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소년기(116) - #치료 방법
나는 가만히 서서 레스티아 씨를 바라봤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인, 숲속의 잠자는 공주를 직접 마주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옅게나마 가슴팍이 오르내리는 걸 보지 않는다면, 인형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조용하게 자고 있었다.
잠시 레스티아 씨를 응시하던 나는 뺨을 긁었다.
“근데, 정말로 깨워도 괜찮은 건가, 모르겠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봉인이 된 상태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일지언정, 실제로는 근 반백 년은 잠들어 있었다.
그동안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그녀가 알던 사람들 중, 세상을 떠난 이도 있을 것이고, 자신도 모르는 가족이 생겨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연, 그녀가 깨어났을 때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거기다 깨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수도 없었다.
그래,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는 게 좋을 터.
무엇보다.
나는 레비아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나에게 이렇다 할 대가를 요구한 적이 없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알려준 것이다.
그래서다.
내가 존경하고 또 아끼는 사람인 레비아 선생님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었고, 은혜를 갚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레비아 선생님에게 큰 고민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 레스티아 씨였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예전에 레비아 선생님에게 듣기로.
레스티아 씨는 무리하게 마법은 운용하던 중 마나가 폭주했다고 말씀하셨다.
“마나의 폭주.”
단순히 마나가 폭주한 거라면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냥 그녀의 몸속에 존재하는, 지금은 레비아 선생님이 가까스로 억누른 마나를 강제로 뽑아내면 된다.
그리고 내가 차고 다니던 로켓 펜던트와 똑같은 걸 차면 된다.
비록 완전한 치료는 아닐지언정, 당장 위험한 고비는 넘길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레비아 선생님도 진즉 떠올린 방법이었다.
애당초 레비아 선생님이 마나스냇치의 열매를 갖고 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고.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쉬운 방법이 아니었거니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생명체가 품은 마나를 강제로 뽑아낸다는 것은 흡사 피를 뽑아내는 것과 비슷했으니까.
정정한다.
애당초 어딘가에 귀속된 마나를 강제로 회수한다는 것부터가 마법사의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레비아 선생님은 쉽사리 시도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나한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말이야.”
자고로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기 마련이라고 했던가.
나는 체질상 모든 마나를 끌어들인다.
달리 말해서 그 어떤 마나라도 흡수해서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내 안을 휘젓고 다니는 백색 마나가 그 증거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설마하니, 녹색 마나까지 생길 줄은 몰랐단 말이지.”
내게는 이로나스 씨에게 받은 백색 마나에 이어 녹색 마나까지 생겼다.
내가 녹색 마나를 얻게 된 계기는 무척이나 단순했다.
정령.
그러니까, 얼마 전 에프렐 무리와 충돌이 있었을 때 나는 불의 정령 이그니를 구했다.
본래 맹약이 깨진 즉시 아티로스에서 추방당했어야 할 이그니는 정령의 왕인 반디와 연결되었고, 무사히 지상에 남을 수 있었다.
거기서 나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듣기로는 정령을 다룰 수 있는 자들.
정확히는 정령과 맹약을 맺을 수 있는 자는 에프렐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에프렐은 어떻게 정령과 맹약을 맺을 수 있었을까.
답은 녹색 마나였다.
니엘 씨와 이그니의 맹약이 깨진 순간 보였던 선이 바로 녹색 마나였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 나도 녹색 마나를 가질 수 있는 걸까, 싶어서 나르비 씨에게 문의를 해본바.
자신도 모르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안 된다는 말이 아닌 모른다는 말 때문인지, 괜히 내 궁금증은 커져갔다.
결국 참지 못한 나는 반디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물론 반디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반디는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 어떻게든 힌트라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근데, 막상 반디에게 말해보니 이게 웬걸.
돌연 반디가 마나를 뿜어내는 게 아닌가. 일전에 이그니와 니엘 씨의 사이에 생겨났던 녹색 마나였다.
나는 그 즉시 로켓 펜던트를 벗어 녹색 마나를 흡수했다.
“그게 성공할 줄은 몰랐지.”
놀랍게도 녹색 마나는 원래부터 내 것이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그 결과 내 몸속에는 파란 마나와 백색 마나에 이어 녹색 마나까지 자리를 잡은 것이다.
더불어 녹색 마나로 말미암아 나는 정령과 맹약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아니지.
맹약이라고 하기엔 조금 이상하구나.
음.
그러니까, 맹약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이그니처럼 맹약이 깨지더라도, 내 녹색 마나를 통해 유지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맹약자가 나로 바뀐다고 보면 된다.
아울러 맹약이 유지됨으로 인해 정령 또한 아티로스에 남아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녹색 마나를 흡수한 나는 모든 종류의 마나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마법사의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원인이라고 해야 할까.
이게 가능한 이유라면 딱 하나 떠오르는 게 있다.
내 육체였다.
몇 번이고 말했듯, 내 육체는 평범의 범주를 벗어났다.
따라서 내가 모든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것 또한 타고났기에 가능한 셈.
반면에 레스티아 씨는 체질만을 타고났다.
스스로 제어를 할 수 있었다면 모를까.
