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36화 (134/159)

136. 소년기(118) - #축제 시작!

개막식이 끝난 뒤, 나는 마을로 향했다.

“사람이 많긴 진짜 많네.”

각양각색.

저마다 자기들만의 특징을 지닌 종족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으니,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디부터 가는 게 좋을까.”

축제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나 먹을거리겠지.

“좋아. 일단 배부터 채워야지.”

안 그래도 오늘 축제가 있기에 일부러 아침을 굶었다. 배부터 채우기로 결정한 나는 각종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실 이 축제를 열기 전부터 가장 많은 고민을 했던 게 이 먹을거리다.

사람들한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건 당연했고, 실제로도 그리하려고 했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나도 회의에 참가해서 다양한 의견들을 들어봤는데, 그중 가장 무난했던 것은 뷔페였다.

말 그대로 지구의 뷔페처럼 음식들을 쫙, 깔아놓고 알아서 퍼다 먹는 방식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단점이 있었다.

기호성이다.

축제에 참가한 인원의 대다수는 다른 종족이다.

따라서 인간과는 생활 환경은 물론, 입맛도 다 다르다.

몇몇 종족이야 알고 있다고 한들 모든 종족의 입맛을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즉 그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모르는 상태로 대량의 음식을 준비했다가 모두 버려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 하나의 단점도 이와 비슷한데, 그것은 음식의 변질이다.

자고로 뭐든 갓 만든 게 가장 맛있는 법이다.

축제 기간은 그저 몇 시간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최소 이틀 이상에 밤낮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즉 한 번에 대용량으로 조리해서 비치해 둘 경우에는 음식이 상할 우려가 있었다.

마지막 단점은 위생이었다.

아무렴.

축제에는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제아무리 깔끔하게 준비한다고 한들, 이 많은 인원이 음식을 뒤적거리다 보면 자연히 이물질이 들어가기 마련.

세상천지에 남의 머리카락이 들어간 음식을 보고 기분이 좋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른 건 다 떠나서 이 위생에 대한 것 하나만으로도 뷔페식을 시도할 수가 없었다.

거기서 내 머릿속을 스친 게 있었다.

일명 푸드 코트였다.

“아니, 포장마차 거리라고 해야 하나.”

뷔페식처럼 개인이 퍼다 먹는 게 아닌, 조리를 맡은 인원이 즉석에서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음식을 조리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인원만을 배치했으며, 음식의 상당 부분은 직접 조리가 가능한 것들 위주로 선택했다.

“히야, 바글바글하네.”

나는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나 나처럼 요기부터 해결하고자 찾아온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아차, 이럴 게 아니지.”

푸드 코트를 이용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게 있었다.

내가 푸드 코트의 입구로 향하던 중이었다.

“쿠룩,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쿠룩, 그, 그러게. 뭘 받아 오라고 하던데. 쿠룩, 그게 뭐였나?”

무심코 들려온 두 오르크의 대화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보아하니 어디서 뭘 해야 하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이전에 초대장을 나눠줄 때 젠트리 씨가 이르길, 본래 오르크라는 종족은 그다지 똑똑한 이들이 아니라고 했었지.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의아했다.

그도 그럴 게, 젠트리 씨는 꽤 똑똑한 사람이었으니까.

거기다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만난 오르크가 젠트리 씨다. 따라서 오르크의 기준을 젠트리 씨로 두고 있었고, 모든 오르크가 일정 이상의 지능을 지녔으리라고 생각했다.

근데, 다른 오르크들은 만나다 보니 한 가지 깨닫게 되는 게 있었다.

오르크는 멍청한 게 아니다.

그저 눈치가 없는 종족이다. 아울러 이해하는 게 조금 더딘 종족이기도 했다.

즉 젠트리 씨가 유독 눈치 빠르고, 이해력이 좋았던 거다.

소위 오르크 계의 천재라고 해야 할까.

어차피 나도 식판을 받으러 가는 길이다. 가서 위치를 알려주고자 다가가려던 차였다.

