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35화 (133/159)

135. 소년기(117) - #축제 개막!

와글와글.

북적북적.

드라고스 산맥을 배경으로 둔 널따란 초원이었다.

본래라면 아무것도 없어야 할 이곳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있었다.

개중에는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장 친구와 함께 온 이들도 있었다.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잡담을 나누는 연인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종족도, 성별도, 연령대도 모두 다른 이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마을에서 열리는 축제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인파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초원의 한편에 세워진 높은 단상 위였다.

“허어! 저, 정말 많이도 왔군.”

축제의 진행을 맡은 대표자들 중 하나인 헤파이토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에 그 옆에 서 있던 마을의 촌장 또한 뻣뻣해진 목으로 얼굴을 주억였다.

“그, 그러게 말입니다. 내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은 또 처음 보는구려.”

촌장이 마을에서도 꼽는 연장자이며 그나마 가장 풍부한 경험을 했다.

그런 그조차도 이렇게 수많은 인파를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비단 놀란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단상에 오른 이들 모두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언제 시작하는 거요?”

헤파이토의 말에 촌장이 턱수염을 만지며 단상의 뒤쪽을 힐끗 쳐다봤다.

“아마 이제 곧······아. 오는구려.”

촌장이 기꺼운 얼굴로 말했다.

때마침 단상의 계단을 통해 한 사람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도리아였다.

그녀 또한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단상에 올라온 도리아가 모두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많이 기다리셨죠? 이제 시작할 예정이에요. 다들 이곳으로 모여주세요.”

도리아의 지시에 대표자 모두가 부랴부랴 지정된 위치로 이동했다.

이윽고 모두가 자리를 잡고, 도리아가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는 도리아. 이제 바로 시작하셔도 돼요. 오바.”

애써 떨림을 감추려는 듯, 감정을 억누른 채 무전을 날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바.

무전기 너머로 들려온 레비아의 목소리에 도리아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였다.

돌연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저게 뭐야?”

아이넬의 초대를 받아 축제에 참가한 델린이 허겁지겁 친구의 옆구리를 때렸다.

“윽! 뭐, 뭐냐 델린.”

“지금 딴짓을 할 때냐? 저걸 보라고! 위!”

델린의 다급한 목소리에 친구, 몰리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몰리의 시야에 들어온 어마어마한 광경에 헛숨을 들이키더니, 마찬가지로 옆에서 딴짓을 하던 친구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응? 뭐······. 어엉? 저게 뭐야? 이, 이봐! 저것 좀 봐!”

“컥! 뭐야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큰 거야?”

놀란 것은 델린과 그의 친구들만이 아니었다.

초원에 있는 모든 이들이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늘이었다.

축제를 기념하기라도 하듯,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화창한 하늘에 웬 거인들이 떠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돌연 거인들의 옆으로 또 다른 사람들이 비췄다.

그곳에는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이 비췄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이 좋은 종족이자 마찬가지로 아이넬에게 초대를 받은 사람인 샤클로스는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거 우리 아니야?”

샤클로스의 말에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거 같은데?”

허공에 비춘 빽빽한 사람들 중 본인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 저게 그건가? 아까 이곳으로 올 때 들었잖아? 허공에 스크린이라는 게 생길 테니 놀라지 말라고.”

샤클로스가 중얼거리며 말하며 아까 허리춤에 끼워놨던 가죽을 꺼냈다.

겉에는 축제 가이드라고 적혀 있었다.

그들이 이곳으로 오기 전.

안전 요원이라 자신들을 소개한 이들이 하나씩 나눠준 물건이었다.

그곳에는 마을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물론, 축제의 일정이 순차적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더불어 마을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축제 기간 동안 즐길 놀거리는 물론, 맛볼 수 있는 음식의 위치가 꼼꼼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아, 여기 있군. 허공에 떠오른 저건 스크린? 이라고 한다는데?”