당시 조급했던 레스티아 씨는 무리하게 마법을 운용했고, 그것이 결국 폭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문제는 마나만 제거한다고 끝이 아니라는 거지.”
내가 레비아 선생님께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레스티아 씨가 폭주했을 당시 엄청난 양의 피를 토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몸속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며, 내상을 입었음을 의미한다고 레비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즉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일지라도, 내부가 엉망진창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따라서 레스티아 씨의 내부에 잔존하는 마나를 제거한다고 한들, 정작 내상을 치료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하물며 단순히 도구를 제작하는 거라면 실패를 해도 상관이 없다.
까짓 안 되면, 될 때까지 제작하고 또 제작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레스티아 씨의 경우는 도구가 아니다.
자칫 한순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널 수도 있는 것이다.
뭐, 이 또한 해결할 방법이 있었기에 이렇듯 치료를 하겠다고 나선 거지만 말이야.
“일단 마나부터 제거해야겠지. 그전에······”
나는 레스티아 씨가 누워있는 관을 중심으로 둔 채 마법진을 그렸다.
이는 마법진 주변으로 마나가 오지 못하게 막는 마법진이었다.
이윽고 마법진이 발동하며 주변을 흐르던 마나가 후욱, 밀려났다.
이른바 마나 진공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로켓 펜던트를 해체해 저 멀리 치웠다.
“이 정도면 됐고.”
나는 큰 수술을 앞둔 의사처럼, 자못 비장하게 중얼거리며 레스티아 씨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서서히 마나를 흡수했다.
가장 먼저 내 살갗을 파고드는 마나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딘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아하.
어쩐지 낯설지 않더라니, 이건 레비아 선생님이 심어 놓은 마나구나.
단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마나의 성질이 조금 변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진짜 완벽하네.
어찌나 꼼꼼했는지 본래라면 날뛰었어야 할 마나가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아무렴.
자신의 동생이었으니 공을 들이는 건 당연했지만, 이렇게까지 하려면 적지 않은 고생을 하셨으리라.
음.
이거 두 사람의 마나가 너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네.
이래서는 그냥 내 마나를 이용해서 두 사람의 마나를 한꺼번에 꺼내는 쪽이 더 안전하겠지.
적절한 방법을 떠올린 나는 조심스럽게 마나를 주입했다. 이내 레스티아 씨의 몸에 있는 모든 마나를 감쌌다.
뒤이어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였다.
방금 그려둔 마법진 덕분에 내가 끌어당길 수 있는 마나는 정해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의 마나를 감싼 내 마나가 느릿느릿 움직이며 레스티아 씨의 몸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30분이 지났다.
“휴우.”
간단하다면 간단하게 모든 마나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앞서 말했듯 마나를 제거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내상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제아무리 지구의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한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상적인 혹은 상식적인 부분에 한해서다.
달리 말해서 전문적인 지식까지 빠삭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의학적인 부분은 거의 문외한이라 해도 무방했다.
반면에 내상이라는 건 몸속에 생긴 상처다.
이건 아무런 지식도 없는 내가 내상을 치료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차라리 속된 말로 야매 의사한테 맡기는 편이 수십, 수백 배는 안전하다고 볼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지구의 방식으로 치료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지만 말이야.”
나는 레스티아 씨의 몸에 칼을 댈 생각이 없었다.
“재생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지.
재생이라는 건 상처가 스스로 낫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즉 내가 선택한 치료 방식에 어울리는 이름이라면,
“이식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지도.”
나는 레스티아 씨의 내부에 생긴 상처.
그러니까, 살이 떨어져 나간 부위에는 살을, 가루가 난 뼈에는 뼈를, 피가 부족한 부분에는 피를.
저마다 필요한 것을 만들어서 붙일 생각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정말 공상과학에서나 존재할 법한 기술이었으니까.
실제로도 이 방법을 떠올림과 동시에 고개를 젓기도 했고.
근데, 또 생각해보니까 이 방법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한 사람은 물론,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 말이다.
그 증거라는 것은,
“이로나스 씨, 호문클루스.”
그렇다.
이를 증명한 사람은 이로나스 씨였고, 증거는 그가 창조한 인공생명체인 호문클루스였다.
호문클루스는 백색 마나를 영양분 삼아 태어났으며,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아르젠 씨였다.
이렇듯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할 수도 있는 힘이 백색 마나다.
내상을 치료하는 것 정도는 아주 간단한 일이 아닐까?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나는 백색 마나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곧장 실험을 했다.
첫 대상은 꽃이었다.
나는 거센 바람을 이기지 못해 똑, 부러진 꽃에 백색 마나를 불어넣었다. 뒤이어 눈을 감은 채 머릿속으로 꽃이 멀쩡해지는 장면을 그렸다.
그리고 내가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아주 화사하게 피어난 꽃 한 송이가 놓여있었다.
어찌나 신기했던지.
내가 해놓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른 나는 실험을 이어나갔다.
꽃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벌레로, 벌레에서 마수까지.
결과적으로 모든 실험은 성공이었다.
하물며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상처를 입은 마수조차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가자.”
깊게 숨을 들이마신 나는 그대로 레스티아 씨의 몸속으로 백색 마나를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