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33화 (131/159)

133. 소년기(115) - #레스티아

본래의 계획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돌리면서 길을 따라오면 마을에 도착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건 엄연한 페이크였다.

초대장은 일정 거리까지만 알려줄 뿐, 직접 마을까지 안내하진 않았다.

하물며 마을과는 아예 반대되는 방향으로 향하게끔 안내하는 초대장도 있었다.

달리 말해서 마을에 도착한 손님을 비롯하여, 추후 도착할 손님들은 전적으로 게이트를 이용해야만 한다.

옛말에 적을 속이려거든 아군부터 속이라고 했던가.

나는 가능한 게이트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초대장을 돌리는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게이트를 열어버렸다면, 자연스럽게 데모스의 추종자들의 눈과 귀에도 들어가게 될 터.

그랬기에 나는 초대장이라는 이름의 열쇠를 제작했다.

거기다 데모스의 추종자에 한해서지, 다른 이들에게는 공개해도 별로 상관이 없다.

애당초 축제가 끝난 후에는 아예 장터로 이어지는 게이트를 열 생각이었으니까.

따라서 지금 게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기도 했다.

“그나저나 오늘까지 2,522명이 도착한 건가.”

당초에 내가 예상했던 참가 인원은 얼추 2,000명이었으니, 진작 목표치는 넘어섰다.

게다가 축제가 열리기까지 3일이 남았다는 걸 가정한다면, 족히 500명은 더 올 터.

“역시 여유롭게 준비한 게 정답이었네.”

과유불급.

자고로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하는 바이지만, 이번 축제에서만큼은 아니었다.

가능한 모두가 배불리 먹고, 편하게 즐기게끔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를 했다.

이는 숙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인원이 참가하긴 했지만, 듀로프들의 능력이라면 하루 만에 호텔을 짓는 것도 가능하다.

거기다 틈틈이 모아둔 백색 마나도 있었으니, 까짓 몇 채 더 만들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상공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던 나는 본부에 무전을 보냈다.

“여기는 아이넬. 저는 이제부터 잠깐 볼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울 예정이거든요. 언제라도 무전은 가능하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연락 주세요. 오바.”

-알겠습니다! 오바!

좋아.

무전을 마친 나는 곧장 게이트를 열었다.

“그럼 저 잠깐, 다녀올게요! 웃차!”

아르젠 씨에게 인사를 마친 나는 곧장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게이트를 통과해 도착한 곳은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이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문득 귓가를 파고든 앳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엘리니아 씨가 방긋 웃으며 데커드 할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내밀고 있었다.

오오, 아프루 파이잖아?

그러고 보니 나한테 레시피를 물어봐서 알려줬었지. 하지만 정작 요리를 해본 적 없는 엘리니아 씨는 레시피를 든 채 발만 동동 굴렀고, 그걸 보던 나는 미슐레 아주머니를 소개해줬다.

요리를 배운 지 3일도 채 되지 않았을 텐데, 벌써 파이를 만들다니.

물론 겉모습은 깔고 앉은 찐빵 같았지만, 그래도 저걸 만들어냈다는 건 제법 요리에 소질이 있다는 거겠지.

“이거 제가 만든 거예요! 한 번만 드셔보시면 안 돼요? 네?”

엘리니아 씨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며 접시를 내밀었다.

하지만 데커드 할아버지는 뚱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팩 돌렸다.

이에 엘리니아 씨가 풀죽은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금 밝게 웃은 엘리니아 씨가 재차 데커드 할아버지의 옆에 바짝 붙었다.

“이거요! 생긴 건 이래도 맛있어요! 네? 조금이라도 괜찮으니까요! 네? 네?”

깡충깡충, 뛰면서 연신 아프루 파이를 권하는 엘리니아 씨를 보고 있노라면, 할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리는 손녀 같다고 해야 할까.

물론 실상은 단단히 삐친 할아버지를 달래는 손녀라고 보는 게 옳았지만 말이야.