“스크린. 아하. 여기 있군. 그게 저거였나? 워후, 신기하구만!”

“음. 다음으로 하는 게 개막식이군. 대표자 도리아······.”

샤클로스의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이었다.

이번에는 하늘에서 잔잔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녕하세요. 저는 축제의 대표를 맡게 된 도리아라고 합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도리아의 목소리에 일순 장내가 조용해졌다. 아울러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쏠렸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리듯, 스크린 너머로 비치는 중년 여성이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 마을까지 그 먼 길을 달려와 주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도리아가 꾸벅 허리를 숙여 진심을 전했다.

-먼저 우리 마을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할까, 합니다.

그렇게 도리아의 안내 겸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한편, 이런 도리아의 설명을 듣지 않는 이가 있었다.

정정한다.

정확히는 들을 수 없는 상태라고 보는 게 옳으리라.

단상의 뒤였다.

그곳에 앉아 장비들을 만지며, 도리아의 보조 및 축제의 진행을 돕는 인물이 있었다.

레비아였다.

아무렴.

지금도 모든 사람들을 홀린 스크린은 물론, 도리아의 목소리를 증폭시켜주는 마이크.

그 외에 축제를 진행하면서 쓰일 장비들은 모두 마법적인 힘으로 움직인다.

물론 아티펙트인 만큼 그 누구라도 다루는 게 가능했지만, 그래도 마법사인 레비아야말로 장비를 다루기에 가장 훌륭한 적격자였다.

레비아가 괜스레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 필요한 거라도 있으세요?”

저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라피가 물었다.

“음? 아, 아무것도 아니······ 음. 미안한데, 차 한 잔만 부탁해도 될까?”

바짝바짝 말라 갈라진 입술을 훔치며 말했다.

“네! 제가 금방 타 올게요!”

라피가 특유의 통통 튀는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홀로 남은 레비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이토록 심려하는 건 동생인 레스티아 때문이었다.

“후우. 오늘로 3일째인가.”

얼마 전이었다.

레비아는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

그것은 자신의 동생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평소 그의 성향이라면 대번에 의심부터 했을 레비아다.

그도 그럴 게, 그가 동생을 치료고자 수십 년을 떠돌아다녔음에도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

물론 레비아도 치료의 방향성은 알고 있었다.

일단 레스티아의 몸에 남은 마나를 모조리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나아가 레스티아의 체질을 억누르기 위해서 마나스냇치의 열매를 지니고 곁에 둔다면 또다시 폭주할 위험성은 사라진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내상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방법이니까.’

물론 레비아도 숱한 상처를 입었고, 어지간한 상처라면 능히 치료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외상.

즉 눈에 보이는 상처에 한해서지, 눈에 보이지 않는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나뿐인 동생의 목숨을 담보로 모험을 할 수도 없는지라 뚜렷한 대책이 나올 때까지는 마냥 기다릴 수밖엔 없었다.

그게 벌써 반백 년이 지났다.

그도 실감하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동생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넬이라면······.’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넬이다.

레비아는 아이넬을 직접 보고 겪어왔다.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늘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인물이자, 그 누구보다 생각이 깊고 마음이 넓은 사람.

수백 년을 살아온 레비아 본인조차도 배워야 할 게 많으며, 존경해 마지않을 아이가 아이넬이었다.

‘그래, 아이넬이라면 믿을 수 있지.’

빈말이 아니었다.

레비아는 아이넬에게 강한 신뢰를 품고 있었다.

그런 아이넬의 자신을 찾아와 동생을 치료할 수 있노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서다.

레비아가 봉인시킨 레스티아를 누군가에게 보여준 것은 처음이었다.

“후우우.”

레비아가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제아무리 아이넬을 믿는다고 한들, 무려 3일이나 소식이 없었다.