나보다 한발 빠르게 오르크에게 향한 이가 있었다.

가슴에 안내 요원이라는 띠를 두른 비스테르, 나나 씨였다.

나나 씨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두 오르크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건가요?”

나나 씨의 목소리를 들은 두 오르크가 퍼뜩, 고개를 돌렸다. 그나마 안내 요원에 대한 건 알고있었는지 금세 안심한 얼굴로 말했다.

“쿠룩? 아! 배가 고프다. 쿠룩, 근데 뭘 받아 오라고 했다.”

“아하! 식판이랑, 수저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쿠룩? 식판. 수저. 맞다! 그렇게 그렇게 들었다.”

“네. 저기 줄 보이죠? 저기서 받을 수 있어요!”

표지판을 마주한 까막눈이 옆에 적혀 있는 화살표를 발견했을 때의 심정이 저러할까.

두 오르크는 입꼬리를 바들바들 떨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쿠룩, 고맙다.”

“쿠룩, 고맙다.”

꾸벅, 감사를 표하는 두 오르크가 뒤뚱뒤뚱 걸으며 줄을 섰다.

혹시나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 연신 주변을 둘러보던 나나 씨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짧은 순간 눈이 마주쳤다.

나나 씨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앗! 아이······.”

“쉿!”

나는 재빨리 손가락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나나 씨가 재빨리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를 삼켰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오늘 오전은 나나 씨가 안내를 맡았구나. 고생이 많아요!”

“아니에요! 저도 사람들을 돕는 게 즐거워요!”

나나 씨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태도에서도 드러나듯, 비스테르라는 종족은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운 종족이었다.

나는 가방을 뒤지는 척, 게이트를 열어 간식이 든 바구니를 꺼냈다.

“이, 이것은! 아이넬 님표 간식!”

나나 씨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바구니를 받더니 신줏단지 모시듯 품에 안았다.

그 모습이 몹시도 경건한 게 무슨 신물을 대하는 신자 같았다.

하여간, 다들 오버 액션이 특기라니까.

“자,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먹으면서 해요!”

“네! 잘 먹겠습니다! 아, 맞다. 아이넬 님도 식판이랑 수저 받으러 오신 거죠? 그럼, 제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관계자랍시고 새치기를 할 순 없지.

“어차피 시간도 널널하니까, 천천히 구경하면서 기다리면 돼요. 그럼, 가볼게요!”

“네? 아! 네! 모쪼록 즐거운 축제 되세요!”

“네. 고마워요!”

나는 나나 씨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곧장 식판을 받으러 갔다.

“금방이네.”

줄이 길기에 꽤 오래 걸리리라 생각했는데, 내 예상보다 금방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식기를 챙겨 곧장 푸드 코트로 들어갔다.

“킁킁. 아, 냄새 좋다.”

역시나 푸드 코트답게, 콧구멍으로 스며드는 바람에는 맛있는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었다.

“뭘 먹을까.”

단일 요리로 배를 채우는 것보다는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는 게 좋을 터.

메인디쉬는 잠시 보류하고 에피타이저부터 찾아볼까나.

“이거 먹을 게 너무 많아도 탈······ 오?”

두리번두리번.

뭘 먹을지 고민하며 푸드 코트를 걷던 중이었다.

저 멀리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앗! 대장이다! 대장!”

록시였다.

하기야.

먹을 거 하면 록시를 빼놓을 수 없지.

하물며 맛있는 음식이 천지에 깔렸고, 그걸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다.

록시에게 있어서 푸드 코트는 천국과도 같으리라.

“어, 넬도 왔어요?”

“아, 셀리도 있었군요!”

이제 보니 록시는 셀리오스 씨와 함께 있었던 모양이다. 매일 자매처럼 붙어다니더니, 축제도 함께 즐기기로 했나 보네.

물론 셀리오스 씨가 일방적으로 끌고 다니는 모양새였지만 말이야.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록시도 셀리오스 씨를 진짜 언니처럼 생각하며 잘 따르니 오히려 잘된 일이겠지.