엘리니아 씨가 데커드 할아버지를 따라다닌지도 어언 3일 차인가.

으레 그렇듯 마을에 엘리니아 씨를 데려온 나는 가장 먼저 도리아 아주머니께 소개했다.

그 후로 간단하게나마 마을을 안내해준 나는 곧장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도 그럴 게, 엘리니아 씨는 에프렐이다. 그리고 데커드 할아버지는 에프릴과 인간의 하플링이다.

비록 처음 보는 사이라고는 한들, 피가 섞인 동족이다.

그래 봐야 에프렐을 고깝게 생각하는 데커드 할아버지는 엘리니아 씨를 보자마자 싸늘한 태도를 취하셨다.

데커드 할아버지를 소개해주기 전, 그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해줬지만, 역시나 엘리니아 씨는 이에 큰 상처를 입은 듯했다.

다행스럽게도 엘리니아 씨는 마냥 약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데커드 할아버지가 겪었을 수모와 고통을 이해할 순 없을지언정,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며 졸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저렇게까지 노력하는데 좀 받아주시지.

“할아버지이! 조금만요! 네?”

“······.”

오?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다니는 엘리니아 씨의 집요함에 백기를 든 걸까.

결국 데커드 할아버지가 접시를 받아들었다.

이야.

그동안 무시만 하던 것에 비하자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내 데커드 할아버지가 파이를 집어 한 입 드셨다.

“어때요?”

“달다. 지나치게 달아.”

다소 혹독한 평가였다.

그러나 정작 엘리니아 씨는 마냥 해맑게 웃었다.

데커드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프루 파이를 드셨다는 것이 기뻤던 거겠지.

“그래요? 헤헤. 그럼 다음에는 덜 달게 만들게요!”

내가 두 사람을 보며 흐뭇하게 보고 있자, 어깨에 가벼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마음을 조금 연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무게감의 정체는 나르비 씨였다.

“그러게요.”

“아, 그나저나 축제 준비는 잘 돼가고 있어요?”

“그럼요! 나르비 씨랑, 요정들 덕분에 훨씬 편해졌어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요정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날개에 묻어있는 가루였다.

나르비 씨가 이르길, 그 가루는 요정의 정수라고 한다.

이 요정의 정수에 닿게 되면 자연스럽게 몸에 흡수가 되는데, 신기하게도 몸에 쌓인 피로가 풀린다.

그중에서도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데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거기서 나는 이 요정의 정수를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아, 저도 가봤어요! 요정의 쉼터라는 곳이요!”

요정의 쉼터.

바로 온천이었다.

사실 말이 온천이지, 실질적으로는 공중목욕탕 겸 대형 풀장이었다.

풀장이라는 말처럼 규모가 엄청나게 컸으며, 우리 마을 사람들 모두가 들어가고도 한참은 남는다.

당연하게도 마을 사람 모두가 이용할 수 있게끔 개방이 되었으며, 모든 탕에는 요정의 정수를 풀었다.

나도 집에 욕조가 있지만, 최근에는 요정의 쉼터를 애용하는 편이었다.

“가보셨어요? 어때요?”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던데요? 정말, 목욕이라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은 행위인 줄 처음 알았다니까요. 오늘도 가야겠어요!”

나르비 씨는 요정의 쉼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는지, 내 어깨에 누워 양팔을 파닥거렸다.

아, 오셨네!

때마침 레비아 선생님이 보였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아, 저는 슬슬 가봐야겠네요. 그럼 이따 봬요!”

“네. 조심히 가요!”

이내 나르비 씨가 내 곁을 떠났고, 나는 곧장 레비아 선생님께로 향했다.

“선생님, 오셨어요?”

내가 알은체를 하자, 레비아 선생님이 퍼뜩 고개를 돌렸다.

“어, 왔구나. 음, 그래.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는 거야?”

“그럼요! 레비아 선생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축제 준비는 완벽해요!”

“그, 그래. 다행이구나.”

