귀엽다?”

“아무튼, 어때요? 제 질문에 대한 답은?”

어물쩍 화제를 돌리자 크렐루스 씨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군.”

하기야.

우리가 공포를 느끼고 불안해하는 건 그만큼 나약한 존재기 때문이다.

반면에 크렐루스 씨는 신이며, 이 차원의 틈을 관리하는 입장이다.

그만큼 강한 힘을 지니고 있을 테니, 애당초 두려워할 만한 것도 없겠지.

내가 고개를 주억이고 있자, 크렐루스 씨가 입을 열었다.

“별로 상관은 없을 것 같다.”

“네?”

“힘을 잃어도, 인간이 되어도. 별로 상관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그래요?”

크렐루스 씨가 고개를 들어 어둠을 눈에 담았다.

“나는 존재하기에 그저 존재한다. 설령 내가 소멸한다고 한들 달라질 건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저 존재하지 않을 뿐이지.”

“어려운 이야기네요.”

“어려운 이야기인가?”

“네. 한편으로는 조금 슬프기도 해요.”

존재하기에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이 말을 가만히 곱씹으면 망망대해에 덩그러니 놓인 부표가 연상된다.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그냥 그날그날 부는 바람에 따라, 굽이치는 물살에 따라 휘청거리고 있을 뿐인 부표 말이다.

“아, 이제 슬슬 먹어도 되겠네요.”

내가 크렐루스 씨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삼겹살이 맛있게 익었다.

나는 집게와 가위로 삼겹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여기, 이거 받으시고.”

나는 크렐루스 씨에게 포크를 건넸다.

“음? 네가 든 것과 다르군.”

“네. 이건 젓가락이고 그건 포크예요. 아무래도 젓가락을 사용하기가 좀 까다로워서요.”

“······.”

크렐루스 씨가 내 손에 들린 젓가락과 자신의 손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냉큼 포크를 내려놨다.

“나도 젓가락을 쓰겠다.”

“어······ 음. 네, 그럼 여기요.”

뭐, 본인이 젓가락을 쓰고 싶다는데, 별수 있나.

나는 크렐루스 씨에게 젓가락을 건네며 사용법을 알려줬다.

아직 인간의 몸이 익숙하지 않았는지 연신 젓가락을 놓쳤다.

“으으으음.”

“어렵죠? 그럼 역시 포크······.”

내가 다시금 포크를 꺼내려던 차에, 크렐루스 씨가 내 손을 덥썩 잡았다.

“기다려라.”

어째서일까.

죽은 동태처럼 흐리멍덩했던 크렐루스 씨의 눈에서 후끈한 열기가 감돌았다.

그렇게 젓가락과 씨름하기를 5분여.

가까스로 젓가락을 고정한 크렐루스 씨가 핏발 선 눈으로 날 쳐다봤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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