그나저나 록시랑 셀리오스 씨가 이곳에 있다는 건······.

나는 주변을 살펴봤다.

아니나 다를까.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줄을 선 채 음식을 기다리는 루나와 라프린스 씨가 보였다.

그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식판을 든 채 포장마차 내부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아쉬르 씨도 함께 있었다.

지금인가!

나는 잠시 식판을 두고 가방을 열었다.

“응? 그건 뭐예요?”

“이거요?”

셀리오스 씨가 내 손에 들린 물건을 보며 물었다.

“이건 카메라라는 거예요.”

“카메라요?”

“네.”

정확한 명칭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였다.

지구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남는 건 사진이라고.

추억이란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기 마련이고, 잊혀지기 마련이다.

나야 기억력이 워낙 좋아서 잊어버릴 일이 없다고는 한들, 다른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기념할 겸 모두가 기억할 수 있도록 사진을 남기기로 했다.

비단 사진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지금 상공에서는 연신 비디오카메라가 돌아가며 모든 것들을 촬영하고 있다.

훗날 모두가 함께 모여서 사진과 비디오를 보고, 또 그때 있었던 추억을 얘기하는 건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도 했고.

어디 보자.

나는 카메라의 렌즈에 록시의 모습을 담았다.

뒤이어 버튼을 누르자 찰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카메라에서 폴라로이드 필름이 쑤욱, 튀어나왔다.

폴라로이드 필름에는 식판에 담긴 음식을 보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때, 폴라로이드 필름을 본 셀리오스 씨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머어머! 이거, 이거! 록시잖아요!”

“네. 이 카메라는 이렇게 대상을 남길 수 있어요. 이건 사진이라고 해요.”

“사진!”

한동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셀리오스 씨가 이번에는 내 손을 쳐다봤다.

낌새를 보아하니 이 사진기가 탐나는 모양이다.

“하나 드릴까요?”

“저, 정말요? 그래도 돼요?”

“그럼요!”

사진기를 제작하는데 드는 백색 마나는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거니와, 사진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나는 곧바로 카메라를 하나 만들어 셀리오스 씨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뭘요. 마음껏 찍고 싶은 걸 찍으면 돼요!”

셀리오스 씨가 저렇게 좋아하니,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아, 그나저나 셀리는 뭘 받았어요?”

내 말에 셀리오스 씨가 식판에 담긴 요리를 보여줬다.

“이거 받았어요! 진짜 맛있어 보이지 않아요?”

“어, 핫도그네요?”

“맞아요! 넬도 아는군요!”

알다마다.

애당초 이곳에서 핫도그를 아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거니와, 이 레시피를 알려준 것도 나니까.

그나저나, 진짜 맛있어 보이긴 하네.

안 되겠다.

“저도 받아와야겠네요.”

“어······. 그럼, 같이 먹는 건 어때요?”

“그것도 좋죠!”

혼자 여유롭게 즐기는 것도 좋지만, 명색이 축제다.

기왕이면 모두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먹으면 더 맛있겠지.

“그럼 각자 먹고 싶은 거 골라서 만나는 거로 할까요?”

“좋아요! 그럼 저기, 저쪽에서 만나요!”

셀리오스 씨가 푸드 코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터를 가리켰다.

이미 그곳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오케이! 그럼 그쪽으로 갈게요! 록시도 이따 보자.”

“응! 대장, 맛있는 거 많이 가져온다!”

“그래, 그래.”

이내 두 사람과 약속을 한 나는 곧바로 핫도그를 받았다. 그 후로도 나는 푸드 코드 곳곳을 돌아다니며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받았다.

“어째,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그냥 분식집에 온 것 같기도 하네.”

첫 음식이 핫도그여서 그런 걸까.

내 식판에는 떡볶이부터 시작해 어묵, 튀김, 순대 등등.

소위 떡튀순이라 일컫는 세트가 떡하니 갖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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