레비아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입꼬리가 작게 떨리는 게, 적잖이 긴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기야.

긴장하는 게 당연하겠지.

사실 나만 하더라도 내심 긴장되는 게 사실이니까.

“음, 그래. 어······. 저, 지금 바로 갈 생각이냐?”

레비아 선생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잘 몰라서요. 기왕이면, 바로 시작하고 싶은데. 시간이 필요하시면, 조금 늦출까요?”

레비아 선생님이 입술을 깨물더니, 냅다 자신의 뺨을 때리셨다.

“아니야. 지금 바로 부탁할게.”

“알겠어요. 그럼 바로 그쪽으로 이동해요.”

나는 곧장 게이트를 열었다.

“자, 가요!”

나는 레비아 선생님과 함께 게이트를 통과했다.

이윽고 우리가 발을 디딘 곳은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공터였다.

“이쪽이다.”

내 뒤를 따라 공터에 도착한 레비아 선생님이 굳은 얼굴로 길을 안내했다.

그렇게 레비아 선생님을 따라 걷기를 30분여.

마침내 걸음을 멈춘 레비아 선생님이 숲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마나를 끌어올려 마법을 해제했다.

그와 동시에 주변 풍경이 연기처럼 팍, 사라지며 낡은 오두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숲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오두막을 응시하던 레비아 선생님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오두막 안에 내 동생, 레스티아가 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레비아 선생님과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오두막 안에는 흡사 관처럼 생긴 물건이 있었다.

레비아 선생님이 느릿느릿, 관을 향해 다가가더니 무릎을 굽혔다.

“레스티아, 나다.”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레비아 선생님은 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레비아 선생님의 옆에 있는 관을 응시했다.

저 안에 레비아 선생님의 동생이 잠들어 있는 거구나.

내가 레비아 선생님과 함께 이곳에 온 이유.

그리고 그가 이토록 걱정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동생, 레스티아 씨 때문이었다.

이전에 레비아 선생님은 여동생인 레스티아 씨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요컨대, 그녀는 나처럼 마나를 끌어들이는 체질을 타고났다.

그리고 체질을 제어할 수 없었던 그녀는 끝끝내 폭주했고, 마을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으나 그로 인해 레스티아 씨는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고, 레비아 선생님이 강제로 봉인을 시켰다.

그렇게 정신을 잃은 레스티아 씨는 이곳, 오두막에서 깨어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벌써 수십 년째.

“확인해봐도 괜찮을까요?”

내 말에 레비아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옆으로 비켜섰다.

“부탁하마.”

고개를 끄덕인 나는 관 뚜껑을 열었다.

마침내 관 안에 잠든 레스티아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창백한 피부, 산양을 닮은 뿔은 그녀가 레비아 선생님의 동생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선생님이랑 닮았네요.”

내가 농담조로 말하자 레비아 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그래? 나는 별로 안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에이, 남매인데요? 이 뿔만 봐도 레비아 선생님이랑 똑같잖아요.”

“뭐, 그거야 그렇지.”

시답잖은 잡담으로 긴장을 해소한 나는 레비아 선생님을 보며 말했다.

“자, 이제부터 바로 시작할게요. 선생님은 마을로 돌아가 계세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글쎄요. 정확한 건 해봐야 알 것 같아요. 혹시 늦어질 것 같으면, 무전할게요.”

“알았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레비아 선생님이 허리를 숙여 내 손을 잡았다.

“부탁한다.”

“에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누구에요?”

“아이넬이지. 그래, 너라면 걱정할 건 없겠지. 하하,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은데.”

쉬이 걱정을 떨칠 수 없었는지, 레비아 선생님의 말이 길어졌다.

아무렴.

동생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긴장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겠지.

“그럼, 진짜로 갈게. 부디, 잘 부탁한다.”

“네. 멀리 안 나갈게요!”

이윽고 레비아 선생님이 오두막을 나섰다.

삽시간에 찾아온 정적에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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