하물며 축제가 시작되는 당일까지도 소식이 없었으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레비아가 멀거니 하늘을 올라다보며 복잡한 마음을 어르고 달래던 중이었다.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 차를 부탁했었지.’

라피가 왔으리라 생각한 레비아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고마······.”

레비아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창백한 피부와 작고 여린 체구의 소녀였다.

짧은 시간 흐르던 정적을 먼저 깬 쪽은 레비아였다.

벌떡!

그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덕분에 의자가 넘어지며 장비와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비아는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소녀를 응시했다.

이내 굳어 있던 레비아가 한 발 내디뎠다.

터벅.

터벅.

점점 소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에 따라 소녀의 얼굴에도 복잡미묘한 감정이 떠올랐다. 확실한 것은 소녀 또한 애써 참고 있을 뿐, 레이바처럼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스티아?”

레비아가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소녀가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야, 오빠.”

그녀의 눈에서도 굵은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 * *

“크흥! 고맙다, 정말. 정말.”

레비아 선생님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날 부둥켜안았다.

자꾸만 어깨를 적시는 뜨뜻미지근한 눈물과 콧물에 쓴웃음을 지었다.

오기 전에 싹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이래서는 다시 옷을 갈아입어야 할지도.

아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레비아 선생님의 어깨를 잡아 밀었다.

“아니, 정말로 저는 괜찮다니까요? 자자, 이러지 말고 어서 일어나세요. 레스티아 씨를 계속 저렇게 둘 수도 없잖아요?”

동생의 이름이 언급한 뒤에서야 레비아 선생님이 눈물을 훔치며 몸을 일으켰다.

“크흑. 고맙다, 정말로.”

“뭘요. 자자, 슬슬 개막식도 끝난 것 같으니까, 레비아 선생님은 동생이랑 같이 축제 구경이라도 하세요.”

사실 레스티아 씨의 치료가 끝난 것은 하루 전이었다.

다만 그녀의 치료가 끝난 것과는 별개로 몸이 너무 약해져 있었다.

아무렴.

제아무리 마법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들, 반백 년을 누워있었으니 약해지지 않을 순 없었겠지.

그래서 하루 동안 그녀와 함께 오두막에 머물며 회복을 도왔다.

덕분에 레스티아와 레비아 선생님은 물론, 내가 몰랐던 것들도 꽤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였던 건 데바들이었다.

뭐, 이건 나중에 차근차근 알아보기로 하고.

“훌쩍. 아이넬은 어쩔 생각이야?”

“저요? 당연히 축제를 즐겨야죠!”

축제를 개최하자고 했던 것은 마을 사람들을 위함도 있었지만, 내가 즐기기 위함도 있었다.

“저는 여기저기 돌아다닐 예정이거든요! 그러니까, 레비아 선생님도 레스티아 씨랑 맛있는 것도 먹고 하면서 놀아요!”

애당초 레스티아 씨의 치료를 앞당긴 건, 이렇듯 남매가 오붓하게 축제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래야지. 고맙다 아이넬.”

“자자, 알았으니까! 얼른 가세요!”

“아, 알았다. 레스티아.”

레비아 선생님이 레스티아 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내게 감사의 말을 전한 레스티아가 레비아 선생님의 손을 잡았고, 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를 벗어났다.

“조금 늦었······어라? 아이넬 님?”

“어, 라피 씨? 그건 뭐예요?”

“이거, 레비아 선생님이 차를 부탁해서요! 근데, 레비아 선생님은요?”

“방금 갔는데요?”

“네에?”

자기가 늦어서라고 생각했던 걸까.

라피 씨의 귀가 추욱 쳐졌다.

“아아, 잠깐 볼일이 있어서 그래요. 그럼 그거 제가 마셔도 될까요?”

“그, 그럼요!”

나는 라피가 건넨 차를 후르륵, 들이켰다.

“자, 이럴 게 아니라 라피 씨도 같이 가죠!”

이제 본격적으로 축제를 즐겨볼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